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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3화 (73/849)

〈 73화 〉 #13. 2주 휴가 (4)

* * *

포니는 불쑥 등장한 것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나서 사라져버렸다.

미션이라는 특이한 능력을 남기고 간 탓에 이후로 잠을 자지 못하고 미션 목록을 열심히 뒤졌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날이 밝았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역시나 장모님이었다.

“어머,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일어나셨네요. 좋은 꿈 꾸셨어요?”

“응.”

소파에서 일어나서 장모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그녀가 손을 저으며 만류를 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 씻고 올 게.”

“지금도 예쁜데 굳이요?”

“아잇! 정말! 능글맞게 굴지 마.”

장모님이 후다닥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가셨다.

살짝 부은 얼굴이 오히려 귀여웠는데 아쉽다.

“쩝.”

다시 소파에 얌전히 앉은 나는 미션 목록 중에서 즐겨찾기 해놓은 것들을 쭈욱 살펴보았다.

미션 목록이 너무 길어서 아직 다 살펴보지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미션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이 미션을 다 해결했을 때 벌 수 있는 코인은 총 130,000 코인.

13만 코인이 있으면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뒀던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무조건 사야 하는 11만 코인짜리 아이템!’

모양은 안경으로 되어 있지만, 그 안경을 쓰면 존재감이 줄어들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게 한다.

한 마디로 ‘인식 저하’ 기능을 갖고 있는 물건인 것이다.

물론 기능이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 기능 하나였으면 11만 코인이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 안경을 착용하면 내가 바라는 얼굴로 바꿀 수가 있다.

내가 원하는 외형으로, 심지어 신체까지 조정이 가능한 것이다.

스파이 잠입용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일에 쓸 일은 없고 신분을 숨기는데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이 물건을 삼으로써 단숨에 내 상황을 타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걸 언제 다 하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보자고 생각하고 미션 하나를 자세히 살폈다.

[첫째 아기 이름 정하기 (수행 가능) 10코인]

[연락처에 여성 100명의 핸드폰 번호 저장하기 (수행 가능) 100 코인]

[도서 ‘황홀한 성관계를 위한 다양한 체위’ 정독하기 (수행 가능) 50코인]

[5km 달리기 (수행 가능) 150코인]

[10km 달리기 (수행 가능) 200코인]

[두 명의 인간 여성과 3P (수행 가능) 200코인]

[윗몸일으키기 5,000개 하기 (수행 가능)]

…등등.

종류는 참 다양했고, 보상이 좀 아쉽기는 해도 깨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장모님이 씻고 나왔는지 촉촉한 머리카락을 수건에 비비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배고프지? 아침밥 차려줄게.”

“괜찮아요. 그보다 이리 앉아 봐요.”

팡팡~!

소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절 얼마나 살찌우려고 하시는 거에요.”

“앗! 부담스러웠니?”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너무 주아 누나 어머니의 역할만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으응?”

당황하는 장모님에게 복잡한 얘기를 하기 보단 그냥 몸을 눕혀서 무릎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주아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누나 일어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좀 편하게 있어요. 그리고 일어나면 일어난 거죠. 아참, 그리고 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가봐야 해요. 누나 늦게 일어나면 얼굴 못 보고 갈 텐데, 말 좀 전해주세요.”

“밤에 돌아 올 거니?”

“글쎄요, 아마 약속 끝나면 숙소로 돌아갈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있어도 되는데….”

“오늘까지 있으면 5일이나 있었던 건데 슬슬 가봐야죠. 저 때문에 알게 모르게 불편하시잖아요.”

5일이면 정말 오래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약속을 해결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더군다나 해야 할 일 중에 미션도 생겼지 않은가?

“아니야! 얼마나 좋았는데.”

확실히 장모님 얼굴이 번들번들 하는 걸 보면, 내가 집에 있는 게 좋기는 했던 것 같다.

영계를 잡아먹고 몸보신 하신 거다.

장모님의 무릎에 누워 뒹굴 거리면서 아침을 즐기다가 간단하게 토스트와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집을 나섰다.

‘장모님 무릎 최고!’

사실 영계 잡아먹고 얼굴이 반들반들해진 장모님보다 내 얼굴이 더 번들거리고 있을 거다.

주아 누나와 실컷 꽁냥거리다가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든든하게 먹었고, 또 새벽이 되면 장모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신나게 쌓인 성욕을 처리하는 환상적인 생활이었으니 당연하다.

천국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내 꿈은 아이돌로 성공하고 깔끔하게 은퇴하는 거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여자들과 함께 환상적인 나날을 보내고 말리라!

물론 아직까지는 까마득한 일에 불과했다.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한낮 신인 아이돌에 불과한 놈이었으니 말이다.

♣ ♣ ♣

미션 때문이 아니라도 주아 누나 네 집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미션을 해결해놓을 생각이었다.

아기 이름 정하기 미션.

혼자서 아기 이름을 정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아 누나가 호적에 올리지 못해 서운할 테니 이름이라도 내가 짓는 게 좋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했어야 할 일인데 코인까지 받는 상황이니 일석이조(一?二?)였다.

‘성은 어쩔 수 없이 장모님 성을 따라야한댔지.’

장모님의 이름은 ‘남정화’.

내 자식의 성은 남씨가 될 거다.

나중에 호적을 정리하게 되면 ‘진’씨를 이어받게 될 테니, 성을 바꿨을 때 이상하지 않을 이름을 정하는 세심함이 필요했다.

“남해아 진해아. 이건 이름이 너무 노골적인가? 누가 봐도 내 이름에 주아 누나 이름 합친 건데.”

역시 이름을 짓는 건 이름 짓는 곳에 부탁을 해야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좋은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해 이름을 지어보기로 했다.

‘아빠’가 되기 위한 일인데 금방 포기할 순 없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결정 된 이름.

남희원.

진희원.

아기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결정하자 미션이 완료 되었다며 코인이 받아졌다.

“이런 식으로 표기가 되는구나.”

[보유 코인 : 48(10)]

상품권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는 코인과 내가 섹스하면서 번 코인은 합계되어 체크가 되지 않았다.

각각 체크가 되어 표시가 되는 게 나에겐 더 편했기에 잘 된 일이었다.

능력치 올릴 수 있는 코인으로 상품을 사는 것만큼 아까운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포니가 말한 위쪽 애들은 내가 능력치를 많이 올리는 걸 경계하고 있어. 진짜는 아이템이 아니라 능력인 거야.’

미션 목록에 ‘드래곤’이니 ‘수인족’이니 하는 게 적혀 있는 걸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세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다른 세계에 대한 걸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나랑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오히려 엮이게 되면 피곤하지.’

충분히 엄청난 일을 겪었으니 더 판타지적인 경험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짠~ 안녕! 오래 기다렸어?

­조안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조안나와 포옹을 했다.

사실 아현이와 복순 누나 둘 중 한 명을 만나려고 했는데, 5일 내내 조안나가 꼭 만나야 한다면서 재촉을 하는 바람에 그녀를 먼저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미룰 수가 없겠더라고.

­엄청 엄청 보고 싶었어. 왜 이렇게 바빠! 나랑 만나기 싫었어?

­그럴 리가요. 정말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요.

­뮤즈가 아니었으면 바로 찼을 거야.

­정말요?

­히힛, 아니. 내가 자기를 어떻게 차겠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까운데.

­그래서 정말 단순히 제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졸랐던 거에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에요? 여기에 남기로 했으면서 빨리 봐야한다고 재촉하는 게 뭔가 말 안 한 게 있어 보이던데요.

그녀가 하는 말의 뉘앙스에서 미묘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지 오래이다.

­자기, 눈치 빠르네.

­역시. 뭐에요, 도대체?

이 말괄량이 여자가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있잖아, 뮤즈~!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일단 들어보고 생각할게요.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들어주기 곤란한 부탁을 해올 수 있었기에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

­음…자기가 기분 나빠 할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 사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뮤즈는 착하고 마음이 넓은 남자잖아?

내가 마음이 넓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말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뜸을 드리니까 겁나는데요. 빨리 말해줘요. 부탁이 뭔데요.

­으응~ 내 친구랑 섹스 해줬으면 해.

­…네?

­섹스 말이야. 섹스.

조안나가 손가락을 동전모양으로 만들더니 그 안에 길쭉한 검지를 쑥 집어넣었다가 뺀다.

다른 사람이 볼까봐 허겁지겁 그녀의 손을 모으게 하고 내려버렸다.

­갑자기 이게 뭔 날벼락인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주실래요?

자기 친구랑 섹스를 해달라니?!

이것도 차원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남녀역전!

도대체 언제쯤 적응할 수 있는 거냐…!!!

­사실 내 친구라는 애가 메이 린이야. 화보 촬영했던 포토그래퍼, 기억하지?

­…맙소사. 그분이랑 저보고 섹스를 하라고요?

한 여름에도 눈을 내릴 수 있게 할 것만 같았던 차가운 여자다.

생김새는 이 세계 여자답게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렇게 얼음 같은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게 곧바로 상상이 되질 않았다.

­메이 린 작가님도 동의한 얘기에요, 아니면 조안나가 혼자서 밀어 붙이고 있는 거에요?

­일단 메이 린은 몰라.

­그럼 끝났네요. 미안하지만 조안나 부탁은 못 들어줄 것 같아요.

­에에? 듣자마자 바로 거절해버리는 거야?

­애초에 이런 건 당사자가 먼저 제안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라고요! 아니, 어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하게 된 거에요?

­그 아이가 너랑 촬영하고 난 이후에 슬럼프가 와버렸어!

슬럼프?

그게 왜 내 탓이야.

­사진은 나 말고 다른 멤버들도 찍었어요.

­그치만 원인은 뮤즈 때문인 걸? 뮤즈가 보지 못한 사진이 있어. 그 사진을 보고 메이 린은 좌절해버렸고.

­무슨 사진인데요?

­뮤즈가 엄청나게 잘 나온 사진이야. 아마 보게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메이는 이 사진 이후로 카메라를 잡지 못하고 있어. 절대 이 이상의 사진은 못 찍을 거라면서 말이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메이 린 작가님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왜 슬럼프에 빠진 게 나와의 섹스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내 의문을 조안나에게 설명하고 묻자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야 내가 그렇게 극복했으니까지!

경험담이라고??

­물론 나는 슬럼프에 들기 전에 정답을 알고 있어서 극복하기 쉽기는 했어. 만약 자기랑 섹스하지 않고 헤어졌다면 나도 결국 슬럼프에 빠졌을 거야. 자기는 예술가에게 치명적인 남자니까.

­저랑 섹스한 이후에는 디자인을 잘 할 수 있게 됐어요?

­응. 말했잖아. 내가 왜 자기를 애타게 찾았는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돼서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어. 그런데 자기랑 만나고 섹스한 이후로는 다시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했지. 아마 메이도 뮤즈랑 섹스하고 나면 슬럼프가 사라질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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