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15. 서바이벌 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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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6명의 MC들부터 소개를 해보자.
첫 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청일점인 이환.
망한 아이돌이었다가 배우로 전향해서 근근이 조연으로 얼굴을 보이다가 ‘서바이벌 S’에서 질투심 많은 남동생 역이 찰떡처럼 잘 맞아 그 캐릭터로 활동하는 중이다.
아이돌로도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고, 배우로도 언제 묻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능을 통해 답을 얻은 것이다.
서바이벌 S에 나오는 MC들 모두 조금씩 철없고 바보 같은 누나들로 나오는데, 그런 누나들로부터 게스트를 보호하거나 질투하는 식의 장난으로 캐릭터를 잡아 예능의 감초역을 했다.
두 번째 소개할 MC는 ‘서바이벌 S’의 메인 MC이자 진행을 맡은 홍은정다.
그녀는 항상 방송에 나올 때마다 붉은 정장을 입고 다닌다.
진행도 매우 잘 하고, 입담도 좋아서 국민 MC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잘 나가는 아이돌은 몰라도 홍은정 모르는 사람은 없다더라.
얼굴을 걸고 진행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만 해도 9개가 넘어가니, 그 인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세 번째는 태희경.
왕년에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딴 적 있는 전직 운동선수이다.
유도선수 은퇴 이후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은정과 만났다가 태희경의 입담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조금씩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서바이벌 S에서는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은 멋진 언니, 누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직 유도 선수답게 몸으로 하는 게임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녀는 선수 은퇴를 했음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선수 시절 때엔 못했던 헬스를 꾸준히 해내면서 근육을 키워 여성 보디빌더 몸매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까 사진으로 봤을 때만큼 거북스럽지 않은데?’
운동을 좋아하는 복순 누나의 몸보다 훨씬 잘 가꿔진 근육이었다.
구릿빛 근육들이 보기 나쁘기보단 건강미가 좔좔 흘러서 시선을 자꾸만 빼앗겼다.
네 번째 MC는 가장 나이가 많은 50세 신영주다.
한 30년 전에 전성기를 누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개그우먼인데, 요즘 아이들 입장에선 누군지 모르는 아줌마일 뿐이다.
서바이벌 S 에서는 바보 꼰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냥 꼰대면 시청자들이 불편해 하겠지만, 앞에 ‘바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꼰대짓을 하다가 다른 MC들에게 구박을 자주 받으면서 웃음을 준다.
다섯 번째 MC 나영희.
서바이벌 S에 게스트로 나왔다가 뛰어난 예능감을 인정받아 멤버로 추가 합류했다.
배우라서 얼굴은 정말 예쁘다. 문제는 이세계에 얼굴 예쁜 여자가 정말 많다는 점이다.
얼굴이 예쁘고, 연기 실력도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뜨지 않는 배우.
그러다가 결국 예능을 시작했고 얼굴을 많이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배우로서는 여전히 조연 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배우라는 프라이드가 있어서 예쁜 척을 자주 하는데 다른 MC들이 예쁘다 예쁘다 우쭈쭈 해주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서바이벌 S 공식 재능 낭비 캐릭터로 탄탄한 연기력을 이용해 멤버들에게 사기를 많이 치고 다닌다.
거짓말을 너무 자주해서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섯 번째 MC 공정선은 태희경과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키가 큰데에 비해 삐쩍 마른 몸을 갖고 있고, 항상 힘이 없어서 몸으로 하는 게임에선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꼴찌를 하곤 했다.
다만 신은 공평하다고, 몸 능력치가 최악인 대신 머리는 정말 좋아서 ‘사기꾼’ 나영희와 죽이 잘 맞아 멤버들 뒤통수를 때리고 다니는 캐릭터다.
홍은정, 태희경, 신영주, 나영희, 공정선, 이환.
이렇게 총 6명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MC들이 ‘서바이벌S’를 국민 예능이 되게 한 꽉 잡고 있었다.
제키가 리더로 팀을 먼저 뽑기 시작했고, 총 6명씩 두 팀이 만들어졌다.
A팀 : 제키, 태희경, 강준, 남은규, 신영주, 공정선,
B팀 : 홍은정, 진해솔, 이환, 기우연, 나영희, 강경태.
나는 B팀이었는데 개인적으로 A팀보다 B팀 멤버 구성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몸 쓰는 거에 취약한 공정선과 나이가 많아서 아무래도 몸 쓰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신영주를 A팀이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S는 시작하기 전에 개인 총(장난감)을 제공해준다.
촬영을 위해 빌린 건물 안에서 미니 게임을 통해 총알을 얻어내어 상대팀을 맞춰 탈락시키면 승리하는 방식의 간단한 게임이었다.
게임이 진행 되는 곳까지 이동하기 위해 우리들은 버스에 올라탔다.
“우연이는 해솔이 껌딱지네.”
이환이 버스 좌석의 옆자리를 차지한 우연이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그는 오프닝 때부터 잘 생긴 내 외모를 언급하며 자주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심도 어느 정도 섞였겠지만, 모두 예능을 위한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내 잘 생긴 외모를 진심으로 시기하고 질투해서 하는 말이라기엔 불쾌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연이가 아직 애기라서요.”
“애기 아니에요! 어엿한 18살이에요!”
처음 우연이를 만났을 땐 17살이었고, 두 번의 활동을 하니 해가 한 번 지나 1살을 더 먹었다.
나도 풋내 나는 20살에서 21살이 되었고, 우연이는 18살이 되었다.
서른 살까지 먹어봤던 내 입장에서 17살이나 18살이나 똑같이 애기였고, 20살이나 21살이나 똑같이 풋내 나는 나이일 뿐이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우연씨가 해솔씨한테 되게 의지하는 느낌이에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선배님.”
망한 아이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방송가에서 활동해왔던 짬밥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이환에게 깍듯하게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니 경계와 견제를 하던 이환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선배?”
“아! 혹시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게 불편하신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날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돌은 오랜만이라서 그런 거야.”
이환은 아이돌로 실패했다.
배우로 전향했지만, 근근이 조연으로 출연하여 연기력 논란으로 욕만 처먹다가 예능으로 활동 방향을 바꿨다.
이것저것 성과 없이 활동을 하고 다니다 보니 아이돌로도, 배우로도 대접을 받지 못했고, 여기저기 치이고 다녔던 모양이다.
아이돌들은 선배 대접 해주지 않고 개그맨 취급을, 배우들은 아이돌 출신이라고 배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색안경을 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긴 했지만 이환이의 말이 방송에 나갈 일은 없을 거다.
이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홍은정이 이환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또 그 레퍼토리냐? 안 지겨워?”
“누나는 남자의 섬세한 마음을 너무 몰라!”
“얘가 하는 말 너무 진지하게 안 들어도 돼요. 좀 받아주는 사람 생기면 어리광부리고 싶어서 징징대는 거니까.”
…왜 저런 말을 다 들을 수 있는 버스에서 초면인 우리한테 말하나 했는데 저 말이 우리한테만 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민한 부분이 많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본인 스스로 극복했기에 할 수 있는 너스레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부족해서 아이돌도 실패하고, 배우도 실패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는 확실히 본받을만한 일이다.
내 옆에 달라붙어 있던 우연이는 슬슬 시간이 지나고 서바이벌 S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경계심이 풀렸는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스 안을 점령했다.
특히 이환과는 죽이 잘 맞았다.
워낙 하이텐션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피곤해. 귀에서 피날 것 같아.’
다만 우연이의 꺄르륵 대는 목소리를 이동하는 내내 들어야 했던 나는 따가운 귀에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카메라도 이환과 우연이가 만들어내는 소란을 집중해서 찍고 있었다.
‘우연이는 확실히 예능캐야.’
처음엔 살짝 낯을 가리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마음을 열어서 꺄륵꺄륵 잘 지낸다.
누가 오든 금방 친해져서 그 사람의 매력을 끄집어내야 하는 예능에서 우연이의 저런 넉살은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이번 기회에 도장 꽝 찍고 예능에서 많이 찾아주면 좋겠는데.’
우연이가 아직은 예능에 큰 욕심 없지만, 우리 중에서 예능 촬영에 제일 진심이라는 건 안다.
버스는 적당히 시간이 흐를 정도로 이동한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와~ 여기서 촬영하는 거래?”
“상가 전체에서 하는 거래.”
“서바이벌S 클라스가 어마어마하구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총 4층으로 되어 있는 상가였다.
촬영을 하면 장사하는데 방해가 될 테지만, 그만큼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었기에 서바이벌 S의 촬영 장소는 자주 바뀌곤 했다.
상인들이 장사를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가 안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또 구매하기도 하는 이곳에서 오늘 촬영이 진행 될 예정이었다.
우리들이 찾아야 하는 총알들은 장사하고 있는 상인 분들이 갖고 계실 거다.
‘예능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이 정도 추측이야 껌이지.’
다만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촬영이 가능할지가 걱정스러웠다.
‘아니지, 나이대가 좀 있으신 분들만 있어서 괜찮으려나?’
여기엔 우리 얼굴을 아는 사람보단 서바이벌 S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우리보다는 서바이벌 S의 MC들 인지도에 어느 정도 묻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잠깐 모여서 룰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은 후.
A팀과 B팀 끼리 모여서 호루라기를 불어 본격적인 서바이벌이 시작 됨을 알렸다.
삐이이익!
“시작!”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 온 사람들 사이로, A팀과 B팀이 갈라져서 흩어졌다.
“어…이제 어떡해야 돼요?”
우연이와 경태 형 그리고 나는 예능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게임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런 우리들을 홍은정이 이끌어주었다.
“일단 총알이 있는 곳을 찾아야 돼.”
“그럼 막 흩어져서 찾으면 될까요?”
“4층으로 되어 있으니까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 층을 맡아 수색을 하고 마지막에 다 같이 모여서 마지막 층을 수색하는 건 어때?”
“좋아요!!”
누구 하나 반대하는 이 없이 일이 척척 진행 되었다.
‘이래서 리더가 중요하다니까.’
잠시 대학교 시절 있었던 팀플과제를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떤 나는 우연이의 손을 이환의 손에 건네주며 둘이 짝을 하게 만들고, 경태 형을 홍은정씨에게 넘긴 뒤 나영희씨를 데리고 왔다.
“어머, 나 선택 받은 거야?”
“잘 부탁드립니다.”
절대 얼굴이 예뻐서 선택한 거 아니다.
동생들과 형 같지 않은 형이 예능에서 조금이라도 분량을 더 확보시키기 위해 쿵짝이 잘 맞는 이환과 우연이를 짝 지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분량 확보가 어려울 게 뻔한 경태 형에겐 게스트를 잘 다루는 홍은정을 붙여준 것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인 나영희씨와 짝이 됐는데, 그녀는 나에게 선택 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나한테 첫 눈에 반한 거 아니야? 하, 이럼 안 되는데? 누나, 진심 좀 담아도 되겠니?”
참고로 오프닝 때 프라작 화보를 구매했던 MC가 바로 그녀다.
“진심 담았다가 나중에 울어도 전 책임 못 져요. 누나.”
예능에 나왔으니 예능스럽게 맞받아주는 것이 인지 상정.
내 능글맞은 대답에 나영희씨가 깜짝 놀라다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잘 생기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이런 센스까지 있었어? 다 가졌네. 호호호!! 오늘 재밌겠다. 지금처럼만 해요. 그럼 재밌게 찍힐 것 같으니까.”
“예, 감사합니다. 많이 이끌어주세요.”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그럼 2층으로 가볼까?”
“네.”
B팀 일행과도 모두 흩어지고, 나영희씨와 나는 담당하는 구역인 2층으로 올라왔다.
2층은 의류매장이 잔뜩 깔려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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