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13. 2주 휴가 (2)
* * *
주아 누나는 한참동안 부럽다는 말을 하더니 결국 나를 잡아먹었다.
성욕 다 죽었다고 해놓고 잘만 하더라.
“코오…코오….”
누나의 색색거리는 잠든 숨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을 시기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바람이 쌀쌀해서 따듯하게 몸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누나의 몸 상태는 걱정한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보였다.
역시 비싼 코인을 쓴 보람이 있다.
‘임신할 때 서운하게 하면 우울증 걸릴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누나는 엄청 태평하네. 이것도 아이템 덕분인가?’
이렇게 성능이 좋으면 비싸게 줬던 코인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주아 누나를 눕힌 침대 옆에 나도 몸을 뉘였다.
젖은 침대를 열심히 치운 보람이 있는지 침대는 보송보송한 상태였다.
‘침대 정리하는 것도 이제 완전 고수 다 됐네.’
참 신기한 일이다.
평범했던 내가 이런 비이상적인 일상을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다니.
지구에서의 나였으면 주아 누나처럼 아름다운 여자랑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을 거다.
새삼 현재 내 상황이 믿어지질 않는다.
‘친구 녀석이 지금 내 상황을 들으면 배꼽 빠져라 웃겠지.’
그래도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예쁜 여자가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것 아니겠나?
전화 통화나 메시지를 나눌 때는 걱정이 풀리지 않았는데, 직접 눈으로 얼굴을 맞대니 쌓였던 걱정이 풀렸다.
마음을 무겁게 하던 일이 해결 되니 잠이 절로 솔솔 쏟아진다.
결국 나도 정신을 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던 걸까?
몽롱하던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알게 모르게 쌓였던 피로가 다 풀렸는지 몸이 너무 가벼웠다.
더군다나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냄새가 배를 자극했다.
꼬로록 꼬록
‘배고프다.’
옆자리를 확인하니 누나가 있던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주방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있었기에 그곳에 있는 게 주아 누나 일 거라고 생각하고 아직 눈도 잘 떠지지 않은 상태로 엉기적엉기적 일어나 움직였다.
탕탕탕탕탕!
‘주아 누나가 음식도 할 줄 알았나보네.’
킁킁킁
냄새를 맡아 보니 달달 짭쪼름한 불고기 향이 난다.
순간 치솟은 장난기에 슬금슬금 몰래 그녀의 뒤로 가서 스윽 허리를 휘감아 껴안았다.
“햐흣!”
“언제 일어났어? 음식도 할 줄 알고, 우리 누나 대단한데?”
“주, 주아는 화장실에 있는데에….”
응?
허리를 감고 뒤에서 안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에 손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누나의 배가 잘록했다.
하마터면 우리 축복이 어디 갔냐고 소리 지를 뻔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다시 살펴보니 내가 끌어안은 여자는 주아 누나가 아니었다.
“아~ 어머님이었네요? 언제 오셨어요.”
“으응, 조금 전에. 배고플 것 같아서 음식 하는 중이었어.”
“냄새 너무 좋아요. 저 불고기 엄청 좋아하거든요. 특히 어머님이 해주시는 불고기는 말할 것도 없죠.”
“응, 저번에 잘 먹는 것 같아서 또 한 거야. 잡채도 할까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네.”
“잡채는 괜찮아요. 그거 만들기 엄청 귀찮다고 들었어요. 지금 차려진 것만으로도 진수성찬인 걸요.”
“그…근데 말이야. 허리는 언제 놔줄 거니? 주아가 올 텐데….”
쪽!
장모님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란 듯이 그녀의 목에 뽀뽀를 해주고서야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장모님이 고생하시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뭘 하면 될까요? 아무거나 시켜만 주세요.”
“…자리에나 앉아.”
“음, 알겠습니다.”
확실히 내가 무언가를 하기엔 이미 식탁에 다리가 부셔질 정도로 많은 가짓수의 음식이 차려져 있는 상태였다.
결국 머쓱해져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자기, 일어났네? 깨우러 가려고 했는데.”
머리가 촉촉한 걸 보니 샤워를 했던 모양이다.
누나에게서 향기로운 샴푸 냄새가 났다.
“배고프지? 어서 앉아.”
“네엥~”
장모님의 말에 누나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뭐 이렇게 많이 했어? 해솔이 덕분에 호강하네.”
“해, 해솔군 때문이 아니라 너 잘 먹이려고 사온 거야.”
“지금 엄마 거짓말 하는 거야. 너 집에 있다니깐 목소리부터 확 달라지면서 어머! 진작 말했어야지, 장 좀 더 봐야겠네? 이랬다니깐.”
장모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말을 돌리고 싶었는지 불고기를 접시에 떠서 요란스럽게 식탁 위에 올렸다.
“자자, 불고기 다 됐어. 다들 배고프지?”
“엄청 맛있겠네요. 잘 먹겠습니다!!”
고봉밥을 퍼준 장모님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걸 먹고 살이 찐다면 코인으로 줄이면 된다.
우걱우걱우걱
꿀보다 달고 맛있는 불고기와 그 외의 다른 음식들을 골고루 맛보며 장모님의 솜씨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그 여자랑 얘기 잘 된 거야?”
‘그 여자?’
“내키지 않지만, 만난 보람은 있는 것 같아.”
“엄마한테 무례하게 대한 건 아니지? 목소리 들었을 때 되게 싸가지 없던데. 완전 여우 스타일. 아빠는 그런 여자가 뭐가 좋다는 건지. 여자 보는 눈 드럽게 없어요. 쯧쯧!”
누나와 장모님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오늘 외출을 한 이유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던 것 같다.
주아 누나에게 ‘아빠’라면 장모님 남편을 말하는 것일 거고, 그 여자라면 이번에 아들을 낳아 장모님 남편을 독차지한 여자를 말하는 걸 것이다.
나한테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얘기인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장모님을 바라봤다.
그녀도 마침 나를 보고 있었던 건지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튼 그 여자 덕분에 네 아빠랑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솔직히 아빠랑 굳이 헤어져야 하나 싶어. 오랫동안 엄마가 열심히 지켜왔던 자리잖아. 그 젊은 여자한테 넘겨줘도 괜찮은 거 맞아?”
“누나는 장모님이 이혼하시는 거 반대해?”
“아니, 반대하지도 않고, 찬성하지도 않아. 엄마가 바라는 게 내 의견이거든.”
그럼 결국 이혼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얘기가 된다.
“네 아빠한테 미련 없어. 그러니까 주아 너도 아빠에 대한 미련은 깔끔하게 버려. 그 애 수완이 대단해서 이혼하고 난 뒤에는 네 아빠한테 연락 올릴 별로 없겠더라. 네 아빠를 어떻게 구슬렸는지 웬만한 년들은 싹 다 정리시키고 있더라고. 내가 요즘 제대로 신경을 안 썼더니 자기 세상인 것처럼 날뛰고 다닌 거지.”
“흥, 남자아이 가진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후후! 그러게. 우리 딸아이는 한 방에 남아를 가졌으니까. 엄마도 못해낸 일을 해냈어. 대견해.”
주아 누나의 콧대가 높게 세워진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럼 뭐해, 지금은 남자 아이라서 상황이 더 복잡해져버렸는데. 모처럼 축복이가 생겼는데 마냥 기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다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니! 괜찮은 줄 알았더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던 거야?”
“이혼 문제 때문에 머리 아플 텐데, 내 문제까지 더 얹어줘서 미안하니까 그렇지. 갑자기 아빠랑 이혼하겠다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혼 결심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 거냐구. 근데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티낸 적 없었잖아.”
“…….”
“…….”
장모님과 내 시선이 또 다시 마주쳤다.
장모님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 나일 것이다.
그러니 장모님은 주아 누나에게 미안하면 미안했지, 저렇게 역으로 사과를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장모님의 야한 몸을 참아내지 못하고 욕망을 터트린 죄인으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만 연장자인 장모님은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주아 누나를 달랬다.
“정이 떨어진 순간 마음속에서 네 아빠를 깔끔하게 지워버렸어. 마음고생 같은 거 했을 리가 없잖아. 그 인간이랑 살아 온 세월이 얼만데. 지긋지긋하다구. 내가 이혼을 망설였던 건 네가 눈에 밟혀서 였어. 다른 미련은 0.1%도 존재하지 않아.”
“그 여자 때문에 정 떨어진 거야?”
“여태까지 네 아빠 부여잡고 산 건, 이 인간이랑 헤어지면 다른 남자를 채워 넣어야 할 텐데, 그러기 귀찮아서였어. 조강지처라는 타이틀이 다른 곳에서 제법 써먹기 좋기도 했고. 그런데 이번에 다른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서 네 아빠 행동을 보고 정이 뚝 떨어지더라.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 붙잡고 있어봐야 추해만질 뿐이겠구나 싶기도 했고.”
“아빠랑 사이 좋지 않았어?”
“네 앞에서나 사이좋은 척 한 거지. 그 인간이랑 잠자리 안 한지가 몇 년인데? 네 아빠, 엄마가 홀딱 벗고 자자고 해도 안서는 사람이야. 그게 남편이 할 행동이니? 그 인간한테 난 오래 전부터 여자가 아니었어.”
남편과 자신은 이제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 온 ‘동지’일 뿐이라며 이번 이혼의 이유를 주아 누나에게 설명했다.
나는 얌전히 장모님의 말을 들으면서도 주아 누나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장모님 맨 몸을 보고도 안 선다고? 그게 남자냐??’
나로서는 0.01%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혼 때문에 머리가 아플 일 이제 없다니까? 가만히 있어도 그 여자가 열심히 이혼 준비 해줄 텐데 쓸데없이 그런 일에 왜 신경을 쓰니? 앞으로 네 일만 생각할 거야.”
장모님의 말에 감동을 받은 주아 누나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흑! 흑흑!”
“누나?”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주아 누나 때문에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자 장모님이 허둥대는 나를 만류했다.
“걱정하지 마. 임신해서 저러는 거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바뀌거든. 임신 때문에 이러는 거라 아무도 못 막아. 그냥 시원하게 눈물 쏟아야 속이 시원해.”
“그래도 울고 있는데 달래줘야죠.”
“흑흑, 아니야. 금방 그쳐. 신경 쓰지 마.”
“경험자로서 조언해주자면 울고 있는데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게 더 거슬릴 거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렴.”
한 마디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니까 괜히 알짱대지 말고 짜져 있으라는 말이다.
나는 장모님의 현명한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다만 누나가 우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음식을 즐겁게 먹을 수가 없었다.
‘아이템 효과로 누나 건강이 지켜지고 있는데도 이러는 거면, 없을 땐 얼마나 고생한다는 거야?’
헌데 황당한 일이 생겼다.
서럽게 울던 누나가 훌쩍훌쩍 몇 번 코를 훔치더니 눈물을 그치고 배고프다며 다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진 거야?”
“응. 갑자기 울컥했어. 별 의미 없는 울음이야.”
“원래 임신하면 다 그래. 너는 그래도 먹덧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너 가졌을 때 입덧을 심하게 해서 엄마 몇 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 집 안에 음식이란 음식은 다 치웠는데도 속이 울렁거리고 냄새가 나서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갈 뻔 했고.”
“먹덧도 나름 힘들어. 먹어도먹어도 계속 들어가. 조금만 안 먹어도 허기지고, 속 쓰리고.”
“네가 임신해서 될 수 있으면 스트레스 안 주려고 말을 자제했는데, 속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모양이네.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속 시원하게 알려줄 테니까.”
“으응…. 고마워, 엄마.”
두 사람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두 여자 모두 나와 깊은 연관을 맺어서 그렇다.
아현이와 복순 누나는 이제 싸우지는 않지만, 사이가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내 앞에서 아닌 척 하고 있지만 그걸 못 알아 볼 내가 아니다.
그런데 주아 누나와 장모님은 사이가 좋으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아 누나한테 장모님과 내 사이를 알려야 하는 큰일이 남긴 했지만, 적어도 아현이랑 복순 누나처럼 두 사람이 죽어라 싸우는 모습은 안 나올 거야.’
그때가 된다면….
아직까지도 해보지 못한 3P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혼은 적어도 1개월이면 끝날 거야. 그럼 마음 편하게 내 호적으로 올릴 수 있어.”
“주아 누나 호적에 올리는 건 많이 힘든가요?”
“주아가 직업이 없잖니. 백수인 주아 호적에 넣으면 정부에서 무조건 참견 들어올 거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 재산 보유 상황이 괜찮은지 등등~?”
“그럼 어머님 호적으로 올리면 정부에서 연락 오지 않나요?”
“오히려 축하한다고 돈 보내줄 걸?”
“이혼했는데도요?”
“가진 재산이 있고, 이미 딸을 키워 본 경험이 있잖니.”
결국 주아 누나의 호적에 올리는 건 힘들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제 호적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원래대로 돌려야지.”
“…….”
장모님의 말에서 결혼 하는 대상을 정확히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면 오해일까?
어찌됐든 다행스럽게도 장모님의 이혼이 문제없이 진행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제 정말 내 여자가 되는 거구나.’
장모님을 위해 꼬리 장난감을 장바구니에 넣어뒀는데, 곧 쓸 일이 생길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