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03화 (103/849)

〈 103화 〉 #16. 우학왕 (3)

* * *

“거기 감독님이 얼굴 보고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고 하시네.”

고객센터로부터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강준과 내가 수락했던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의 감독과 약속이 잡혔다.

만났을 때 연기를 보여 달라고 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강준과 나는 더욱 열심히 연기 연습을 해야 했다.

“어휴, 해솔아! 그게 아니지!! 너무 딱딱하잖아.”

“괜.찮.아? 많.이 놀.랐.겠.다.”

“아악!! 내 눈!! 그 얼굴 그렇게 쓸 거면 차라리 나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연기 트레이너 선생님의 절규.

나야 말로 한숨이 푹 쉬어지는 상황이다.

“아니, ‘괜찮아? 많이 놀랐겠다.’ 이 한 마디가 어려워? 그냥 평범하게 말하면 되잖아. 말하듯이 말이야. 평소에 네가 그렇게 기계처럼 딱딱 끊어서 읽진 않잖아. 어휴, 얘를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세우지? 진짜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데.”

고객센터에서 해결해주면 올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원래 연기 담당 트레이너 분이 디스를 잘 하는 분이기는 했지만 구석에서 킥킥 웃고 있는 강준이를 보니 내 연기가 좀 심각하긴 한가 보다.

“그리고 말도 말이지만, 대사 할 때 얼굴을 왜 그렇게 해?”

“저 또 그랬어요?”

대사를 하지 않을 때는 표정 연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대사를 할 때면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도 딱딱하게 뱉어지는 게 현재 내 고질적인 문제였다.

표정에만 집중했을 때는 나쁘지 않다.

그 부분은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칭찬 받았을 정도로 꾸준히 발전했다.

문제는 ‘대사’.

“너 연기에 재능 없어.”

“알아요, 저도.”

“얼굴이 아무리 잘 생겼어도 이 정도면 못 쓴다.”

시발.

내가 코인 쓰고 말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살짝 표정이 굳었던 게 강준에게 보였던 걸까?

녀석이 내 뒤를 쪼르르 쫓아오려고 한다.

지금 코인 쓰러 가는 건데, 네가 쫓아오면 곤란하다고.

“너는 왜?”

“어…괜찮아, 형?”

“괜찮아. 내가 이런 말 듣는 거 하루 이틀이냐? 내가 봐도 대사 칠 때 답 없긴 해. 얼마 없는 대사라서 대충 해도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걸 눈치 챘나 봐. 춤이랑 노래 연습 하는 것처럼 독기를 가지고 연습해야겠어.”

“표정이 안 좋아서 마음 상한 건가 했어.”

“이 정도에 마음 상하면 아이돌 못했지.”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이쪽 바닥에서 활동하는 트레이너 선생들의 가스라이팅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연예계 바닥이 험하니까 튼튼해지라고 갈구는 건지, 아니면 본인 성격이 더러워서 그러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연습실 가 있어. 나 진짜 볼 일 보러 가는 거니까.”

“알았어.”

강준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연습실로 돌아갔다.

나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 볼 일을 보고 난 후 상태창을 켰다.

“어? 뭐야, 언제 왔대.”

놀랍게도 고객센터로부터 문의 넣은 것에 답변이 와 있었다!

3일이나 걸릴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느린 거 아닌가 싶다.

[안녕하십니까. 시스템 가이아입니다.

고객님께서 문의해주신 내용을 점검한 결과 특이 사항이 발견 되어 다소 시간이 오래 걸렸음을 사과드립니다.

고객님께서 주신 문의 중 첫 번째 문의는 이미 서비스 중인 내용으로 고객님의 단말기에 업데이트가 적용 되지 않아 생긴 오류로 보입니다.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설정­>시스템 및 보안­>업데이트)에 들어가셔서 업데이트 부분에 항시 체크로 설정을 변경해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문의 사항인 능력치 상승 부분에는 고객님께서 문의하셨던 것처럼 오류가 확인 되었습니다.

다만 그 오류는 저희 쪽 문제가 아닌 단말기 자체의 불법 개조로 인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단말기 불법 개조는 차원 1계 형사법 제 14조를 어기는 범죄입니다.

다만 문의 해주신 내용으로 보아 고객님께서 단말기를 불법 개조하진 않았을 거라 사려 됩니다.

때문에 저희는 고객님의 단말기 구매 경로를 추적했고, 그 결과 비리에 연관 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수사 협조를 위해 고객님께서 소지하고 계신 상태창 단말기를 제출해주신다면, 최신형 AI타입 로즈벨 상태창 단말기를 보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고객님의 원만하고 쾌적한 이용을 위해…]

“?”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데 이거 뭔가 조땐 것 같다는 느낌이 빡­! 하고 든다.

내가 아니라 이 단말기를 갖고 있었던 포니의 상층부를 말하는 거다.

심증으로만 갖고 있던 의문이 진실임이 밝혀진 상황에서 이걸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이는 포니의 상층부 쪽임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떠올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제 신원을 확실히 보호 해주신다면 단말기를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보복이 우려됩니다.]

이번 일이 나와 연관 됐다는 게 밝혀져선 안 됐다.

­GM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고객센터 문의에 새 글을 적었는데 의외로 너무도 빠르게 그쪽에서 답변이 왔다.

고객센터 답변 글로 온 게 아니라 개인 메시지로 말이다.

“놀랍네.”

[고객님의 답변과 협조 감사드립니다. 고객님이 원하신 대로 철저하게 신분이 지켜지실 겁니다. 단말기에 저장 되어 있는 개인 정보는 오로지 저희들만 확인할 수 있고, 고객님의 동의 없이 다른 기관에 제공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저희는 단말기 불법 개조가 이번만의 사건이 아닐 것이라 추측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객님의 문의는 조사의 시초가 되었을 뿐, 재판에서 제공 될 증거는 다른 증거들을 통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익명에 대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이번 사건으로 고객님께 피해가 왔을 경우 저희 쪽에서 200% 보상하겠습니다.]

GM이라는 이의 말을 들어 보니 지금 내가 끼어든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겠구나 싶을 정도로 스노우 볼이 굴러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열심히 굴러가는 스노우 볼을 보며 나는 팝콘이나 먹으면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이 상태창을 주면 저쪽에서 최신용 상태창을 준다고 했으니 나한테는 이득이네. 여태까지 조작 되어 있던 확률도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 이득이고, 기존 상태창보다 더 성능이 좋을 건 말 할 필요도 없는 일.’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도 포니의 상부층이 조땐 거지, 나에게는 손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내 신분이 철저하게 익명으로 가려졌을 때의 이야기이다.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협조를 안하는 것보단 나은 일이야.’

다만 걔네들 입장에서 나는 신분이 없는 무연고자다.

과연 해주겠다는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피해가 왔을 때 200% 보상을 해준다고 했던 말을 순진하게 믿고 곧장 단말기를 보내는 것도 좀 껄끄러웠다.

‘저쪽에다가 먼저 신형을 달라고 해야겠어.’

보상을 먼저 받으면 나로서는 걱정 되는 부분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더욱이 저쪽과 포니의 상층부가 서로 싸움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이득인 상황이 된다.

‘이번 일로 바빠지면 나에 대한 일도 묻힐 수밖에 없어지니까.’

포니가 나를 볼 때마다 쪼아대고 있는 수준은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상층부가 나서서 나를 압박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건 곤란하다.

정체 모를 그것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부디 이번 일로 아주아주 곤란해져서 나에 대한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GM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만약 말씀하신대로 보상을 해주신다면 저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언제쯤 시간 되십니까? 소환을 통해 단말기를 회수하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협조를 해주신다면 추가로 소정의 코인 보상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소환이 뭐지? 직거래 하고 싶다는 말인가?”

소환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말기를 무척 회수하고 싶은 모양이니 대충 내 단말기를 지금 당장 가져가고 싶다는 뜻으로 보였다.

“지금 당장은 안 되는데.”

[일하는 중이라 바쁜데요.]

더불어 이들과 직접 접촉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

나를 ‘포니’라고 생각할 텐데, 종족이 다른 인간이 떡하니 나타나면 이상하게 여길 게 분명하다.

만나는 것 자체가 내 신분에 대한 익명을 유지하는데 위험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단말기는 새로운 것을 먼저 보내주면 확인 후에 반납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자 상대쪽에서 몸이 달았는지 재차 설득을 시도했다.

­GM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닙니다. 10분만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최신형 AI 상태창 단말기는 이미 준비 되어 있습니다. 익명을 원하셔서 특별히 소환 서비스를 준비해뒀습니다. 물건만 깔끔하게 교환하는 것이니 문제없을 겁니다.]

“엄청 필요한가 보네.”

[모든 비용은 저희 쪽에서 부담할 겁니다. 좌표만 불러주십시오.]

좌표?

또 뭔지 모르는 내용이 나왔다.

찾느라 시간을 쓰는 것보다 쿨하게 물어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표 확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좌표 확인은 상태창의…….]

다행스럽게도 내가 좌표 확인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업데이트도 안 해놓고 사는데 그 정도 기능 모른다고 이상하게 여길 건 없긴 하다.

[현재 빠른 처리를 위해 직원이 상시 대기 중입니다. 전송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고객님! 신형 상품 받아보시고, 확인 후에 구형 단말기는 보낸 상자 안에 넣으시면 역소환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좌표 알려드리죠.]

상자만 온다는데 내가 계속 뻐팅길 이유가 없었다.

상태창으로 확인한 좌표를 불러주자 얼마 후 허공에 빛이 뿜뿜­! 파앗­! 하고 터져 나왔다.

나는 몇 번의 상품 구매 경험을 통해 저 빛 안에 물건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곧장 손을 들어올렸다.

툭­!

기다렸다는 듯이 빛이 사라지고, 내 두 손바닥에 묵직한 상자 하나가 놓여졌다.

그 상자엔 버튼이 하나 있었는데 누가 봐도 거길 누르라는 듯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변기 커버를 내린 뒤 그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상자가 자연스럽게 열리면서 안에 있는 물건이 시야에 들어온다.

‘엄청 작네?’

정말 사진으로 봤던 신형 상태창이 맞다.

그 가격을 확인 안 해볼 수 없다.

“어우, 미쳤다.”

요즘 한참 선전하고 있는 상품이다.

상점 메인에 걸려 있는데 나로서는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가격이라서 머릿속에 넣어두지도 않고 있었다.

‘무려 11,990,000 코인이니까.’

이게 정말 이렇게 쉽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줄 몰랐다.

그림의 떡으로만 생각했는데.

‘근데 사실 이걸 내가 쓰는 것도 좀 그래. 포니가 보면 분명 이상하게 여길 거란 말이지.’

상식적으로 내가 이런 신형 상태창을 얻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내게 이 신형 상태창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끼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구형 상태창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그냥 팔아버릴까?’

신형을 팔고 구형을 다시 사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다.

물론 기능이야 신형이 압도적으로 좋을 거다.

하지만 저 가격을 지불하고 쓸 만큼 내 사정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차라리 저걸 팔아서 내 상황에 맞는 물건들을 사는 게 현재 나에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포니 녀석 신분도 빌려서 쓰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상태창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려면 ‘신분’이 필요할 거다.

‘포니 녀석이 신형을 보고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서 빼앗으려고 할 거야. 가뜩이나 욕심도 많은 녀석이잖아.’

이미 한 번 범죄를 저지르려다 걸린 녀석이다.

믿을 수 없는 놈이라는 걸 아는데, 금덩이를 들고 있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구형을 중고로 사면 돈을 더 아낄 수 있을 거야. 남은 차액으로 내가 원하는 걸 사는 거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개 이득인 부분이다.

생각 정리를 끝낸 나는 곧바로 행동했다.

신형이 담겨 있는 상자에 구형을 집어넣으면 역소환 된다고 했기에 일단 구형에 끼워져 있는 ‘아이디 카드’를 빼냈다.

단말기를 포맷 시키면 정보를 추적하기가 힘들다고 했기에 쓰던 그대로 내어주어야 했다.

포맷하지 않으면 개인 정보가 유출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아이디 카드’라는 게 있는데, 이 카드를 단말기에서 빼내면 언제든 다른 곳에다가 연동시킬 수가 있었다.

더욱이 개인 정보는 모두 ‘아이디 카드’에 기록 되어 있어서 이게 없으면 개인 정보를 추적할 수가 없다고 한다.

‘상태창을 알아보면서 얻은 쓸데없는 지식이었는데 이걸 여기다가 써먹네.’

신형 상태창이 제대로 왔음을 확인했기에 상자에 구형 상태창을 넣었다.

저쪽도 눈이 빠져라 단말기를 기다리고 있을 입장이 아닌가?

상자는 순식간에 빛에 휩싸이고 곧 감쪽같이 사라졌다.

‘구형이랑 얼마나 차이가 날까?’

신형을 판매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새 상태창을 켜보기는 해야 할 터.

신형 상태창은 손바닥 크기의 사과팟 케이스 같이 생겼기에 제법 정감이 갔다.

나는 호기심을 담아 네모난 신형 상태창의 전원을 버튼을 꾸욱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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