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8화 (68/849)

〈 68화 〉 #12. 조안나 (6) ­수정

* * *

‘프리작이 동양의 미(美)를 주제로 화보를 만든다고?’

전형적인 서양인들의 명품 의류 회사가 바로 프리작이다.

명품 의류와 악세서리를 판매하는 회사로, 여러 나라에 지점을 진출시켰다.

그런 회사에서 7월호에 동양을 메인으로 삼는다는 게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니, 어쩌다가?’

조안나의 디자인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했어. 동양의 미를 담는 건 메이 린이 최고잖아?]

그래, 맞아.

내가 최고야.

[그러니까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아니면 누구한테 부탁하겠어? 네가 적임자인 걸.]

맞다.

자신이 아니면 프리작의 7월호를 찍을 수 있는 포토그래퍼는 없다.

메이 린은 조안나의 말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거절한들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다른 포토그래퍼가 7월호를 맡는다?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분해서 잠도 오지 않을 거다.

자신이 아닌 다른 작가로는 인정할 수 없었을 테니까.

‘결국 조안나 그 녀석 꼬임에 넘어가버렸어.’

어쩔 수 없이 프리작과의 콜라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진행 됐어야 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조안나는 7월호 화보의 모델을 이미 결정해버렸다.

진짜 모델도 아니고 무려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말이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을 모델로 쓴다고? 자기 이름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이건 절대 못 받아들여!’

동양의 미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모델이 필요했다.

하지만 조안나의 평판이 대단히 좋았는지, 직원들은 조안나의 의견을 신뢰했다.

얼토당토 않은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을 메인 모델로 삼기 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결국 다른 모델을 더 추가해서 결과물을 보고 메인을 결정하기로 했지.’

이것으로 이번 7월호는 자신의 뜻대로 진행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에어플레인’이라는 듣보잡 그룹이 메인 모델이 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에어플레인이라는 소년 그룹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조안나가 반한 이유를 알 것 같긴 해.’

직접 조안나의 뮤즈를 보고 난 이후에는 왜 그들을 모델로 추천했는지 납득이 됐다.

진해솔이라는 남자는 사진에 담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저 얼굴을 지금까지 찍지 못했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예술가의 혼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남자였다.

‘문제는 저 얼굴을 찍는 순간이 지금이라는 거야. 실력 없는 모델은 아무리 얼굴이 뛰어나도 보기 좋게 쌓인 포장지에 불과해.’

뭐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해온 것 같기는 했다.

다들 각기 다른 매력으로,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갖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델로서 촬영을 하기 위해 몸 관리를 제대로 했다는 뜻이었다.

대견하기는 하지만 그런 걸로는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뛰어난 껍데기보다는 혼을 담을 줄 아는 제대로 된 모델이었다.

‘실력 없는 모델들 데리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 텐데…. 조안나, 이번 빚은 단단히 달아두겠어.’

그녀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조안나는 아침부터 그녀의 호텔방을 찾아와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뭐하는 거야?”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모델들 본 소감은 어때?”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던데? 덕분에 지금 미칠 지경이야. 앞날이 깜깜하다고.”

“거짓말. 마음에 안 들었으면 죽어도 못한다고 말했을 거면서.”

움찔!

‘아차.’

순간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바로 반박이 튀어나가지 못했다.

계속 거부감을 보여줘야 조안나를 납득시킬 수 있을 텐데 실수다.

“얼굴만 잘났다고 다 되는 줄 아는 초보도 아니면서 자꾸 이렇게 나올 거야?”

“결국 린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 사람은 평범한 남자가 아니거든.”

“그 남자가 진짜 특별하면 작업 할 때 알 수 있겠지. 굳이 네가 내 앞에서 티 내지 않아도 말이야.”

슥슥­ 스스슥­ 슥슥­

메이 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안나의 손이 무척이나 바빴다.

그녀의 손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의상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화를 하려고 방을 찾아왔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후후후, 양해 좀 해줘. 너무 짜릿한 경험이어서 계속 영감이 떠오르고 있거든. 멈추기엔 너무 아깝잖아.”

“나는 앞날이 깜깜한데, 너는 부러워서 배 아플 짓만 하는구나. 나도 부디 그 짜릿한 영감 좀 받아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찰나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게 바로 사진이 가진 매력이다.

한 번 찍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뜻대로 진행 되고, 이루어질 테니 조안나처럼 영감을 받아 엄청난 사진을 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특별해봤자 초보일 뿐이야. 카메라 앞에 서면 아무것도 못하거나 시시한 포즈나 잡겠지.’

자기 매력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모델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메이 린은 조안나의 말에도 전혀 기대감을 담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 ♣ ♣

화보 촬영 당일.

저번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스튜디오가 오랜만에 다시 오니 장비들로 꽉 차 있었다.

“와, 예쁘다.”

“소품들이 엄청 많네요.”

“조명도 장난 아니게 많은데?”

과연, 프리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소품들이었다.

꿀꺽­

“돈 엄청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게.”

파앗­! 파앗­! 파앗­!

그때, 조명이 켜졌다.

‘으억, 눈뽕.’

근처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눈이 먹먹해진다.

곧 저 조명 아래에 서게 될 예정이었기에 벌써부터 살갗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엇, 여기 계셨네. 안녕하세요. 작가님!”

­준비 거의 다 끝나가니까 의상 교체하고 나와요.

우리들의 인사를 무성의하게 받은 메이 린 작가님이 서둘러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라며 재촉했다.

어리벙벙하게 서 있던 우리들은 우르르 대기실로 들어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의상을 확인했다.

“와, 저번보다 더 편해졌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이 옷이 나한테 딱 맞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맞춤옷이 좋다고 하나보다.

“으~ 떨려요. 혼나면 안 되는데.”

메이 린씨의 따끔따끔한 눈빛을 경험한 우리들은 남은 시간동안 정말 열심히 포즈 연구를 했다.

서로 더 나은 포즈를 상의하고, 도와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노력은 생각보다 쓸모가 없었다.

­좀 더 몸에 힘을 빡 주라고! 그렇게 힘없는 포즈로 뭘 하겠다는 거야?

“네, 네!”

화보 촬영 하는 내내 메이 린 작가님의 호통이 계속 됐다.

우리들이 열심히 연구하던 포즈는 모두 작가님에 의해 혹평을 받았다.

다른 모델들의 포즈를 대충 흉내 내는 걸로 만족스러운 사진이 찍힐 거라고 생각했냐면서 안일한 태도를 버릴 것을 따끔하게 경고 당하기까지 했다.

‘준비해온 포즈들이 전부 거절당할 줄 누가 알았겠어. 덕분에 다들 멘붕 상태네.’

연습해 온 포즈들을 혹평했으면서 정작 셔터가 눌리는 순간의 포즈가 특별했던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이걸 왜 찍나 싶은 엉성한 포즈에 셔터를 눌렀고, 어떨 때는 까다롭게 셔터를 누르지 않고 계속 다른 포즈를 요구할 때도 있었다.

잔뜩 긴장해서 장시간 조명 아래 버티다 보니 아래로 내려왔을 땐 멤버들의 체력이 방전되기 바로 직전의 상태가 됐다.

‘체력주머니를 좀 써야겠는데?’

이걸로 애들 촬영이 끝난 게 아니라 또 카메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체력주머니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 촬영이 전부가 아니다.

이후에는 멤버들과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런데 애들이 축 늘어진 꼴을 보아하니 단체 촬영을 시작하다간 시들다 쓰러질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축 늘어졌어?”

“너무 힘들어요, 형.”

“나 땀 난 거 보여?”

땀 때문에 화장을 다시 해야 하는 멤버가 한 둘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순서가 내가 제일 마지막이 되었다.

오래 기다렸기에 질색을 하는 멤버들과 달리 조명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이 오히려 즐거웠다.

‘이실직고를 하자면 코인으로 모델 능력을 올려놔서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빨리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애들이 찍은 컷을 구경하면서 알게 된 게 있는데, 메이 린 작가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눈으로 봤을 때 어정쩡하게 보였던 포즈가 사진으로 보았을 때 깜짝 놀랄 만큼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왜 메이 린 작가가 우리들이 연습해왔던 포즈에 혹평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한 포즈는 엄청 식상해보였을 거야.’

전문가가 있으니 그녀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문제가 없을 거라 자의하며 뜨거운 조명에 머리가 뜨끈뜨끈해지는 것을 느끼고 살짝 숨을 골랐다.

현재 내 몸은 모델로서의 재능이 숨겨져 있었다.

코인으로 잔뜩 성장시켜놨으니 실전을 경험하며 재능을 꽃피우는 것만 남아 있었다.

더불어 코인으로 상승시켰던 각종 능력들이 지금 이 순간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게 더 보기 좋을 것 같은데.’

‘동양의 미’라는 주제에 맞게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분위기는 한복과 비슷했다.

멋드러진 한자가 적혀 있는 부채를 들고 선 나는 부채를 접은 채로 턱에 가져다 댔다.

처음에는 정돈 되지 않았던 포즈가 자연스럽게 움직여지며 정돈이 되었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메이 린 작가는 뭔가 눈치 챘는지 셔터를 누르려다가 머뭇거렸다.

그리고 포즈를 취하고 시간이 좀 지나 완전해진 순간, 찰칵! 하고 셔터를 눌렀다.

몇 번 그렇게 잠깐의 딜레이 끝에 눌려졌다.

두 사람 중 먼저 인내심이 끊어진 건 메이 린 작가였다.

카메라를 내린 메이 린 작가님이 매서운 눈초리로 내게 따지듯이 말했다.

­지금 뭐하는 거죠? 장난하는 건가요?

­예?

­왜 실력을 숨기느냐는 거에요. 처음부터 제대로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넘쳐 나나요? 자꾸 처음에는 엉성하게 서 있다가 뒤늦게 포즈를 잡잖아요. 한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러면 거슬린다고요.

­어…죄송합니다.

능력치로 올린 모델로서의 재능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댄스 능력치를 올린 후에 연습을 해야 실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메이 린 작가님에겐 그 모습이 굉장히 거슬렸던 것 같았다.

­제가 능숙하지 못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능숙하지 못하다고요? 지금 실력 숨겨요? 아니, 숨기려면 끝까지 숨기던가. 자꾸 마지막엔 바뀌잖아.

­정말 아닌데...어...이걸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화를 내는 메이 린 작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진지하게 일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더더욱 내 행동이 장난스럽게 보였을 거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실력이 늘어나고 있는 거라고 말 할 수는 없잖아?’

진작 코인을 벌어서 모델로서의 능력치를 좀 올려뒀어야 했나 싶다.

하지만 올릴 게 많은 상황에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순 없었다.

포니에게 진 빚도 있는데 자주 쓰지 않을 능력치를 올리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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