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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09_ 해외 리얼리티 촬영 여행 (3) (50/849)



〈 50화 〉#09_ 해외 리얼리티 촬영 여행 (3)

“폭포다!!”
“너무 예쁜데?”

펠로 폭포.
유명 관광지답게 많은 관광객들이 폭포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부분 여자들이었지만, 간간히 남자들도 보이는 걸 보면 이곳의 치안은 확실히 잡아둔 모양이었다.
실제로 관광 명소를 순찰하고 다니는 경찰들이 보였다.

“저쪽에서 노시면 됩니다.”
“네에!!”
“저기 노점상에서 맛있는  사먹자!”

잔뜩 신난 애들이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제작진들은 멤버들의 높은 텐션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특히발랄한 막내 기우연이 뜻이 맞는 멤버 남은규와 강준을 데리고 먹을 걸 사러 갔고, 남은 제키와 나 그리고 강경태는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너는 개떡같이 찍어도 화보 같아진다.”

강경태는 자기가 찍은 내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여줘.”

제키가 강경태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진짜 화보 같은데?”

제키까지도 강경태의 말을 받아서  얼굴이 금칠을 하니 민망하다.

“형이 잘 찍어준 거지. 사진  찍잖아.”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야. 이거 잘 다듬어서 SNS에 올리면 대박날 것 같은데.”

강경태는 아쉬움을 표했다.
지인들끼리 돌려보는 사진으로 끝내기엔 너무 멋있는 사진이지 않은가?
하지만 신인 아이돌 주제에 함부로 SNS를 할 수는 없었다.
핸드폰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인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쉬워하는 경태 형의 모습에 제작진이 호기심을 느꼈는지 보여 달라고 말해온다.

“우와.”
“이 사진을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운데?”
“이건 무조건 리얼리티에 내보내자.”
“이럴 게 아니라 각자 화보 스타일로 사진 찍어보는  어때? 그냥 관광하는 것도 재밌겠지만 목표가 있으면  재밌게 즐길  있지 않을까?”

제작진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멤버들이 환호했다.

“좋아요!”
“재밌겠네요.”
“여기 이것들 좀 드세요. 넉넉하게 사왔어요.”

어느새 음식을 사온 기우연, 강준, 남은규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제키가 머리를 좀 굴리더니 제작진들에게 딜을 걸어왔다.

“최고의 작품을 찍은 사람한테 뭐 혜택을 주셔야 하는  아닐까요?”
“응? 혜택?”
“그래야 더 열심히   같아서요.”
“저기, 지금 우리 찍고 있는 거 예능이 아니라 리얼리티인데…?”
“에이!  어때요!”

결국 제작진들이 상의 끝에 1등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로 했다.

“1인실!”
“우와아아앗!!!!”
“대박대박”

숙소에 옹기종기모여서 사느라 고생이 많은 애들에게 1인실 배팅은 완벽한 유혹이었다.
그때부터 시작 된 경쟁은 나 또한 눈이 뒤집혀 있었다.

‘1인실에서 지내는 거면 얼마든지 밤에 몰래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지.’

외국에 나왔으면 외국 여자와 썸싱도 얽혀보고 그래야하지 않겠나?
며칠 상황을 보고 나서 하려고 했는데, 1인실을 얻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근데 사진은 누가 찍어줘요?”
“제작진 중에 아무에게나 부탁하세요. 사진 찍는 실력이 좋은 사람을 구하는 건 재주껏입니다. 관광객들에게 부탁하셔도 되고요. 다만, 주의 부탁드립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한 건 아시죠?”
“네엣!!!”

우렁차게 대답한 멤버들이 각자 핸드폰을 꺼내 분주하게 주변을 돌아다녔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주변 풍경이 중요한 법이다.
나는 애들이 흩어지는 걸 보며 씨익 웃은 뒤 카메라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어, 어어?”
“감독님이 제 사진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일을 하든 전문가에게 맡기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아니겠나?

“어어? 나? 나는 촬영해야지.”
“감독님이 찍어주셔야  나올 것 같으니까 그렇죠. 피디님이 제작진 아무한테나 부탁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제 사진 찍어주세요!”

여자 감독님이었기에 얼마든지 애교를 부려줄 수 있었다.
여자 꼬시는데 쓰는 남자의 애교는 얼마든지 쌉가능이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부탁을 하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카메라 감독님이 헛기침을 하며 옆에 있던 제작진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나 대신  찍어주고 있어 봐.”
“부럽다, 제길.”
“그런 말은 속으로 해야지, 인마.”

카메라 감독님을 금붕어 똥처럼 뒤에 매달고 나는 펠로 폭포 최고의 사진 스팟을 찾아 떠났다.
멤버들은 주변에 흩어져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가 내가 카메라 감독님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고 경악했다.

“형!! 감독님한테 부탁 하는 건 반칙 아니에요?”
“이게  반칙이야. 피디님이 제작진한테 부탁해도 된다고 했잖아.”
“감독님은 촬영하셔야죠!”
“촬영은 잘 되고 있어.”
“으으, 분하다.”
“감독님! 형 찍어주고 저도 찍어주세요!”
“엇? 나도! 저도요!”
“순서 정하자, 순서.”

어이구, 이놈의 애새끼들.
천방지축 날뛰는 애들의 경박스러움이 싫지도 않은지 카메라 감독님은 허허 웃으며 오냐오냐 해주고 계셨다.

“여기서 한 장 찍어주세요. 폭포랑  그리고 제 얼굴이 들어오게요. 그 외에는 감독님이 센스있게 조절 해주시고요.”
“그래. 대충 뭘 원하는지  것 같네.”

카메라와 사진은 비슷하긴 해도 다른 분야이다.
하지만 반대로 비슷하기에 실력이 어느 정도 보정이 가능하다.
평생 렌즈로 풍경을 눈에 담은 분의 사진 솜씨는 과연 특별했다.

“오오오오!!!”
“이건 못 이길 것 같은데.”
“빛을 환상적으로 쓰셨네요.”

엄청난 사진을 찍는데 성공한 카메라 감독님도 자기 솜씨에 만족하셨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찍힌 사진을 확인한 멤버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1인실은 포기 못한다! 시도라도 해봐야겠어!”

리얼리티 분량을 위해 멤버들이 바닥으로 떨어진 사기를 억지로 주워들고 다시 분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1등은 나였다.

“얼굴이 너무 사기야….”
“얼굴에 졌다.”

얼굴이 사기라며 투덜대긴 했으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들은 물에서 신나게 놀이를 즐겼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신나게 찍어댔다.
정신없이 놀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변에서 엄청난 인파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더라.
약속한대로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  우리들은 잔뜩 상기  얼굴로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제작진에서 최대한 막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두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미술품이 된 기분이었어.”
“이제 그런 거 익숙해져야 돼. 데뷔하면 사람들이 우릴 그렇게 주시할 테니까.”
“지금보다 더 팍팍해지겠지? 알고 시작한 거긴 한데, 직접 경험해보니까 엄청 무섭다. 적응할  있을까?”
“적응해야지. 내내 들어왔던 얘기들이잖아.”
“아직 데뷔 안했는데 촬영을 하니까 데뷔한 것 같아.”

각자 다른 방에 있어야 하는데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오늘 있었던 일을떠들었다.
1인실을 받은 나도 완전히 해가 지기전까지는 애들이 있는 곳에서 수다를 떨었다.
막내인 기우연은 하루 종일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더니 가장 먼저 꿈속으로 떠났다.

“우연이 자네.”
“내일은 어디  거야? 내일도 시키는 곳만 가야 되나?”
“아니, 내일은 우리 가고 싶은데 가도 된다고 했어. 경호인원 더 추가 되니까.”
“그럼 우리 내일 어디갈까?”

남정네들 6명이 모였는데 말이 끊이질 않았다.
여자  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는데, 남자도 만만치가 않다.
이대로라면 12시가 넘어서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슬슬 자러가야겠어. 피곤하다.”
“잠탱이 형이 그럴 만도 하지.”

도플갱어 인형을 자주 사용한 탓에 멤버들 사이에서 나는 ‘잠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더불어 한 번 자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절대 안 깨는, 아침에 깨우기 힘든 타입이 됐다.

‘새벽 3~4시에 들어와서 자니까 일찍 깨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코인을 사용해서 체력을 길러두지 않았다면 벌써 몇 번이고 기절해버렸을 터다.

 ♣ ♣


‘너무 늦게 나갔다간 문제 생길 것 같으니까 적당히 놀다가 11시 되기 전에 돌아와야지.’

배정 받은 1인실로 들어와 씻고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뒤 도플갱어 인형을 꺼냈다.
잠옷을 입고 있는 도플갱어 인형을 침대 위에 올려 둔 후에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모자와 마스크도 꼼꼼하게 착용한 채로.

‘종로로 갈까요오~ 청량리로 갈까요오옹~♪’

총기가 합법인 외국에 와서 밤거리를 남자 혼자 돌아다니는  납치해달라고 애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
그래서 꾀를 냈다.
호텔 안에서 여자를 꼬시자!
미리 봐둔 장소도 있었다.
바로 호텔 와인바.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샹들리에가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으로 보랏빛과 붉은빛이 맴도는 조명에 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있는 가게의 모습.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기에 흡족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와인에 대해 아는  별로 없어서요. 추천 좀 해주실래요?”
“강한  추천해드릴까요, 가벼운  추천해드릴까요?”
“가볍고, 도수 낮은 걸로 주세요. 안주는 C로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바텐더가 추천해주는 와인과 가벼운 안주로 시킨 요리를 먹으면서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있는데, 슬며시 옆자리에 여자가 앉았다.

‘금발!’

외모 합격, 머리색 합격, 가슴 합격!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서 여자를 스캔한 나는 도도하게 와인을 마셨다.
혼자서 즐기는 휴식을 진심으로 즐기는 척 하면서 말이다.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나를 힐끔힐끔 노골적으로 쳐다보다가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이거지!
말은 서툴지 몰라도 해석이 되니까 여유롭다.
만약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면 굳어졌을 테고, 꼬시기가 훨씬 어려웠을 거다.

-네?
-우리 말 못하나요?
-어…조금. 말이 서툴러요.
-오! 그 정도면 훌륭해요. 사실 외국인이라서 말을 걸까 말까 고민했거든요. 그래도 용기 낸 보람이 있네요.

그녀는 내가 어설프게나마 마렌치노 말을 하니 기뻤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눈에 확 띄는 금색 단발머리와 파란 눈동자는 전형적인 마렌치노 출신 여성이었다.
마렌치노에 왔으니 마렌치노 여성과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살이 오른 통통한 물고기가 걸릴 줄은 몰랐다.

-듣는 건 잘합니다.
-여행  건가요? 남자 혼자서 다니는  위험했을 텐데.
-혼자 아닙니다. 일행이 있습니다.
-아~ 그럼 여행이 아니라 비즈니스?
-네.
-나이가 어린 것 같아서 여행 온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호호! 동양인이어려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실수를 한 모양이에요.
-괜찮습니다.
-저는 마렌치노에서 디자이너로 일해요. 이름은 조안나.
-디자이너! 멋있어요. 저는 진해솔입니다. 우리나라는 성이 앞에 와서 이쪽 식이라면 해솔진이에요. 진이라고 부르세요.
-반가워요, 진.
-디자이너는 처음 만나서 신기하네요. 주로 어떤 걸 디자인하시나요?
-옷을 디자인해요.

발음이 굉장히 어설펐지만, 그녀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우리는 제법 대화가 통했다.
그녀와 한참 분위기 좋게 대화를 나누던 중, 조안나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사실 당신한테 말을 건 이유가 따로 있어요.
-이유요?

그녀와 호텔방에 들어갈 생각이 낭낭한 나와는 달리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을 본 순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너무 놀라웠거든요. 본인도 아마 알 거에요. 당신의 얼굴은 판타스틱해요.
-아...얼굴이요.
-네. 당신한테  하고 싶은 제안이 있어요. 거절 당할 까봐 걱정이 많이 되지만, 용기내서 말을 걸었던 것처럼 지금도 용기내서 말할게요.

잔뜩 상기 된 얼굴로 조안나가 말했다.


-나의 뮤즈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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