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11. 스토커 (1) (60/849)



〈 60화 〉#11. 스토커 (1)

무리하지 않아도 인기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부르는 곳도 많고, 듣기로는 벌써 팬덤이 생기고 인원도 꽤나 된다고 했다.
지금은 다시 내려갔지만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잠깐 진입했던 게 그룹을 한층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그룹의 전체  수를 올릴 때이지, 개인 팬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화보 촬영 하면 외국에도 우리 그룹이 알려지는 걸까?”
“아마도 그렇지 않겠어?”
“기대 된다.”
“팬들도 왕창 생길 거야!!”
“맞아요! 외국인 팬들!”

멤버 애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고생  했다고 벌써부터 스케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게 참 철없다.
그때, 제키가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애들은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숙소에서 쉰다더라. 감사해 하지는 못할망정, 벌써부터 스케줄 가리는 거냐? 너희들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논란으로 바로 자숙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
“…….”

제키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할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긴 우리들만 있으니까 괜찮다고? 평소에 입조심 안 하면 습관 된다. 다른 애들도 지들이 실수하고 싶어서  줄 아냐?  나가던 선배님들이 한 둘 씩 논란 일고 사라지는 모습, 기억 안 나? 데뷔했으니까 다 끝인 거냐? 인기 좀 얻어서 세상이 다 너희들 거인  같아?”
“죄송해요. 형.”
“…미안해.”
“잘못했어.”
“정신이 잠깐 나갔나봐.”

금세 숙연해진 분위기.
그래도 리더의 호통에 반발하는 멤버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신머리가 완전히 나가버리진 않은 것 같았다.

“힘들어서 그런다는 거 알고 있어. 짜증나겠지. 나도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살다 보니까 정신 나갈  같긴 하더라. 근데 그래도 스케줄을 가리는 건 안 되지. 그 사람들이 우리 무대 보고 싶어서 돈을 주고 부른 거잖아.”

아직 19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하는 말이 놀라울 만큼 의젓하다.
어른으로서 먼저 했어야 할 말인데 말을 하진 않았어도 호통을 듣는 입장에 서 있다 보니 머쓱해진다.
특히 우리들  가장 어른인 강경태가(그래봤자 21살이지만) 머쓱해져서 말했다.

“미안하다. 맏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어.”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에요. 제가 버릇없는 말을 했어요. 제키 형 말대로 너무 들떴나 봐요.”

반짝 스타들이 쉽게 지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연습생 때는 저런 사람들처럼은 되지 말자고 말하고 다녔지만, 정작 본인이 되고 나니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나야 진짜 20살도 아니고, 이미 자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30대 아저씨다 보니 아이들보다는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상태였다.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네.’

연습생으로 오랫동안 있었던 게 아니다 보니 나는 이번 활동을 끝내면 바로 정산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다른 멤버들은 정산을 받으려면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매니저 실장님이 내게만 슬쩍 알려준 일이었다.

‘앞으로 먹여 살려야 할 여자들이 많으니까 최대한 많이 벌어두는  좋단 말이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고 난 이후.
주아 누나의 나에 대한 사랑은 MAX를 찍어버렸다.
설마 돈을 보고 사랑이 MAX가 된 거냐고 오해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 반지가 결혼반지라는 게 중요한 거지.’

주아 누나에게 값비싼 반지를 주었던 이유도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이돌로 활동하면 여자를 많이 만나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기에 그에 대한 불안함을 은연중 내보이곤 했었는데, 반지를 받은 이후로는 불안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은 장모님의 보호 아래에 열심히 태교 중이시다.
한 바탕 소란이 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과를 하는 호들갑이 이어졌다.

“행님!! 행님도 함께하셔야죠. 왜 같은 그룹 아닌 것처럼 혼자 계세요!”
“아니, 나는 딱히 사과할  없지 않아…?”
“우린 일심동체라고요!! 다 함께!!”

나참.
결국 애들에게 휩쓸려서 한 바탕 으쌰으쌰- 낯간지러운 말을 해야 했다.

♣ ♣ 

에어플레인.
허니 엔터에서 야심차게 기획하여 낸 보이 그룹.
데뷔하기 전부터 화려한 비주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들은 구멍 없는 비주얼과 실력을 자랑하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공격적으로 홍보를 한 덕분인지 이례적으로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올라가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다.
그 덕분인지 팬의 숫자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상승.
시작부터 이렇게까지 크게 주목을 받은 그룹은 에어플레인이 처음이라며 아이돌판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멋있어! 꺄아아악!!”

무대 직캠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김우리.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  그녀의 남동생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러워.’

자기보다 어린 남자들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 것도 보기 싫고,  아이돌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선물을 바치는 것도 한심하다.
자기 방에는 아이돌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은 기본.
사진을 합성해서 본인과 애인인 것처럼 꾸민 사진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더 끔찍한 건 카메라를 들고 나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스토커로 경찰서까지 갔으면서 저 짓을 아직도 하고 있단 말이지. 그래놓고 여자 주제에 지조도 없어. 쓰레기! 핵폐기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입장인지라 김우리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이 누구인지 강제로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째 보고 있던 남자 얼굴이  바뀌어 있다.
한 아이돌 그룹을 계속 좋아했으면 남동생도 이렇게까지 경멸하진 않았을 것 같다.
너무 사랑하니까 스토커짓도   있다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김우리는  번 시작하면 미친 듯이 집착하면서 파고들다가 어느 순간 다른 남자에게 반해서 순식간에 태도를바꿔버린다.
금사빠에 집착을 갖고 있는, 최악의 여자인 것이다.

“우웩- 좋아 죽으려고 했던 걔네들은 또 어디로 가고, 못 보던 놈들한테 꺅꺅대냐? 진짜 극혐이다.”
“닥쳐!”
“씨이, 엄마아!!!! 누나가 나한테 욕했어!!”
김!!!우!!!!리!!!!!!
“아오, 개새끼. 내 방에서 나가!”

김우리는 바로 엄마한테 일러버리는  같은 남동생을 보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다른 집의 남동생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집 남동생은 개새끼다.
찡찡대는 남동생을 발로 차서 내보내버린 김우리가 다시 컴퓨터에 집중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던 기분이 다시 행복감으로 가득 찬다.

“으흐흥, 너무 멋있어.”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여러 장의 사진들.
신인 보이그룹의 에어플레인 멤버 중 하나인 ‘진해솔’의 사진이었다.
완전히, 첫눈에 반해버렸다.
아니, 첫눈에 반함 ‘당해’ 버렸다고 하는  더 옳은 말일 거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는 정말 당해버릴 수밖에 없는 완벽하고도 폭력적인 미모였다.

‘만나고 싶어.’

다년간 덕질 생활을 해왔던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충동은 단순히 만나는 것에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싶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하읏!!”

쯔거억-!

손가락이 하체로 내려간다.
익숙하게 가랑이를 벌린 그녀는 자주 해왔던 일을 다시  번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
그리고 쯔걱쯔걱 질척이는 야한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시선은 자위를 하는 내내 컴퓨터 화면을 뚫어버릴 듯 응시하고 있었다.

10분 후.
두 볼에 상기  홍조가 오른 그녀는 물티슈로 애액을 닦아냈다.
가쁜 숨을 털어낸 그녀는 이내 결심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스토커로 신고를 당한 후, 엄마가 다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을 땐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해서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그녀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이가 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남동생이 들었다면 미친년의 병이 도졌다며 당장 엄마에게 일렀을 말을 김우리가 상자에 숨겨두었던 ‘장비’를 꺼냈다.
집에서 하는 덕질 같은 거, 진심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그이와 함께했던 추억이 없는데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한 것은 사랑이지 스토킹이 아니었다.
그걸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부족해부족해부족해부족해!!!! 겨우 이런 수준밖에  되는 거야?  그이의 미모를 전부 살리질 못하는 거지? 만약 나였으면 절대 이런 허접한 실력으로 그이를 담지 않았을 거야! 내가 곁에 있어야 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가 그녀에게 했던 경고.

‘한 번만 더 아이돌 쫓아다니다가 경찰서에 불려 가면 호적에 파일 줄 알아!’

그이와 함께하는 사랑보다 호적이 중요한 걸까?
호적 VS 사랑
사랑 VS 호적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구!!!”

벌떡!

김우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구석에서 할  있는 덕질은 이미 끝났다.
애초에 신인이라서 자료가 많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호적이 파인다 해도.
‘그이’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


♣ ♣ ♣


“네에에엑!?!”
“스토킹????????”
“이걸 스토킹이라고 해야 하는  맞긴 하겠지?”
“뭔데뭔데. 자세히  좀 해봐!!”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랑해, 자기. 오늘도 파이팅! 곁에서 항상 응원할게.]

“며칠 전부터 이런 메시지가 오긴 했는데 그냥 무시했거든.”
“형 번호를 어떻게 안 걸까요?”
“이런 걸 무시할 수 있는 정신력이라니. 나라면 당장 실장님한테 말했을 것 같은데.”
“맞아맞아.”
“처음엔 잘못 온 문자겠거니 했지. 그런데 다음날  왔더라고.”

메시지를 다음으로 넘겼다.

[오늘따라 정말 멋있네. 아니, 사실 항상 멋있긴 했지만. 노란 후드티, 너무 귀여워. 사랑해.]

“이거 설마 며칠 전에 입었던 그 노란색 후드티 말하는 거에요?”
“응.”
“으아아악!!!”
“아아악!!”
“소름 돋아!!”

멤버들이 기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걱정 되는 것도 되는 거지만, 남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 실장님한테 연락해요! 당장!!”
“회사에서 해결해줄 수 있으려나?”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에요!!! 안 무서워요?”

멤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한테 스토킹을 당하는 게 그렇게 무서울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고.
물론 내가 미친 건 아니므로,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멤버들처럼 엄청 무서워하면서 오들오들  정도는 아니었다.

‘도대체 뉘 집 자식이기에…쯧쯧 이랄까?’

이 메시지를 받기 시작한지 어느덧 10일이 흘렀다.
하루 이틀 정도는 이러다가 말겠지 싶어서 지켜봤다.
하지만 10일이나 계속해서 메시지가 이어지자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구나 싶어서 멤버들에게 알렸다.

‘제일 처음 스토커가 붙은 게 나인 게 차라리 다행이지. 얘네들한테 붙었으면 무섭다고 얼마나 징징댔을 거야?’

내게 붙은 스토커를 잘 해결한다면 나중에 멤버들에게 스토커가 붙는다 해도 그리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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