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11. 스토커 (2) (61/849)



〈 61화 〉#11. 스토커 (2)

진해솔에게 사생팬이 붙었다!
아이돌에겐 피해갈 수 없는 존재.
그들의 등장에 회사는 익숙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사생팬을 경찰서에 넘길 수 있는 각종 증거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호는 당연히 따라오는 일이었다.

“핸드폰은 번호를 바꾸는 걸로 해요. 그리고 웬만하면 가족과 친한 친구 이외에는 함부로 번호 가르쳐주지 마세요.”
“넵.”

아현이가 제법 사무적인 태도로 내게 말했다.
나는 실실 튀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그룹을 보조하는 전담팀 소속이라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땐 친하지 않은 척 하면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정말 상담 받지 않아도 되겠어요?”
“정말 괜찮습니다.”
“지금은 별 거 아닌  같아 보여도 나중에 쌓이면 큰 병이  수 있어요.”
“충격 받지 않아서 상담할 것도 없어요.”
“이런 문자를 받고도…?”

아현이의 눈빛이 순간 살벌해진다.

“불쾌하지 않아요? 더럽지 않아요? 한심하지않아?”
“그냥 날 좀 과하게 좋아하는 거잖아요. 물론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럽다거나 한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사생팬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행동을 더럽다거나 한심하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
어찌됐든 그들은 내 팬이 아닌가?

“아무리 괜찮았다고 해도 선처는 불가능이에요!한 번 봐줬던 선례가 생기는 건 위험하다고요. 그리고 이런 일은 불쾌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그러면 더 심해질 거에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일이라고요.”
“옛설! 조심하겠습니다!”
“사생팬은 팬이 아니에요. 반드시 알아두셔야 해요!”

아현이에게 한 바탕 잔소리를 들은 후.
아쉽게도 단 둘만의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잠깐 만나는 시간은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연애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더욱이 그녀와는 밤에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밤에 만나서 잔뜩 예뻐해줘야지.’

하지만.
그런 내 계획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어, 어디 가는 거야?”
“?!”

숙소에 도플갱어 인형을 두고 숙소에서 나와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여자가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남자가 늦은 밤에 돌아다니면  돼.”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 쓴데다가 검은색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깜짝 놀랄 정도로 음침했다.
하지만 덩치가 작고, 유난히 마른 체형 덕분에 해코지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회사 분이신가요?”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회사 사람이 늦은 밤에 숙소에서 나타난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

“방금 저한테  걸지 않으셨어요?”
“…돌아가라고.”
“돌아가라고요? 절 아세요?”
“해솔이 너한테 하는 말이야! 돌아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여자.
목소리를 귀 기울여서들어봤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다.
낯선 사람이 나를 알고 있다?
늦은 밤에 숙소에 찾아와 있고?

“사생팬?”
움찔!
“아니야!”
“늦은 시간에 여기에 있는 것부터가 좀 수상한데. 날 아는  보니까 팬인  같고. 아, 회사에서 이런 상황이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던가?”
“아니라고 했잖아! 난  지켜주려고 여기에 있었던 거라고!”
“도대체 뭐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건데요? 여기서 위험한 건 사생팬인 그쪽 같은데.”

아현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생팬을 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그 말.

‘날 지켜주려고 숙소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건 밤에 불쑥 나타난 사생팬이었다.
사생팬 이외에 나를 위협할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이해 불가능이다.

“어디 가는 거야? 꼭 가야 해?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 그쪽이 위험하다니깐요. 따라오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요.  그러면 경찰 부를 겁니다.”

사실 소속사에서 경찰을 부르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매니저를 부르라고 했을 뿐.
신인 아이돌인데 경찰과 얽혔다가 기자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최대한 몸을 사리는  좋다.

‘더군다나 나는 몰래 나온 상태잖아. 공식적으로 나는 한참 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라고.’
“어디 가는 건지 알려줘!”
“제가  그래야 하는데요?”
“널 지켜야 하니까!”
”필요 없습니다만.“
“순진해서  모르는 것 같은데,  노리고 있는 년들이 한 둘이 아니야. 자칫하다간 이런 짓, 저런 짓 당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이런짓 저런 짓?
구체적으로 어쩐 짓인지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이 여자, 하루 이틀  쫓아다닌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수상한 사람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자연스럽게 떠올려졌다.

“혹시, 당신이야?”
“으응?”
“며칠 전부터 핸드폰에 수상한 메시지 보내던 사생팬.”
“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걸.”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하지만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건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이 여자를 지금 처리하면 귀찮은 일이 없어지려나.’

사생팬은 나를 두고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에도 갈 생각 없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응?카메라?’

그때, 사생팬이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밤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고 나랑 사진 같이찍지 않을래? 내가 멋지게 찍어 줄 수 있어!”

-휘익, 탁!

사생팬에게 달려가 카메라를 든 손을 잡아챘다.
“앗!”
“사진은 절대 안 되죠. 이렇게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면서 저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다니, 뻔뻔하네요.”

여자한테 과하게 힘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 경찰을 부르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이 여자와는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생팬에게 카메라를 완전히 빼앗은 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숙소에서 멀어졌다.
근처에 있다가 걸리면 그야말로 파산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플갱어 인형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4천 포인트가 날아간다!’

포니에게 아이템을 사용할 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만약 들킨다면 도플갱어 인형을 팔아서 빌린 코인을 갚겠다고 약속했단 말이다.

‘일단 여기서 좀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고, 혼내서 돌려보내야겠다.’

사생팬은 카메라를 뺏을 때에도, 손목을 잡고 끌고 갈 때도 반항하지 않았다.
순순히 끌려오는 그녀를 데리고 인적 드문곳에 도착한 나는 손목을 놓았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이다.
서로 얼굴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여자라면 당연히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
그런데 사생팬은 무섭지도 않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정확한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무서워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 알  있었다.

“안 무서워요?”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나랑 그렇게 데이트 하고 싶었던 거야? 이렇게 빨리 데이트 할 거라곤 생각 못해서 옷을 엉망으로 입고 왔는데 어쩌지? 조금만 시간 주면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올 테니까 기다려주지 않을래?”

미친 척을 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미친 거야?

“이게 데이트 하러 가자는 걸로 보입니까?”
“나 이것보다 더 예뻐. 지금은 진짜 엉망진창인 수준이거든. 제대로 꾸민 모습 보여주고 싶어!”

아니, 지금 그런 걸 말할 때가 아니잖아?
겁을 주고 쫓아 보내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전혀  통할 것 같다.
그럼 이 고얀 사생팬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망상병 환자한테는 망상으로 갚아주면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가진 아현이와의 만남이다.
그걸방해했으니 이 여자는 책임을  필요가 있었다.

‘가라고 해도 분명가지 않을 거야. 몰래 뒤를 쫓아오겠지. 그럼 이 카메라에 아현이랑 만나는  모습이 들킬 테고, 스캔들로 이어지겠네?’

끔찍한 결말이다.
덕분에 쉽게 결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절대 사생팬 따위 허용하지 않겠다고.

“그럼 예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요. 그때 데이트 해줄게요.”
“저, 정말? 우리 데이트 하는 거야? 꺄악! 사진으로 남겨서 평생 추억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보여주자!”
‘…벌써 결혼식까지 상상한다고?’

아무튼 사생팬은 내 말에 카메라도 잊어버리고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카메라를 가져가라고 말도 못했다.

‘어쨌든 덕분에 해결인 건가?’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꽤나 골치 아플 거다.
오늘 있었던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회사 사람들에게 말한다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카메라도 자신이 갖고 있으니 증거가 없다.
반면 나는 도플갱어 인형을 통해 확실히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그나저나 도플갱어 인형으로도 완벽하게 커버가 되지 않는 것 같네. 사생팬은 대충 처리한다고 해도 기자들이 따라 붙기 시작하면 들킬 수도 있겠어.’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생팬을 거짓말로 처리하고 아현이와 좋은 밤을 보냈다.
아현이와의 후끈했던 밤이 워낙 압도적으로 인상 깊었던 탓에 사생팬과 있었던 일은 금방 잊을 수 있었다.
더욱이 멤버들과 회사에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애초에 없는 일로 만들 생각이었으니 오래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생팬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사랑하는 아이돌이 데이트를 하자고 해주지 않았는가?
설렘에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을버티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숙소에 도착한 그녀는 해솔이가 나올 때까지 숙소에서 열심히 대기를 탔다.

웅성웅성-

“왠지 바깥이 되게 시끄럽지 않아?”

스케줄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바깥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려 본 기우연이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어떤 여자가 매니저 누나랑 실랑이 하는데요?!”
“여자가?”
“헉!”
“누구지?”
“야야, 바깥에 얼굴 내밀지 마! 그러다가 큰일 나.”

제키가 창문에 매달린 남은규와 강준 기우연을 황급히 끌어당겼다.

“매니저 누나한테 연락 좀 해봐.”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경찰서 연락해야 되나.”
“실장님한테 연락하는  좋지 않을까?”

나는 초조해 하는 멤버들 사이를 뚫고 창문을 내려다봤다.
로드 매니저 누나가 어떤 여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예쁜데?’

밤에 봤던 사생팬으로 추측 되는 여자.
예쁘게 꾸미고 온다더니, 정말 열심히 꾸민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나랑 데이트를 하겠다고 찾아 올 줄은 몰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로드 매니저는 그녀를 우리들 숙소로 올려 보낼 생각이 없을 거다.
더군다나 황당한 소리를 하면서 우기고 있을 테니 더더욱.
결국 여자를 막던 로드 매니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매니저 누나에요?”

리더인 제키의 핸드폰으로 온 연락이었다.

“네, 매니저님.”
-너희들 숙소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
“바깥에 뭔가 문제 있는  같은데 괜찮아요?”
-아무래도 사생팬인  같아. 특히 해솔이는 절대 바깥으로 나오게 하지 마.
“네. 알겠어요.”

스피커로 전환해서 통화를 했기에 로드 매니저 누나의 말은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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