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12. 조안나 (7)
* * *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더군다나 메이 린 작가와 대화를 하려면 외국어로 할 수밖에 없는지라 설명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결국 나는 통역사에게 부탁해서 말을 전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통역을 들은 메이 린 작가는 나를 미친놈 취급을 했다.
그러니까 실시간으로 실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건가요, 지금?
네.
당신이 조안나랑 친분이 있다고 봐줄 거라고 생각했나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직접 보셨잖아요.
…….
두 눈으로 봐놓고 아니라고 하시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했다.
그러니 당당하다.
꿀릴 게 없었다.
내 당당한 태도를 본 메이 린 작가님의 표정이 구겨졌다.
일단 알겠어요.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네요. 하참, 이대로 넘어가는 대신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에요.
물론이죠.
메이 린 작가님의 눈초리가 사나워졌지만, 촬영은 다시 시작 되었다.
나는 여전히 처음에는 엉성한 포즈를 취했다가 적응이 되면 능숙하고 매력적인 포즈를 취했다.
내 행동에 맞춰서 셔터음도 조금 천천히 눌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라고 완전히 지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의상을 갈아입고 작은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안경을 쓰고 찍던 중 식상하다며 의자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표정이 왜 이렇게 구리냐며 거울보고 오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기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멤버들 중 가장 많이 셔터가 눌렸고, 또 가장 오랫동안 촬영을 진행했으며, 나중에는 가장 많은 A컷을 만들어낸 사람이 되었다.
‘역시 코인은 사기야.’
코인을 좀 더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더 많은 코인을 모아서 능력을 더 많이 올리고 싶었다.
능력뿐 만이 아니다.
코인을 많이 벌면 상점에 있는 그림의 떡인 아이템들을 구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코인을 왕창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라고 포니한테 좀 쪼아봐야겠어.’
이대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사람이라는 게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욕심이라는 게 생긴다.
아직 멤버들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돌로서의 능력도 채우고 싶고,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들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나에게 현재의 상황은 너무 답답했다.
작가님, 단체 촬영이 아직 남았는데요.
아!
개인 촬영의 끝이 다가올 무렵에는 능력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지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고 촬영이 부드럽게 진행 되었다.
메이 린 작가의 조수가 중간에 촬영을 끊어준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며 촬영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되게 ‘모델스럽게’ 움직였던 것은 기억이 났다.
메이 린 작가님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조수에 의해 정신을 차리고 촬영을 끝내면서도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아마 단체 촬영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함께 느꼈던 그 짧은 순간의 집중이 뭐였는지 토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단체 촬영이 시작 되고, 그 순간의 일은 흐지부지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짝짝짝짝!
늦은 시간까지 촬영이 계속 되었지만, 체력 주머니로 멤버들의 체력을 관리해준 덕분인지 다시 부활하여 무사히 촬영을 끝냈다.
역시 단체 촬영은 개인 촬영보다는 좀 더 즐겁게 진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멤버가 함께 있어서 든든한 마음도 들었고 말이다.
해가 지긴 했으나, 8시 안에 세이브 했으니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형, 진짜 멋있었어.”
“그렇게 잘 할 거면 우리한테 팁 좀 주지.”
“내숭쟁이.”
촬영장 스태프와 메이 린 작가님에게 인사를 하고 벤에 타자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툴툴댔다.
내가 너무 촬영을 잘 한 탓에 질투를 보인 것이다.
장난이 담겨 있는 말들이었기에 나는 웃으면서 멤버들에게 잘 했다고 달래주었다.
“해솔이 행님은 춤이랑 노래 배울 때도 엄청 빨리 늘었어요. 원래 이런 형이어서 덤덤하네요.”
“진짜 형 천재야?”
남은규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내가 천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
“신기하잖아! 나 천재는 처음 봐.”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에 있는 너희들 전부 천재인 거 몰라? 천재니까 허니 엔터에서 그 많은 애들을 제치고 데뷔한 거잖아.”
“아니, 뭐 그렇기는 한데…. 그런 걸로 천재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아?”
“전혀 부족하지 않은데. 그리고 여기서 나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나보다 춤 잘 추는 사람이 수두룩하잖아. 그런데 나보고 천재냐고? 너 교묘하게 나 돌려 까는 거냐?”
남은규의 목에 팔을 두르고 무게를 실어 콱 눌러버렸다.
6명이 한 벤을 탄 상태라서 덕분에 난리가 났다.
“아악!”
“좁아아!!”
“나 손 깔렸어! 아파!”
“아이고, 난리 났네. 사고 난다, 이것들아! 다들 진정하고 얌전히 앉아 있어!”
“누나, 큰일 끝냈는데 회식 없어요?”
“회식! 회식! 회식! 회식!”
“고기! 고기! 고기! 고기!”
“맞다! 이제 다이어트 안 해도 되는 거잖아? 고기! 고기! 고기!”
“그냥 고기라고 외치면 안 되지. 한우! 한우! 한우! 한우!”
“꽃등심! 꽃등심!”
순식간에 벤 안은 각자의 욕망이 담긴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물론 나도 애들과 한 마음이 되어 꽃등심을 외쳤다.
♣ ♣ ♣
달칵 달칵 달칵 달칵
오늘 찍은 사진들을 쭉 살피던 메이 린 작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진해솔이라는 남자의 사진이 띄워졌을 때였다.
스태프들이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나서는 사이.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로 혼자 스튜디오에 남았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찍었던 결과물을 확인했다.
‘이 순간부터 퀄리티가 엄청나게 올라갔어.’
그녀는 촬영할 때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촬영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대화를 한다거나, 큰 소리를 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메이 린 작가의 이런 성향을 아는 스태프들은 촬영하는 동안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을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경험했던 일처럼 촬영에 집중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도대체 뭐였지?’
그녀의 상태에 특별했다는 건 작업물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게 내가 찍은 사진….”
보정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사진이었다.
동양의 미가 한 장의 사진에 전부 들어가 있다.
“이 사진은 사람들을 설득 시킬 거야.”
너희들이 갖고 있던 ‘미’의 기준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사실적인 순간을 담아냈어야 할 사진이 믿을 수 없는 순간을 담아내버렸다.
‘매혹적이야.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이걸 보고 설레지 않을 여자는 없을 거야. 도대체 내가 뭘 찍은 거지?’
계속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으로 탄생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은 것은, 본인의 능력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찍는다 해도 이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지만, 모델에게 완전히 끌려가버리기 전에 끝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조수가 도중에 끊어주지 않았다면 결국 진해솔이라는 남자의 재능에 잡아먹혔을 것이다.
그리고 좌절했겠지.
아니, 사실 지금도 좌절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진이 내 최고의 작품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카메라를 잡지?’
최고의 작품을 봐버리고 말았는데, 앞으로 수십, 수백 번의 셔터를 누른다 해도 소용없는 거 아닐까?
“뮤즈….”
조안나와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메이 린 작가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위험한 남자를 뮤즈라고 부르며 신나하던 조안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스태프들과 저녁 밥을 먹고 있을 조안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깐 호텔방에서 보자고.
[조안나 : 맥주 쏘면 갈게.]
[나 : 알았으니까 튀어 와.]
[조안나 : ok~~]
호텔방으로 가서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씻은 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안주를 테이블에 놓고 있자 조안나가 도착했다.
“뭐하느라 이렇게 늦어?”
“다들 잔뜩 신나 있어서 빠져나오느라 힘들었어. 어찌나 날 붙잡던지. 이런 날엔 너도 즐기면 좀 좋니?”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건 조안나나 좋아할 일이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다들 잔뜩 굳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을 거다.
그녀가 가진 포스나 분위기는 평범한 스태프들이 버티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날 부를 줄은 몰랐어. 난 네가 자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미쳤니? 취했어?”
“호호호! 너 오늘 촬영할 때 엄청 섹시했던 거 알아?”
“장난 치지 마. 그럴 기분 아니야.”
“진짜 진심으로 한 말이야. 그리고 나만 그런 말 한 게 아니라 스태프들도 오늘 너 섹시했다고 말했어.”
“도대체 뭘 보고?”
그리고 여자들이 섹시하다고 말해줘봤자 징그럽기만 하다.
“진이랑 촬영할 때.”
“…….”
“너도 뭔가 느낀 거지?”
“넌 어떻게 그 사람을 뮤즈라고 부르고 태평하게 대하는 거야?”
“역시! 너라면 느낄 줄 알았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내 친구! 꺄하핫!”
“무섭지도 않니?”
메이 린은 오늘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꼴사나운 일이지 않은가?
자신의 결과물을 보고 공포에 떨다니.
“네 기분 이해해.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뮤즈와 헤어지고 내 머릿속이 텅텅 비어버린 순간 찾아 온 절망은 정말 끔찍했어. 뮤즈를 삼켰을 때 느꼈던 달콤함을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않은 사진이 있어.”
“오늘 찍은 사진 중에?”
“응.”
“나한테 보여줄 수 있겠어?”
“그러려고 부른 거야. 너도 나랑 같은 상황일 테니까.”
메이 린이 스튜디오에서 따로 저장해온 사진을 조안나에게 보여주었다.
넓은 화면이 아닌 핸드폰으로 보는 것이어서 살짝 부족함이 있었지만, 메이 린이 느꼈던 충격을 전달해주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미쳤네.”
“그렇지?”
“황홀해. 매혹적이야. 아름다워.”
무엇을 말하든 이 작품을 말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의 뮤즈로 이런 영감을 느꼈구나.”
“질투 안 나?”
“애초에 나만의 사람이 아닌 걸? 질투하기엔 자격이 없어. 그리고 난 오히려 그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거든.”
그게 옷으로든, 사진으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아. 이거 보정 한 거니?”
“아니.”
“하, 나 이 사진 줘.”
“어림없어.”
“설마 이 사진, 너 혼자 꿀꺽할 생각 아니지? 이거면 무조건 메인 모델은 진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고민 중이야.”
“당연히 이걸로 해야지! 이것보다 더 대단한 사진은 불가능해!”
“나도 알아.”
메이 린이 선뜻 이 사진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 사진이면 그녀의 명성이 더 높아질 거다.
하지만 메이 린은 이 작품보다 더 대단한 걸 만들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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