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13. 2주 휴가 (5)
* * *
정말 친구랑 제가 섹스해도 조안나는 괜찮아요?
음, 순수하게 아무런 타격이 없지는 않을 거야. 그치만 메이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 예술가로서 얼마나 절망적인지 아니까 이해할 수 있어. 그리고 내 마음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뒀어.
그런 방법이 존재해요?
자기 남자가 친구랑 섹스를 한다는데 마음이 안 다칠 수 있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데, 조안나가 이번에도 폭탄 발언을 했다.
3P할 거야!
쿨럭! 쿨럭!
지,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조안나씨?
사, 삼 뭐요?
셋이서 하는 거지. 그럼 적어도 둘이 섹스할 때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동안 꾸준히 3P각을 재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조안나와 메이 린 작가님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현이와 복순 누나가 아니라면 주아 누나와 장모님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3P각이 이렇게 갑자기 날카롭게 선다고??
미션도 걸려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바로 솔깃해지기는 했다.
‘한다고 해야 되나? 거절하는 게 맞겠지?’
조안나의 말을 듣고 자연스레 메이 린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촬영을 잘 해야한다는 것에 집중을 하느라 메이 린 작가의 모습을 자세히 뜯어보지 않았었다.
덕분에 당장 떠오른 모습이라고 해봤자 매섭게 몰아치던 목소리와 깐깐해 보이던 날카로운 눈매 뿐이었다.
메이 린 작가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죠? 저랑 자는 걸로 슬럼프가 회복 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아마 작가님도 싫다고 하실 것 같은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그럼 괜찮은 거지? 역시 내 뮤즈야~!!
내가 바로 거절하지 않은 것이 그녀에겐 허락의 말로 들렸던 모양이다.
그녀가 와락 내 품에 달려들었다.
뭉클~!
어우.
이러시면…감사는 합니다만 크흠!
네가 허락해주기만 하면 걔는 내가 잘 설득할 수 있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다는데 걔가 마다할 리가 없거든.
정말 그걸로 해결이 되겠어요?
무조건 된다니까? 허락해줘서 정말 고마워. 난 뺨 맞을 것도 각오하고 말한 거거든.
뺨 맞을 각오로 해놓고 그런 태도였다고?
그게 더 놀라운데.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뭔데? 말만 해! 다 들어줄게.
설명을 하고나서 본인이 싫다고 하면 조안나도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에요.
까, 깔끔하게? 그래도 설득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설득을 해야 할 정도로 거부감이 있으면 안 하는 게 맞는 거에요.
적어도 몇 번 정도는 설득 할 기회는 줘야지!
안 돼요. 설명 끝나고 할래 말래 묻고 나서 싫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해요. 나도 자존심이 있다고요. 싫다는 사람을 데리고 억지로 그런 짓 하는 것까지 허락할 수 없어요.
그 고집쟁이가 한 번에 허락할 리가 없는데….
나는 걱정하는 조안나에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지금이 아니라도 3P는 언젠가 반드시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심하게 생각하자면 얼마든지 조급해질 수 있고, 느긋하게 생각하자면 얼마든지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목표로 하는 11만 코인을 얻기 위해서 당장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움직이자고 생각해왔지만, 내 여자가 아닌 여자와 섹스를 해서까지 미션을 급하게 처리 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메이 린 작가님한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적도 없었잖아.’
세상에 여자가 넘쳐나고 있다지만, 아무와 자고 다니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 말에 조안나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무언가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 ♣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수 있도록 방이 있는 음식점으로 이동한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 전, 누군가를 기다렸다.
원래 오늘은 조안나와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려고 했는데, 조안나가 생각해낸 기발한 방법 때문에 단 둘만의 데이트에서 한 사람이 추가가 되었다.
똑똑똑
드르륵
메이메이~!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들어 온 여자를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곳에 올 사람은 나도 그렇고 조안나와도 아는 사람인 ‘메이 린’씨여야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 온 여자는 메이 린씨가 아니었다.
뭐야? 만나자고 불러놓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메이메이~! 어서 와. 왜 이렇게 늦었어.
어?
놀랍게도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낯익었다.
더군다나 조안나가 그 여자를 향해 ‘메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진짜 저 여자가 메이 린 작가라고?!’
아무리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지만 이미지 변화가 너무 심하잖아!
다시금 메이 린이라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머리를 바짝 올려 묶고 짙은 아이라인에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찔러도 눈물 하나 나오지 않을 냉철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여자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메이 린이 아니었다.
만약 길거리에 걸어간다면 전화번호를 물어봤을 것 같은 미인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다르잖아!’
조안나가 메이 린에게 앉으라며 자신의 옆자리를 권유했다.
팡팡!
불평하지 말고 이리 와서 좀 앉아 봐.
딱 봐도 데이트 하는 것 같은데, 정말 앉아?
응응.
메이 린씨의 날카로웠던 분위기는 어디로 간 건지.
고양이 상인 줄 알았던 여자가 오늘은 강아지 상의 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
‘이건 거의 변신 수준인데???’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정말 메이 린 작가님 맞으신 거죠? 촬영 날 봤던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못 알아 볼 뻔 했어요.
오늘 화장을 좀 가볍게 했어요. 그나저나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네요. 조안나가 무례하게 행동한 거라면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미워도 나름 친구라서요.
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부르는 거에 동의했으니까요.
얘가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눈치가 없어요. 부르라고 순진하게 진짜 부를 줄 모르셨겠죠.
강아지 상으로 얼굴이 변했다고 해서 성격까지 바뀌는 건 아니었다.
쌀쌀 맞은 그녀의 태도에 바짝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메이, 쌀쌀 맞게 굴지 말구우~ 빨리 앉으라니깐.
조안나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메이 린이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담배 피고 싶은데 잠깐 펴도 될까요?
네.
금연을 해야 하는 가게는 아니라서 메이 린씨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네가 피면 나도 피고 싶어지는데. 진은 담배 해?
아뇨, 저는 안 해요.
놀랍게도 새로운 몸에 들어와서 그런지 담배가 생각나지 않더라.
기왕 끊은 거 시작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조안나와 메이 린씨가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스트레스 장난 아닌 모양이네. 화장은 순하게 했으면서 독기가 잔뜩 올라 있어.
응. 나 요즘 엄청 예민해. 그래서 너랑 술이나 마시려고 나왔는데 이게 뭐니? 남자친구 생겨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어?
에이~ 슬럼프에 빠진 친구한테 눈치없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네 눈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하게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구경하며, 나는 대화 내용에서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 상에서 강아지 상으로 바뀐 이유가 고작 화장 때문이었어?’
메이 린 작가님의 이미지가 180도 바뀐 이유가 화장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다.
역시 화장은 신비하다.
메이 린씨는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강아지 상이고, 보통 일할 때는 진한 화장을 함으로써 고양이 상 얼굴이 되는 것 같았다.
담배를 모두 태웠는지 메이 린씨가 슬슬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 데이트에 날 끼워 넣은 이유는?
같이 놀자는 거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어? 다음 주에 돌아갈 텐데, 여태까지 관광은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널 몰라? 가뜩이나 슬럼프 때문에 머리 아파서 침대에만 누워 있을 게 뻔해.
메이 린씨가 조안나의 말에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게 너무 분해.
조안나는 깔깔 웃으면서 오늘 맛있는 거 먹고, 구경다니다가 밤에 찐하게 술을 마시자며 메이 린을 꼬셨다.
그리고 결국 메이 린은 조안나의 꼬임에 넘어갔다.
미안해요, 본의 아니게 데이트 방해해서.
아닙니다.
웬만하면 분위기 파악하고 센스 있게 빠져줬을 텐데, 지금 내 상태가 다른 사람 신경 써줄 정도로 느슨하질 못하거든요. 오늘만 민폐 친구 할 게요.
만약 조안나의 꿍꿍이를 안다면 메이 린씨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쳤을 거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하지만 조안나에게 약속한 게 있었기에 앞날에 대한 것을 말해줄 수 없었다.
‘조안나는 거짓말을 잘 하는 편이네. 능글맞다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조안나는 꽤 영악한 수를 떠올렸다.
‘만나자마자 본론을 꺼내면 메이는 당연히 질색해서 거절할 거야. 그러니까 메이를 불러서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 그리고 진은 중간중간에 그녀를 유혹해줘.’
즉, 그녀는 나와 섹스를 하는 이유를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호감이 쌓여서’로 바꾸려는 것이다.
방법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메이 린이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똑같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협조해줘야 한다는 점이 깔려 있기는 했다.
‘처음에는 대충 시늉만 하려고 했는데….’
저렇게 예쁜 여자가 되어 나타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얘기를 좀 해보니 메이 린씨의 성격이 마냥 딱딱하고 차갑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 선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 대하는 것과 바깥의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달랐다.
선 안에 들어가 있는 조안나와 선 밖에 있는 내가 한 공간에 있다 보니 그 차이점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조안나가 메이 린을 과하게 신경 쓰는 것도 저런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런 얼굴로 저런 성격이라니. 엄청 피곤하다고. 내가 조안나 입장이었어도 챙겨주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아.’
아슬아슬해서 잠깐 신경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다간 픽! 쓰러져서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은가?
자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잔뜩 가시를 세우고 다니는 아이니까.
그걸 알고 있으니 나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것일 테고 말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는데, 여기 세상이 아무리 요지경이라고 해도 자기 남친한테 친구랑 자달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일부다처제가 법인 세상인지라 살짝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조안나 입에서 메이가 거절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확신했다.
그녀의 제안이 결코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내게 부탁한 걸로 보였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조안나도 생각을 많이 했을 거다.
그리고 메이 린씨를 두고 볼 수 없어서 결심을 한 것이리라.
나는 조안나와 메이 린씨의 절절한 우정에 속으로 격한 박수를 보냈다.
배부른데, 나가서 구경할까?
근데 이 친구, 막 돌아다녀도 돼? 아이돌이잖아.
어…안 되려나?
사람들 많은 곳은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요. 신인주제에 까다롭게 따지냐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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