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7. 촬영 시작 (6)
* * *
얼굴에 튄 물기를 휴지로 닦아냈다.
사레가 걸렸는지 한참 기침을 하던 한미영씨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빠르게 흩어졌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낭패였을 거다.
주변 시선에 움츠러들었던 한민영씨가 도끼눈을 뜨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변태야?”
“살짝요.”
아니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짓궂은 마음에 장난기가 불쑥 치고 들어왔다.
“하! 나 같은 여자랑 사귀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를 장난감 취급하면서 논다더니. 너도 그런 양아치였니?”
…나한테만 장난이었나보다.
아차 싶다.
제대로 엇박자가 난 상황.
쏟아지는 적대감을 어떻게 수습해야 되나 살짝 난감해졌다.
이런 식으로 내 고백을 비꼬아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낮은 자존감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실수였다.
“양아치 취급은 너무하지 않아요? 제 말을 오해하고 화난 것 같은데, 양아치 취급은 너무 갔어요. 저 이래봬도 공인이거든요. 그런 짓 함부로 하고 다니면 큰일나요.”
“그럼 그 장난 같은 저질스러운 말은 왜 했는데? 내가 쉬워보여?”
“제가 말한 누나 동생 사이가 되자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실까봐 그랬어요. 솔직히 제가 그 말 안 했으면 오해했을 거잖아요. 친누나, 동생 같은 사이가 되는 걸로요.”
“….”
내 말이 사실이었는지 반박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남녀차이에 친구가 가능하냐고?
지구에서는 가능했다.
여자 사람 친구 많았거든.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자 사람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 마음대로 그녀를 휘두른다 해도 본인에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대답 못하는 거 보니까 오해하고 있었던 게 맞잖아요.”
“다, 당연한 거 아니야? 보통 누나 동생 하자고 하면 그런 줄 알지!!”
“에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나 가진 거 하나도 없어. 네가 뭘 바라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내 인생은 막장이야. 너랑 상대하면서 힘들고 싶지 않아.”
“왜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이미 내 머릿속엔 그녀를 어떤 미인으로 만들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녀도 나와의 연애가 결코 불행하지 않을 거다.
나를 사랑할수록 그녀는 아름다워질 테니까.
“행복해질 리 없어!”
“왜요?”
“너랑 난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난 돈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소속사도 없어. 미래가 불투명한데 너 같은 애가 나한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잖아. 네가 던진 돌에 나 같은 사람은 맞아 죽을 수도 있어!”
파르르 떨면서 말하는 한민영씨의 얼굴은 꽤나 필사적이다.
어서 이 말도 안 되는 장난을 그만두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장난칠 생각이 없었다.
난데없이 찾아 온 기회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며, 더더욱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포니를 통해 뜬금없이 행운을 거머쥐었던 것처럼 말이다.
“장난 아니에요. 무심코 던진 돌멩이도 아니고요. 누나한테는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어제 누나랑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결심한 일이었어요.”
“…어제 내가 너한테 부린 술주정 때문에? 혹시 나 동정하는 거니?”
“이런 말 들으면 못 믿겠지만, 저도 누나랑 똑같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정말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기회를 놓쳤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그리고 전 누나한테 제가 경험했던 기적 같은 기회를 나눠주고 싶었어요.”
나랑은 상관없던 일.
다른 세계.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경험들.
그걸 나눠주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절망 속에서 사는 그녀에게.
“네가 줄 수 있는 기회라는 게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거라고?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내가 모르는 뭐라도 있니? 대단한 빽이 있어? 뭐 숨겨진 재벌 아들이라도 돼?”
“비꼬아서 듣지 말아요. 거부만 한다고 누나 인생이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장난치는 것도 아닙니다.”
“네가 비꼬아서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잔뜩 가시가 돋은 누나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당근으로 회유하는 게 안 된다면 채찍을 들어야 했다.
“흠, 누나는 정말 약지를 못하네요. 그런 성격으론 이 바닥에서 버티기 힘들어요. 좀 냉정하게 말해볼게요. 아까 전에 저 스캔들 날까봐 걱정해줬죠? 누나는 나랑 스캔들이 나길 바라는 입장이어야 해요. 나를 걱정할 게 아니라요. 무명 배우잖아요. 우리 둘이 스캔들이 나면 전 욕을 엄청 먹겠지만, 누나는 사람들한테 아이돌과 스캔들 난 여배우로 얼굴이 알려졌을 거에요.”
“!!”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누나보다 인지도가 높은 제가 사귀자고 했을 때, 좀 약은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러자고 했을 거에요. 감정과는 상관없이요. 우리 둘이 사귀는 게 밝혀지든, 안 밝혀지든 누나한텐 든든한 인맥 하나가 생기게 되는 거니까요.”
“…”
실제로 한민영씨는 나와 사귀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누나, 약아지세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나한테는 왜 이런 일만 생기냐고 화만 내고 있는 건 누나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남을 이용하는 것도 인생을 사는 방법 중 하나에요.”
착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 아니다.
적절하게 착한 티를 내며 사는 게 ‘잘 사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네가 나한테 이용 당해주겠다는 거야? 넌 나랑 사귀는 거에 무슨 이득이 있는데?”
“누나라는 사람 그 자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네 태도가 이해가 안 가서 묻는데, 혹시 나한테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니? 취향이 독특한 편이야? 못 생긴 여자 좋아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 온 말도 안 되는 기회에 한민영씨는 계속해서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태도다.
워낙 당한 일들이 많으니 기회가 왔어도 자기방어를 하느라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거다.
그래도 내 채찍 섞은 말이 효과가 있는지 아까 전처럼 바짝 가시를 세우지는 않는 듯했다.
누그러진 그녀의 태도가 점점 내 말에 설득 되고 있음을 알게한다.
“말했잖아요. 변태라고. 제가 여자를 좀 많이 좋아해요. 누나랑 사귀면 섹스 엄청 많이 할 거에요. 저 다른 여자도 있어요. 누나는 그걸 이해해줘야 해요.”
“…엄청 당당하네. 얼굴값 하는구나.”
“법이 일부다처제인데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아이돌이라서 여자친구 있다는 말은 함부로 못하고 다니겠지만요.”
어서 그녀가 알아차리길 바란다.
자신에게 온 갑작스럽고 의심스러운 기회가 진짜 잡아도 되는 기회라는 것을.
“내가 이런 황당한 말에 설득 당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누나한테는 지금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테니까요.”
현실적인 조언을 무시하지 않는 걸 보면 그녀도 다른 사람에게 당해 본 경험이 있는 듯 했다.
하긴, 이 험난한 곳에 곰이 또아리를 틀었는데 여우짓을 안 당했을 리가 없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일 거에요. 누나가 저한테 연락을 안 하면 제가 한 모든 말은 다 사라지는 거에요.”
“…….”
나와 얽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뭔지 떠올려보고 있는 것인지 민영 누나의 얼굴이 복잡 미묘하다.
“여태까지 우직하게 살아오셨을 테니, 한 번쯤은 남들처럼 지름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
“제 손을 잡고 싶어졌을 때, 연락해주세요.”
“…….”
지금 당장 대답을 듣는 건 무리일 거란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왔다.
그녀가 혼자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다.
나는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며 앞으로 어떻게 그녀를 꾸밀지 행복한 상상을 하기로 했다.
‘섹시한 미인? 청순한 미인? 귀여운 미인? 어떤 얼굴로 하지?’
이곳에서 만난 여자들은 각자 특유의 매력을 갖고 있는 미인들이라서 내가 건드릴 수 없었다.
취향을 뛰어넘는 미모들이지 않은가?
섣불리 손대기엔 이미 완벽한 매력을 갖추고 있는 미녀들이었다.
하지만 민영 누나는 어떤 미인도 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하는 대로 얼굴이 바뀔 테니 말이다.
‘완벽한 이상형을 만드는 거지.’
자기 얼굴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내 이상형으로 바꾸는 게 최선이었다.
아이템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상품 회수, 회원 자격 정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의 사건이 있고 약 3일 후.
나는 드디어 민영 누나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내 제안을 수락하겠다는 답변이었다.
???
[내 정액을 좀 더 특별하게! v.34 (미용)]
정액 섭취 시 피부 재생력, 탄력, 보습력…등등의 미용에 도움이 됩니다. 내 연인의 미모를 책임져준다면 당신은 사랑받을 겁니다.
[내 정액을 좀 더 맛있게! v.13 (미식)]
정액의 맛과 신선도가 개인의 기호에 맞춰 좋아집니다. 음식에 넣는다면 좋은 조미료가 될지도 모릅니다. 먹을 수만 있다면요.
[내 정액을 좀 더 중독적이게! v.45 (미약)]
정액 섭취 시 성적 흥분도가 상승합니다. 꾸준히 섭취하면 중독 될 수 있습니다. 내 파트너를 중독자로 만드십시오.
[내 정액을 좀 더 많이! 더 많이! v.63 (물량)]
생성 되는 정액의 양이 증가합니다. 내 연인에게 정액 목욕을 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좀 변태같긴 하지만요.
참 재밌는 설명글과 제품이다.
이걸 내가 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코인이 많아지다 보니 욕망에 불이 붙어버렸다.
처음 봤을 땐 저걸 누가사냐고 생각했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더라.
결국 쓸데없는 제품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손아귀에 코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뿐.
하나에 5,000코인이나 하는 녀석들이라서 이걸 구매하는 내가 참 레전드다 싶긴 하다.
“그래도 사야지.”
얼핏 보면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효능은 정말 기가 막히긴 하다.
‘뽕을 뽑으려면 섹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특히 집중 관리를 받아야 하는 민영 누나.
그린고 배우 준비를 하게 될 주아 누나와 나이가 가장 많아 외모 유지하는데 힘쓰고 계시는 장모님, 또한 아현이와 복순 누나도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요즘 일이 바빠서 연락만 하고 만나지 못한 두 예술가 연인 메이와 안나또한 빠트릴 수 없었다.
‘내 여자들 미모는 내가 책임진다!!’
정액양을 늘린 것은 코인을 수급하는데 중요하므로 빠트릴 수 없었고, 미식은 정액 맛을 좋게 만들면 자주 펠라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싸는 나도 좋고, 먹는 여자들도 좋으면 완벽한 거잖아.’
내 본격적인 쇼핑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좀 더 연기에 대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어보였기에 연기 이론 서적 샀다.
서적이 머릿속에 저장 되니 신기하게도 연기를 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단순히 연기하는 재주가 늘어난 것보다 이론 서적 한 권을 구매해서 머릿속에 저장시킨 게 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생각 될 정도 였다.
퍼센트만 올려놨을 때 바로 실력이 늘지 않고 적응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이 이론을 머릿속에 저장해두니 적응기간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효과를 제대로 봤기에 노래와 춤에도 똑같이 이론 서적을 구매해서 적용시켰다.
그리고 그제야 내 실력을 온전히 끌어 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여태까지 실기만 죽어라 팠다면, 이제 나는 이론과 실기 모두 완벽해진 거지.’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상품 하나.
[외형변경권 (10.000코인)]
얼굴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상품 하나면 해결! 내가 꿈꾸던 멋진 미남, 미녀가 될 수 있습니다!
추가 과금 적용 가능
1. 타인 양도 가능(500코인)
2. 동기화 기능 (500코인)
3. 황금밸런스 (500코인)
4. 베스트 커스터마이징 (500코인)
민영 누나를 위한 이 완벽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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