〈 39화 〉#07_아현이 (7)
우리들의 하루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카메라들.
하지만 그것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찍는 것이지
“리얼리티라고 하지 않았어요?”
“리얼리티가 진짜 리얼리티겠냐? 그리고 너희들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사는데 분량이 안 나오지.”
매니저 실장님의 말이 일 리가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여행가서 뭐하면 되는 거에요?”
“컨셉이 멤버들끼리 팀워크를 높이려는 취지니까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다만 몇 군데는 무조건 들려야 한다는 건 알아 둬.”
“미리 섭외 된 곳이 있나보네요.”
“음식점은 미리 섭외 됐지. 관광 명소도 꼭 들려야 하고.”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고 했으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저렇게잔뜩 만들어뒀다는 건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아!!!”
“여행! 여행! 여행! 여행!”
“만세~!! 아자아자! 탈출이다아~!!”
연습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멤버들은 행복 수치 MAX인 것이다.
“여행 어디로 가는 거에요?”
“해외로 갈 거야. 거기가면 바다에서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야.”
“우왓!! 바다다, 바다!!!!”
“미쳐따리~ 미쳐따리~”
“남은규, 카메라 있는데 너무 경박스러운 거 아니냐?”
“리액션을 이렇게 해야 예능에서 먹히는 거야.”
“네 리액션은 추해보여.”
“뭐시라? 내가 추하다고? 용서 못해!”
“윽! 이거 놔!”
강준과 남은규는 나이가같아서 그런지 가장 자주 붙어 있으면서도 소소하게 투닥 거리는 걸 잘 했다.
형들에게 깍듯하고, 동생인 기우연에겐 든든한 형 역할을 잘 하면서도 이상하게 강준과는 투닥인다.
아마도 동갑끼리만 느끼는 우정이 아닐까 싶다.
“언제가요?”
“리얼리티 촬영팀에서 슬슬 분량 만들어야 된다고 해서 다음 주에 가려고 하는데 다들 괜찮지?”
“넵! 당연하죠.”
“완전 괜찮아요!”
“이게 다 너희들이 라이브 무대를 완벽하게 성공시켜서 계획할 수 있었던 거야. 앞으로도 다들 열심히 해. 그럼 이렇게 보상으로 휴식 할 수 있게 해줄 테니까.”
“흐흐, 네엡!”
“바다 들어갈 수 있어요?”
“당연히 들어가야지. 괜히 촬영을 바다로 한 줄 아니?”
“아….”
“설마 저희 수영복 입은 거 촬영해요?”
수영복을 촬영한다는 말이 나오자 멤버들 표정이 껄끄러워진다.
허니 엔터가 남자를 성 상품화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야한 수영복 입으라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도 싫어하면 자격 없는 거다. 다른 애들은 더 심한 노출로 먹고 살아.”
“네에….”
“불만 있는 거 아니에요.”
“수영복은 저희들이 정해도 되는 거죠?”
“수영복도 스폰 들어 온 거 있어. 거기서 선택은 너희들이 하는 걸로 하자.”
“볼래요!”
“참고로 수영복 고르는 것도 촬영 할 거야.”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남자가 수영복 고르는 걸 구경한단 말인가?
‘반대로 생각해보자. 여자 아이돌이 수영복 고르는 걸 리얼리티로 보여준다?’
쌉가능!
반대로 생각해보니까 말이 된다는 게 참 우습다.
역겹지만 어쩔 수 없지.
멤버들은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찍혀야 한다는 불쾌감은 뒤로 미루고 여행 자체에 집중해 한껏 들떴다.
사실 나도 해외로 나간다는 것에 살짝 들뜬 상태이긴 했다.
‘금발!! 여자!! 서양!!’
-불끈!!
나는 도플갱어 인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매만졌다.
‘너만 믿는다.’
도플갱어 인형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다.
서양인 여성과 좋은 밤을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다.
♣ ♣ ♣
매니저 실장님이 알려준 날로부터 며칠 뒤.
리얼리티 카메라 안에서 멤버들과 나는 수영복을 하나씩 골라야 했다.
모두 스폰을 받은, 디자이너 작품의 고급스러운 수영복이었다.
삼각 수영복이나 사각 수영복은 없었고, 상체와 하체 모두 가릴 수 있는 래쉬가드 수영복들이라는 게 의외였다.
이런 게 수영복이라면 솔직히 ‘노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그럼에도 멤버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부끄럽다느니 쑥스럽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웩- 또 떠올렸네.’
멤버들과 내가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리얼리티 카메라가 열정적으로 찍는 꼴을 참고 봐주는 건 견디기 힘든 불쾌한 경험이었다.
“아하하!! 그래서 어떤 수영복 골랐어?”
“누나도 내 수영복이 궁금해요?”
“여자들 입장을 대변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엄청 궁금해.”
“하….”
복순 누나가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그녀와 뜨밤을 보내고, 나체인 채로 침대에 누워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는 중이었다.
복순 누나는 나와 멤버가 해외에 나간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그 얘기를 꺼냈다.
덕분에 수영복에 관련 된 내용이 다시 떠올라버렸고 말이다.
“그냥 무난한 걸로 골랐어요.”
“무슨 색?”
“검은색이요.”
디자이너 작품이라서 검은색의 수영복이지만, 금색의 화려한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탓에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에이, 기왕이면 빨간색으로 하지 그랬어. 정열적인 빨간색!”
“어우! 싫어요.”
“파하하! 되게질색하네.”
“진심으로 싫었으니까요. 도대체 그걸 왜 찍는 거냐고요.”
“네가 좀 이해해줘. 어쩔 수 없는 거라니까.”
복순 누나가 내 가슴에 손가락 하나를 콕 찍더니 빙글빙글 돌렸다.
젖꼭지를 만지는 건 아닌데 그 주변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는 게 무척이나 꼴렸다.
“또 하고 싶어요?”
유혹의 손짓이었고, 나는 그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그녀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는 거기에 또 힘이 들어가니?”
“들어가야죠. 제가 이걸로 먹고 사는데.”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정력을 올릴 거다.
솔직히 현재 내 정력은 여자 한 명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걸로 먹고 산다고?”
“아닌 것 같아요? 이걸로 복순 누나 먹이고 있잖아요.”
“앗!”
그녀의 가슴을 앙 깨물었다.
“야아앙~! 아팟!”
“흐흐흐.”
쪼옥! 쪼옥! 쪼옥!
“젖도안 나오는데 뭐가 그렇게 좋다고 빠는 거야?”
“남자는 가슴에 진심일 수밖에 없어요.”
“가슴 큰 여자 좋아해?”
“당연하죠.”
가슴이야 말로 남자의 쉼터.
이 완벽한 젖가슴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살내음을 흠뻑 마시자 그녀가 내 머리를 다정하게 토닥여주었다.
있지도 않은 엄마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현이랑은 어디까지 갔니?”
“네?”
“이아현 말이야. 네 전담팀 직원.”
“!!”
나도 모르게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무릎을 꿇었다.
“후후후.”
복순 누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눈과 입이 웃고 있어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르면 병신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걔가 찾아왔더라고. 앙심하게 말이야.”
“아현이도 안다고요?! 언제요?”
“며칠 됐어. 걔도 너한테 별 말 안 했나 보네. 앙큼하기는.”
며칠 됐다는 말이면, 어제 만난 아현이가 복순 누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는 뜻이 된다.
“왜 티를 안 냈을까요?”
어제 만났던 아현이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죽했으면 내가 뭐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봤을까.
만약 그게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면?
‘눈치를 전혀 못 챘는데, 아현이 괜찮은 거 맞아?’
꼬집-!
“악!”
“지금 걔 걱정해? 아무리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너무 매너 없는 거 아니니?”
어제 만났던 아현이의 태도를 떠올리다가 복순 누나한테 볼이 꼬집혔다.
“미아내여. 이거쩜 놔져여.”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마. 여자들 싸움에 널 끼어들게 할 생각 없으니까.”
볼을 놔준 복순 누나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제가 당사자인데 절 끼어들게 할 생각이 없다고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에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자들 싸움 말하는 거야. 이제 20살짜리가 뭘 알겠냐만은, 중간에서 조절할 자신 없으면 그냥 여자들한테 맡겨둬. 너는 결과만 받아들이면 돼.”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여자들 싸움은 뭔지도 모르겠고, 가만히 있다가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뜻의 의미도 모르겠다.
“둘이 싸운다는 거죠? 날 두고.”
“아마도? 자세한 건 여자들 프라이버시니까 말 안 할 거야.”
프라이버시는 개뿔.
“만약에 둘 중에 한 명이 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널 포기해야지.”
포기한다고?
복순누나이든, 아현이든.
둘 중 한 명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
“여자들의 싸움에 남자가 끼는 건 별로 좋지 않아. 너도 그게 더 편할 거야. 괜히 마음 아프게 둘 중 한 명을 선택할 필요 없잖아.”
나는 아현이든 복순 누나이든 포기 할 생각이 없다.
두 여자 모두 내 여자들인데 누구한테 넘긴단 말인가?
“혹시 그 말, 아현이랑 다 얘기가 끝난 일이에요?”
“응.”
“두 여자가 나 몰래 만나서 자기들끼리 결정 내렸다는 거군요.”
“혹시 마음에 안 드니? 난 네가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을 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나, 나 없이 살 수 있어요? 나 말고 다른 남자 만나도 만족하고 살 수 있습니까?”
“…아니. 솔직히 자신 없어.”
“그런데 왜 그런 일을 해요?”
“널 포기할수가 없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혹시 사귀는 사이도 아닌 주제에 이러는 게 마음에 안 드니? 나 말고 이아현 그 어린 계집애가 더 좋아?”
아, 시발. 뇌정지오네.
일단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내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걸 들킨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그런데 복순 누나는 내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에 불쾌해 하기 보다는 아현이와 싸워서 포기 시키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여기에 많이 적응해서 이세계 여자들이 남자에게 양다리를 문제 삼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법이라고 해도 감정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내 여친이 양다리 걸친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그 상대를 만났다?
‘시바 사생결단이지.’
내로남불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밖에 안 든다.
그리고 얘네들도 지금 그 상황인 거다.
서로를 사생결단 내고 싶은 마음.
여기서 내가 중재를 하지 않는다면?
‘둘 중 한 명은 사생결단인 거지. 그리고 그렇게 될 확률이 높은 건 복순 누나보다는 아현이일 거고.’
아현이를 포기한다?
그녀는 나에게 굉장히 헌신적이다.
아현이의 성격은 섹스에서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녀와 섹스를 하고나면 따듯한 위로를 받은 것처럼 힘이 난다.
반명 복순 누나와의 섹스는 짜릿하고 위험하다.
주로 회사에서 몸을 섞어서 그런지 그녀와의 섹스는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둘 다 포기 못하겠어요. 복순 누나는 복순 누나라서 좋고, 아현이는 아현이라서 좋아요.”
“뭐?”
복순 누나가 내 말에 자기 입술을 깨문다.
“둘 다 내 거하면 안 됩니까?”
법이 인정하는데 두 사람을모두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