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07_아현이 (8)
복순 누나를 혼내주었으니 이제 남은 건 아현이다.
나는 복순 누나에게 단단히 말해두었다.
절대 아현이한테 그날 일을 알리지 말라고.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앙큼한 계획에 동의를 한 걸까.’
사실 아현이는 복순 누나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나이가 있는 만큼 현실을 아는 복순 누나는 내게 다른 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쉽게 수긍했다.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하지만 아현이는 이제 겨우 사회에 들어선 초보자다.
‘나랑 사귀고 싶어 하는 티를 많이 냈지.’
내 사정을 알기에 참고 누르는 것뿐.
나에 대한 감정이 결코 깊지 않아서 사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여성이라면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사귀는 것이 꿈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현이가 특별히 잘못 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나 같은 놈을 만났다는 것일 거다.
‘미안하지만, 아현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순 없어.’
지금과 같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만나는 것과 공식적으로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나중에 들켰을 때 대응할 걸 생각해서라도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여서는 안 돼.’
이곳에서 여자들이 아이돌에게 갖는 소유욕과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남자를 만나는 게 어렵다 보니 그녀들의 연애 감정을 남자 아이돌이 모두 빨아갔고, 남자 아이돌은 그런 여성들의 집착과 관심을 견뎌내며 금전으로 보상 받는다.
그런데 아이돌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여자 친구를 숨겨왔다면?
‘빠가 까를 만드는 법.’
내 팬이 될 사람들이 안티 팬으로 전환 된 순간 지옥이 찾아 올 것이다.
‘딱 7년만 참자.’
평생 쓸 돈 바짝 땡겨서 번 후에 노후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지내자는 게 내 인생 계획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현이의 협조가 필요했다.
‘아현이도 복순 누나처럼 납득시켜야 돼.’
미래를 생각해서 반드시 걸쳐 가야 하는 일이었다.
‘복순 누나만 있는게 아니잖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주아 누나도 그렇고, 앞으로 만날 여자를 한정해두고 싶지 않았다.
정력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각오해두고 있었던 일이다.
이미 이곳에 발을 담갔는데 어정쩡하게 행동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되고 싶지 않았다.
‘기왕 남자가 시작했으면 뭐가 됐든 끝을 봐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아현이를 설득해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만날 무수한 여자들을 다루는데 도움이 될 경험일 테니 말이다.
‘나라에서 최소 5명의 여자 결혼하는 걸 추천하고, 최대 10명이랑 결혼하면 상도 준다고 했지.’
그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10명 중 3명은 이미 찼다고 생각한다.
주아 누나, 복순 누나, 아현이까지.
나는 세 명 모두와 결혼을 할 생각을 갖고 있다.
이미 내 것이라고 찐하게 마크를 해놨는데 엄한 놈에게 빼앗길 순 없지 않은가?
매일매일 찐하게 안아줘서 비실비실한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 않게 할 생각이다.
어쩌다 보니 생각이 다른 쪽으로 셌는데, 나는 복순 누나에게 인정을 받고 이튿날 바로 아현이와 약속을 잡았다.
‘도플갱어 인형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벌써 도플갱어 인형으로 코인을 100개 이상 얻었다.
초반에는 도플갱어 인형을 사용해서 하루가 멀다 하게 여자들과 만났는데, 연습실에서 쓰러질 뻔한 적이 있은 이후로는 규칙적으로 날짜를 정해서 만남을 갖고 있다.
‘근데 주아 누나는 왜 이렇게 연락이 없는 거지? 저번에 분명 일주일 정도만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했었는데.’
일주일이 지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생각 난 김에 전화를 한 번 더 걸어봤지만, 부재중으로 넘어갈 뿐 누나와 연결이 되질 않는다.
“걱정 되네.”
아현이와의 일이 해결 되면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아현이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눌러서 열었다.
“아현아 나왔어.”
“와, 왔어?”
시간이 나는 게 새벽밖에 없어서 이 시간에 무언가를 사오기가 어렵다.
그나마 내가 사올 수 있는 건 편의점 음식 같은 것들이었는데, 오늘은 그녀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야 했기에 칵테일을 준비했다.
자몽에이드, 블루레몬에이드, 복숭아맛이 나는 순한 소주, 참이슬, 사이다, 탄산수 등의 간단한 음료+소주 조합의 칵테일이다.
이 기술도 친구 녀석에게 배운 거다.
여자들한테 칵테일 해주면 껌뻑 죽는다면서.
친구 녀석이 했던 것처럼 칵테일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급 칵테일 레시피를 알아낼 정성은 없지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는 기억해두고 있다.
그래,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이걸 써먹어서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현관문에 들어선 나는 편의점에서 나온 걸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부, 부끄러운데 빠, 빨리 들어와아.”
“뭐야 그 옷?”
“흐잉. 별로야?”
“아니, 미쳤는데? 내가 본 어떤 옷보다도.”
미쳤다. 미쳤어.
내가 이런 호강을 하는 날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 옷 어디서 산 거야? 아니, 그런 옷 도대체 어디서 팔아? 나도 좀 알려줘.”
“흐잇! 그, 그거 알아서 뭐하려고!”
“사서 너한테 선물해주게. 그럼 입어줄 거 아니야.”
“으, 정말 잘 어울려?”
“안 보여? 환장할 지경이야. 나중에 또 입어줘.”
여자들이 가장 섹시할 때가 언제일까?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입었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
‘환장하겠네.’
오늘 제대로 작정을 했는지 아현이가 입은 옷이 엄청난 노출도를 자랑했다.
아현이는 아래에는 흰색 팬티를 입고 있었고, 윗옷은 앞치마처럼 가슴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레이스 달린 천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려주고 있었는데 폭이 넓지 않아서 꼭지만 간신히 가릴 뿐, 가슴 모양이 전부 보였다.
꿀꺽-
“노브라네.”
“으응.”
“하, 정말 예쁘다.”
내가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으니 아현이가 몸을 베베 꼬았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대에 눕히고 뜨거운밤을 보내고 싶다.
“먹을 거 사온 거야?”
“응. 마실 거야. 칵테일 해주려고 사온 건데….”
“우움~ 칵테일도 좋지만, 그거 마시기 전에 다른 것부터 맛보는 건 어때?”
깜찍한 아현이의 유혹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땡큐지.”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 ♣ ♣
‘오지게 좋았다.’
아현이가 이런 이벤트를 해줄 줄은 몰랐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제대로 호강했다.
섹스하는 내내 옷을 완전히 벗기지 않았는데, 코인을 얻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질 안에 싸지 않고, 그녀의 몸 전체에다가 싸서 옷을 질척하게 만들었다.
땀과 내 정액에 젖어 뽀얀 살결을 그대로 드러낸 채 흐트러진 아현이의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사진 찍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줄까?
“아현아.”
“응?”
“사진 찍어도 돼? 걱정 되면 얼굴은 안 나오게 찍을게.”
“…지금 이 꼴을 찍겠다구?”
“응.”
“왜??”
“너 지금 모습이 너무 꼴려서.”
나중에 딸감으로 쓰면 딱일 것 같았다.
“내가 정력이 좀 강하잖아. 근데 바빠지면 너랑 만나기 어려워질 거고, 그때 쓰려고.”
“…쓰, 쓴다구? 내가 찍은 사진으로 뭘 하는데?”
모르는 척 굴고 있었지만 콧구멍이 큼지막해져서 벌름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가 사진으로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도 저렇게 본인이 다시금 확인하길 원한다는데 안 해줄 이유가 없었다.
“자위.”
“꺄악!”
내 대답을 들은 아현이가 부끄러웠는지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다.
귀엽기는.
아현이는 너무도 쉽게 자신의 모습을 찍는 걸 허락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녀의 적나라한 모습을 신나게 찍었다.
포즈도 취해달라고 하니까 해주더라.
덕분에 딸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말한 대로 얼굴은 찍지 않았지만 꼴림의 포인트는 완벽하게 다 담았기에 여한은 없다.
갤러리에 비밀번호를 걸어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두었다.
내 여자 몸을 실수로 다른 엄한 놈이 보게 할 순 없었다.
“넌 이런 게 좋아?”
“완전.”
“…진짜 특이하다니까.”
“다른 남자들도 이런 거에 환장할 걸. 아마도?”
아닌가?
아현이 표정을 보니 아닌 모양이다.
“너만 이러는 거야. 바보야. 만약에 또 이런 사진 갖고 싶으면 나한테만 말해.”
너한테만?
이제 보니 아현이가 오늘 이런 이벤트를 한 게 복순 누나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잠시 미뤄뒀던 얘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칵테일 마실까?”
“피곤하지 않아?”
“너 해주려고 열심히 배워왔어.”
내 말에 아현이가 기분이 좋았는지 꺄르르 웃는다.
“정말이야?”
“응. 근데 어쩌다 보니 칵테일이 아니라 아현이를 마셨네?”
“읏! 부, 부끄러운 말 자꾸 하지 마. 그럼 해줘. 마셔볼래.”
“딱 기달려 봐.”
잽싸게 일어나서 현관에 버려둔 봉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뚝딱뚝딱 칵테일을 만들어낸다.
내가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아현이는 몸을 씻고 나왔다.
“짜잔, 복숭아 자몽 칵테일.”
“오옹! 맛있어!”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엄지를 치켜 세워준다.
‘흐뭇하구만.’
나는 소주와 탄산수를 섞고 레몬즙과 레몬 슬라이스 그리고 설탕 한 스푼을 넣었다.
없는 재료는 대범하게 패스한다!
야매 모히또 완성.
보기도 좋은 것이 먹기도 좋은 법.
블루레몬에이드와 사이다 그리고 소주를 섞어 레몬 슬라이스를 넣으면 예쁜 블루색깔의 칵테일이 완성 된다.
“이것두 맛있다. 달달해.”
술이라기 보단 음료 같은 느낌이라서 그런지 꿀떡꿀떡 넘어간다.
하지만 엄연히 술이 들어간 칵테일.
계속 마시다 보면 취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딸딸하게 취한 아현을 보며 나는 본론을 꺼내기 딱 좋은 상태임을 직감했다.
“아현아.”
“웅?”
“복…아니, 로즈 선생님 만났다며?”
“…….”
아현이가 눈이 동그래진다.
“아, 알고 있었어?”
“너야 말로 알았는데 왜 아무런 말도 안 했어? 화나지 않았어?”
“…솔직히 얘기해도 돼?”
“당연하지.”
그녀가 말을 털어놓기 전에 아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저항 없이 내 품에 안긴 아현이가 조금은 위로를 받았는지 자신의 속마음을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털어놨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어. 너한테 화가 나지 않았으면 거짓말이야. 근데 로즈 트레이너님한테 더 화가 났어. 순진한 널 건드린 거잖아.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으면서! 나 정말 실망 많이 했어. 그런 파렴치한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다른 애들 건드릴 일 없어.”
고급으로 입맛을 맞춰놨는데 불량식품을 먹을 리가 없다.
“치, 넌 로즈 트레이너님을믿어?”
“응.”
잔인한 대답이 되겠지만, 복순 누나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강하니 확실하게 알려둘 필요가 있었다.
복순 누나도 내 여자고, 이아현도 내 여자라는 것을.
“근데 나도 좀 서운했어. 둘이서 날 두고 그런 내기를 할 줄 몰랐거든.”
두 사람끼리 싸워서 지는 사람은 내 곁을 떠나기로 한 것에 대한 얘기를 꺼내니 아현이가 아차한다.
“혹시 불쾌했어? 미안해. 널 지키려면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단 말이야.”
“만약 거기에서 졌으면 나랑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됐을 텐데, 그래도 괜찮았던 거야? 좀 서운하더라. 적어도 그런 결정은 나랑 같이 상의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서.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아현이 네가 우리 사이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가볍게 생각한 적 없어! 정말이야.”
아현이가 식겁하며 내 팔에 매달린다.
나도 알고 있다.
아현이가 날 가볍게 생각했다면 지금 내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뺨따귀를 때렸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