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15. 서바이벌 S (4)
* * *
TV 속에서 에어플레인 멤버들과 서바이벌S의 MC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서바이벌 게임이 절정에 다달아 있었다.
이젠
푸슉!!
“헉?!”
삐이
[A팀 제키 탈락! A팀 제키 탈락! A팀 제키 탈락!]
탈락 소식이 스피커로 울려 퍼진다.
진해솔이 씨익 웃으면서 너무 놀라 움직이지 못하는 제키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미안하다.”
“…형, 지금 나 죽인 거야?”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같은 팀이잖아?”
“아니야. 넌 A팀, 나는 B팀. 엄연히 팀이 달라.”
“아까 전이랑 말이 다르잖아! 그리고 분명 총알 없다고 하지 않았어?”
“원래 주인공은 힘의 3할을 숨기고 다니는 거야.”
진해솔이 탈락해서 스태프에게 끌려가는 제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연히 제키와 만났을 때, 진해솔은 자신에게 총알이 없음을 어필했었다.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더 분량을 만들어야 한다며 같은 멤버끼리는 탈락시키지 말자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제키는 진해솔의 말에 순진하게 속아서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예능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분량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맙소사, 우리 애기가 타락하고 있어!!!
└안 돼!!! 그런 거 자랑스럽게 배우지 마!!!
└눈 초롱초롱한 것 좀 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제키 탈락시키고 뿌듯해서 웃는 거 졸귀.
└진짜 귀여워 미치겠다.
└근데 타락한 것도 나쁘지 않지 않아? 저 얼굴로 존나 치명적이게 담배 피우면 바로 코피 흘릴 자신 있음.
└아...쌉가능.
한편, 다른 곳에선 이환과 기우연이 열심히, 그러나 하찮게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작전 회의는 많은데 정작 실속은 하나도 없어서 여태까지 총알을 하나도 못 찾았다.
“형형형형! 숨어여!! 희경 선배님이에여!!”
“헉!!”
시끌시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그로가 끌리는 건 당연한 일.
기우연과 이환이 태희경을 발견하고 쓰레기통 뒤에 몸을 구겨 넣는다.
문제는 덩치 좋은 두 사람을 쓰레기통이 전부 가려주지 못했다는 거다.
태희경의 매서운 눈빛이 두 사람을 여지없이 발견했다.
“요놈들!”
“꺄아아악!!”
“히익!”
└ㅋㅋㅋㅋㅋ호랑이 만난 초식동물 그 자체.
└기우연이랑 이환 ㅈㄴ 쿵짝 잘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케미 오짐. 우연이 벌써 환이 형이라고 부른다.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쓰레기통이 두 사람 몸을 어떻게 숨겨주냐고ㅋㅋㅋㅋ진짜 멍청미 시발 존나 귀여워.
기우연이 태희경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악악대며 살려달라고 애타게 외치니 이환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아아악! 살려주세요!!! 형!! 괴물이얏!!”
“아, 안 돼! 내 동생을 내놔라!! 이 괴물!!”
“…내가 왜 괴물이야? 이러니까 악당이 된 것 같잖아.”
두 주먹을 꽉 쥐고 태희경의 손아귀에서 기우연을 빼내려다가 역으로 이환까지 붙잡혀버렸다.
태희경의 양 손에 한 명씩 붙잡혔는데, 두 남자가 꼼짝도 못하는 게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편집 되었다.
└이환 남돌만 나오면 견제 오지지 않았음? 쟤가 웬일로 저렇게 잘해준대?
└이환이 남돌을 견제하는 게 아니라 ‘싸가지 없는’ 남돌을 견제하는 거임. 아직도 그거 모르고 행복회로 돌리는 년이 있네.
└그런 점을 보면 에어플레인은 인성 쪽으로 클린인 건가?
└이환이 저렇게 잘 해주는 거 보면 쌉ㅇㅈ 해도 되는 부분인 듯.
└행복 회로 돌리는 건 너희 같은데?ㅋㅋㅋㅋㅋ
“야! 내가 거기 아니랬잖아. 왜 또 가서 그러고 있는데?”
“이게 다 네가 모르는 큰 뜻이 있어서야.”
“큰 뜻은 개뿔. 피곤해서 농땡이 치는 거면서.”
“얘가 생사람 잡네? 딱 기다려. 내가 증명할 테니까. 넌 저쪽에 서서 뭔가 있는 척 하고 있어. 널 발견해서 막 달려오면 저쪽으로 뛰는 거야.”
“나보고 미끼하라고?”
“아 쫌!”
조금 투닥거리던 강준이 남은규가 시키는 대로 눈에 띄는 곳에서 수상한 행동을 했다.
그러자 B팀인 강경태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총알을 갖고 있었는지 강준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뛰어들었고, 강준은 재빨리 남은규가 있는 쪽으로 강경태를 유인했다.
“으아악! 형! 형! 살려줘요!!”
“너 총알 없구나? 딱 걸렸어. 뛰어봤자 벼룩이지!!”
푸슉!!
“억!”
남은규가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쳐 강준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강준보다 훨씬 육체적 능력이 좋은 강경태가 금방 강준의 뒤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총을 쏘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남은규의 장난감 총이 쏘아졌다!
[B팀 강경태 탈락, B팀 강경태 탈락, B팀 강경태 탈락.]
“뭐, 뭐야??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뒤늦게 강경태가 남은규를 발견했다.
도망쳤던 강준이 쪼르르 달려와 여태까지 투닥거렸던 남은규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짝!!
“아자!”
“나이스!”
“거봐, 이거 된다니까?”
“그러게. 이게 되네.”
└이게 왜 되냐?ㅋㅋㅋㅋㅋㅋ 준이 너무 귀여워.
└준이랑 은규 죽어라 싸우면서도 은근 죽이 잘 맞음.
└저렇게 싸우는 걸 내보내도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됐네.
└ㅋㅋㅋㅋㅋㅋ동갑케미 개 웃기네.
└은규 득의양양해서 콧대 올라간 것 좀 봐 ㅋㅋㅋ
각자 멤버들이 적절하게 활약을 해준 덕분에 에어플레인의 ‘서바이벌 S’ 예능 나들이는 호평으로 끝날 수 있었다.
매니저 누나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소속사에 출근한 우리들에게 말했다.
“이번 예능에서 확실히 얼굴을 많이 알렸어. 방영 되고 나서부터 섭외 요청 들어오는 건수가 다르다. 역시 서바이벌S라니까.”
“스케줄이 그렇게 많이 들어왔어요?”
“어. 두 배나 더 많아졌어. 아무리 예능에 나갔다고 해도 이 정도로 효과가 좋지는 않은데, 너희들이 거기서 촬영을 잘 한 덕분이야. 요즘 다들 왜 이렇게 잘 해? 으이구~ 기특한 녀석들.”
“으히힛.”
“완전 열심히 하긴 했죠.”
“사실 할 땐 그렇게까지 재밌진 않았거든요. 근데 편집을 거치니까 저희가 봐도 웃기더라고요.”
“편집이 진짜 사기임.”
우리를 몰랐던 연령층이 높은 사람들이 서바이벌 S의 주된 시청자 층이었기에 효과가 정말 좋았다.
방영했을 때 검색어에 우리 이름이 떴을 정도의 화제였다.
더군다나 예능을 본 사람들이 우리들의 활약에 재밌어 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나영희씨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타락하는 모습을 피디님이 재밌게 편집을 해줘서 주목을 받았고, 이환과 우연이는 둘이 쿵짝이 너무 잘 맞는데 의욕만 앞서고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불운의 단짝으로 예능의 재미를 주었다.
제키와 경태 형은 같은 그룹원한테 사기 당해서 탈락 당한 비운의 아이콘으로 웃김을 주었다.
매니저 누나는 차근차근 우리들에게 들어 온 스케줄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우연이 너는 초반에 탈락했는데도 이환씨랑 어울리면서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어. 그래서 그런지 예능이 엄청 들어왔고. 어때? 예능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 있어?”
“어…섭외 들어 온 프로그램은 어떤 것들이에요?”
“어린이 프로그램도 들어왔고, 원턴걸에서도 섭외 들어왔지.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할 게 아니라 각자 개인적으로 들어 온 섭외 목록을 보여줄게. 회사에서 적당히 자르고 괜찮아 보이는 것들로만 짠 거니까 참고하고.”
처음 데뷔 활동을 했을 땐 개인 활동보다는 단체 활동으로 스케줄을 짰는데, 이번 활동부터는 개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참고로 단체 활동은 목록에 안 넣었으니까 너무 많이 하겠다고 하진 마. 3~5개 사이로 결정해줘.”
“넵.”
매니저 누나에게 받은 목록을 하나씩 살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랄 만한 게 목록에 적혀져 있어 저도 모르게 매니저 누나를 바라봤다.
“저 연기해야 해요?”
연기 쪽은 제대로 능력치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연기를?
분위기 좋은데 괜히 손댔다가 발 연기 한다며 욕을 먹고 싶지 않았다.
아이돌의 연기 진출을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 「우리학교에 왕자님이 있다」 말하는 거지? 그거 드라마 아니고 웹드라마라서 경험을 쌓기 딱 좋아.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추천한다. 너 정도 되는 얼굴을 연기 쪽으로 안 쓰면 손해 아니겠냐?”
개인적으로 연기 자체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시작할 때는 빚을 모두 갚고 넉넉하게 코인을 모았을 때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제 목록에도 「우리학교에 왕자님이 있다」가 있는데요?”
그때, 강준이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정말? 같은 작품에 우리 둘이 캐스팅 된 거야?”
웹드라마 「우리학교엔 왕자님들이 있다」.
우리 둘에게 들어 온 역할은 무려 주연.
웹드라마 제목에서 말하는 ‘왕자님들’이 우리가 맡아서 연기 할 역할이었다.
“이번 웹드라마가 좀 실험적인 성향이 짙어. 작가도 신인이고 감독도 신인이거든. 출연진도 대부분 신인으로 갈 거야. 화제가 되진 않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이 경험 쌓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전부 신인이라는 건 발연기를 하는 게 혼자는 아닐 거라는 뜻이네요.”
“경력 쌓기도 좋지. 아무런 경력이 없을 때보다 훨씬 낫거든. 더군다나 강준이랑 같이 캐스팅 돼서 너희 둘 데리고 다니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좋아.”
“준이 넌 어때?”
“어…나는 하고 싶어.”
강준은 연기가 제법 괜찮아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나 때문에 주목을 덜 받아서 그렇지, 준이의 얼굴이 배우를 해도 나쁘지 않을 수준이긴 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관리를 해주고 운동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해준 덕분에 연습생 때보다 훨씬 미모가 살아난 상태였다.
“혹시 제가 거절하면 준이가 곤란해질까요?”
“음, 그런 이유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까진 없어. 근데 너한테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촬영이 너희들 활동 끝나고 잡혀 있어서 휴식기에 연기 경험 쌓으면 딱 맞거든.”
“난 형이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강준이 흔치 않게 내게 욕심을 드러냈다.
“지금 당장 결정하긴 좀 뭐하고 시나리오 같은 거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
“그럼 보고 결정할게요.”
“그래. 그럼 뽑아서 줄게. 다른 것들도 한 번 봐봐.”
웹드라마라….
생각지 못한 분야에 대한 도전인지라 쉽게 마음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왕자님이라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학교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촬영 배경은 학교가 될 거다.
거기에 ‘왕자’까지 추가 되어 있다.
‘분명 대사가 엄청 오글거릴 거야.’
가뜩이나 연기도 제대로 못하는데, 오글거리는 대사를 참아가며 연기를 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촬영이 될 게 분명했다.
‘준이는 이 제목을 보고도 정말 괜찮은 건가?’
매니저 누나의 조언에 따라 웹드라마 연기 이외의 스케줄 4개를 선정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단가가 센 화장품 광고다.
연예인들이 CF로 많은 돈을 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진짜 얼굴이 좀 알려지기 시작하니 단가가 쑥쑥 올라갔다.
애들이 옆에 없었으면 매니저 누나에게 이만큼 받아도 되는 거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개인 활동에 대한 부분은 좀 예민하지.’
대놓고 얘기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금액적인 부분 때문이다.
허니 엔터에서는 개인 활동에 대한 금액을 멤버와 나누지 않고 당사자에게 배분하고 있다.
문제는 인기의 정도에 따라 멤버의 몸값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A팀의 a군은 몸값이 1억인데 b군은 5천밖에 되지 않았을 때.
처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a군 몸값이 2억이 되고 5억이 되는데 본인의 몸값은 여전히 5천이라면.
‘질투를 할 수밖에 없지.’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갈 때조차도 마음이 다른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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