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10. 데뷔 (4) (56/849)



〈 56화 〉#10. 데뷔 (4)

신인 주제에 너무 호들갑을 떠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있지만, 이세계에서 남자가 워낙 희귀하다 보니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일상적이게 되었다.
더욱이 아이돌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머리색깔이 화려해서 마스크에다가 비니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

‘선글라스는 오버인가? 얼굴이 작아서 마스크 하나로도 얼굴이  가려지는데.’

요즘 전문가들에게 한참 관리를 받아서 그런지 가뜩이나  생긴 얼굴이 반들반들 빛이 날 지경인지라 최대한 가리는 게 좋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예전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내가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일을 했던 결과물들을 길거리에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길거리에 떡하니 걸려 있는 얼굴을 보면 어색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다가 이내 정말 연예인이 되었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꺄악! 어서 와!! 해솔아~!!”

집에 들어가자마자 현관에서 주아 누나가 나를 격하게 반겨준다.
품에 안긴 주아 누나를 꽈악 안아주는데, 배 부분이 확실히 불룩 튀어나온 게 느껴졌다.

“배!”
“히히, 많이 나왔지?”
“와~! 너무 신기해. 티셔츠 올려서 봐도 돼?”
“응!”

주아 누나의 티셔츠를 살짝 올려서 귀엽게 튀어나온 배를 확인했다.

“입덧은?”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참을 만해.”
“말만 괜찮다고 하지 말고 투정 부려. 오늘 다 받아줄 생각으로  거야.”
“난 너만 있으면 돼.  괜찮아.”

주아 누나와  끌어안고 춤을 추듯이 둥가둥가 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보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한참 달라붙어 있는데 안쪽에서 장모님이 나타났다.

“장모님!”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장모님을 격하게 반기자 한껏 당황한 그녀가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어, 어서 오렴.”
“오랜만에 뵙습니다.자주 들리지 못해서 면목 없어요.”
“네 사정을 아는데 뭐라고  순 없지.”
“장모님께서 저 대신 고생해주셔서 얼마나 죄송하고,  든든한지 모릅니다. 주아 누나를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내 딸인데 엄마인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니. 밤이라서 밥을 먹일 수는 없고, 둘이 방에 가서 잠깐 시간 보내렴.”
“그럴까? 가자가자.”

주아 누나가 발랄하게 나를 이끌고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나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누나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참이다.

“뛰지 마.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아차차! 조심한다는데 네가 와서 깜빡했어.”
“나 보는 게 그렇게 좋았어?”
“응!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주아 누나가 내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면서 누나와 질척한 재회를 만끽했다.
특히 누나의 솟아오른 배에 자꾸만 손이 가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신기해?”
“이 작은  안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는  믿겨지질 않아.”
“병원에서 튼튼하게 잘 크고 있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마.”
“누나 몸은?”
“체중이 좀 적대. 그래서 열심히 먹고 있어.”

열심히 먹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딱 봤을 때 살이 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참, 누나한테 줄  있어.”
“줄 거?”
“짠.”
“팔찌네?”
“계속 하고 다녀. 이게 평범한 팔찌가 아니야. 건강기원 부적이야.”
“풋! 뭐야, 너 그런 거 믿어?”
“누나랑 우리 아기를 위해서 비싼 값 주고 산거야. 그러니까 씻을 때도, 잘 때도 계속 끼고 다녀야 돼. 알겠지?”
“얼마 줬는데?”
“그런  말하면 부정 타. 안 돼.”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말해서 누나가 농담으로도 팔찌를 빼지 않게 했다.

“고마워.”
“아직 메인은 안 꺼냈는데?”
“응? 메인?”
“따라다라단~”

고급스러운 반지 케이스.
내가 꺼낸 것을 본 주아누나가 놀라서 굳었다.
하지만 내가 반지 케이스를 열어서 그녀에게 보여주자 떨리는 손으로 반지 케이스 안에 있는 반지를 꺼냈다.

“이, 이거 뭐야?”
“내 사정 때문에 결혼은 하지 못해도  정도는 구색을 맞춰야 할  같아서 준비했어.”
“…나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나. 너무 놀라서.”
“누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잘 골랐는지 모르겠다.”
“너무 예뻐. 아니, 환상적이야.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나 눈물 날  같아. 이런 거 바란 적 없는데….”
“내가 끼워줄게.”

놀라서 굳은 누나의 손에서 반지를 가져와 그녀의 손에 끼웠다.
누나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무척이나 영롱하다.
코인 500개를  값이 아깝지 않았다.

“나 때문에 무리한  아니야?”

어느새 눈물까지 글썽이는 주아 누나.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돼지. 우리 축복이 아빠인데 면은 세워야 하지 않겠어?”

참고로 축복이는 주아 누나 뱃속에 있는   번째 아이 태명이다.
주아 누나와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상의한 끝에 축복받은 아이라는 의미로 태명을 지었다.

“이런  안 해줘도 넌 충분히 축복이 아빠가 될 자격있어.”
“에이, 한참 부족하지. 지금보다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그러려면 노력해야 되고.”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아빠이니, 이런 것으로라도 면을 세워야 나중에 누나에게 원망을 받지 않을 거다.

“반지는 내 거가 전부야? 네  없어?”

그녀가 허전한 내 손을 보고 물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이돌 활동을 해야 하다 보니까, 사지 않는  나을 것 같아서 누나 것만 준비했어.”
“하긴…활동해야 하는데 반지를 낄 순 없겠구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코인이 부족해서다.
나중에 진짜 주아 누나와 결혼식을 올릴 때가 된다면, 그때 상점에서 누나가 낀 다이아몬드 반지의 짝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네 반지는 내가 맞춰줄게. 괜찮지?”
“누나가?”
“응! 나중에 우리 결혼식 올릴 때 내가  반지 맞춰주고 싶어. 이건 거절하면 안 돼. 내가 꼭 그러고 싶은 거니까.”
“…알았어. 누나가 하고 싶은  다 해.”

한참 내가 끼워준 반지를 소중하게 만지던 주아 누나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감동의 눈물이었기에 어깨와 등을 토닥이며 누나를 달랬다.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
“그럴래?”

누나는 곧장 방에서 튀어나갈 것처럼 굴다가 갑자기 푸슈슉 식어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왜 그래?”
“그냥 얘기 안 할래.”
“왜?”
“엄마한테 이런 거 자랑하기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사실 요즘 엄마랑 아빠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
“…무슨 때문인데?”
제법 흥미로운 얘기다.

“사실 아빠가 최근에 결혼한 막내 새엄마가 임신을 했었거든. 근데 이번에 출산을 했는데, 남자 아이를 낳은 거 있지?”
“남자 아이를?! 그거 되게 대단한 거잖아.”
“응. 그래서 새파랗게 어린 여자가 완전 기세 등등이야. 아빠를 옆에 끼고 절대 다른 집에  보내주고 있어.”
“새파랗게 어리다고? 정확히 몇 살인데.”
“…나보다 세 살 많아.”

와우.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버님 능력이 장난 아니신데?’

딸뻘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다니.
일단 이곳 남자들의 형편없는 정력을 가지고 그런 위업(?)을 달성한 게 대단해보였다.

“보통 상황이었으면 질투심 심한 여자한테는 되게 단호하게 행동하시는데 그 여자가 아들을 낳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져버렸어.”
“아들을 낳는 게 그 정도로 의미가 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 그거 되게 대단한  맞아. 그 여자 덕분에 아빠가 국가에서 상까지 받게 됐으니까.”

상까지 준다고?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들 부잣집에서 막내  태어난 거랑 비슷한 상황인가?’

어우, 상상해보니까 딱 알겠다.
이번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집안에서 얼마나 애지중지 고이고이 오냐오냐 키워질지.

“그래도 조강지처인 우리 엄마한테는 인사를 왔어야 하는 게 맞는 거거든? 근데 그쪽에서 연락도  하고, 더 기가 막힌 건 아빠랑 아예 전화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거야. 멍청한 아빠는 그걸 또 순순히 그러라고 한 모양이고.”
빠드득-

말하면서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지 주먹에 힘이 꽉 쥐어진다.

“나는 절대 그런 꼴 못 봐. 너 잘 새겨들어. 네가 나 이외에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상관하지 않아. 근데 이런 식으로 건방지게 위계질서를 흩트리는 년은 가만 못 둬. 나  아이를 처음으로 임신하고 낳을 여자니까 이 정도 권한은 있다고 생각해. 맞지?”
“…그럼, 맞지.”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나는 절대 못한다.
누나는 내 대답히 흡족했는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살기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연 착각일까?

“원래 우리 엄마 성격이면 당장 쳐들어가서 아빠를 데리고 나왔어야 하거든. 근데 이상해. 엄마가 아무 짓도 하질 않고한숨만 쉬어.”
“…….”

어쩐지 장모님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이유 중에 내가 끼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아무런 행동도  하니까  기세등등해져서 다른 새엄마들한테 콧대를세우고 다니는 모양이야. 역시 조강지처도 남자아이를 낳은 여자는 못 건드리는 걸까?”
“확실히 장모님 상황이 복잡해 보이긴 하네. 평소에  분 사이가 어땠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다른 가정이랑 비슷해.다른 여자한테 빠지면 몇 달 사라지셨다가 어느 순간 스리슬쩍 집으로 돌아오시거든. 그럼 또  분이서  지내다가 아빠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시지. 그러다가 또 다시 돌아오고.”

대부분 떠날 때의 이유는 새로운 여자가 생길 때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여자와 모두 결혼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자가 아쉽지 않은 남자는 사귀다가 아이를 임신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흥미를 잃고 새 여자에게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사랑도 결국 호로몬의 장난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않은가?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와 사귀면 기를 쓰고 임신을 하려고 노력 한다고 한다.

“너도 아랫도리 잘 간수하고 다녀. 다른 여자들은 나처럼 배려해주지 않는다구. 기회를 잡으면 눈이 뒤집혀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랑 결혼하려고 들 테니까.”
“그런 일 있으면 누나가 지켜주면 되잖아.”
“당연하지! 내 남자는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겠어.”

옴팡지게 주먹을 쥐는 모습이 든든하다기보단 귀엽지 그지없었지만, 일부러 오버를 하며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꺄르륵 웃는 주아 누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임신을 한 탓인지 누나는 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골아 떨어져버렸다.
누나의 옆에서 자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좋은 정보를 얻었는데, 써먹지 않을 순 없지.’

우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나와 만나는  껄끄러워서 일부러 자리를 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모님을 만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장모님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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