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16. 우학왕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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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증폭의 효과를 제대로 체험한 정화씨는 두 번하고 더 이상 못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나도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을 보고 계속 하자고 말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쾌감증폭이라는 조절하기 힘든 능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못 다루는 능력을 주는 건 오히려 독이야.’
지금은 처음이니까 흥분해서 그런 거라며 너그러이 봐주겠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몸을 축 내는 섹스를 하게 되면 좋지 않게 될 것이다.
한참 쾌감증폭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이.
푹 젖은 몸을 씻고 나온 정화씨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 집에 가볼게.”
“네? 좀 쉬다가 저녁 먹어야죠.”
정말 내 정액으로 저녁밥을 대신한 게 아니라면 한참 배고파야 할 시간이었다.
“주아가 걱정 돼서 그래. 늦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해두긴 했는데, 만삭인 애를 두고 정말 밤 늦게까지 놀 순 없잖아.”
“오늘 하루는 주아 누나에 대한 건 잊고 저랑 데이트 하기로 했잖아요.”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분에 넘치는 기쁨이었고, 다시 여자가 된 것 같았거든. 근데 난 여자이기 전에 엄마야. 내 행복한 시간보다 딸이 더 소중할 수밖에 없어.”
자신이 엄마인 이상, 그건 변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화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낀다는 게 인생에서 흔치 않게 오는 행운이라는 것도.
그걸 다 알면서도 정화씨는 딸아이의 안전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게 엄마라는 건가.’
가족 관계가 없던 나로서는 쉽사리 공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을 언젠가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도 자식이 생겼지 않은가?
“집 앞까지 같이 가요.”
“번거롭게?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애도 아니고. 너도 피곤할 텐데 돌아가서 쉬어야지.”
정화씨가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며 설득을 했다.
어쩐지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던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는 것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오늘처럼 시간 내주실 거죠?”
“일단 상황 보고. 곧 산달이라서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으니까.”
“… 겠어요.”
“알겠다는 사람 입이 오리주둥이가 되어 있는데? 호호호! 나 갈게. 오늘 즐거웠어.”
꺄르륵 웃는 그녀의 입술에 사랑을 담아 키스를 나눴다.
‘저렇게 ’엄마‘ 같은 행동할 때면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진단 말이지.’
결국 오늘도 데이트 다운 데이트는 못한 건가?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오늘이 마지막인 건 아니니까.”
너무 아쉬워 할 필요 없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에휴, 이놈의 쾌감증폭이나 생각해봐야겠네.”
홀로 남은 호텔방 안.
정화씨가 없으니 깔끔하게 정리 된 호텔방이 영 을씨년스럽다.
이럴 때 AI가 있었으면 쾌감증폭의 원리에 대해 물어보고 편하게 대답을 받았을 것 같아 새삼 아쉬워졌다.
포니와는 달리 궁금한 것을 아무런 사심 없이 알려줬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쾌감 증폭을 확실하게 알아두고 가자는 생각으로 내 성기를 콱 움켜쥐었다.
실험을 위해서 오랜만에 하는 자기 위로의 시간이었다.
***
‘하,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거지? 완전 된통 당했군. 빌어먹을!! 제대로 호구짓을 했어.’
그녀는「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를 연출하기로 한 신인 감독을 여태까지 무시하고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자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좀 귀찮은 일은 자신에게 맡기고 편한 것만 쏙쏙 하려는 태도에서 그름을 느낀 탓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웹 드라마 촬영 날이 오자 그녀는 자신이 섣부른 생각을 했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최영지 감독, 아주 여우야. 여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낙하산으로 들어 와 무능한 척을 하던 여우가 슬슬 본 촬영이 시작 되려고 하자 꼬리를 드러냈다.
여우에게 제대로 당했다는 걸 깨닫고 아차 했을 때, 그녀의 코가 반 쯤 베이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게도!
“감독님, 왜 말이 없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말을 하니까 그렇지. 여태까지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줬는데, 이제서 손을 떼라니. 섭섭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적어도 이런 식으로 공격적으로 손을 떼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냐는 말이야.”
“공격적으로 말한 적 없어요. 원래부터 제 작품이었잖아요. 스태프들이 일하는데 혼선이 생기니까 어쩔 수 없이 한 말이에요. 솔직히 웃기잖아요. 현장 얘기를 왜 감독인 나한테 안하고 상관없는 외부인한테 하냐고요.”
이런 태도이니 그녀가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 거다.
여태까지 모든 일을 다 자신이 했다.
그런데 이제와 외부인이라고?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는 개 매너 짓이 아닌가?
“그 스태프는 다른 쪽으로 보내요. 같이 일 못하겠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고작 그런 일로 식구를 자르겠다고?? 그런 식으로 일하면 이 바닥에서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투자자를 등에 업고 있어서 싸가지가 없는 건 이해하고 받아주겠다만 내 식구를 욕하는 건 참아 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에요? 그럼 감독님은 그 스태프가 한 행동을 지지하신다는 뜻인가요?”
“영화는 사람이 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그런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지는 게 영화라고. 일을 맡겼으면 실수도 너그럽게 눈을 감아 줄 수 있어야지. 감독이라는 게 찍는 것만 하는 사람이 아니야!”
“전 웹드라마 하고 있는데요?”
이런, 씨!@$!^$*$#$%!#@!
“그, 그거야 그렇지만!!”
“하! 귀찮아 정말. 그래서 스태프 못 자르겠다는 거에요? 설명 길게 하지 마시고 딱 결론만 말씀하세요.”
최영지 감독이 이렇게 화를 내면서 진상짓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운이 나쁘게도 한 스태프가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 현장에 관련 된 결정을 최영지 감독이 있는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그녀에게 다 맡겨두고 있었던 일인데, 새삼스럽게 뭔 소리냐 묻는다면 제대로 설계 당한 꼴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본보기를 만들어서 스태프들 기강을 잡겠다는 거겠지.’
여태까지 현장 답사나 미술, 음악 등과 같은 일들을 모두 자신에게 맡기고 최종 심사에 오른 결과물 선택만 쏙쏙 빼먹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 되자 슬슬 스태프들을 휘어 잡을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게 분명했다.
앞에서야 정중하고 따르는 척 하지만, 뒤에서 낙하산으로 굴러들어 온 최영지 감독을 좋지 못하게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분위기로 같이 일하긴 싫었겠지. 욕먹는 거에 무덤덤하기에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속으로 참고 있었던 거다.
‘배우들 모아서 스태프들이랑 같이 회식을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당했어.’
그날의 회식 덕분에 뾰족한 시선을 보내던 스태프들의 눈초리가 조금 수그러졌고, 촬영을 하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두고만 봤었다.
‘저 년 지금 당근과 채찍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해.’
당근으로 달래고 채찍으로 기강을 잡는다.
그녀가 생각해도 참 잘 짠 계획이다 싶다.
스태프 한 명의 목을 쳐내면 언제든 다른 스태프 목도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생계가 달린 일이니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최영지 감독을 대하는 스태프들의 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는 좋아. 문제는 왜 나를 채찍에 이용한다는 거지. 토사구팽이냐? 다 써먹었으니까 버리겠다 이거야?’
문제는 그 채찍에 자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참 엿 같게도 그걸 알면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갑은 최영지 감독이었으니 말이다.
‘어우, 오랜만에 갑질 당하려니까 미치겠네.’
제법 괜찮은 평판을 가진 감독이 되니 ‘을’에서 ‘갑’이 되었던 그녀다.
물론 완벽한 ‘갑’은 아니었다.
‘강약 약강’.
제작사에는 약자로, 스탭과 배우들에게는 강자로.
나름 갑질을 하다 보니, 예전처럼 갑질을 당하는 ‘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쑥불쑥 성격이 나오려고 했다.
방금 전도 정말 한계였다.
‘쟤는 분명 내가 뻥 터지길 바라고 있었을 거야. 미안하지만 네년 뜻대로는 절대 못해준다. 내가 재물이 될 순 없지.’
“여태까지 준비는 다 내가 했으니까 스태프 입장에선 당연히 물어 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남이 자네 작품에 손대는 게 싫었으면 진작 자네가 맡아서 일했으면 될 일이었잖아. 나한테 준비는 다 맡기고 룰루랄라 하고 있다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서운하게 만들면 응? 어쩌자는 거야.”
이런 태도는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별의별 욕을 내뱉으며 겉으로는 매우 친절하게 최영지 감독을 설득했다.
감독의 설득이 먹혔는지 아니면 여기서 더 나가는 건 선을 넘는 일이라는 걸 알았는지 기세가 수그러든다.
“알겠어요. 감독님이 이렇게까지 사정하시니까 한 번은 넘기겠습니다. 다만 그 스태프한테 감독님이 잘 말씀 하셔야 해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는 걸로 믿겠습니다.”
“그, 그래. 물론이지.”
“아참! 대본 리딩은 금요일로 해요.”
“수요일이 아니라?”
배우 스케줄을 다 맞춰놨는데 뜬금없이 금요일로?
저건 스태프를 자르지 않은 것에 대한 작은 ‘꼬장’이 분명하다.
단순히 날짜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로인해 생기는 과정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배우들의 스케줄을 일일이 전부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웹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진들이 모두 신인이라는 점이다.
‘아이돌들이 좀 걸리긴 하지만, 스케줄 조정이 어렵진 않을 거야. 그쪽에서도 애들 연기 시키는 게 처음이라 연습 많이 시키겠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너무 쉽게 금요일로 바꾸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네. 수요일 말고 금요일요.”
“날짜 하나 바꾸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고 하는 말인 거야? 왜 수요일은 안 된다는 건데?”
“제가 그날 안 될 것 같아서요. 감독이 그런 것도 결정 못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뾰족하게 대답하는 최영지 감독을 보며 으드득 이를 간 그녀가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말했다.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네. 이런 식으로 일처리 하는 건 자기가 아마추어라는 걸 증명하는 것밖엔 안 될 테니 말이야.”
“!!”
그래, 시발. 화병 나서 죽기 전에 적당히 풀건 풀면서 살자.
그녀는 결코 마지막에 내지른 뼈 때리는 말을 후회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가 여우 아니랄까봐 최영지 감독은 자신이 한 방 먹었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재밌네요. 금요일 날 리딩으로 알고 갈게요.”
최영지 감독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대응하며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감정적으로 화를 냈으면 우습기라도 했을 텐데, 저러니까 괜히 무섭다.
‘시발 잘못 건드린 건 아니겠지?’
여태까지 잘 참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녀에게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뜻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내지른 것이었다.
근데 어째 반응을 보니 뭔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덜컥 든다.
뾰족하게 경계심을 세운 그녀는 유유자적 나간 최영지 감독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봤다.
“가, 감독님.”
“어~ 그래. 들어와.”
최영지 감독이 사라지자 사고를 친 스태프가 안절부절 못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저…괜찮으세요?”
“나야 괜찮지. 근데 네가 안 괜찮을 것 같은데 어쩌냐? 저 년이 널 잘라달라고 하네.”
“헉!! 서, 설마 저 잘려요?!”
“내가 미쳤니? 널 왜 잘라. 내 팀인데.”
“감사합니다. 감독님!!”
네가 채찍을 휘두른다면.
‘난 당근을 흔들면 돼. 최영지 널 내 팀원들 공공의 적이 되도록 만들어주마.’
그녀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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