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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91화 (91/849)

〈 91화 〉 #14. 레벨업 (11)

* * *

“어…네? 네! 괘, 괜찮아요.”

우연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안절 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매니저 누나가 황급히 무대 위로 올라와 기우연의 발목을 확인 했다.

“다친 데는? 삔 거 아니야? 발목 살살 돌려봐.”

“어어…누나 괜찮아요. 아픈 곳 없어요.”

“지금은 당황해서 안 아플지 몰라도 나중에 문제 될 수 있어. 일단 파스를 뿌리자.”

치이이익­

센스있게 매니저 누나가 파스를 챙겨서 올라 온 탓에 바로 파스가 우연이의 발목에 뿌려졌다.

파스 냄새가 무대에 퍼지는 사이.

우연이 스태프들의 눈치를 봤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요! 저 실수했는데 무대는 어떻게 해요?”

자기가 아픈 것보다 무대에서 거하게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큰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대에 오르기 전 그런 걸 본 탓일 것이다.

“무대? 하아, 잠시만, 피디님한테 여쭤봐야지.”

때마침 피디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기우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

저러다가 심장 터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피디님의 입이 열렸다.

“찍힌 거 확인해봤는데 넘어진 게 너무 제대로 잡혔어요. 아무래도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겠어요?”

“…네?”

이게 끝이야? 하는 눈치다.

“다리 많이 아픕니까?”

“아, 아뇨아뇨아뇨! 할 수 있습니다! 하나도 안 아픕니다!!”

분명 실수를 한 신인 남돌에게 호랑이 같은 호통을 쳤던 피디님과 동일인물이 맞았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한 우연이의 앞에 있는 피디님의 얼굴에는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작은 짜증만 있을 뿐.

“그럼 다시 무대 준비 해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피디님!!”

90도로 인사하는 기우연의 행동에 음악 피디님이 나쁘지 않게 봤는지 괜찮다며 우연이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우연이는 혼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과할 정도로 안도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 안 아파요.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요.”

“안 아프다는 녀석 얼굴이 말이 아니니까 하는 소리야.”

매니저 누나는 계속 우연이를 걱정했다.

“아프면 솔직하게 말하고 그냥 찍은 걸로 방영해도 돼.”

“저번 무대 때문에 잔뜩 주목 받고 있는 상태잖아요. 그런데 제가 실수한 모습을 보여주라고요? 절대 싫어요. 다시 할래요. 얼굴이 안 좋은 건 피디님한테 혼날 거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새끼, 좀 혼난다고 쫄기는.

여기 남자들은 좀 거칠게 클 필요가 있다.

너무 화초야.

‘지구에 1년만 살게 하고 싶다. 군대에 넣어두면 싹 바뀔 텐데.’

군대에 푹 담갔다가 빼면 기우연은 어떻게 변하려나?

엉뚱한 상상을 잠깐 했다.

“우연이 대단하네~ 언제 이렇게 의젓해졌어? 그런 것도 생각할 줄 알고 말이야.”

“오늘 사고 제대로 쳤는데 의젓은요!! 아직 멀었어요, 전.”

저번에 축제에 가서 했던 무대가 과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때문에 오늘 무대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런데 우연이가 실수하는 장면이 나간다?

‘실망도 많이 할 거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오늘 무대는 우리가 궁금해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무대가 되어야 했다.

아마 피디님도 별 다른 호통 없이 곧장 다시 찍자고 하신 것도 그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잠시 대기 시간이 있은 후.

다시 무대 위에 빛이 들어오고 타이틀곡의 음률이 흐르기 시작했다.

또 실수할까봐 긴장해 있는 우연이를 위해 체력 주머니를 사용해서 녀석의 체력을 빵빵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우연이는 첫 번째 무대보다 두 번째 무대를 훨씬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나 또한 한 번 했던 무대를 다시 하니 굳었던 몸이 풀렸는지 훨씬 몸이 잘 움직여졌다.

그리고 나중에 두 번의 무대를 순서대로 모니터링 해보자 압도적으로 두 번째 무대가 좋음이 확인되었다.

오히려 우연이가 실수를 한 게 우리에겐 이득이 된 것이다.

“실수하길 잘했다고 칭찬해야 되나?”

“우우!! 하지 마요. 넘어졌을 때 심장 떨어진 거 생각하면 아직도 무서워요. 무대 공포증 생길 뻔.”

앓는 소리를 하는 우연이에게 다가가서 슬쩍 물었다.

“무대하기 전에 그걸 봐서 영향 받은 거 아니야?”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아예 영향을 안 받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넘어졌을 때 잠깐이지만 딴 생각을 했거든요.”

“으이구~”

괜히 신인 남돌 무대는 구경하겠다고 해서는.

“수고했어요.”

피디님은 두 번째 무대가 굉장히 잘 촬영 된 것이 흡족했는지 표정이 좋아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야 피디님의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모든 긴장히 확 풀린다.

대기실로 들어가면 소파에 바로 몸을 누이고 말 것이라 다짐하며 복도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마음을 촉촉하게 젹서줄 레인 입니다!””

“어? 걔네들인가 봐요.”

대기실로 이동하던 중 실수했던 신인 남돌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다른 방에 인사를 하러 다니는 모양이다.

막 데뷔한 아이돌들이 선배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거야 늘 상 있는 일이다.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방금 있었던 일로 남은규의 입이 터졌다.

“우리도 예전에 저러고 다녔는데.”

“그러게요. 옛날 생각 엄청 나네요.”

“옛날은 무슨. 몇 달 안 됐거든?”

“아, 거참. 하여튼 쭌은 분위기 맞출 줄을 모른다니까. 선배가 됐잖아. 선배!”

남은규랑 기우연이 은근 코드가 맞아서 얘기를 잘 하는 편인데, 강준이 불쑥 끼어들어서 태클을 거는 경우가 많다.

“암튼 저렇게 인사 하고 다니는 거 엄청 뻘쭘하잖아요. 인사 안 받아 주는 사람 만나면 엄청 어색하고 눈치 보이고요. 우린 이번에 안 해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라던데?”

연차 높은 선배님들한테는 앨범 가져다가 들어봐달라고 아부를 하긴 해야 한다.

아직 신인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진짜 이해가 안 가요. 왜 인사를 안 받아줄까요?”

“나는 절대 안 그럴 거야. 나한테 인사하는 사람은 전부 친절하게 받아 줄 거임.”

“살아남는 그룹이 소수니까 그렇지. 잘해줘 봐야 몇 번 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텐데.”

“헐, 쭌! 너 그렇게 잔인한 말을…!!”

애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피곤함을 숨기지 못하고 널찍하게 대기실 소파에 누웠다.

“아이고~ 삭신이야.”

“으아~ 나도 누울래!! 으쌰~!”

남은규가 날 따라하며 소파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우르르 소파에 몰려든다.

“다리 좀 주물러 봐.”

남은규가 강준의 허벅지에 다리를 올리고 말했고, 강준은 남은규의 무다리를 꼬집는 것으로 대응하며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강준은 다른 사람한텐 얌전한데, 동갑내기 친구라서 그런지 남은규에게 유난히 박했다.

“행님, 근데요. 왜 피디님이 저한테는 화를 안 내셨을까요? 저 실수했을 때 호통 소리가 날아올 것 같아서 엄청 무서웠거든요. 근데 끝까지 화를 안 내시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신기해?”

당연한 건데.

“행님은 이유를 아세여?”

“알지.”

“알려줘요!! 실수한 건 똑같은데 왜 그 사람들은 혼내고 전 안 혼낸 거에요?”

“현실을 들려줄까, 동화를 들려줄까?”

“…선택까지 해야 해요?”

“응.”

“으음, 동화를 선택하고 싶지만 현실이요.”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동화로는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이유는 소속 엔터차이, 인기 차이, 마지막으로는 걔네들 태도 차이에 있어. 내 생각에는 실수를 한 후에 무대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는 게 생각보다 컸을 거야. 너는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다시 무대를 끝까지 해냈잖아? 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작한 무대는 책임지고 끝냈어야 했어.”

“아….”

“그런 점에서 오늘 네 행동은 무지 잘한 거지. 칭찬 받아 마땅해.”

“에이, 칭찬은요!!”

넘어졌을 때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서 무대를 끝까지 마친 우연이에게 기특하단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우연을 우쭈쭈 해주고 있는데, 남은규가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해솔이 형은 어른들 사정을 되게 잘 아는 것 같아.”

“경태 형보다 더 어른스럽긴 하지.”

“야. 내가 뭐 어때서.”

강경태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들 인정하는 바였는지 동조를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멤버들이 현실을 알아가고, 어른이 되는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걸 ‘성장’이라고 말한다.

에어플레인은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 ? ?

“올랐다!!”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하는 기분이다.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어서 조마조마하기는 한데, 파도를 타고 있는 현재가 너무 짜릿하고 재밌어서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1. 모히또 한 잔 – 젤리냥

2. 팡파레 ­ 젤리냥

3. Remember ­ 에어플레인

4. 슈퍼 우먼 – 젤리냥

5. Nightfall ­ 다운

6. Girlfriend ­ 에어플레인

4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노래가 드디어 벽을 뚫고 3위에 올라섰다.

그뿐인가?

수록곡인 Girlfriend가 6위로 순위가 부쩍 상승했다.

소속사에서는 이것이 끝이 아니고, 좀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위 가즈아!!!!!!”

“주식하니?”

“으아아!! 2위! 2위!!! 그래도 컴백했는데 1위는 찍어봐야지!!”

“3위만 돼도 여한이 없다고 해놓고 어느새 1위로 바뀌었네.”

호들갑 떠는 애들이 웃기긴 하지만,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애들과 같이 기분이 무척 좋았다.

더욱이 이런 상승이 우리 무대가 인정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서 더 그렇다.

순위가 상승한 만큼, 우리들에게 들어오는 스케줄도 조금 특별해졌다.

“너희들 개인 활동에 들어갈 거야.”

“개인 활동!”

“단체로 들어가는 예능도 할 거지만, 이번 활동부턴 개인 활동을 딱히 막지 않을 생각이다. 좋은 기회가 오면 잡을 거야.”

“오!!!”

축제 무대 이후로 회사에서도 우릴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우리들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냥 보호하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믿고 일을 맡기려고 한다고나 할까?

직원들에게서 신뢰를 받는 건 무척 기쁜 일이었다.

개인 활동이 가능해진 것도 신뢰의 증거나 다름없었고.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면 너희들 선물 들어온 거 옮겨져 있을 거다. 우리들이 다 확인해서 거른 선물들이니까 안심하고 사용해도 돼.”

“선물이요?! 아싸!”

팬들에게서 온 선물.

놀랄 정도로 고가의 선물이 들어올 때도 있고, 정성이 느껴지는 선물이 오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편지인데, 그걸 읽다보면 절로 힘이 솟아서 소중하게 모아두고 있다.

“근데 음…해솔아.”

“네?”

“너한테 개인적인 선물이 들어오긴 했는데, 이게 좀 특별한 거라서 말이야.”

“특별한 거요?”

“혹시 면허 있니?”

…면허?

선물에서 면허 있냐는 물음이 나왔다는 건 선물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큰 힌트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다들 놀란 토끼눈이다.

“에에엑?!”

“설마 형 선물로 차 들어왔어요?!”

“헐~ 대박.”

“이걸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 했는데, 선물해 준 당사자가 누구인지 안 알려주려고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보냈더라고. 죽어도 안 알려준다네.”

“선물로 차를요? 너무 과한 것 같은데요.”

“그쪽에서 끝까지 안 받으면 차를 폐차 시킬 거라고 말하라 했다네. 어쩔 수 없었어. 선물해 준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르잖아.”

“그럼 정말 차를 받으라는 거에요?”

“당장 쓰지는 못해. 네가 면허가 있어야 하고, 차 안에 몰래카메라나 도청 장치 같은 거 설치했는지 확인도 해야 하거든.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차에 결함이 있는지 정비소에 의뢰 넣어서 싹 훑어봐야 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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