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13화 (113/849)

〈 113화 〉 #17. 촬영 시작 (2)

* * *

“누나는 좀 수그릴 필요가 있어. 업계 선배잖아. 그러다가 미움 받으면 어떡하냐고. 평판도 생각해야지.”

“굳이 그걸 생각해야 돼? 능력만 있으면 됐지.”

“에휴. 난 모르겠다. 내 작품 망치지 말고 잘 찍어줘야 돼. 만약 문제 생기면 다음부터는 감독 바꿀 거야.”

“알았으니까 찡찡 대지…크흠!”

최영지 감독은 동생과 투닥거리다가 뒤늦게 리딩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곧장 표정 관리를 하고 모두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영지 감독입니다. 이쪽은 최희민 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서오세요. 작가님!”

배우들과 스탭들이 어색하게 작가와 감독을 반겼다.

각자 자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금세 주변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미참석자는 없는데, 리딩 시작할까요, 감독님?”

“그래? 다 모인 것 같으니 미룰 필요 없지. 바로 시작하죠. 이렇게 모두 모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리딩이 끝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서 배우 분들의 집중이 필요할 때입니다. 집중력 있게 가봅시다. 시간 아까우니 인사는 짧게, 리딩은 길고 굵게 가봅시다.”

짝짝짝!!

최영지 감독의 간단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스태프가 빠르게 진행을 했다.

“유은탁 역을 맡은 진해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상호 역을 맡은 강준입니다.”

“윤대화 역을 연기하게 될 강태호입니다.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주인공 김지헤 역을 맡은 한민영입니다. 촬영 때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연들의 소개 이후 단역들의 소개도 짧게 끝났다.

최 감독이 빠르게 진행하는 걸 바랐기에 얼굴만 익히는 수준으로 소개를 끝낸 것이다.

사실 웹 드라마라서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덕도 있었다.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나레이션, 우리 학교에는 왕자님이 있다. 어디서 시작 됐는지 알 수 없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 우리 학교에 재벌집 아들이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누군가의 목격담, 누군가의 부풀린 거짓말로 점차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재벌 아들을 찾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졌다.”

스태프의 서술 읽기가 끝나고, 주연 중 유일하게 정통으로 연기를 배운 한민영씨의 연기가 시작 됐다.

???

[웹 드라마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 첫 대본 리딩 현장 #남신 강림♡]

조회수 1.9만회 3일 전

­웹드에 아이돌 끼얹기인가.

└웹드니까 괜찮은 거 아닌가? 연기 해본 적도 없이 주연으로 지상파 드라마에 캐스팅 돼서 발연기하는 애들보단 백배 낫다고 봄.

­ㅇㅇ 웹드로 경험 쌓고 지상파 드라마 진출하는 게 훨씬 낫지. 요즘 다들 그렇게 한다던데.

­해솔이 비주얼 미쳐써!!! 너무 잘 생겼어!!! 내 남편!!!

­i'm happy that he's going to be in a drama!

­우리 준이!!! 드라마 대박나시길!!!

­와~ 감질난다 ㅜㅜ 빨리 보여주세요.

­준이가 드디어 연기를 시작하는구나!! 이제 여한이 없다!

­가운데에 있는 남자는 누구임? 덩치 실화야? 혼자 쑥 올라와 있는데ㅋㅋ

└강태호에요!!! 야구 유망주였는데 부상으로 배우 전업함. 미래 메이저리거였는데 ㅠㅠㅠㅠ

└야구선수였다고? 어쩐지. 피지컬 오지긴 하네.

­근데 웹드 뭔 내용임? 제목이 너무 오글거리는데 ㅋㅋ

└학교에 재벌 아들이 다닌다는 소문이 퍼져서 누가 재벌 아들인지 알아내는 내용이라고 함.

­무적권 우리 해솔이가 재벌 아들이지. 다른 애면 개연성 없음.

└진해솔 빠는 애들 욀케 많냐?

└잘 생겼잖아. 시발 얼굴을 봐. 안 빨게 생겼어?

└ㅆㅇㅈ

­근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해솔이랑 준이 연기력이 나쁘지 않은데?

└연습 오지게 한 거 티 나긴 함. 잘하는 건 아닌데 노력한 게 눈에 보임.

└그치그치? 역시 울 애기들이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력 하나는 남한테 뒤지지 않지.

­ㅋㅋㅋㅋㅋㅋ연기력은 개뿔. 까봐야 알 일이지. 아무리 빨아봤자 발연기는 못 숨긴다.

금요일 날 했던 리딩이 짧게 유티비에 홍보로 올라갔다.

한민영은 자신이 나온 분량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고, 이후 댓글을 확인하고 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내 얘기는 하나도 나오질 않았네.’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에 대한 주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홍보 영상에 나온 그녀의 분량은 메인 주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노골적으로 남자 주인공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홍보였다.

“연기 되게 잘 했는데….”

이를 박박 갈면서 연습했고, 노력했다.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는 그녀의 시점에서 진행 되는 이야기였기에 분량이 누구보다 많았고, 제대로 연기하면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두고 봐. 내가 다 가져줄 테니까!”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룸메이트 친구 녀석이 한민영의 혼잣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격대로 행동하지 말고 친분 좀 쌓으라니까 여기서 이겨먹겠다고 활활 불 타고만 있는 거야? 드디어 배우 친구 먹여 살린 대가를 받나보다 했는데 텄구만, 텄어.”

“걔네들이 나랑 친하게 지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사인은 절대 안 받아줄 거야. 나도 똑같은 주연이거든? 자존심이 있다고!”

“왜 이렇게 예민해. 혹시 걔네들이 자기 아이돌이라고 콧대 세우기라도 했어?”

“…….”

한민영은 룸메이트 친구의 물음에 대본 리딩 날을 다시금 떠올렸다.

처음 본 건 그날이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는 걸 본 건 리딩날이 처음이었기에 어느 때보다도 기억에 확고하게 남은 상태였다.

“그건 아냐. 그냥 그런 사적인 얘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어.”

자신이 감히 말을 걸어 볼 엄두도 나지 않게 아이돌들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파묻혀 있었다.

정작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던 자신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나 진짜 진짜 궁금했는데 너 눈치 보느라 못 물어 본 말이 있거든. 물어봐도 돼?”

“진해솔이랑 강준 연기 잘 하냐고?”

“어…? 어떻게 알았어?”

“내 핸드폰에 온통 그 소리들이거든. 진해솔이랑 강준 연기 잘 하냐고. 그거 아니면 실물 어땠냐고가 대부분 질문이었고.”

“와씨, 그런 줄 알았으면 진작 물어볼 걸! 그래서 대답은?”

“몰라. 말 안 해.”

한미영은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단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연극영화과 대학 동기들이나 연극 식구들에게 자존심이란 존심은 다 부려 놨는데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그 아이돌들이 연기를 매우 잘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돌이면서 왜 연기를 잘 하는 거야? 반칙 아니냐고. 반칙!!’

연기라는 걸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초짜라고 들었다.

그런데 리딩장에서 본 강준과 진해솔은 생각한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희민 작가가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분량을 더 늘려도 되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을 정도로!

‘아니, 농담 아니었을 거야. 정작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못했다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서운하지 않았을 텐데.’

악플의 반댓말은 무관심이라고 하던가.

화가 나고 억울하다.

왜 신은 저들에게 능력을 몽땅 쥐어주고, 자신에겐 한 자락의 여유도 넣어주지 않는가!

‘얼굴이라도 좀 예뻤으면…대우가 달랐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모를 서러움.

한민영은 오늘도 텅 빈 통장을 뒤로 하고 핸드폰으로 성형을 검색하며 잠 오지 않은 새벽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웹 드라마 ‘우리 학교에 왕자님이 있다’의 첫 촬영날이 밝았다.

웅성웅성­

“안녕하세요!”

“저쪽 의자 좀 빼야 할 것 같은데? 책상이 너무 많아. 인원에 맞춰야지.”

“학생 13!! 저쪽으로 가서 의상 갈아 입어주세요.”

한민영이 배우들 중 가장 먼저 촬영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사는 공허한 외침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스태프들은 바빠서 그녀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럼에도 꿋꿋하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다니니 마지못하게 ‘네’라는 대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잽싸게 자신에게 대답해준 스태프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죄송한데, 현장에서 화장 해주신다고 들었거든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옆 교실 가면 돼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자기 손으로 하는 화장보다 전문가에게서 화장을 받는 게 훨씬 나을 거라 기대하며 옆 교실로 들어갔다.

헌데 안에 있던 스탭이 그녀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쭉 훑더니 물었다.

“어떤 배역이에요? 학생 몇 번?”

“…주연 김지혜 역입니다.”

“주연? 아~네. 이쪽으로 오세요.”

학생 몇 번이냐는 물음은 그녀를 단역으로 봤다는 뜻이었다.

쓰나미처럼 설움이 몰려왔지만 이런 걸로 멘탈이 갈리기엔 이 바닥에서 지냈던 경력이 1~2년이 아니었기에 참았다.

“자기, 김지혜 교복 어딨어?”

“꺼내 올게요.”

“이걸로 갈아입고 오세요. 화장은 안 하신 거 맞죠?”

“네.”

한민영은 교실 한 구석에 커튼 같은 것으로 간이 탈의실을 만들어 둔 곳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는 사이, 바깥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바깥에 무슨 일 있어?”

“언니!! 아이돌 왔대요.”

“어머! 진짜? 진해솔이 실물 깡패라던데! 화장 하러 오려나?”

“전문샵에서 받고 오지 않을까요?”

“하긴, 그렇겠다. 아무한테나 얼굴 안 내주겠지. 칫, 부럽네.”

한민영이 옷을 갈아 입고 나왔으나 그 어떤 스태프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저기요. 저 메이크업…!”

“꺄악!! 실물 대박!”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언니!”

“저기요.”

“싸인 받을 수 있을까?”

“어쩜 좋아!! 키도 엄청 큰데요? 꺄악! 꺅!!”

무명배우의 설움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치솟고는 한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설움은 미움이 되어 원인이 된 이들에게 쏠렸다.

으득­

‘나도 배우거든? 제대로 된 대접을 해달란 말이야!!’

상상으로 수십 번 외쳐 본 말이다.

더불어 한 번도 입 밖에 꺼내 본 적 없는 말이기도 했다.

“저기요!!! 메이크업 좀 해주세요.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저쪽에 앉아계세요. 해드릴 테니까.”

짜증이 가득 담긴 눈빛.

명백히 무시하는 표정이다.

그녀들이 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인 것은 진해솔과 강준이 촬영장소인 옆 교실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아~ 아쉽다.”

“언니, 저 눈이 갑자기 좋아진 것 같아요. 이게 심봉사의 기분일까요?”

“눈이 너무 높아져버렸어. 이 눈높이로 남자는 어떻게 사귀지?”

스탭들의 대화를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듣고 있자니 절로 비아냥이 나왔다.

‘그 얼굴로 잘도 남자를 사귀겠네. 나보다 못 생기고 뚱뚱한 주제에.’

그녀는 다른 사람의 외모를 잘 평가하지 않는 편이었다.

애초에 그녀 스스로의 외모가 자랑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단히 심사가 뒤틀린 한민영은 속으로 마음껏 욕지거리를 했다.

그래야 답답한 가슴이 조금이라도 뚫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장이랑 머리 어떻게 해드려요?”

“머리는 미용실에서 따로 하고 왔는데요.”

“이게 한 머리였어요?”

“…….”

이제 겨우 자기 일을 하기 시작한 스태프들.

그녀가 두 명의 스태프들에게 얼굴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할 찰나였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여기서 의상 받으면 된다고 해서요.”

“어머!”

“꺅!”

“…”

또 다시 방해꾼이 등장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