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01화 (101/849)

〈 101화 〉 #16. 우학왕 (1)

* * *

웹 드라마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 제작사.

“이거 정말 시작 하는 거에요?”

“섭외도 다 됐는데 뭐.”

“…진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네요. 쩝, 나도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에헤이! 작가님 귀에 그 소리 들어가면 큰일 난다. 입 조심 해라. 그리고 대본이 나쁘지 않잖아.”

“생 초보 작가에 생 초보 감독인데요? 아니, 무슨 자신감으로 주연에다 아이돌을 박는데요? 적어도 연기 공부한 연기자들로 섭외를 했었어야죠. 망하려고 작정한 거 맞죠?”

“그래도 제작비는 빵빵하잖아. 작가 마누라가 투자해서.”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를 쓴 작가의 아내가 거액의 투자를 하며 웹 드라마를 제작하도록 청탁을 했고, 돈을 마다 할 이유가 없는 지라 제작이 시작 됐다.

의외로 시나리오가 나쁘지 않아 초반에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문제가 시작 된 건 감독이 낙하산으로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감독은 작가의 누나였다.

감독은 자신의 권한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영상미에 미친 감독이 ‘아이돌’을 섭외해서 카메라에 담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투자자도 자기 편, 작가도 자기 편.

감독이 날뛰기 참 좋은 환경이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얘네들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돌이잖아요.”

“얼굴로는 걔가 요즘 배우보다 더 핫해. 내가 봐도 비주얼에선 할 말이 없더라.”

“설정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죠!!”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감독한테 가서 따져봐라. 나도 답답해 죽겠으니까.”

“엑?! 어떻게 그래요? 직장에서 해고당할 일 있어요?”

“못하겠으면 그냥 까라는 대로 까! 네가 투덜대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다고 촬영이 더 잘 되냐? 아니면 이미 섭외 완료 된 게 바뀌기라도 해?”

“…….”

선배의 냉정한 말에 제작사 소속 직원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캐스팅 돼서 온 애들한테 괜히 강짜 부리지 마라. 네가 그런다고 드라마 더 잘 되는 거 아니니까. 네 기분 상한 거 풀자고 분위기 흩트리지 말란 뜻이야. 알겠어?”

“…네.”

“대답이 영 시원찮다?”

“알겠어요. 알아 들었다구요!”

“쯧쯧쯧! 저렇게 철이 없어서야.”

감독이 되기 위해 제작사에 들어온 녀석이다.

저 녀석이 강짜를 부리는 이유도 잘 안다.

투자자의 입김이 아니었으면 다음 웹 드라마 제작의 감독은 저 녀석이었을 테니까.

자신의 아래에서 조감독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고, 뛰어난 재능 덕분에 실력도 좋았다.

다음 작품에 입봉 시키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드디어 입봉한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는데 그게 나가리가 됐으니 입이 저렇게 나올 수밖에. 그래도 어쩌겠냐. 이게 제작사의 현실인 걸.’

이번 촬영이 망한다 해도 제작사 쪽에는 손해가 없었다.

투자자가 리스크를 모두 담당하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투자자는 자신의 남편이 촬영 하는 내내 기 죽지 않고 일을 하기를 바랐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해 뭔들 못하겠나!

그리고 그 과한 사랑이 웹 드라마를 망치고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신인 작감이라는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치들도 한 번 제대로 당해봐야 이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어디 이번에 한 번 마음껏 날뛰어 보고 뼈저리게 후회해보기를.

이 바닥이 얼마나 버티기 힘든 곳인데 투자자 하나 잘 물어서 끼어들려고 한단 말인가?

때문에 그녀는 일부러 문제가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지 않고 방치했다.

이미 망할 것을 알고 시작하는 제작이다.

투자자를 배경에 둔 탓에 콧대가 높아진 작가와 감독의 기를 꺾으려면 현실을 직접 경험해주는 것만큼 위력적인 게 없었다.

“얘네들은 운이 좋다고 봐야 하나 나쁘다고 봐야 하나?”

경험이 아예 없는 신인이니 망해도 되는 작품에 들어오는 것을 ‘행운’으로 칠 수 있는 거다.

이번 작품은 작가와 감독에게도 뼈아픈 경험이겠지만, 배우에게도 큰 경험이 될 것이다.

“저희 왔어요~”

“한 감독님, 계셨네요.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어어~ 그래. 왔어? 든든하게 국밥 말아 먹었지.”

일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집 밖 공원에 산책 나온 것 마냥 화사한 옷을 입고 나타난 최희민 작가와 최영지 감독.

고기라도 먹고 왔는지 옷에서 고기 냄새가 풀풀 났다.

기왕 먹을 거면 불러서 같이 먹지 사람이 참 야박하다.

‘이 나이에 젊은 놈들 비위까지 맞춰야 하다니. 환장할 노릇이군.’

속으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할 일이었다.

“소식 듣고 왔어요. 캐스팅 됐다면서요!”

“최 작가 대본이 워낙 좋아서 그런가? 바로 하겠다고 하더라고.”

“거봐, 누나! 내가 걱정 할 필요 없다고 했지?”

“와~ 그럼 진짜 진해솔이 내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가요? 실물이 그렇게 대박이라던데!”

“…아마 그렇게 되겠지. 같은 그룹 멤버인 강준도 출연하겠다고 확답을 받았다.”

“시발, 빨리 촬영 하고 싶은데. 촬영 준비는 언제 됩니까?”

최영지 감독의 말에 황당해서 순간 말이 나오질 않았다.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의 감독은 자신이 아니라 최영지 감독이다.

그런데 촬영 준비는 언제 되는 거냐며 자신에게 징징대고 있었다.

투자자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저년의 태도는 궂은일은 자신에게 미루고 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거였다.

“어이구~ 언제부터 내가 최작가 작품 감독이었어?”

“예? 뭔 소리에요. 당연히 제가 감독이죠.”

“근데 왜 나한테 촬영 준비 언제 되냐고 물어? 착각할 뻔했네.”

능글능글하게 웃으면서 시치미를 뚝 뗐다.

최영지 감독의 얼굴이 파삭 구겨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 이번이 입봉이잖아요. 한감독님이 신경 써주시겠다고 했고요.”

“신경 써줬지! 엄청 써줬지! 내 스태프들 다 빌려줬잖아. 조감독도 빌려줬고. 여기서 더 나가라고? 그러다가 이 작품 나한테 홀랑 뺏기면 어쩌려고 그런 순진한 소릴 해?”

“내 동생이 쓴 작품인데 그걸 왜 한 감독님한테 뺏겨요! 메가폰 잡은 건 나에요!”

“허허허! 누가 뭐랬나. 아직 자네 작품인 거 맞아.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야지. 잘 나온 동생 작품 망칠 거야?”

한감독의 능글맞은 말에 최희민 작가의 눈초리가 뾰족해진다.

다만 그 뾰족한 눈초리는 한감독뿐만 아니라 최영지 감독에게까지 향했다.

“뭐하자는 거야, 누나?”

“어?”

“입봉작이면 더 열심히 해서 체크를 했었어야지! 한 감독님한테 다 미루기만 하려고? 이러다가 내 작품 망치면 누나가 책임 질 거야?”

“야, 감독이 그런 구질구질한 것까지 해야 돼?”

“다른 감독은 다 그렇게 하잖아. 누나는 감독 아니야?”

“나는 다른 감독들이랑 상황이 다르지! 우린 투자자를 데려왔잖아. 그러면 이 정도는 제작사 쪽에서 당연히 배려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최영지 감독은 개새끼였고, 최희민 작가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만만치 않은 무개념이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한감독님, 우리 누나가 그런 잡일까지 꼭 해야 할까요?”

‘시발, 그게 왜 잡일이야. 영화 만드는 일이지!!’

그냥 고혈압으로 뒷목 잡고 쓰러지고 싶다.

“그, 촬영 준비를 하는 게 잡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촬영지 답사하면서 어떻게 찍을지 구상하고, 출연진 뽑으면서….”

“어머, 누가 그런 걸 안 하겠대요? 출연진이야 당연히 제가 뽑아야죠. 남은 역할들 오디션 봐서 뽑아요. 아직 여주가 남았죠?”

“대사가 몇 개 없지만 단역도 뽑아야지.”

“그건 감독님이 알아서 뽑아줘요. 전 여주만 신경 쓸래요. 여주는 연기력을 깐깐하게 따져서 뽑을 거에요. 아니지? 진해솔이랑 강준이면 영상미는 충분히 잡은 것 같으니까 여주를 못 생긴 애로 뽑죠. 대신 연기 실력은 죽여주는 애로.”

“…그래? 참 의외네.”

한감독이 그렇게 말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남주들을 얼굴만 보고 뽑기에 외모에 한이 맺혀서 저러나 싶었는데 아니었나?’

최희민 작가는 제법 잘 생겼다.

연예계 활동을 할 만큼은 아니어도 일반인치고 상위에 속하는 얼굴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투자금을 턱턱 줄 만한 능력 있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었던 거고.

반면, 같은 피를 가진 최영지 감독은 얼굴이 좀 못생겼다.

동생은 저렇게 잘 생겼는데 넌 얼굴이 왜 그래? 라는 말을 제법 들어왔을 것 같은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가?

캐스팅하는데 오로지 ‘얼굴’만 외치던 최영지 감독이었다.

다만 그 사람 환장 하게 하는 고집도 남자만 해당하지 여자 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나! 여주인공을 못생긴 애로 뽑겠다구? 싫어! 예쁜 여자로 뽑아!”

“야, 원래 이런 거는 현실성이 좀 필요해. 남자 주인공이 판타지적이면, 여자는 대비 되게 현실적으로 가야 보는 사람들이 이입을 할 수 있다고.”

“이입?”

“그래, 보다보면 자기가 여주 같은 거지. 막 자기 주변에 판타지스러운 일이 진짜 일어날 것 같은 망상에 빠지는 거야. 병신 같이 말이야.”

잘 생긴 남자 3명이 평범한 여자한테 관심을 준다?

그딴 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최영지 감독은 현실성이 없기에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를 볼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과한 판타지는 몰입감을 떨어트리기에 여주인공에게 현실감이라는 MSG를 팍팍 뿌려놓고서 말이다.

한감독은 최영지 감독의 말에 미간을 팍 찌푸렸다.

‘왜 하늘은 저런 년한테 인성질과 실력을 함께 주셨단 말인가!!’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며 도와주고 있는데도 은근히 날카로운 면이 있어서 드라마의 중요 핵심을 빼놓지를 않는다.

방금도 최영지 감독이 했던 말을 듣고 한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최희민 작가도 대본을 잘 썼지. 남매가 재능충인가?’

열 받는다.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단 말인가?

한감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망하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고사를 지내고 있으나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는 의외로 번지르르한 겉모습을 유지한 채 유유자적 항해 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 ? ?

“선물이 또 들어왔어?”

“응.”

“형 팬이 진짜 많긴 한가 보다. 형 앞 보이긴 해?”

“안 보여. 좀 거들어줘. 그리고 내 팬이 많은 게 아니야.이거 다 한 사람한테서 왔대.”

숙소에 들어올 때 회사에 잠깐 들리라고 해서 갔더니 나에게 선물더미 한 보따리를 내어줬다.

놀랍게도 이 선물들 모두가 한 사람으로부터 왔단다.

“히익!이게 전부 다? 그게 더 놀라운데.”

“실장님 말로는 아마 차 선물해줬던 그 팬이 보낸 게 아닌가 싶다고 하시더라.”

차를 선물한 팬은 아무래도 끝까지 나타나지 않을 속셈인지 회사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엉뚱하게 사기 치려는 목적으로 사칭 전화를 건 사람들이 나왔을 뿐.

차를 가져가지 않고 오히려 내게 소소한 금액의 선물을 뭉텅이로 안기고 있었다.

“형 선물 뜯는 거 구경해도 돼?”

“해도 돼. 보고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에이, 형 팬이 주신 건데 내가 함부로 쓸 순 없지.”

“어차피 숙소에 둘 거니까, 공용으로 쓰고 있다고 하면 돼지.”

이걸 언제 다 까나 했는데, 다행히 멤버들이 내 선물에 관심을 보여 얘네들을 부려 먹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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