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7. 촬영 시작 (4)
* * *
“네?”
연기력에 대해 지적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최감독님의 불만은 엉뚱한 것에 꽂혀 있었다.
“누가 봐도 실물이 더 낫잖아! 카메라에 담긴 순간 매력의 반이 줄어!”
“…으음.”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많던 촬영 횟수가 연기력 때문이 아니라 내 얼굴이 제대로 안 담기는 것 때문이었다니!
‘그래도 연기력은 올려야지. 심장 쫄려서 살겠냐고.’
내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최감독님이 계속 찍으시는 줄 알고 진짜 식겁했다.
카메라 빨이 안 받아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감독님의 지적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부분이었다.
“역시 장비가 문제인 거겠지? 카메라를 좀 더 비싼 걸 빌리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세더라.”
비싼 카메라는 몇 천은 우습게 나간다.
카메라를 최대한 성능 좋은 것으로 써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실제로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긴 했으나 내 얼굴을 전부 담지 못한 카메라를 보고 있자니 좀 더 쓸 걸 그랬다며 최감독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투자금이 동생의 아내에게서 나왔다지만, 공적인 자금을 감독 마음대로 휘두르며 쓸 수는 없었다.
원활한 촬영을 위해 자금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써야 했으니 말이다.
“진짜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려고 해. 이 얼굴을 사람들한테 고스란히 못 보여주는 거니까.”
“하, 하하…감독님….”
“이번 작품은 이걸로 타협하겠지만, 다음에 진짜 제대로 된 작품을 촬영하게 될 땐 해솔씨 또 캐스팅해서 제대로 찍어줄게요. 미리 침 발라둬도 괜찮죠?”
“물론이죠.”
나를 또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하는 최감독의 말에 공수표를 날렸다.
내가 과연 지금 말고 또 연기를 하려고 할까?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지금 행동은 그저 공수표에 불과하다.
준이는 옆에서 얘기를 듣다가 머뭇대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멋있게 잘 나왔어요. 감독님.”
“나도 알긴 해. 만약 내가 해솔씨 실물을 못 봤으면 이 화면 보고 환호했을 거야. 근데 진짜 해솔씨 얼굴을 내가 알잖아. 지금도 이렇게 내 앞에 떡하니 있다고. 왜 이 카메라는 환상적인 얼굴을 전부 담지 못하는 거지? 우리나라 과학이 이 정도로 무능했나?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는 거지?”
“하, 하하.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잘 생겼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도 들을 수 있구나.
“근데 감독님, 제 연기는 어땠어요? 아무래도 그게 많이 걱정 돼서요.”
“연기? 어휴, 말해 뭐해. 희민이가 해솔씨 분량 늘린다고 난리 났다니까? 지적할 것도 없었어. 준씨도 잘 했고.”
“앗! 감사합니다.”
“둘 다 지금처럼만 해줘요. 그럼 난 바랄 게 없을 것 같으니까.”
“예!”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무거웠던 어깨가 날개를 단 것 마냥 가벼워졌다.
최감독님은 포기하겠다는 말을 했음에도 쉬이 마음이 접히지 않는지 20분 정도를 더 지연하다가 다음 촬영으로 넘어갔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 촬영을 하는 씬이 없었기에 촬영이 끝나고 간단하게 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빼는 사람 없이 다 모였군요.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로 대접하겠습니다. 오늘 첫 촬영인데 다들 긴장하지 않고 잘 해줘서 고맙습니다. 남은 촬영도 사고 없이 끝냅시다. 이후 스케줄은 전부 자유입니다. 가고 싶다는 사람 잡지 말고, 남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남아요. 아! 그리고 오늘 회식은 진해솔씨와 강준씨 소속사에서 쏘는 거니까 다들 박수 한 번씩 보내주세요.”
와아!!!
짝짝짝짝!
잘 먹을게요!
사람들의 박수를 어색하게 받아들였다.
센스 있게 최감독님이 이후로의 시간은 자유라고 땅땅땅 못을 박았기에 더 그렇다.
회식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테이블에 음식들이 채워진다.
돼지고기였지만 허름하지 않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곳이었기에 다들 불만이 없었다.
고기 맛도 좋았다.
“많이 드세요.”
왁자지껄한 회식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제작사 쪽에서 붙여준 감독과 최감독 사이에 알력다툼이 있다는 걸 들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힘들었다.
오늘 회식으로 알아 봐야 할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제작사 쪽 감독과 최 감독님 사이의 알력다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두 번째는 한민영의 알 수 없는 적의의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다.
매니저 누나가 열심히 스태프들 쪽을 공략해서 알아내겠다고 했으니 나는 두 번째를 공략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한민영씨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기에 그녀에게 말을 거는 건 쉬웠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선배님. 촬영하는 내내 잘 배웠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게 좋다.
그래야 나에 대한 경계를 풀 테니까.
“아, 네.”
단 답으로 인사를 받은 그녀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한민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인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살펴보니 참 신기한 여자다 싶다.
‘아닌 척 하는데 되게 주눅 들어 있어. 얼굴은 평범…아니지, 여기 기준으로 치면 못 생겼다는 말 듣고 다녔을 것 같은데.’
내가 주아 누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매번 감탄하곤 하는데, 그 정도 얼굴이 아니고선 이 세계에서 여배우로 활동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즉, 외모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한민영씨는 배우로 자리를 잡는 게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준이랑 촬영이 꽤 많죠? 잘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게 많아서 선배님께서 잘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독님이 칭찬 많이 하시던데 제가 뭐라고 이끌어요.”
“저희한테야 기준이 낮으시니까 그런 거죠. 기준점이 달라지면 혼도 많이 날 겁니다.”
오늘만 해도 최 감독은 난이도를 점점 상승시키며 디렉팅을 했다.
복도를 걷는 방법이 그렇게 많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을 정도다.
준이도 나와 같은 절차를 거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연기 칭찬도 쏙 들어갈 터다.
“하.”
그때, 돌연 한민영씨가 소주를 맥주잔에 따르더니 꿀꺽꿀꺽 마신다.
“??”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잔을 깔끔하게 비워내고 입술에 묻은 소주를 손등으로 닦아낸 뒤 말했다.
“분량 늘어난다면서요.”
“…네.”
“칭찬도 받고, 분량도 늘어나고. 오디션도 안 봤죠? 연기도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거잖아요. 맞죠? 막 몇 년씩 연기 하나에 매달려서 배운 거 아니잖아요.”
“준이는 연기를 오랫동안 익혀왔습니다.”
물론 나는 1~2달 바짝 연기 수업을 들은 게 맞다.
그 전에는 연기력이 필요 없는 능력치라고 생각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래봤자 춤 배우고 노래 배우면서 익힌 거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싫다는 건가?
한민영씨는 또 다시 한숨을 푹 쉬더니 술을 꼴꼴꼴 따라서 꿀꺽꿀꺽 마셨다.
“너무 빨리 마시는 것 같은데요. 선배님.”
“부러워서 그래요. 부러워서. 잘 생기고 재능 있고 나이도 어리고! 작가님, 감독님, 스태프들 할 것 없이 전부 당신들만 나타나면 좋아서 호들갑을 떨더라고요.”
“아….”
그랬어?
확실히 그녀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관심과 호의로 가득하다.
남자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아이돌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 그때 그 적의는 질투심이었던 건가?’
뭔가 더러운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김이 확 빠진다.
이 사람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돌이 배우하는 걸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거란 결론이 내려져 슬슬 자리를 옮기기 위해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한민영씨가 다시 한 번 소주를 따르더니 또 콸콸 들이마신다.
꼴꼴꼴
꿀꺽꿀꺽!
“파하! 오늘따라 술이 다네, 달아. 나 아이돌 무시 안 해요. 그 바닥 힘든 거 나도 알거든요. 알긴 아는데, 좀 억울해서 그래요. 뼈 빠지게 일해서 등록금 벌어 예대 나왔는데 아무도 날 안 써주더라고요. 그래서 극단에 들어갔거든요? 실전 경력 쌓으면서 오디션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이렇게 주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거죠.”
술 취한 한민영씨가 본인 인생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연이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도 그럴 게 현장에서 엑스트라 알바 할 때 주연들 보면 엄청나게 먼 사람 같았거든요. 대단해보였죠. 내가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싶고. 나도 연기 저렇게 잘 할 수 있는데!!! 하면서요.”
“…….”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온 거고요. 비록 웹 드라마 주연이지만 저한테는 이번 작품이 영화나 다름없었죠.”
힘들었던 만큼 주연으로 캐스팅 됐을 때의 기쁨은 무척 컸다며 그때를 떠올린 한민영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다가 돌연 왈칵 인상이 구겨진다.
“근데 현실은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노력해서 자리를 차지했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나 다름없는 자리.
그래서 뭔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구질구질했던 내 인생에 꽃가루가 좀 뿌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주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무관심 속에 그녀는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라니. 꼴사납고 구질구질하죠? 미안해요. 얘기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을 텐데. 아니, 싫은 티 안 내고 들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 해야겠네요. 준이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챙겨줄게요. 뭐….”
저 같은 사람이 챙겨 줄 주제는 안 될 것 같지만요.
“…….”
한민영씨의 속사포 같은 속마음에 어질어질해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뭘 어떻게 위로한단 말인가?
나도 못 가져본 적 있는 입장에서 그녀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잘 안다.
‘위로해줘봤자 기만이지.’
지금 나는 다 가진 놈이 맞다.
얼굴도, 재능도, 나이도 다 갖고 있었다.
기우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한민영씨의 고개가 푹 고꾸라졌다.
황급히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올리니 내 손 위에 그녀의 얼굴이 닿았다.
새액 새액 새액
맥주잔에 소주 원샷을 3번이나 한 사람이다.
기절하듯이 잠든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상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잠든 게 용할 지경이다.
그리고 나는 한민영씨에 대한 걱정을 깔끔하게 접기로 결론을 내렸다.
‘옛날 생각나네.’
회사 다닐 때 하루도 못 가서 한 갑을 다 피워버렸던 적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내일의 해가 뜨는 게 싫었던 날들.
그녀의 자격지심에 작은 공감과 동정심이 생긴다.
“어? 선배님, 잠드셨어?”
고기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준이가 내 상황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응. 술버릇이 잠드시는 건 가봐.”
“민영 선배님은 매니저 안 계시지 않아?”
“흠, 그러게. 우리가 챙겨드릴까?”
“어…우리가?”
“응. 우리가 먼저 도움을 주면 이걸 기회로 사이를 좀 개선할 수도 있잖아.”
“아! 그러네? 좋아! 그러자!”
준이는 한민영씨의 적의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내 말에 곧장 솔깃해져서 그러자고 했다.
한민영씨의 솔직한 고백을 준이와 공유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는데, 지금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적어도 본인 동의는 구하고 말하는 게 예의일 테니까.’
더군다나 술에서 깨면 한민영씨가 무척 창피해 하지 않을까 싶다.
술 먹고 사고치는 것쯤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본 일이지 않은가?
‘흑역사는 지켜줘야지.’
그리고 그렇게 해야 저 자존감 낮은 질투쟁이 여자의 뾰족한 마음이 둥글어지지 않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