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15. 서바이벌 S (1)
* * *
아현이와 찐하게 섹스를 한지 며칠이 지났다.
아현이가 뜬금없이 내게 음악 파일 하나를 덜렁 보냈다.
[아혀닝 : [열기폴더 열기]
[아혀닝 : (>) 들어보고 감상평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그건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자주 보내곤 했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헌데 이번에 보낸 음악은 정말 심상치가 않았다.
일단 장르부터가 독특했다.
여태까지 아현이가 보낸 음악들은 대부분 상큼하고 발랄한 ‘아이돌’ 음악이었는데, 이번에 보낸 곡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지직
작은 노이즈가 들리고.
둥, 둥, 둥, 둥, 탁!
묵직한 드럼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트였기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댔다.
지이이이잉~! 지지지징~~!!!
둥, 둥, 둥, 둥, 탁!
섹스를 하면서 얻었던 영감으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어딘가 야하게 느껴지는 비트음이었다.
‘이 리듬, 설마 그거인가?’
내가 아현이의 질 안에 성기를 박아 넣을 때의 그 박자.
점점 절정으로 다다르고 있는 것인지 곡의 리듬이 더 그루브해지면서 짜릿해진다.
그 속에 펑펑 터지는 드럼 소리.
‘기계로 찍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네. 근데 여태까지 들어 본 곡 중에 제일 좋은데?’
저절로 고개가 움직인다.
두둠칫! 두둠칫!
발이 박차를 타며 탕탕 바닥을 두들긴다.
묵직하게 귀를 두들기는 비트가 귀를 사정없이 자극한다.
아현이의 농염했던 허리놀림이 떠올랐다.
‘아현이가 만든 노래가 야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혀닝 : 들어봤어?]
[아혀닝 : 처음 시도해본 거라서 별로 일지도 몰라!]
[아혀닝 : 습작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듣진 마! (;д)]
[아혀닝 : 아직 수정해야 할 것들이 엄청 많거든.]
‘아이고, 난리 났네.’
내가 어떤 평가를 할지 걱정이 많이 됐던 모양이다.
아현이가 우르르 보내 놓은 메시지를 뒤늦게 읽으며 피식 웃었다.
보통 아현이가 곡을 보내주면 몇 번 정도는 더 들어보면서 노래를 살피는데, 이번 곡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 : 이게 정말 그날 만든 곡이야?]
[아혀닝 : 응!]
[나 : 확실히 그날 섹스가 좀 격렬하긴 했지.]
[아혀닝 : (*/ω\*) 끄앙!]
[나 : 엄청 섹시해. 노래 들으면서 자지 세울 것 같았던 건 처음인 듯.]
[아혀닝 : ...변태.]
섹스하다가 결국 아현이가 항복하고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게 그날 섹스의 끝이었다.
그날 섹스가 워낙 격렬했으니 이렇게 야한 곡이 만들어지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 : 여태까지 발라드만 만들지 않았어? 색다른 시도를 했네.]
[아혀닝 : 응.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서 어색한 부분이 많지?]
[나 : 전혀 어색하지 않아. (▽) 노래 엄청 좋던데? 내가 보기에 이런 장르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이 곡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만들어봐. 좋은 노래가 나올 것 같아.]
토끼 같은 아현이가 이런 섹시한 곡을 만드는데 재능이 있을 줄이야.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정말 내 섹스가 창작에 도움이 되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성 된 곡이 아닌 건 맞지만, 메인 멜로디가 이 정도로 좋으면 그 노래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다만 나와 아현이는 당사자들이라서 이 노래가 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같은 느낌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부드럽게 섹스를 했으면 발라드가 나왔으려나?’
[나 : 다음에 어떤 장르 곡 만들지 생각해놔. 장르에 맞춰서 섹스하자.]
[아혀닝 : 꺅! 변태!!]
[나 : 그 변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더라?]
내 메시지를 보고 꺅꺅대고 있을 아현이의 모습이 연산 돼서 웃음이 나왔다.
[나 : 날 잡아먹고 만든 노래니까 완성하면 저장해서 두고두고 들을래.]
[아혀닝 : 그건 너무 부끄러워!]
[아혀닝 : 좀 더 실력 키우고 제대로 된 노래 만들어 줄게!]
[나 : 오늘 들려준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는데?]
[아혀닝 : 아니야. 부족해. 너한테 줄 노래는 더 엄청난 걸로 만들 거야!]
아현이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엄살을 부리는데, 내가 봤을 때 아직 배움이 짧아 개화되지 않은 것뿐이지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런 노래를 한 번 만들어냈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나은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럼 언젠가는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줄 수 있겠지.’
그 짓 한 번에 이런 노래 한 곡이 나오는 거라면 혜자이지 않은가?
‘사실 뮤즈가 그런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아닌데 말이야.’
뮤즈라는 단어가 나에게 씌워지니 엄청나게 야해져버렸다.
‘아니, 근데 진짜 노래 좋네. 계속 생각나잖아.’
그 야한 비트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이러다가 길거리에서 발기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든다.
도리도리
머리를 털어서 야한 리듬을 털어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날 있었던 아현이와의 일이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해버렸기 때문이다.
‘자꾸 떠오르네. 원래 야한 생각은 안 하려고 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지.’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자꾸 비트가 재생되어 흥얼거리게 된다.
이런 곡이야 말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작곡을 하는 사람은 아니므로 무조건 이 노래는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아현이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할 수 있게 응원을 해줄 수는 있었다.
‘정 안 되면 아이템이라도 사서 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겠어.’
굳이 코인을 들여서 아현이를 위한 아이템을 사지 않아도 그녀 스스로 일을 해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착실하게 성장 중인데, 너무 성능이 좋은 아이템을 줘버리다간 재능이 덜 피어날 수도 있었다.
“에어플레인 분들 지금 나가시면 돼요.”
“네에~”
“넵!”
“으, 떨린다.”
현재 나는 멤버들과 함께 예능 촬영을 하기 위해 방송국에 온 상태였다.
SSB 간판 예능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서바이벌S’ 라는 프로그램으로, 6명의 MC들과 팀을 만들어서 몇 가지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점수를 획득하고, 그 점수로 1등을 가려내서 상품을 타낸다.
상품은 황금으로 만든 ‘서바이벌S’ 문양인데, 장식용으로 숙소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하늘을 날아올라!”
““에어플레인 입니다.””
6명의 MC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예능 촬영이 시작 됐다.
5명의 여자와 1명의 청일점 남자로 이루어진 MC들은 에어플레인 멤버들을 적극적으로 환영해주었다.
일단 훤칠한 외모를 한 남자 아이돌들 아닌가?
5명의 여자 MC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유일한 청일점인 남자 MC이환이 툴툴대며 여자 MC들과 투닥거렸다.
“침 흐르겠어, 누나.”
“쓰읍 티 났니?”
“어우~~ 다들 너무 잘 생겼다. 비주얼 덩어리들이에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컴백하고 노래도 대박 났죠? 조금만 불러주면 안 돼요?”
본격적으로 서바이벌에 들어가면 홍보할 기회가 없기에 오프닝 때 부지런히 신곡 홍보를 해야 했다.
MC의 제안에 넙죽 받아 노래를 생목으로 부르고 폭풍 칭찬을 받았다.
반주가 없는 상황에서 부르는지라 우리 멤버들 중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강준이 나섰다.
짝짝짝짝짝!!!
“이야~!!!”
“너무 잘 부른다.”
“이 친구들이 정말 못하는 게 없어요.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이번에 라이브 무대 직캠으로 대박이 났잖아요. 처음에는 이게 라이브라고?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오늘 부르는 거 보니까 정말 라이브로 부른 게 맞네요!”
MC들과 나누는 대화는 모두 대본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비주얼 칭찬은 맛보기고 실력파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직캠 무대 얘기를 꺼낸 것이다.
예능 프로 입장에서도 그 무대가 화제가 된 것에 대한 멤버들의 소감을 최초로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나쁜 일이 아니었다.
에어플레인 팬이나 이번 직캠 무대 화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치진 못할 거다.
“네, 라이브로 부른 거 맞아요. 생각지도 못하게 화제가 돼서 깜짝 놀랐어요.”
“음원보다 라이브로 더 잘 부르는 것 같던데요? 콘서트 하면 꼭 갈게요. 나 좀 초대해줘요.”
“어휴, 이 누나 주책 부리는 것 좀 봐. 그만해요! 민폐야, 민폐!”
“야! 누나도 시집 좀 가자!”
“하하하, 감사합니다.”
너스레를 떨며 한동안 에어플레인에게 금칠을 해준다.
그때, 대본에 없던 얘기도 불쑥 튀어나왔다.
“저 그거 봤어요! 프라작 화보! 거기에 나왔었죠?”
“어? 그걸 보셨어요?”
“진짜 어렵게 구했거든요. 거기 화보에서 어휴~ 다들 어쩜 그렇게 잘 생겼어요? 제가 그거 보고 에어플레인 팬 됐잖아요.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누나! 그런 걸 자꾸 사니까 애인이 없는 거야.”
“너도 이 나이까지 독수공방 해봐!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청일점 MC이환이 끼어들어 화보를 구매한 MC를 구박하면서 예능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타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눈 호강 제대로 했다며 MC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흔치않게 좋은 기회가 와서 열심히 찍었는데, 좋아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우리가 컴백 준비에 정신없는 사이 프라작 7월호가 나왔고, 제법 화제를 모았다고 들었다.
흔치 않은 동양인을 모델로 만들어진 ‘특별호’이기도 하거니와 메이 린 작가의 이름값 그리고 조안나의 디자인이 호평을 받은 것이다.
에어플레인 그 자체만으로 주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외국에 얼굴을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늘 같은 팀 해서 잘 해봐요!”
본격적으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팀을 나눠야 했기에 6명의 MC들은 각자 눈 여겨 둔 멤버들에게 찡긋찡긋 윙크를 하며 수신호를 보냈다.
자신과 짝을 하자는 개그를 담은 플러팅이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오프닝이 계속 진행 되고, 곧 본격적인 서바이벌 게임을 위해 팀 정하기가 시작됐다.
“에어플레인 리더가 누구에요?”
“제키 형이요!”
“앞으로 나와주세요.”
기우연이 명랑하게 대답했고, 제키가 MC들 앞으로 나갔다.
MC 중에서 진행을 맡은 홍은정이 제키와 가위, 바위, 보를 시작했다.
팀원을 고르기 위해서는 게임을 해야 하는데, 게임을 누가 먼저 할지 정하기 위해서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제키와 홍은정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아자!”
“우와! 형 짱이에요!”
“아싸!”
“야 너희들 같은 팀 아니야.”
“헉! 맞다.”
프로그램 특성상 멤버들이 고루고루 갈라져야 하는데, 제키가 이기니까 마냥 좋은지 리액션을 과하게 했다.
상황파악 못하고 그냥 우리 멤버 이김 = 좋음 순으로 기뻐한 게 분명하다.
“형!!! 우리 같은 팀이 아니래요!! 그럴 순 없어요!! 저 뽑아주세여!!”
기우연이 울먹이며 제키에게 매달렸다.
“그래, 넌 절대 안 뽑을 거야.”
제키는 매달리는 기우연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MC 중에서 가장 운동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진 MC태희경을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하하핫! 제키가 사람 볼 줄 아네.”
“와~ 에이스부터 뽑아 가버리네.”
서바이벌 게임 대부분이 몸을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운동 능력이 뛰어난 태희경이 MC들 중 에이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