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06화 (106/849)

〈 106화 〉 #16. 우학왕 (6)

* * *

최영지 감독은 우리들을 데리고 고기집에 데려왔다.

삼겹살집도 아니고 무려 한우였다.

그녀는 같이 촬영 할 팀까지 불러와서는 우리를 소개시켜주고 회식을 주도했다.

“촬영 팀이 많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끼리 좀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해서 이렇게 회식을 계획했습니다. 우리 식구들 든든하게 먹고 더운 여름 잘 버티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우로 준비했습니다. 촬영 잘 부탁드린다는 뇌물이니까 배 터지도록 먹어도 됩니다. 대신 먹은 만큼 일 해주셔야 합니다. 아시죠?”

짝짝짝짝!

와아아!!!

““감독님 감사합니다!!””

“감독 언니 최고!”

“언니라고 부른 거 누구야?! 내가 언니인 거 맞아요?”

“푸하하하!”

“맛있는 거 사주면 다 언니인 거죠!!”

삼겹살 회식도 아니고 한우 회식이다 보니 스태프들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최영지 감독은 스태프들이 있는 자리를 고루고루 돌아다니며 얼굴 도장을 찍었다.

‘인싸네. 인싸야.’

예상하지 못한 고기 파티에 우리들은 냠냠 열심히 한우를 먹어댔다.

그리고 최영지 감독이 최희민 작가와 함께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왔다.

“다들 맛있게 먹고 있어요?”

“예. 이 집이 맛집인가 봐요. 고기가 맛있네요.”

“내가 또 센스있게 맛집으로 섭외했죠. 우리 해솔씨랑 강준씨 태호씨랑 민영씨까지 한 잔씩 받으시죠.”

최영지 감독이 우리들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다만.

“준이는 미성년자라서요. 사이다로 대체해도 괜찮을까요?”

“엇? 준이씨가 미성년자였어요?”

“19살이에요.”

“준이씨 얼굴에 흐르는 게 귀티만 있는 줄 알았더니 솜털도 있었네. 사이다도 오케이입니다. 자~ 다들 건배! 건배하는 잔은 무조건 원샷이 국룰인 거 아시죠?”

“누나! 술 권유 심하게 하지 마.”

“너야 말로 오자마자 해솔씨 옆에 딱 달라붙어서 뭐하는 짓이냐, 추하게?”

“친해지고 싶은 것도 죄야?!”

남매 관계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싸웠다.

문제는 지금 싸우고 있는 게 나 때문이라는 점이다.

‘부담스러우니까 제발 두 분끼리 붙어서 싸우시면 안 될까요?’

최희민 작가에게 결혼한 아내가 없었으면 게이일 거라고 오해했을 정도로 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나뿐만 아니라 강준에게도 호감이 제법 있다는 점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다.

‘아내도 있는 놈이 왜 이러는 거야?’

너무 다행스럽게도 그에겐 아내가 있어서 내 엉덩이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달라붙는 걸 보고 있자니 자꾸 팔이 불끈불끈 힘이 솟는다.

‘밀쳐버리고 싶네.’

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위해 술잔을 들어올렸다.

“술 마시죠. 건배 하신다면서요.”

“오! 맞다. 깜빡 할 뻔했어요. 자자, 다들 잔 들어요. 첫잔은 무조건 남김없이 마시는 겁니다. 아, 이거 말 했나? 암튼 다음부터는 강요 안 합니다. 시원하게 목구멍 씻어내는 거에요.”

준비를 끝내고 모두가 잔을 상에서 떼고 든 채 건배!를 외쳤다.

“““건배!”””

“크~”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쓰면서도 달았다.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어떻게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역시 술이 술을 부르는 법이지.’

시동이 제대로 걸린 탓에 술이 쭉쭉 끝을 모르고 들어갔다.

최영지 감독은 좋다며 나와 함께 페이스를 맞췄다.

아예 자리를 잡고 마시기 시작할 정도였다.

워낙 사기적인 육체라 그런지 해독력이 좋은 탓에 술도 잘 안 취하는 것 같았다.

“형, 술을 왜 이렇게 잘 마셔?”

“이 정도가 뭐 잘 마시는 거야. 그냥 입만 축인 거지.”

“…맙소사. 완전 술고래잖아.”

남자들에겐 술부심이라는 게 있는데, 나도 술부심 부리던 곳에서 온지라 알딸딸해지니 저절로 입이 열렸다.

“인마, 사내가 돼서 이 정도는 마셔줘야지. 너도 20살 되면 형이 술 가르쳐줄게. 딱 기다려.”

“아하하!! 해솔씨가 맞는 말 했네. 원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죠. 아~ 이 친구, 진짜 진국이네. 얼굴 보고 새침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술이 쎈 건 아닌지 얼굴이 빨갛게 익은 감독님이 웃음을 멈추지 못하며 내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우리 테이블에 왔을 때부터 취한 기색이 있기는 했다.

이미 여러 테이블을 거쳐서 온 탓이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고기와 술을 마시고 있던 강태호씨와 한민영씨에게도 두루두루 말을 시키며 최영지 감독은 친분을 쌓는데 집중했다.

???

강준이와 숙소에 들어오자 멤버들이 고기 냄새를 귀신같이 맡았는지 개떼로 빙의한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고기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는 녀석들을 피해 겨우겨우 몸을 씻고 거실로 나오자 강준이를 가운데 두고 멤버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라며 쪼고 있는 게 보였다.

“어휴.”

난 저기 끼지 말아야지.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우연이 녀석한테 다리를 붙잡혔다.

“악! 놔! 난 잘 거야.”

“어딜 도망가여!!! 빨리 이리 와서 오늘 일 좀 털어놔 봐요. 다들 궁금해서 난리였다고요.”

“쟤한테 들으면 되잖아!”

“나 버려? 형?”

“우리 팀은 노인 공경도 없냐? 나 술 마셔서 자야 돼. 알딸딸하다고.”

“허억! 형 술 마셨어요?”

“어, 맞아! 저 형 술 엄청 잘 마셔! 오늘 술 마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오오오오!!! 말해줘! 빨리빨리. 연기는 뭐라그래? 잘 했어? 칭찬은?”

아, 그러고 보니 연기!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정작 감독님과 작가님 모두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연기’를 요청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열심히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못 쓰게 된 상황이 됐다.

“감독님이 우리들 연기 실력엔 관심이 별로 없나 봐. 그쪽으론 얘기를 전혀 안 하시네.”

“드라마 찍는데 연기를 신경 안 쓴다고?”

“말 안 되는 소리 아니에요?”

“혹시 감독님 성격이 좀 별로야?”

“아니, 신인 감독이라 주눅 들어 있거나 동생 빽으로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거만할 줄 알았는데 둘 다 아니었어. 멀쩡한 사람하다 못해 좀 유능해보이기까지 하던데?”

강준이의 말에 멤버들이 다행이라며 박수를 짝짝 쳤다.

“분위기가 영 나쁘지 않았나 보네?”

“어. 너무 최악만 생각하고 있었나 싶더라. 거기다가 본인도 자기 상황을 알고 계셔.”

“으쌰으쌰를 몇 번이나 말하던지. 의욕이 가득하더라.”

“특히 그 부분은 나도 반성하게 되더라.”

“반성?”

“응. 주변에서 이번 웹드라마는 망할 게 분명하다고 해서 작품을 좀 가볍게 봤던 것 같아.”

준이가 감독님의 말을 듣고 반성을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할수록 더 독기 있게 노력해서 잘 된 작품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정도로 준비했으니까 괜찮겠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가르치느라 시간이 없어서 준비 못했던 건 아니고?”

“에이, 아니야. 내가 욕심이 있었으면 더 노력을 했겠지. 근데 이 정도 준비했으면 됐다는 생각 때문에 안 한 거였어.”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해보겠다며 준이가 의욕을 드러냈다.

동생 멤버가 저러니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같은 작품에 출연하니까 너무 실력이 부족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내가 욕을 먹으면 준이도 함께 먹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직접적으로 비교까지 들어가면? 그룹 분위기 망치기 딱 좋지.’

너무 잘할 필요까지도 없다.

더욱이 내 분량 자체가 얼굴마담 쪽에 가까웠기에 비교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

“이 형님은 술 때문에 알딸딸해서 이만 자야겠다. 나머지는 준이한테 들어.”

“여태까지 준이 형이 더 많이 떠들었는데!”

“반쯤 눈 감긴 거 보니까 진짜 술 취했나봐. 내버려두자.”

“그럴까?”

“준아!! 머리를 쥐어짜봐. 뭐 더 없어?”

“아! 상대 배우는 어땠어? 여주인공은?”

“어…여주인공은…….”

왁자지껄한 거실에서 드디어 벗어나 침대에 도착한 나는 대(大)자로 뻗어 휴식을 만끽했다.

‘어우, 힘들어.’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기분이 붕~붕~ 뜬다.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8]

“여덟 개나 왔네.”

하나씩 확인해보자.

일단 주아 누나가 가장 첫 번째로 문자를 보낸 사람이었다.

[오늘 작가, 감독님이랑 만나기로 한 날 맞지? 힘내! 잘 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연기 잘 했어? 작가랑 감독님한테 이쁨 받아야 촬영이 편할 텐데. 힘내고 끝나면 연락 줘.]

주아 누나는 오늘 내 스케줄의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늘 만남이 좋은 결말을 맞았기를 바라는 듯했고 말이다.

다른 문자들도 내용이 비슷했다.

아현이와 복순 누나 그리고 매니저 누나로부터 걱정 섞인 문자가 왔고, 가장 의외였던 것은 장모님으로부터 온 문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주아 누나한테 내가 오늘 뭐했는지 들으셨나보네.’

[잘 했고,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야.]

간단하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글귀였다.

역시 장모님인가!

다른 여성에게서 느끼지 못할 따듯한 모성애를 알려주는 여자가 바로 장모님이셨다.

‘보고 싶네.’

장모님과는 항상 주아 누나를 만나러 갈 때 겸사겸사 만나는 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아 누나가 잠들고 나서야 겨우 새벽이 되어 몰래 방으로 찾아가 밤을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못해줬는데도 장모님은 항상 날 따듯하게 맞아주셨어.’

이래서야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냔 말이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함이 없는 건 아닐 거다.

다만 딸아이의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는 점 때문에 장모님이 스스로를 위한 의견을 내지 못하고 계셨을 거다.

‘내가 진작 신경 썼어야 했는데.’

더욱이 장모님은 내가 했어야 하는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과연 주아 누나와 내가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건 모두 장모님이 계신 덕분인 것이다.

‘돈도 벌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염치없는 거지.’

장모님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이제부터 고민해봐야 할 일이었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코인은 현재 어마어마하게 많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에 많아지게 될 거다.

‘올려놓은 판매글에 반응이 왔으려나?’

산다는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 중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상태창을 켜서 판매글을 확인하니 댓글이 우수수 달려 있었다.

구형 상태창 단말기+@로 신형 AI 상태창 단말기를 판매한다고 했는데,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아래에 개인 쪽지로 들어 온 거래 요청은 무려 500건이나 됐다.

‘돈 많은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많은 쪽지 중에서 몇 개의 쪽지가 눈에 띈 덕분에 일일이 고르느라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구형 상태창의 자세한 스펙, 그리고 사진과 더불어 코인이 있다는 인증 사진까지 함께 보낸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거래를 하려면 이 정도 정성은 했었어야지.’

나는 그 중에서 구형 중 가장 최신형에 해당하는 제품과 더불어 +@인 코인을 가장 많이 제시한 쪽에 연락을 넣었다.

며칠 시간을 두어 신중하게 골랐고, 내 신형 AI를 사는 구매자 쪽에서 한참 애가 닳아 있는 탓에 유리하게 거래를 끝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신형을 갖고 있는데 구형이랑 바꾸겠다고 하는 놈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 올 대량의 코인을 떠올리며 신형 AI 상태창에 대한 소유욕을 꾹꾹 눌러 참았다.

‘잘 가라. AI야.’

잠깐이지만, 사랑했다! 크흑!

뜬금없이 얻은 행운은 그렇게 정을 쌓기도 전에 다른 이의 손아귀로 넘어가버렸다.

어쩐지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구형 상태창도 나쁘지 않기는 하지만, 매일 아침 나를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깨워주던 AI가 사라지니 영 적응이 안 되더라.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

AI를 팔아 챙긴 두둑한 코인이 AI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엄청난 숫자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유 코인 : 5,900,100 (5,020)]

“?”

거래를 했던 코인이 상품권 코인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코인 쪽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생각지 못한 대박이었다.

'버근 줄 알고 식겁했지. 근데 이건 미션으로 번 코인이 아니니까 당연히 이쪽으로 들어오는 게 정상이라고.'

여태까지 상품권 코인 쪽으로 들어오는 걸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내가 바보였을 뿐.

지금 이 대박은 아무 문제없는 정상적 처리가 맞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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