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14. 레벨업 (5)
* * *
내가 원하는 건 너와 같은 침대에서 아침을 보는 일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사랑스러워
네가 내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그런 생각 마
너는 내 품에 안길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을 떠올리지 마 (baby~)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사랑스러워
네가 내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그런 생각 마
너는 내 품에 안길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을 떠올리지 마 (baby~))
네가 내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아 얼마나 기쁜 일이야
봄바람처럼
기분이 달아올라 콧노래가 나와
레드카펫을 깔아 하늘구름으로 깔아
네 발이 딛는 순간 내 심장도 함께 할 거야~♪
“…어제보다 더 늘었네.”
노래를 끝내고 복순 누나가 감상평을 내뱉었다.
“잘 했어요?”
“넌 진짜 신기한 케이스야. 갈수록 음색이 좋아지잖아.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어떻게 사람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달라지지? 그것도 점점 더 듣기 좋게 말이야.”
코인을 노래에 쏟아 부운 게 착실하게 잘 먹히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노래 실력이 제법 그럴 듯 해져서 수업을 진행하던 복순 누나도 절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젠 누군가가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죠.”
“자만하지 마. 아직 프로 소리 들으려면 멀었으니까.”
코인으로 늘어가는 실력이지만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자꾸 날개가 달린 것처럼 기분이 붕 뜬다.
코인을 쓰기만 하면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게 눈에 띄니, 배우는 내 입장에서도 즐거웠다.
흥미가 없었던 노래에 관심이 생기고, 이젠 댄스 연습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 않았다.
‘누가 됐든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실력이 쑥쑥 늘면 재미를 붙일 수밖에 없을 걸?’
처음 춤 연습을 할 땐 어서 빨리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남들을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슬슬 진짜 춤이 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남을 따라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춤을 어떻게 하면 더 맛스럽게 출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에 온 것이다.
똑같은 춤을 추는데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추는 걸 비교해보면 굉장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현재 나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입문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댄스에 투자하던 코인을 노래로 돌려서 부쩍 실력이 늘었어. 노래가 잘 되니까 정말 재밌네.’
안타깝게도 계속 이런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2주간의 휴가 동안 모아두었던 코인은 바닥을 드러낸 상황.
[보유 코인 : 0(3,550)]
미션을 해결해서 모은 코인은 능력을 올릴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기술적인 부분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걱정이 안 드는데, 왜 감정을 넣어서 부르는 건 늘지를 않을까?”
“영 안 늘었어요?”
“지금도 넘어가자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해. 근데 너 정도 되는 재능이라면 더 미래를 봐야 하잖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노래를 부르려면 감정을 담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해. 팥 없는 찐빵은 밍밍할 뿐이니까.”
“근데 감정을 담아서 부르라고 해봐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으로서 이런 말하기가 뭐하지만, 노래에 감정을 담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항상 어려운 것 같아. 학생들한테 설명을 하려고 해도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하는 방식이 모든 학생들한테 통한다고 할 수가 없거든. 주입식 교육 같은 게 불가능해. 학생이 직접 깨우치는 방법밖에는.”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라….
어느덧 내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 하는 흐뭇함이 몰려오면서 이건 코인으로 해결 안 되려나 하는 나약한 생각이 연이어 떠오른다.
‘이상하게 코인으로는 감정 부분을 잘 성장시켜주지 않는단 말이지.’
코인으로 능력을 올려도 대부분 기교 부분에서 뚜렷한 성장을 드러내지, 감정 부분에서 실력이 느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노래에 감정을 담는다는 말이라는 게 기교처럼 뚜렷하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보니 더 그랬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노래의 기교가 나아진다는 건 뚜렷하게 보이는데 감정 부분에서는 이게 나아졌는지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방법으로 감정을 담으세요?”
“나는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야. 노래를 부르기 전에 가사를 모두 파악하고, 이 노래를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부터 고민해보는 거야. 그리고 난 다음에 가사에 연관 된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를요?”
컨셉을 말하는 건가?
“한 번 해볼래? 이해가 안 되면 직접 해보면 이해하기 쉬워지거든.”
“…그럴까요.”
“잘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후훗! 너 연기 엄청 못한다며.”
복순 누나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
가사에 이야기를 붙이는데 연기가 필요하다고?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필요하다는 건 몰랐지?”
지금 이 순간, 복순 누나가 완벽하게 선생님처럼 느껴졌다.
? ? ?
나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 중에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녀석이 누구였는지 고민했다.
‘역시 강준이겠지?’
애들과 노래 솜씨를 정확히 겨뤄본 적이 없어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으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녀석을 손꼽자면 강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 너로 정했다!’
똑똑똑
“강준아. 잠깐 들어가도 될까?”
“…해솔이 형?”
“응.”
“들어와.”
방문을 여니 강준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자려고 했어?”
“아니, 드라마 좀 보려고.”
강준이의 취미는 드라마, 영화 보기다.
연기에도 은근히 욕심이 있는지 연기 수업을 제법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멤버들 중 나 다음으로 얼굴이 잘 생긴 녀석이니 배우를 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당연하지.”
“별 건 아닌데, 네가 우리 멤버들 중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니까 물어보고 싶었어.”
“노래에 대한 거야?”
“응.”
“별 일이네. 형이 나한테 노래를 다 물어보고.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게 있으면 알려줄게. 뭐가 궁금해?”
내 실력이 부쩍 늘어나면서 은근히 경쟁 심리에 멤버들 모두 열심히 노력 하는 중이라는 걸 안다.
심기 꼬인 녀석이었다면 내 질문에 싫은 티가 좀 났을 텐데, 순진한 녀석들인지라 싫은 티는커녕 이런 식의 부탁을 해온 게 기쁜 눈치였다.
“감정을 담아서 노래를 부르는 방법. 선생님이 그게 늘지를 않는다고 하시네. 내가 보기에 강준이 너는 알 것 같아서 물어보고 싶었어.”
“아~.”
강준이 내 말에 사정을 알겠다는 듯 핸드폰을 내리고 침대에 앉았다.
“흐음, 내가 하는 게 정답은 아닌데 그래도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지. 선생님이 쓰시는 방법을 들어봤는데 나한테는 맞지 않는 방법이더라고. 그래서 네 방법은 어떤지 궁금했어.”
“선생님은 어떤 방법을 쓰시는데?”
“노래 가사를 확인하고, 그 가사들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든데.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땐 만들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부른다고 하더라.”
“와~ 나중에 한 번 해봐야겠네. 그런 방식도 재밌을 것 같네.”
자기가 쓰는 방법 좀 알려달라니까 오히려 복순 누나의 방법에 흥미를 보인다.
나는 강준을 재촉했다.
“빨리. 네 방법 좀 알려줘.”
노래에 쓰기도 바쁜 코인을 연기에 쓰고 싶지 않다.
아마 감정 문제는 연기 능력을 올림으로서 해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노래 실력이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았기에 연기에 코인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연기에 쓸 코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가사보다는 음률이라고 해야 하나? 리듬이라고 해야 하나? 음이랑 호흡에 집중하는 것 같아. 음이 흘러가는 거에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감정이 쌓인다고나 할까? 그렇게 쌓인 감정을 호흡을 통해서 감정을 뿜어내는 거야.”
“호흡이라….”
은근히 복순 누나에게서 들은 말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강준은 호흡을 통해서 감정을 조절한다고 했고, 복순 누나는 공기와 목소리의 강약을 통해 감정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강준의 호흡이 복순 누나가 말한 공기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았다.
“음률이랑 내 목소리랑 잘 맞을 때가 있어. 그런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짜릿해져. 감정도 잘 담기는 것 같고. 선생님이 하시는 방법도 나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사는 노래를 꾸며주는 악기 중 하나라고 생각이 돼서 형한테 리듬에 집중하는 게 내 팁이라고 말하고 싶네. 그리고 이게 좀 안 맞는다 싶으면…….”
강준이 폭주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는 건 알았지만, 말이 별로 없던 애가 투머치토커로 변하니까 무서울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노하우 물어보는 것도 이걸로 끝내야겠다.’
포니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코인으로는 못 사는 게 없다고 들었는데, 노래에 감정을 담는 방법은 노래 능력치를 올리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걸까?
강준이 주는 팁들에 일단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녀석에게 기프트콘을 쐈다.
‘상태창 좀 뒤져봐야겠는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내게 상태창은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상태창의 기능을 십 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주 상태창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다.
포니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한들, 자기 것을 빼앗은 내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런 게 있었네?”
[보컬 기교의 끝판왕 (도서) 990코인]
[감정 보컬 트레이닝 (도서) 990코인]
그리고 상태창을 열심히 뒤지다가 찾아낸 결과물이 내 앞에 나타났다.
“결국 답은 상점인가.”
뭘 좀 해보려고 하면 돈이 안 들어가는 구석이 없다.
이번에도 답을 찾았으나 상당수의 코인이 들어가는 것이다.
평범한 종이책처럼 생긴 물건은 게임 속에 존재하는 ‘스킬북’처럼 펼치면 지식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쌓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외국어 완전 정복영어편 (도서) 990코인]
“외국어도 이런 식으로 파는구나.”
코인으로 언어 습득 능력을 올렸는데, 그럴 필요 없이 물건을 구매하는 게 더 나았을 뻔했다.
물론 990코인이라는 가격은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억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는 건 나쁘지 않은데, 계속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구매하면 언제 11만 포인트를 모으냐고.’
이제 더 이상 물건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다.
그런데 충동을 참지 못하고 계속 조금씩 코인을 쓰다보면 11만 코인을 모으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게 될 거다.
‘그냥 참자. 노래 실력을 좀 더 올리다 보면 감정도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정 안 된다면 연기 능력치를 올려서라도 커버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
아쉬우니까 장바구니에는 넣어두긴 하자.
미련을 털어버리고 상태창을 닫았다.
‘감정이라.’
일단 내 문제는 뒤로 미루고, 며칠 뒤 만나게 될 아현이의 일을 고민하기로 했다.
[나 : 자?]
[아혀닝 : 아니! 아직 안 자.]
[나 : 오늘 너무 짧게 봐서 아쉬운데, 잠깐 만날래?]
[아혀닝 : 지금?피곤하지 않아? ;ㅁ;]
[나 : 너랑 만나는데 피곤할 리가 없잖아. \( o )/]
나와 새벽에 자주 만나곤 했었기에 새삼스러운 제안은 아니었다.
[아혀닝 : 나야 좋기는 하지만....오늘 일 때문에 그런 거면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정말정말 거짓말 아니구 완전 괜찮아! ( )]
[나 : 보고 싶어서 그래.]
[아혀닝 : 으으...그런 말 반칙이야. 알았어. 만나자.]
다행이 아현이는 내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