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02화 (102/849)

〈 102화 〉 #16. 우학왕 (2)

* * *

“고가의 선물은 안 된다고 하니까 양으로 승부하려고 했나봐.”

“근데 양으로 승부한다고 하기엔 이것들도 가격대가 만만치 않은데?”

고가의 옷이 안 된다는 말을 의식했는지 명품은 아니었지만 30만원대가 훌쩍 넘는 의류들과 100만원 대의 전자 기기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헉! 이번에 새로 나온 게임기!! 엄청 갖고 싶었는데!”

한참 사고 싶은 것들 많을 나이대의 멤버다 보니 점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게임기, 핸드폰, 시계, 향수, 의류, 화장품, 지갑, 가방 등등.

하나씩 선물한 것도 아니다.

취향을 알고 싶다는 듯 여러 가지 색과 디자인을 골라서 보냈다.

그렇다 보니 이걸 나 혼자 쓰라고 보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 여기 편지 있어!”

“어디어디? 형형! 읽어봐.”

“오오­! 드디어 차 주인님을 알게 되는 건가?”

그리고 선물 무더기에서 발견 된 편지 하나.

나는 멤버들의 재촉에 편지를 꺼내 읽었다.

[부담 갖지 말고 써주기를 바랍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여러 개를 동봉합니다. 남은 것은 주변에 나누어줘도 됩니다. 다만 다른 뜻은 없는 순수한 응원의 의미이니 내 정성을 너무 사양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팬 k가­]

“와~ 대인배다.”

“정말 차를 줬던 그 사람인가봐. 그치, 형?”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오늘 회사에서 가져 온 선물의 목록을 전부 다 한다면 몇 천은 훌쩍 넘어갈 가격이었다.

“형, 받을 거에요?”

“그러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너무 비싼 건 안 받는다고 하니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물건들을 늘려서 보낼 줄이야.

이것까지 안 받으면 다른 팬들의 선물을 받는데 문제가 된다.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른 멤버들도 고가의 선물을 거절하는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선물을 거절하는 게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일이었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멤버들의 표정을 보니 이번 선물까지 거절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선물은 받는 걸로 해야지 어쩌겠어. 이미 여기까지 가져왔고, 다 뜯어버리기까지 했는데.”

“오오오!!”

“일단 이거랑 이거랑 이거, 이거, 이거는 내가 쓸게. 나머지는 너희들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가. 보다시피 편지에 나눠도 된다고 했으니까 상관없겠지. 아! 그리고 sns에 자랑하는 건 안 된다. 알지?”

“알지!”

“해솔이 형도 은근 매니저 누나과야. 잔소리가 많아.”

“어쭈? 안 준다, 남은규?”

“엇! 치사하게!! 저기서 무릎 꿇고 있을까요, 형?”

잽싸게 태도를 바꾼 남은규의 어깨를 퍽 한 대 쳐주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편지를 다시 한 번 펼쳐서 확인했다.

‘흠, 이렇게 말하면 순진하게 믿을 거라고 생각했나?’

의도 없는 순수한 응원의 표시라고?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남자가 여자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주는 거라며 선물을 받으라고 한다.

그것도 제법 비싼 가격대의 선물을 말이다.

‘개소리지.’

들꽃 하나를 주려고 한다 해도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없다.

하물며 돈을 썼다?

아무리 돈이 숫자놀음에 불과 할 정도로 많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는 거다. 다만 아직 그걸 티낼 생각은 없는 듯 했고 말이다.

그걸 다 알면서도 두 번째로 온 선물을 받아들인 것은 거절할 시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런 비싼 차를 척척 구매해서 줄 정도라면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일 터.

‘함부로 밉보이고 다니면 안 될 시기야. 차라리 지금은 수작질에 좀 당해주는 게 나아.’

나 또한 사람인지라 공짜로 받는 최신식 전자 기기들이나 질 좋은 의류, 시계, 가방, 지갑들이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더불어 현재의 내 지갑으로 이런 것들을 사지 못할 것도 없었다.

감당 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선물로 받아도 괜찮다는 기준을 정해두었으니 그대로 행한 것이었다.

다만 그 팬의 관심이 어떤 식으로 변질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 ? ?

“…올리는 게 낫나?”

준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해서 실력을 늘린다고 말했지만, 치트키를 옆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치트키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갑자기 실력이 늘어버리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다.

특히 나보다 연기에 훨씬 진심인 준이의 입장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었다.

실력이 부족한 나를 가르쳐주겠다며 자기 시간을 할애해줬는데, 정작 내 연기 실력이 본인을 뛰어넘어 버린다면?

‘내가 생각해도 재수 없을 것 같은데.’

멤버들간의 관계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직 다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욱하는 면들이 있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다치는 게 아이들인 법.

‘딜레마야. 딜레마.’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결심을 하고 상태창을 켰다.

현재 내 주머니에 있는 코인은 [보유 코인 : 430(8,920)] 이었다.

포니에게 갚을 코인 4,000이 있기에 저기서 실제로 내가 가진 코인은 430(4,920)이 된다.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지만, 상품권 코인으로 포니에게 빌린 코인을 갚을 수가 있었다.

나한테나 사용 제한이 되어 있는 거지, 포니에겐 미션을 통해 번 코인이나 섹스를 통해 번 코인이나 모두 같은 코인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미션을 하면 뭐하나, 버는 족족 쓰이는데.’

처음에 호기롭게 11만 코인을 모을 거라고 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

야금야금 쓰다 보니 코인이 모이기는커녕 할 수 있는 미션 목록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령 운동 미션 같은 경우는 쉬운 수준의 것들은 대부분 다 깨서 없는 상태였다.

미션이 계속 갱신 되는 게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430코인에서 일단 30번만 돌려볼까?’

30번 정도라면 낮은 연기 능력치를 어느 정도 올릴 수 있긴 할 거다.

다만 그 정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극적인 효과를 보이진 않을 터.

나는 오랜만에 포니를 불렀다.

“포니!!!! 포니!!!!”

[(; `д´) 아잇! 왜 자꾸 불러?!]

“왜 자꾸 부르냐니? 나 너 되게 오랜만에 부른 건데?”

[또 무슨 음흉한 짓을 하려고?]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빚 갚으려고 온 건데도?”

[그런 거면 진작 말했어야지! 당장 내놔.]

“이자도 따박따박 따져서 달마다 가져가놓고 빚 갚는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하네.”

[네가 요즘 미션 코인으로 살맛이 좀 나나본데, 4천 코인이 결코 작은 게 아니거든?]

“4천 코인이 작은 게 아니면 상점 물품 금액은 왜 그 따위들인 거야?”

1천 코인이 가장 작은 단위일 정도로 상품들의 가격은 대단히 비싸다.

물론 그 값을 하는 물건들이라는 건 알지만, 내가 아닌 포니조차도 1천 코인에 벌벌 떨 정도라면 도대체 저 물건들은 누가 사는 건가 싶다.

[…너나 나나 뭐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고. 넌 지금 복에 겨운 혜택을 받고 있어. 고작 저딴 미션들로 코인을 저만큼 얻을 수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또 여자들 임신시키라는 소리야?”

[그러라고 이런 혜택들을 주는 거라는 것만 알아둬. 네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회수해갈지도 몰라. 그러니가 정신 차리고 여자들 많이 만나고 다니라고. 다음에 또 임신을 시키면 더 좋은 혜택을 받게 될 거야.]

…꽤 무서운 협박이다.

더불어 당근도 제시하는 게 내게 이 말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이 치트키 능력도 저 녀석의 상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회수해 갈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 소린 지겨우니까 그만하고, 이거 코인 능력 가챠 돌리는 거 말이야. 좀 묶어서 돌릴 수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도 30코인으로 능력치 상승을 30번 돌려야 하는데, 너무 불편하잖아.”

요즘 게임도 10번을 한 번에 뽑을 수 있게 나오곤 한다.

그런데 얘는 무조건 능력치를 올리려면 1코인에 1번씩이다.

한 번 돌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그 조차도 줄일 수 있으면 줄이고 싶었다.

만약 어떤 능력치를 100번 올리고 싶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³₃ 지금 고작 그거 해달라고 날 불렀던 거였어?]

“나는 이게 엄청 중요했는데? 그리고 빌렸던 것도 갚는다니깐. 너 빌린 코인 가져가기 싫어?”

[빨리 내놔! 내 코인!]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봤자 얘는 말풍선밖에 안 나와서 하나도 무섭지 않다.

다만 이 녀석을 다루는 상사는 확실히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지구에 있던 나를 자기들 멋대로 날치기 계약을 해서 이곳에 가져다 둔 놈들이다.

세상의 멸망을 관리한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인간보다는 훨씬 상위의 존재일 터.

‘포니는 애가 좀 만만해서 깝칠 수 있지만, 진짜 힘 있는 놈이 오면 찍소리도 못할 거야.’

포니조차도 수시로 자기 상사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쳤다.

아직까지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건의사항들은 날 부르지 말고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

“고객센터? 그런 것도 있어?”

[당연히 있지! 없을 리가 없잖아! 거기다가 건의 사항으로 올려. 그럼 며칠 안에 수정해줄 거야.]

“도통 상태창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상태창의 이것저것을 뒤져보고 다녀서 알 만큼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상태창이라는 거 너희가 다루는 거야?”

[아니, 상태창을 제조, 관리하는 기관은 따로 있…아씨, 그걸 네가 왜 궁금해 하는데?!]

“그냥 물어 본 거야. 별 생각 없이 궁금해서.”

포니는 의심스럽다는 듯 잠시 나를 째려봤으나 시치미를 뚝 뗐다.

증거가 없으니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고 치지 말고 잘 해. 알았지?]

“귀찮게 하지 말고 이제 가.”

볼 일이 끝났으니 더 이상 저 괘씸한 모기 녀석과 대거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포니는 한참 투덜대다가 뿅하고 사라졌다.

아마 내가 4천 코인을 갚지 않았으면 가지 않고 남아서 내게 잔소리를 한참동안 하고 갔을 거다.

나는 포니가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약 1시간 정도가 흐른 후에 다시 상태창을 켰다.

이렇게까지 조심하는 이유가 있다.

‘상태창을 관리하는 게 포니 쪽과 얽히지 않은 기관이었을 줄이야.’

그 말을 말풍선에서 읽은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내 심증은 있는데 증거가 없어서 잡지 못했던 부당한 오류.

아마 내 상태창에 그런 수작질을 부린 건 포니의 상사가 내린 지시 사항이었을 거다.

‘주작은 까발려야 인지상정 아니냐고.’

능력이 없다보니 이걸 까발려도 얻는 것보단 잃는 게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포니가 만만하다고 해서 위에 놈까지 만만한 건 아니니 말이다.

‘포니가 수수료로 수작질 부리려고 했던 것도 단 번에 알아차렸잖아. 걔만 보고 뻗대다간 골로 가지.’

포니가 껄끄러운 게 아니라 그 위에 있을 놈이 껄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의심이다.

다만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계속 당하고 살 생각은 없다.

그래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오늘 포니와의 대화에서 기회를 본 것 같았다.

‘나랑 얼굴 한 번 맞대지도 않은 놈들이 수작질을 부린 걸로 징계를 받건 말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바라는 건 조작 된 확률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는 확률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기만 해도 나에게는 큰 성과였다.

그러나 여태까진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고객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곧장 고객센터 창을 켜서 말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상태창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키보드까지 제공해주는 친절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음성 인식도 된다.

[한 가지 건의 사항과 버그 확인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일단 코인을 사용해서 능력치를 올리는 것을 한 번에 묶어서 할 수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건의사항을 적었고, 다음으로 현재 내게 적용 되어 있는 능력치 확률에 버그가 있는 것 같다는 제보도 적어넣었다.

‘상태창’ 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