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78화 (78/849)

〈 78화 〉 #13. 2주 휴가 (9)

* * *

더 황당한 건 보상 코인이 무려 350이라는 거다.

이게 왜 350코인이나 주는 건데??

도대체 보상 기준이 뭐야?

물론 코인을 많이 주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코인을 주며 노골적으로 이걸 받아들이게 시키는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포니 그 자식이 수상한데.’

상태창을 내가 갖고 있기는 하지만, 녀석의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쪽에선 내 신분으로 아이디를 만들 수 없기에 포니에게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가끔 이렇게 수상한 짓거리를 해오곤 했다.

­뭘 원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셔봤자 당장 생각나는 것도 없고, 뭔가를 얻고 싶은 마음도 전혀 안 들어서요. 누드 사진 아니, 섹스 하는 걸 찍을 만큼 메리트 있는 걸 먼저 제시해주지 않는 이상 마음이 바뀔 것 같진 않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여야 할 사람은 메이 작가다.

저쪽에서 선제시를 때려버리는 건 매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솔깃할 만한 제안을 가져오라고 돌려서 말하고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씻어야 해서요. 조안나 몸도 닦아줘야 하고요.

­잠깐만요! 뭔가 생각이 바뀔 만큼 좋은 제안이 있을 거에요. 조금만 시간을 줘요!

­후우, 알겠어요. 그럼 씻고 나올 테니까 그때까지 생각해보세요.

오늘 하루 놀면서 쌓은 정으로 그녀에게 시간을 주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과연 메이 작가가 내 마음에 쏙 들만큼 대단한 걸 제시할 수 있을까?

솨아아­

‘그럴 리가 없잖아.’

홀딱 벗고 엉덩이를 깐 채로 내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누드 사진을 찍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 ? ?

­엥? 뭐에요, 깬 거에요?

남자의 샤워 시간이라고 해봤자 느리면 10분이다.

순식간에 씻고 수건을 적셔서 조안나의 몸을 닦아주기 위해 나왔는데, 당황스러운 광경이 나를 반겼다.

조안나가 말똥한 눈동자로 메이 작가와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이다.

­흐흥~ 나도 좀 씻을래. 둘이 얘기 좀 하고 있어. 금방 나올 테니까.

조안나는 내가 뭔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솨아아­

곧장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씻는 것 같았기에 어깨를 으쓱이곤 메이 작가님을 바라봤다.

­생각해보셨어요?

­응. 그리고 조안나랑 얘기도 끝났어.

­네? 얘기요?

둘이 뭔 얘기를 했다는 거지?

설마 나한테 제안했던 그걸 조안나와 얘기 했다는 건가?

­설마 그걸 조안나한테 말했어요? 섹스하는 걸 찍고 싶다고?

­응. 그리고 그것도 들었어. 오늘 날 부른 이유.

억! 그것도요?

뺨이라도 맞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었는데, 의외로 메이 작가님의 표정이 차분했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없던 일로 하기로 약속했다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섹스를 하라니. 그리고 오늘 절 찍고 싶다고 했던 걸 보면 슬럼프는 이미 해결 된 거 아닌가요?

뺨을 맞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수습을 하기 위해 입을 털었다.

­아니, 해볼래.

­그러니까요. 저도 말도…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내 의견에 맞장구를 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런 내 추측은 멋지게 빗나갔다.

그녀의 일에 대한 집착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할래. 할 거야. 너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면서. 그 약속 지켜줘. 그리고 나랑 섹스 할 때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카메라에 내 모습도 담으면 너도 날 신뢰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내 얼굴도 찍힐 테니까.

달칵­!

그때, 조안나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나타난 그녀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진, 얘기 들었어? 메이가 한 대! 역시 자기가 잘 설득해줄 줄 알았어. 잠든 척하면서 자리 피해주길 잘했던 것 같아.

­메이가 깨어났던 거 조안나도 알고 있었어요?!

­뭐, 뭐야? 너도 알고 있었어?

­아하핫! 당연하지. 메이가 그렇게 움직이는데 눈치 못 챌 리가 없잖아.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거다.

­자기가 메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섹스 하는데 엄청 야했어. 뭔가 둘이 하는 건데, 세 명이서 하는 느낌이었달까? 진짜 해보는 게 더 좋겠지만 말이야.

­너는 그걸 왜 보고만 있었던 거야!! 저질!! 변태!!

­메이야 말로 엄청 순진하잖아? 나한테는 잔뜩 경험 있는 것처럼 말해놓고!

빨개져서 그대로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이 된 메이가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나쁜년.

­정말? 진심으로?

­…….

조안나를 책망하던 메이 작가는 그녀의 능글거림에 완전히 항복해버렸다.

외유내강이 조안나이고, 외강내유가 메이 작가님이었던 거다.

­잠깐만요. 정리 좀 합시다. 그럼 조안나는 메이 작가님이 섹스를 훔쳐보고 있는 걸 알고 잠든 척 하면서 자리를 비켜줬던 거네요?

­응. 그 분위기에서 설마 메이가 섹스하자는 말이 아니라 사진 찍게 해달라고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아하하!

그래, 그건 나도 좀 당황스럽긴 했어.

보통 A 다음에는 B가 나와야 하는데 뜬금없이 D가 나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메이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지금 당장 하자!

­안 돼.

­왜에~!!

메이가 단호하게 거부하자 조안나가 뾰루퉁해졌다.

그리고 메이의 거부가 현재의 나는 반가웠다.

솔직히 씻고 난 이후부터는 섹스보다는 잠이 더 고픈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미 거하게 싸내서 여안이 없기도 하거니와 술기운이 여전히 내 몸을 휘젓고 있었다.

­카메라가 없잖아.

나는 메이가 섹스를 하겠다고 한 이유가 정말 나를 담고 싶다는 뜻 이외의 목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말 괜찮은 거에요? 섹스하는 걸 찍겠다는데.

­괜찮아. 난 메이를 믿으니까.

친구를 신뢰하기에 메이의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는 조안나였다.

‘흠, 사진을 찍는다는 거에 거부감이 좀 생기긴 하지만, 결과물을 나한테 주겠다고 했으니 확인하고 깔끔하게 그 자리에서 지우면 되는 거긴 해. 찍기만 하면 코인 350을 얻을 수 있고, 거기다가 메이랑 조안나랑 3P 섹스 미션도 있잖아.’

이번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많은 코인을 얻을 수 있을 테니 확실한 이익이 맞다.

도와주기로 조안나와 약속했는데 자꾸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썩 좋은 행동은 아닐 테고 말이다.

‘아니,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3P를 할 수 있다는데 그걸 마다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생각을 해봤어요. 뭘 제안해야 당신을 찍을 수 있을지.

­아…그건.

­솔깃한 제안을 하고 싶었는데 제 짧은 식견으로는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어요. 솔직히 겨우 5분밖에 안 줄줄도 몰랐고요.

그 시간도 조안나와 대화를 나누느라 제대로 생각 해볼 겨를이 없었단다.

­지금은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 됐어요. 애초에 오래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긴 했어요. 이걸로 만족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제시 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메이 린은 당당하게 말했다.

­제 능력을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사용권을 드릴게요.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포토그래퍼 사이에서 능력 좋은 걸로 유명해요. 특히 동양인은 누구보다도 잘 표현할 자신이 있고요. 얼마든지 제 사진이 필요할 때 불러줘요. 당신을 찍는 건 언제든 무보수로 해드릴게요. 음…특별히 당신 멤버들까지 무료로 하죠.

­진! 이거 정말 대단한 거야. 메이는 엄청난 실력자라고.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실력 좋은 사진작가를 언제든지 부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야.

확실히 회사에선 환영 할 법한 일이기는 하다.

사진작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두 번의 화보 촬영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근시일 내에 두 번의 촬영을 해서 그런지 실력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할 수밖에 없었지.’

메이 작가의 사진을 봤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는 ‘얘한테 이런 매력이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실력자였다.

반면 포토카드를 만들기 위해 촬영했던 사진작가의 결과물은 ‘제법 잘 찍혔네.’라는 감상만 들 뿐 감춰져 있던 우리들의 매력을 끌어올릴 수준의 것은 못 됐다.

그런 사진작가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코인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혜택까지 얻는 것은 과분할 만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좋아요. 하겠습니다. 대신 결과물은 확인한 후에 제 손으로 직접 지울 겁니다.

­응. 물론이야. 난 촬영만 할 수 있으면 돼.

­오래 끌 거 없잖아! 내일 할까?

­내일 당장?

­이런 일을 뒤로 미뤄봤자 머리만 복잡할 뿐이라고.

조안나의 추진력이 빛을 봤다.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는 조안나의 행동을 우리 두 사람은 말리지 않았다.

‘솔직히 먼저 저렇게 나서주는 게 고마운 상황이기는 해.’

멀쩡한 여자 친구를 두고 그녀의 친구와 섹스를 하게 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은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자고 내일 촬영 컨셉 정하자! 메이 네가 정확히 뭘 찍고 싶은 건지 말해줘! 나도 적극적으로 도울게. 촬영 장비는 아직 있어?

­네가 계속 가지 말고 여기에 머무르라고 해서 개인 장비 택배로 보내달라고 해서 받아놨어. 그러고 보니 네가 자꾸 잡은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메이가 공식 스케줄대로 움직였으면 이미 본인의 나라로 돌아갔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조안나가 계속 그녀를 붙잡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뒤늦게 오늘 조안나의 꿍꿍이를 알게 됐다.

­헤헤헷, 이게 다 널 위해서였어. 이젠 내 마음 알잖아.

­하아, 맞아. 이젠 이해가 돼.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야. 진이 섹스하는 얼굴을 보면서 찍고 싶다는 생각에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 나도 그랬어! 이젠 너도 아는구나! 그게 바로 내가 말한 영감이야.

쪼옥­!!

조안나가 내 멱살을 잡아채더니 키스를 갈겼다.

얌전히 그녀의 입술과 혀를 받아들였다.

­야! 나 있거든?

­아까 이것보다 더 한 것도 봐놓고 새삼 놀랄 거 없지 않아?

­그땐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잖아!! 넌 부끄러움도 없는 거니?

­너니까 안 부끄러운 거야. 다른 사람이면 나도 싫었어.

­읏!!

조안나의 말에 메이 작가의 얼굴이 빨개졌다.

­진짜 그렇게 말해버리면 뭐라고 할 수도 없어지잖아.

­내가 아무나랑 내 남자를 공유할 것 같아?

두 분 사이가 너무 오순도순한 거 아님니까?

은근히 소외감 느껴집니다만!

아무튼 얼떨결에 벌어진 사건으로 조안나는 결국 자기가 바라던 일을 해내는데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침대로 가자는 말없이 바로 바닥에서 섹스를 시작한 것도 조안나의 계획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역시 외유내강! 무섭다, 무서워.’

자칫 잘못했다간 눈 뜨고 코 베여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잔뜩 풀어져서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던 첫날 영감을 받아 광기어린 모습으로 옷을 그리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예술가의 광기는 우습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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