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92화 (92/849)

〈 92화 〉 #14. 레벨업 (12)

* * *

팬으로부터 온 자동차 선물.

실물을 안 볼 수 없다.

멤버들도 모두 뜻밖의 고가 선물을 받은 걸 축하하며 차고로 움직였다.

“헐!!!!!! 빨간색이야!”

“저거 얼마 정도 하는 거에요?”

“엄청 비싸 보이는데?”

“이거 그거잖아! 제우스 Z­107!”

제우스라면 이세계의 유명 차 브랜드 이름이다.

지구에서 BMX, 람보XX 과 같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 같다.

멤버들 중 차에 대해 아는 게 많은 듯한 강경태가 흥분해서 외친 말에 다른 애들이 덩달아 흥분했다.

“진짜?? 와~! 제우스 엠블럼이네!!”

“저게 도대체 얼마짜리야?”

“못해도 억은 넘지.”

“저게 선물?? 클라스가 다르네.”

“형형 한 번 타 봐요. 누나! 잠깐 타보는 건 괜찮죠?”

“아직 점검 안 해서 안 돼. 좀 나중에.”

“그럼 사진이라도 찍을래요!”

“사진은 가능한데, SNS 같은 곳에 자랑하면 안 된다.”

“네엡!”

어째 선물을 받은 당사자보다 애들이 더 흥분해 있다.

저 차가 이제 내 차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 제 통장에 이 차를 살 수 있는 돈이 없는데, 이런 차를 갖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연습기간이 압도적으로 적기에 정산을 빨리 받을 수 있긴 했지만 활동을 하면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에 그 돈이 많지는 않았다.

국가로부터 받았던 지원금도 취직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차를 유지하는데 버는 돈을 다 써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런 큰 걸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건 아닌가요?”

“차 선물이 큰 거긴 한데, 아예 없는 일은 아니야.”

“…아예 없는 일이 아니면 이런 걸 선물해주는 사람이 또 있었어요?”

“남자에 미친 여자가 뭔들 못하겠어. 선물은 양날의 검이야.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돼. 그 선물에 어떤 광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거든.”

인형 안에 카메라를 넣어서 보내는 식의 일은 흔해서 지겨울 정도의 일이다.

심한 경우 편지에 자신의 생리혈로 글자를 적어 보내는 경우도 있고, 본인의 체액을 넣고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도 있으며, 본인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것들로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엔터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면 정말 별의별 일들이 다 생겨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강심장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팬이라면서 먹을 거 줘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네네~”

매니저 누나의 잔소리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

얘기를 조금만 해도 잔소리로 어느새 얘기가 바뀌어 있곤 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해솔이한테 큰손이 붙은 모양인데 첫 선물부터 외제차라니, 심상치가 않네. 조용하게 선물만 넣는 팬이면 좋을 텐데….”

회사에선 내게 차를 선물한 팬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라고 한다.

“딱 봐도 회사에서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알고 노련하게 행동했어. 아마 너 말고 다른 남자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면서 선물 공세 꽤나 해봤을 거야.”

“나중에 문제 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어쩌면? 억지로 선물을 줬으면서 나중에 나타나서 생색을 내는 경우가 있거든. 내가 이 정도 해줬는데 너는 나한테 이 정도도 못해줘? 이런 식으로 말이야. 억지로 받긴 했지만 고가의 선물을 받은 입장에서 마냥 무시하긴 어렵지.”

“바란 적 없는 선물을 억지로 안겨줘 놓고 말이죠?”

“세상 일이 상식적으로 이뤄졌으면 막장 드라마가 왜 생기겠니?”

“그럼 이 차, 안 받는 걸로 할래요. 어차피 스케줄 하러 다니느라 바쁜데 유지비 많이 드는 차를 억지로 받아서 쓰고 싶지 않은 걸요.”

외제차를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리는 건 아쉽지만, 이런 선물로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지 않았던 물건들을 줬다는 이유로 생색내는 꼴을 어떻게 당해주란 말인가?

“네가 안 받는다고 해도 저걸 돌려줄 방법이 없는 걸?”

“거절도 거절한다 뭐 이런 거네요.”

“그래서 영악한 거지. 대부분 연예인들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고가의 물건들을 턱턱 선물하고서도.

사람이란 본디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

아무런 조건 없이 오로지 팬이라는 이유로 받는 선물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을 시작한단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바라는 게 뭐에요?”

“…그건 너희들 상상에 맡길 게.”

조금 위험한 얘기였는지 매니저 누나가 한 발작 뺀다.

아무튼 덕분에 차를 받는 게 독을 삼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당장 저 차를 갖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저 차 써도 되는 거 맞아요? 그런 말 들었는데 찜찜해서 쓰겠어요?”

“후후후,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날 것 같니? 앞으로 꾸준하게 선물이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그냥 네가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건요?”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막아 줄 수 있지. 근데 대부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어.”

“아…!”

이런 선물을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재력을 가졌다는 것.

여자 한 명만 선택할 필요가 없는 이곳에서 그런 여자와의 연결은 남자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제가 싫다고 하면요?”

“그럼 차는 우리 쪽에서 보관해줄게. 근데 이게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네가 익숙해지는 게 더 편하다니까? 이것도 다 복불복이야. 정말 순수하게 널 좋아해서 선물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걸 다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거부할 순 없는 거잖아.”

그래도 억이 넘는 선물을 선뜻 받기에는 찜찜함이 많았다.

“제가 저런 선물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사람이 됐을 때, 찾아갈게요. 그럼 고가의 선물을 준 사람이 나타나서 무언가를 요구해도 제가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현명한 선택이야.”

매니저 누나가 기특한 말을 한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형한테 졸라서 옆에 타보려고 했는데 망했네요!”

“망하기는. 우리 능력을 키워서 저런 차를 팬한테 받는 게 아니라 내 돈주고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되면 되잖아.”

“저런 차를 살 수 있을 정도 되려면 엄청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애들은 제우스 Z에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우스 Z의 실물을 보면 갖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솔직히 나도 인간인지라 차가 아쉽기는 하다.

이대로 회사 주차장에서 썩히는 것도 매우 안타까운 결말이 아닌가?

쟤가 주차장에서 썩으려고 뽑혀서 나온 건 아닌데 말이다.

아무도 타지 않고 방치 되는 건 차에게 못할 짓인 것 같아서 머리를 굴려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니면 이건 어때요? 저 차를 팔고, 그 돈을 기부하는 거죠.”

“엥? 기부?”

“헉! 기부요?!”

아직 기부에 대해 생각하기엔 애들 나이가 너무 적긴 하다.

더욱이 빠듯하게 받는 정산은 아이들에게 ‘기부’라는 단어를 더 멀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일단 그 팬한테 실례가 되지 않게 공지로 올려주세요. 차는 너무 부담 되는 선물이라서 돌려주고 싶다고.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가져가지 않는다면 차를 판매해서 그 돈으로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고요. 앞으로도 전 고가의 물건은 받지 않을 거고, 만약 억지로 보낸다면 같은 절차를 걸쳐서 기부하는 걸로 해주세요.”

“어…정말 괜찮겠어?”

“네. 홍보로 효과 좋지 않을까요?”

“엄청 좋지. 개념있는 아이돌 소리 듣겠는데?”

나도 이제 아이돌이라는 내 직업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팬이 좋은 마음으로 보냈을 선물을 보는 그대로로 여기지 못하고 고민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뭐야, 형 혼자 멋있는 거 다 하려고? 나도 끼워 줘!”

“기부는 우리 그룹 이름으로 할 거야.”

“따라하는 것 같아서 민망한데 나도 형처럼 할래. 나중에 저한테도 이런 선물 들어오면 형처럼 해주세요.”

“저도요!”

“나도 빠질 수 없지.”

“나 때문에 괜히 맘에 없는 말 하지 않아도 돼. 우리끼리 이런 걸로 내숭 부릴 필욘 없잖아.”

괜히 내 말에 애들이 강요받은 것처럼 선택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내가 그냥 까탈을 부린 것 뿐, 많은 아이돌이 팬들이 주는 고가의 선물을 흔쾌히 받아간다.

“저도 행님이 말하신 것처럼 저런 물건을 내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에요!!”

기우연이 팔짝팔짝 뛰면서 포부를 밝힌다.

다만 살짝 아쉬움이 있는 남은규는 슬쩍 매니저 누나에게 꼼수를 부렸다.

“대신 고가의 선물에 해당하는 가격을 1,000만원 이상으로 해주세요.”

“…찬성.”

“나, 나도.”

으이구~ 하여튼 웃기는 애들이다.

? ? ?

허니 엔터에서 공지를 날렸다.

내가 계획했던 그대로.

덕분에 우리는 또 다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말이다.

일단 슈퍼카를 선물로 받은 아이돌로 1차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 선물을 판매해서 기부를 하겠다는 점에서 2차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팬 반응이 궁금했기에 슬쩍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우리 애들 인성도 참 밝다며 팬들이 꺼이꺼이 울더라.

그리고 놀랍게도 기부에 대한 화제 덕분인지 노래가 2위로 올라갔다.

“이게 되네.”

“1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이, 그건 아니지. 젤리냥 선배님들이 너무 막강해.”

“2위까지 올라왔잖아. 1위 못할 게 뭐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긴 하겠는데, 회사에서도 기대하지 말라고 하네.”

“칫! 응원을 해줘야지, 시작부터 애들 기를 꺾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래서 내가 팀에 있었어야 했는데.”

지금 나는 침대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누워 있다.

내 몸 위에는 아현이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체로 누워 있는 중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아현이는 나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바빠도 할 건 해야지.’

물론 바쁜 와중에도 연애는 해야 하는 법.

오랜만에 만지게 된 아현이의 보드라운 몸을 한껏 즐겼다.

은밀하고 엉큼한 곳도 서슴없이 침범하며 그녀의 몸을 조금씩 달궜다.

만나자마자 화끈하게 옷을 던져버리긴 했지만, 나는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고 아현이의 요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작곡 배우는 건 좀 어때?”

“모르겠어. 시간이 너무 빨리 가.”

“시간이?”

“노래 만들려고 컴퓨터에 앉았다가 고개를 들면 해가 져 있더라고.”

“와~ 그 정도야?”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났어도 정작 내 손에는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어.”

“음….”

“내가 재능이 있는 건 맞을까? 걱정도 들고. 레슨 받고 나서는 나도 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이 되다가 정작 컴퓨터에 앉아서 음을 찍다보면 다 쓰레기만 나오고…. 요즘 기분이 들쑥날쑥해.”

작곡을 배우면서 속상했던 일이 많은지 잔뜩 얘기를 털어놓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듯했다.

‘메이도 조안나도 나랑 섹스하면서 영감을 얻는다는데, 아현이도 그런 거 못하나?’

두 사람이 천재라서 가능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들이 했던 말처럼 내가 특별했기에 가능한 영감이었던 걸까?

“아현아.”

“응?”

“어떤 사람한테 들었는데, 너도 뮤즈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

“뮤즈? 뮤즈…뮤즈라면….”

다소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아현이는 제법 솔깃했는지 뮤즈를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위로 향하고,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아현이와 눈을 마주했다.

나는 씨익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령 나 같은 사람 말이야.”

그 뮤즈와 섹스 한 판 하면 멋진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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