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08화 (108/849)

〈 108화 〉 #16. 우학왕 (8)

* * *

음료와 디저트를 먹고 카페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정화씨는 혹시 모른다며 한사코 내 근처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로 걸었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는 대신 그녀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침묵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녀도 알게 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다들 안 쳐다 보네.”

정화씨의 중얼거림을 예민하게 체크해낸 내가 한 걸음 훌쩍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교차시켜 깍지를 꼈다.

“앗!”

“거봐요, 아무도 안 본다니까요?”

“얘! 큰일 나. 사진 찍히면 어쩌려고!”

증거를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깍지를 끼고 다니는 것에 기겁을 하는 정화씨였다.

“마, 마스크라도 써. 응?”

“알았어요. 마스크 쓰면 손잡고 다니는 거 뭐라 하지 말아요. 알았죠?”

“응, 그럴게!!”

곤란한 아이를 달랜다는 듯 결국 나에게 마스크를 쓰게 만드신다.

마스크를 구매해서 얼굴에 쓰니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지 순순히 손을 내미셨다.

그녀도 나와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디저트 먹어서 아직 배는 안 고프시죠?”

“응.”

“그럼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될까요?”

“어디 가려고.”

“전시회요.”

주아 누나에게 물어봐서 알고 있다.

정화씨가 미술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는 것을.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그쪽과 관련 된 직업을 갖진 못했지만 꾸준히 개인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그래서 오늘 데이트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구경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는 걸로 계획을 짰다.

“파올로 전시회! 정말 여기 가는 거야?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설렘을 감추지 못한 정화씨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기뻐하고 있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덕분에 전시회를 계획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여기가 평이 좋더라고요.”

“파올로 작가님 그림 정말 좋아해. 팬이거든.”

“전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까 정화씨가 설명해주셔야 해요.”

“…으응.”

정화씨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도대체 이 여자를 누가 40대 후반으로 보겠냔 말이다.

피어싱을 낀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과거의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생각해보셨어요?”

“그거?”

“피어싱이요.”

“!!”

길을 걷던 정화씨가 손에 힘을 꽈악 쥐었다.

유두 피어싱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 가져왔는데….

“안 될 것 같아요?”

“그, 그거 엄청 아프다는데.”

코인을 주고 산 물건을 착용하는데 고통이나 부작용이 있을 리가!

그런 게 있으면 물건 환불도 가능한 상품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프지 않게 해드릴게요. 아!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진심으로 싫으면 거절하셔도 돼요.”

“…아프지 않으면 괜찮아.”

정화씨가 드디어 허락을 했다!

얼굴을 보니 싫은데 억지로 내 말을 들어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품에서 미리 사두었던 피어싱을 꺼내서 그녀의 손에 얹어주었다.

“따란~”

“설마…?”

“피어싱이에요.”

“맙소사, 이걸 벌써 사서 가지고 다녔던 거야?”

못 말리는 개구쟁이를 보는 듯.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길거리에서 이걸 주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좀 더 근사한 곳에서 줬어야 했는데 마음이 엄청 급해서요.”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주아 누나에게 반지를 선물하고, 당연하지만 누나는 정화씨에게 반지를 자랑했었다.

그때 아닌 척 했지만 부러워하는 정화씨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선물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봤다.

작은 상자를 열어 안에 든 피어싱을 확인한 정화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설마 진짜니?”

“그럼요.”

“저번에 주아한테 준 반지도 그렇고….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니? 아껴 써야지.”

“돈은 충분히 벌고 있어요.”

회사에서 투자해주는 금액이 만만치 않아서 아직 많이 벌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건 돈이 아니라 코인이었다.

“이건 너무 과한 선물이야.”

“제 첫 선물인데, 받아주시면 안 돼요?”

“…엄연히 첫 선물은 아니지.”

“네? 아…! 아하하!! 그러네요. 정말 첫 선물은 아니네요.”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이것저것 준 것들이 있기는 하다.

가령 목에 착용하는 방울이나 꼬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걸 ‘선물’이라며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종류가 성인 용품이다 보니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좋자고 준 거니까.’

그런데 그걸 정화씨가 진심으로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근데 그것들은 성인용품이잖아요. 더 귀하고 좋은 걸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드린 물건들은 정화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절 위해서 준 거라서요.”

“…….”

작게 속닥거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엄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정화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걸로 이것저것 잘 썼잖아요? 이젠 방울 소리만 들어도 정화씨가 생각나서 불끈불끈해질 정도에요. 그래서 선물로 치면 안 될 것 같아요. 선물이라는 건 주는 사람보단 받는 사람을 위한 물건이어야 하니까요.”

“그, 그런….”

“사실 제가 방금 드린 선물도 제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드린 거에요. 정화씨 가슴이 내거라는 표식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요.”

“!!”

정화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펑 터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 근사한 저녁을 먹고 호텔에 가서 끼워드릴게요.”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숨에 삼켜줄 자신이 있었다.

정화씨를 씹어 삼키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눈빛에 담아 바라봤다.

그녀라면 내 이런 욕망을 싫어하지 않고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

전시회를 구경하는 내내 정화씨는 흥분으로 달아오른 두 볼을 숨기지 못했다.

솔직히 미술에 관심이 없는 지라 전시회를 구경하는 게 썩 재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화씨가 설명해주는 미술계의 이야기 굉장히 흥미로웠다.

덕분에 우리 둘 모두 전시회를 구경하는 내내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쪽 세계의 유명한 미술가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정화씨는 전시회 내내 입이 닳도록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큐레이터라고 하던가?’

전시회 내내 행복해 하는 정화씨를 보니 큐레이터를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왜 큐레이터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도 들었고 말이다.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전시회를 너무 열심히 즐겨서일까?

슬슬 배가 고팠다.

시기 좋은 배고픔이었기에 정화씨의 깍지 낀 손을 잡아 당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요?”

“음….”

“왜요? 배 안 고프세요?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전시회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당연히 배고파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정화씨는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시큰둥하다.

정화씨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호텔가지 않을래?”

“쿨럭, 벌써요?”

호텔을 가자는 말은 나와 섹스하고 싶다는 말이 된다.

그녀의 노골적인 유혹에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아예 안 먹자는 건 아니고, 거기서도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까.”

“어…저야 나쁠 것 없긴 해요.”

“네가 선물해준 거 써보고 싶어.”

내가 준 피어싱을 착용하고 싶다는 정화씨.

그녀의 다정함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다 못해 격한 충동이 들었다.

꿀꺽­

침이 마른다.

“…무섭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전히 무섭기는 해. 근데 예뻐서 자꾸 생각 나. 혹시 주책이려나?”

“설마요!”

콧김을 크게 내뿜었다.

피어싱은 아이템이라는 점 때문에 특별하기도 하지만 피어싱 본연의 아름다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정화씨가 착용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다.

“가시죠.”

“앗!”

정화씨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정화씨가 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호텔로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벗어주세요. 피어싱 저 주시고요.”

“으응….”

막상 피어싱을 뚫을 때가 되니 겁을 먹은 듯해보였다.

“무서워요?”

“조금….”

“아프지 않게 뚫어줄게요.”

류비아 피어싱은 새끼손톱의 반 정도의 크기의 작은 붉은색 보석이 박혀 있다.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보석이다.

이 보석의 이름은 ‘류비아’인데, 어떤 차원에선 이 보석을 ‘최고의 레이디’만이 착용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황후의 자리에 앉은 여성만이 착용할 수 있는 보석인 것이다.

아무리 고귀한 귀족이라 해도 자격이 없으면 착용하지도 못하고, 갖지도 못하는 보석인 것이다.

‘그 차원에선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여기선 루비 취급만 받을 수 있겠지.’

상품을 팔기 위해서 소개란에 열심히 적혀 있어서 읽어봤다.

비슷한 보석이 이곳에도 있을까 싶어서 뒤져봤는데 레드 다이아몬드 말고는 비슷해 보이는 보석이 없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어서 레드 다이아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보석인 것이다.

문득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보석인 거면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보석이니 가격이 형성 되지 않았는데 내가 신경 써봐야 뭐하나 싶어 호기심을 더 이상 이어가진 않았다.

뚜뚝!

“읏…!”

“아파요?”

머뭇대다가는 더 무서워 할 게 뻔했기에 일부러 힘을 주어 단숨에 뚫어버렸다.

정화씨의 도톰한 가슴.

그리고 가슴의 정산 부분에 볼록 튀어나온 유두에 붉은색 영롱한 보석이 반짝이며 존재감을 내뿜었다.

원래부터 이 자리가 자신의 것이었던처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에?? 정말 안 아프네.”

피어싱이 살을 뚫고 지나가는 감촉에 인상을 팍 찌푸렸던 정화씨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려다 봤다.

잔뜩 겁먹은 정화씨의 얼굴은 생각지도 못하게 귀여웠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정화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입을 맞췄다.

“쪽, 쪼옥, 춥, 우웅….”

“쪽! 잘 어울려요.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에요.”

유두에 달린 피어싱.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이 정화씨와 잘 어울려서 그녀의 몸을 저 보석으로 꽉 채워 꾸미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한껏 칭찬을 하며 키스를 하니 정화씨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가, 갑자기 키스해서 깜짝 놀랐잖아.”

“정화씨가 너무 예뻐서 못 참았어요.”

“자꾸 정화씨 정화씨 그러는데, 갑자기 호칭은 왜 바꾼 거야? 처음에 문자로 내 이름 쓴 거 보고 깜짝 놀랐어.”

“싫었어요? 여태까지 아무 말 안 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싫지 않아. 물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 사실 남자한테 너무 오랜만에 불려보는 이름이었거든. 물어봤다가 더 이상 안 불러주면 어쩌지 싶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어. 이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람.”

여태까지 그녀를 장모님이라고 부른 건 주아 누나가 있는 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근처에 주아 누나가 없었고,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장모이기 전에 내 여자였다.

“내 여자 이름을 부르는 건데 뭐가 이상해요? 당연한 건데. 여기다가 이렇게 표시까지 해놨으니까 발뺌 못해요. 정화씨도 좋아했잖아요.”

“…앞으로도 여자로 봐주겠다는 뜻이니?”

“당연하죠. 처음부터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당신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정화씨는 줄 곳 저한테 여자였어요.”

다정하게 그녀의 볼을 쓰다듬다가 다시 불꽃이 튀어 진하게 혀를 섞었다.

춥! 츄웁! 춥! 쪽! 쪼옥!

“쪽, 우웅…쪽! 우움…!”

나를 위해 몸에 구멍을 뚫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준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

앞으로 이 여자의 남은 생은 내가 책임지게 될 거라는 점이 엄청난 충족감과 정복감을 주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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