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14. 레벨업 (10)
* * *
젤리냥의 굳건한 1위 체제는 쉽게 깰 수 없는 철옹성이다.
그리고 에어플레인의 팬들 그러니까 ‘wing’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서 활동하고 있는 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인지라.
어리석은 선택임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포기할 수 없지! 우리 애들 좀 보세요!! 우리 애들 노래 엄청 잘해요!! 춤도 잘 춰요!! 얼굴이 미쳤다고요!!”
wing들은 열심히 영업을 뛰었다.
얼굴이 되는 탓에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어그로를 많이 끌어서인지 안티로 돌아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질투, 시기, 경계, 악의가 똘똘 뭉쳐 악플로 승화 된다.
실력 없는 그룹, 비주얼 때문에 빠는 거 보소 ㅋ
얼빠순이들 볼 때마다 극혐임.
가수가 노래를 잘 해야지. ㅉㅉㅉ
쿵!
“아니라고!!! 우리 애들 실력 좋단 말이야!!”
아직 신인이라서 실력을 선보일 장소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주얼이 좋으니 당연히 실력은 개판일 거라고 오해한다.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때가 다 있나?
“걔네 소속사가 어딘데 실력으로 까냐고!!”
이 바닥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허니 엔터가 비주얼과 실력 모두 깐깐하게 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돌 커뮤니티까지 찾아 온 이상 이런 댓글을 쓴 놈도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열이 받는 거다.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비꼬는 악플을 달고 있는 거니까.
악플에 혈압이 올라 끙끙대던 wing들은 치솟는 혈압을 견뎌내며 꿋꿋하게 악플을 따서 모아두었다.
선을 넘는 놈들을 모아두고 소속사로 보내면, 허니 엔터가 언젠가 소송으로 답을 해줄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에어플레인의 신곡을 스밍 돌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헉!! 이게 뭐야??”
[오늘자 남돌 해수욕장 축제 직캠 –레전드 무대] 라는 제목이 커뮤에서 화제가 되었다.
별 생각 없이 클릭해서 봤는데 저기서 말한 남돌이 에어플레인이었을 줄이야!!
“아아악!!! 이걸 직관 못했다고??”
영상을 미친 듯이 돌려봤다.
나노단위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얼마 후 훨씬 좋은 화질의 영상이 또 다시 올라왔고 커뮤니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wing은 직감했다.
이 영상이 나옴으로서 에어플레인이 드디어 이륙을 시작했다고.
본격적으로 떡상이 시작 된 순간이었다.
???
“무대 잘 봤어요. 대단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춰요? 고음도 쫙쫙 올라가고 음정도 탄탄하고. 부럽다~ 어려서 그런가?”
“감사합니다!”
“명불허전이지. 허니 엔터 출신들이라 그런지 실력으로는 깔 게 없네요.”
“감사합니다!”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음악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을 때.
우리를 보는 관계자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일이 바빠서인지 굳이 인사를 받아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90도로 꾸벅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아도 상대방 쪽에서 아는 척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래서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는 말이 있는 건가 싶다.
“저번이랑 오늘 대우가 엄청 다르네요. 뭔가 되게 어색한데.”
기우연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현재의 기분을 표현했다.
우리들 모두 180도 대우가 달라진 것에 어색해 하는 중이었다.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래. 좀 뜬다 싶은 애들한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대우해주지. 그래서 애들이 좀 뜬다 싶으면 스타병 걸리는 거거든.”
“헐. 그럼 계속 저렇게 우리들한테 잘 해준다는 거에요?”
“그래. 당분간 그러겠지. 다만 너희들이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오늘처럼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게 끝이 아니야. 저 사람들은 언제든 태도가 달라질 수 있어. 너희가 잘 나갈 때는 굽신 거리겠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한 순간 예전보다 더 못하게 태도가 바뀔 거라는 거지.”
매니저 누나는 어리둥절해서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사람들이니 매니저 누나의 말엔 신빙성이 있었다.
한 번 그랬던 사람이니 언제든 또 그럴 수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저 인간들이 너희들 우쭈쭈 해준다고 진심인 줄 알고 헤실헤실 웃고 다니지 말라는 뜻이야. 저놈들 입에 나오는 80%가 거짓말이야. 앞에서는 뭐든 해줄 것처럼 굴지만 속으로는 어떻게든 너희들 인기를 이용해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 이 바닥에 신뢰? 그딴 거 없다. 아무도 믿지 마. 그리고 이용당하지 마.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이용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
“…….”
매니저 누나의 말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실제로 오늘 하루 종일 다들 인사를 잘 받아주고, 우리를 ‘사람’처럼 대우해주는 스태프들의 반응에 절로 고개가 치켜 세워지고, 마음이 술렁였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스타가 되는 건가?! 싶은 기대감도 잔뜩이었고 말이다.
“누나는 꼭 기분 좋을 때 이런 말로 사람 가슴 철렁이게 만들더라….”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다. 꼬맹이들아! 그러니까 제발 한 귀로 흘려듣지 말고 꼭꼭 가슴에 새겨.”
“네엡~”
“예썰!”
허니 엔터가 힘 있는 엔터이긴 해도 아직 신인 딱지 못 뗀 그룹이 독방 대기실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힘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독방을 쓰겠다면서 까탈을 부리다간 관계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몸을 사리는 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당신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레인(rain)’ 입니다!”
대기실 안에 들어가자 검은색 무대 의상을 입고 잔뜩 긴장해 있는 신인 아이돌이 보였다.
1년에 수많은 아이돌이 데뷔를 하지만, 그 중에서 남자 아이돌은 매우 드물었기에 우리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레인’에게 향했다.
“와~ 우리가 벌써 선배님 들을 상황이 된 거에요?”
“적응 안 되긴 하다.”
“엄청 긴장한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덜덜 떤다. 헐~ 우리 데뷔 무대 생각나서 덩달아 심장 떨리는데?”
오늘 데뷔 무대를 갖는 남돌 ‘레인’.
자연스레 우리들의 데뷔 무대가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긴장감, 두려움, 흥분, 설렘 등등의 감정들이 추억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며 몸을 자극했다.
“어…응원할 게요. 데뷔 무대.”
“헉! 감사합니다!!”
이제 막 데뷔를 하는 그룹이라 그런지 얘네들도 90도로 허리가 푹푹 숙여진다.
더불어 깍듯한 예의까지.
우리들도 저랬겠구나 싶으면서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잘 됐으면 좋겠네. 다들 어린 것 같은데.’
경쟁자한테 이런 말하면 안 되나?
하지만 덜덜 떨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동정심이 든다.
부디 실수 없는 무대를 하기를.
우리보다 순서가 먼저였기에 레인 멤버들이 우르르 대기실을 나갔다.
“행님행님! 아까 그 신인 남돌이요. 무대하러 갔는데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러 갈래요?”
“걔네들 무대를?”
“넵. 뭔가 옛날 생각도 나고, 응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요.”
“함부로 구경해도 괜찮으려나?”
“우리 둘만 조용히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요?”
“흠, 그럼 그래볼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우연이랑 내 마음이 맞아 떨어져 대기실을 나왔다.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를 쭐래쭐래 걸어가서 무대가 있는 곳 외곽 쪽에 숨었다.
“여기면 아무도 모를 거에여.”
“마침 딱 시작하네.”
경쾌한 아니, 귀가 시끄러울 정도의 클럽에 온 것만 같은 격렬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카메라가 움직이고, 춤이 시작 된다.
나쁘지 않다.
여름을 겨냥한 게 보이는 신나는 비트.
그룹 이름처럼 시원시원한 가사.
기계음의 도움을 받아 목소리도 쭉쭉 뻗어간다.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려는데.
쿵!!
“헉!”
“힉!”
엄청나게 큰 소리로 멤버 중 한 명이 넘어진다.
넘어진 멤버가 하필 옆에 있던 멤버를 팔로 치는 바람에 덩달아 옆에 있던 멤버까지 도미노처럼 넘어지고.
멤버의 실수가 다른 멤버들에게 전염되어 대형이 엉망이 됐다.
“컷! 컷! 뭐하는 거야 지금!! 무대가 장난이야!!!!!”
버럭! 하고 호랑이 울음소리보다 더 무서운 호통이 터져 나온다.
우연이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내 등에 쏙 숨었다.
“으아, 난리 났어요! 어떡해요?”
“엄청 혼나겠는데….”
실수를 한 ‘레인’ 애들이 기가 팍 죽어서 고개가 땅에 머리를 박을 듯이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애들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도 허겁지겁 나타났다.
“…돌아가자.”
“그, 그래요. 여기 있다가 불똥 튀겠어요.”
불난 집 구경을 하는 것도 주변 분위기를 보고 해야 하는 법인 거다.
그나저나 데뷔 무대에 저런 거한 실수를 하다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꽤나 파란만장하지 않을까 싶다.
“에어플레인, 나와서 대기해주세요.”
“네!!”
신인 남돌이 거하게 무대를 말아먹은 것을 확인하고 대기실로 돌아 온 뒤.
무대를 어찌저찌 끝내고 돌아왔는지 잔뜩 풀이 죽은 남돌이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펑펑 눈물까지 흘리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멘탈이 터진 모양이었다.
상황을 이미 전해들은 우리 멤버들은 가시 방석에 앉은 것 마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고, 얼마 후 우리를 부르러 온 스태프에 의해 대기실을 나갈 수 있었다.
“푸하, 진짜 숨 막혀 죽을 뻔.”
“우리는 실수하면 안 된다. 알지?”
“그때 그 무대처럼 삘이 딱 와야 되는데.”
“자자, 다들 집중!!”
“손 모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다 함께 손을 모아 파이팅을 했다.
다소 유치한 행동일 수 있지만, 이게 은근히 효과가 있다.
가장 중요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놓치기 쉬운 것.
팀워크.
손을 한 대 모은 이 행동을 통해 우리들은 팀워크를 단단하게 다진다.
“에어플레인, 날아오르자! 아자 아자! 파이팅!”
“““““파이팅!””””””
무대 위에 각자 위치를 잡았다.
인이어에서 익숙한 우리 노래가 흘러나온다.
주변의 모든 문제는 뒤로 물리고,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그때 감각이 남아 있긴 한데….’
한 번 환상적인 무대를 경험해서 일까?
다시 시작 된 무대.
스스로의 몸놀림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는 더 쉽게 했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안 되는 거지? 하는.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잡히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갈구.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목이 마르다.
그리고 그때.
쿵!
누군가가 넘어졌다.
오늘도 저 소리를 한 번 들었던 것 같은데, 우리 무대에서도 듣게 될 줄이야!
다행이 재빨리 일어나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것 같다.
‘누구지?’
눈알만 살짝 돌려 확인하니 기우연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다리를 쩔뚝이고 있었다.
‘우연이가 넘어졌구나!’
다행이 이후에는 실수가 나오지 않고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우연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연아, 괜찮아?”
“으으! 괜찮아여. 죄송합니다!!”
기우연은 방금 전 봤던 게 있는지라 지레 겁을 먹고 주변 스태프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 인사를 했다.
신인 아이돌에게 그랬던 것처럼 호통이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다른 멤버들도 일단 덩달아 스태프들에게 사과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발은 괜찮아요?”
그리고 아까 전 신인 남돌에게 벼락같은 호통을 쳤던 음악 방송 피디님이 우리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목소리엔 분노가 아닌 걱정이 담겨 있는 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