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2화 (82/849)

〈 82화 〉 #14. 레벨업 (2)

* * *

“히익? 이게 우리 스케줄이에요?”

“또 연습이네요.”

“연습생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연습실에선 여전히 벗어나질 못하는 건 왜일까?”

매니저 실장님이 건네 준 스케줄 표를 본 우리들은 절망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다음 활동에 대한 것을 얘기해야 했다.

“실장님, 우리 다음 활동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어요?”

“궁금해?”

“네!!”

“후후, 귀여운 녀석들. 원래 계획은 싱글이었어. 그런데 너희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잘만 하면 미니 앨범이 될 지도 몰라.”

“우와!”

“미니! 미니! 미니!”

“실장님! 컨셉은요?”

“아주 신났구만, 신났어.”

“당연히 신나죠!”

“연습 스케줄 보고도?”

“헤헷, 그건 미래의 저한테 떠넘길래요.”

멤버 녀석들이 미니 앨범이라는 말에 호들갑을 떨어댄다.

우리들은 회사의 엄청난 자금력을 등에 업고 데뷔부터 정규 1집을 통해 데뷔를 했다.

하지만 그건 요즘 트렌드에서 벗어난 일이기도 했다.

요즘에는 좋은 노래를 내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듣기보단 몇 번 듣다가 잊히는 소비재처럼 변해버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속사들은 많은 곡이 수록 된 정규 앨범보다는 1~2곡인 싱글 앨범을 내서 활동을 한다.

정규 앨범을 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이틀곡만 듣지 다른 노래들은 잘 듣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게 뭘 뜻하는 건지 알지?”

매니저 실장님의 말에 기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진하게 말한다.

“알죠.”

“우리나라로는 답 안 나올 정도의 투자야. 무조건 해외에서 터져야 돼. 미니 앨범으로 결정 되면 잘 할 자신 있어?”

“당연히 잘 할 자신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잘 할 수 있어요.”

다른 멤버들도 실장님의 말에 홀딱 넘어가서 미니 앨범으로 결정해 달라고 안달복달한다.

‘딱 봐도 이미 미니 앨범 쪽으로 결정 된 것 같은데 순진한 애들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하겠다면서 꼬리 흔들고 있네.’

혈기 왕성한 애들을 다루기 위한 스킬이라는 건 알지만 그게 당사자가 되다 보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흠, 좋아. 그럼 내가 미니 앨범 쪽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여 보마.”

“와아!! 감사합니다!”

“실장님 짱이에요!”

“아싸! 미니 앨범!”

멤버들 중에서 가장 얌전한 강준이조차도 미니 앨범으로 밀어주겠다는 말에 기뻤는지 얼굴이 발갛다.

“곡은 이번에도 외주로 받으실 건가요?”

“곡? 갑자기 곡은 왜?”

“아직 컨셉 안 잡으신 것 같은데 저희들끼리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대화를 나눠봤거든요.”

제키가 조심스럽게 멤버들의 의견을 적어 둔 메모장을 꺼내서 실장님에게 전달했다.

“뭐야, 이런 생각을 다 했어? 기특하네~”

실장님은 학교 활동으로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전달하는 아이를 보는 듯이 메모장을 건네받았다.

‘딱 보니 저 메모장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네.’

읽기는 할 거다.

다만 실장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지는 않을 거다.

애들의 재롱에 아이구~ 귀여운 녀석들이 감상의 전부일 테니까.

제키도 아직 19살 꼬맹이인지라 자기가 전달을 했으니 실장님이 진지하게 봐줄 거라는 낙천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이도 어리고, 이쪽 일에 대해 아는 게 없긴 하지만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온 만큼 각자 욕심이 있어요. 그러니 진지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으응? 어…그, 그래? 알았어. 진지하게 살펴볼게.”

내 진지한 말에 실장님도 살짝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태도를 바꿨다.

어린애 재롱으로 보지 말라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더불어 실장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뭐. 어쩌라고.’

뚱하게 실장님의 시선을 받아쳤다.

실장님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연습 열심히 해. 팬들이 엄청 기대하는 중인 거 알지?”

“네엡!”

“열심히 할게요.”

분위기를 읽지 못한 애들은 실장님이 메모 적어둔 것을 진지하게 봐준다는 말을 한 것에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다들 나보다 실력이 좋은 애들이다.

여기서 뭐 얼마나 더 잘해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아이돌들 사이에서 잘하는 편 아니냐고.’

따라가야 하는 입장에서 얘네들이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앞으로 나아가버리면 곤란해진다.

물론 내겐 든든한 코인이 있기에 난감할 뿐 감정적인 무언가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이게 제 스케줄이라고요? 다른 애들이랑 너무 다르지 않아요?”

아니, 조금 생길지도.

멤버들 몰래 나를 따로 부른 실장님이 나에게만 특별한 스케줄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헬스 빼고는 좀 팍팍하게 굴러갈 거야. 자존심 상할 수 있지만, 네가 노래나 댄스 같은 부분에서 다른 애들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잖니.”

“네, 알죠.”

“이런 말 들었다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안 서운합니다. 사실인 걸요. 뭘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세요? 신경 써주신 건 감사하지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제일 연습 기간이 짧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요.”

내가 생각보다 쿨하게 나오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실장님이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자존심이 걸린 거라 민감할 수밖에 없었어. 역시 잘 생긴 애가 성격도 착하다니까. 내가 예전에 말했던 적 있는 것 같은데, 너는 얼굴이 실력이야. 알지?”

알죠. 이 얼굴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번에 메이 작가와 사진 촬영을 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르시즘에 걸릴 것 같은 위력의 사진.

남자 얼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점에 짜증이 나지 않았으면 삭제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거다.

“알아요.”

“하핫, 이제 능글맞게 굴 줄도 알고. 신인 티가 좀 빠지는 모양이네.”

털털하게 웃은 실장님이 기특하다는 듯 흐뭇하게 웃으셨다.

“애들이 연습할 때 연습하고, 애들이 쉴 때 연습하고, 애들이 헬스할 때도 전 연습이네요.”

“네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한다고 하더라. 딱히 살을 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조금 찌는 게 더 보기 좋을 정도라고 해서 너는 헬스 시간을 최소한으로 잡았어.”

“잘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딱히 살찌는 체질도 아니고요.”

몸은 코인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니 굳이 시간 아깝게 헬스를 과하게 할 필요가 없다.

“너는 다이어트 식단 말고 건강식으로 나올 거야.”

“완전히 믿고 맡기겠다는 식이네요.”

“우리 그렇게 팍팍한 곳 아니야. 신인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팍팍하게 쪼인 거고.”

“넵.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이것 참.

꽤 두둑하게 모아 둔 코인으로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오늘 일로 아직 멀었구나 싶다.

전담팀에서 다음 앨범의 구멍인 내 실력을 어떻게든 키우려고 계획 중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란다면 기대에 부흥해주는 게 인지 상정이지.’

스펙업 아니, 레벨업 할 시간이었다.

? ? ?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미니 앨범의 구체적인 사항들이 구체화 되었다.

8월 9일.

우리들은 새롭게 단장 되어 미니 앨범으로 컴백하게 될 것이다.

6월 초인 현재.

약 3달의 시간을 두고 준비를 시작한 미니 앨범은 나날이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녹음은 제일 나중에 해야겠는데?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좋아져서 지금 녹음했다가 컴백했을 때 노래가 완전히 달라지겠어. 해솔이 뿐만이 아니라 다들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데?”

이번 미니 앨범을 담당하는 프로듀서님이 나와 멤버들을 띄워주신다.

하지만 그 칭찬이 부끄럽거나 부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지난 한 달 동안 노래 실력이 부쩍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는 메인 곡 이외의 다른 곡에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난이도 높은 곡이 추가로 들어갔다.

바로 제키가 만든 곡인데, 방금 피디님이 나중에 녹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던 곡이었다.

“제키야. 네 의견은 어떠냐? 네 곡이니까 네 의견이 제일 중요해.”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이 곡은 좀 나중으로 미룰게요.”

“그렇지! 백날 연습생으로 연습을 해도 데뷔해서 활동하면서 성장하는 거엔 못 당한다니까. 다들 실력이 엄청 좋아졌어.”

“그래도 녹음 시작하면 그거밖에 못하냐고 화내실 거면서.”

“당연하지. 더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는데 그걸 너희들 실력 부족 때문에 포기할 순 없잖아. 갈고 갈아서 제대로 만들어야지. 하하하!”

찬정연 프로듀서님은 껄껄 웃다가 번들거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어서 말했다.

“근데 너희들 진짜 뭔 비법이 있기에 실력이 이렇게 늘어나? 보약이라도 먹었냐? 아무리 데뷔 경험이 생겼다지만, 말이 안 될 정도로 좋아지는데.”

“어…팬들에 대한 사랑이랑 타팬덤의 시선 그리고 경쟁심이랄까요?”

“비법이 그런 거라고?”

“네.”

비법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비법이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라 찬피디님이 깜짝 놀랜다.

하지만 제키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더 연습을 열심히 하게 되고, 우리들이 컴백하고 나서 얼마나 잘 될지 아니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타팬덤 때문에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연습에 대한 의욕이 꺾이지 않았다.

더불어 멤버들의 말에 의하면 내 성장 속도에 경악해서 더 열심히 하는 면도 있다고 한다.

“진짜에요.”

“해솔이 형 실력이 한 달 전이랑 지금이랑 천지차이거든요. 그걸 보고 있으니까 엄청 초조해지더라고요. 이대로 나만 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나 할까요.”

“내가 실력이 제일 안 좋은데 견제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따라가고 있는 내 생각도 좀 해줘야지. 나쁜 놈들아.”

결국 나는 한 소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들이 어른 공경이 아니라 어른 공격을 한다.

“안 돼! 형은 외모가 되잖아. 근데 거기에 실력까지 밀리면 어떻게 해?”

“하하하! 그건 은규 말이 맞네. 해솔이는 이미 비주얼로 완벽한데 거기에 실력까지 잘해버리면 다른 애들이 초조해할 만 해.”

“끄응, 녹음 끝난 거 맞죠? 저 연습하러 가야해서요.”

“그래그래. 바쁜데 내가 오래 잡았다. 어서 가봐. 다른 애들은?”

“저희는 녹음 끝나면 이후에 스케줄 없어요. 그래도 연습은 해야죠. 해솔이 형한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요.”

“해솔이가 고생을 많이 하네.”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나는 녹음실을 떠나 연습실로 움직였다.

보통 연습실로 향하는 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오늘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똑똑똑­

“선생님 계세요?”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겐 익숙한 여자가 흰색 탱크탑에 레깅스를 입은 채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 왜 자꾸 스트레칭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꽈아악­!

“절 유혹하려고 제가 올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는 거에요, 아니면 평소 다른 남자한테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요?”

“읏! 야아~!”

“빨리 말해요. 다른 남자한테도 이렇게 엉덩이 흔들면서 유혹해요?”

“아니얏!! 여기에 너 말고 다른 남자가 어딨다고 그래?”

“흐응, 정말이죠?”

“그렇다니깐.”

복순 누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검사를 가장한 섹스의 전초전이다.

“확인을 해봐야 믿을 수 있겠는데요? 팬티까지 다 벗어봐요.”

“문 잠궜어?”

“그럼요.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레.”

“저번처럼 이아현 고 계집애가 불쑥 튀어나올까봐 그러지.”

내가 데뷔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뚝 끊겼던 복순 누나와의 밀회가 다시 시작 됐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