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23화 (123/849)

〈 123화 〉 #18. 한민영 (6)

* * *

“윽­! 이거 뭐야? 냄새나는데? 도대체 너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내가 한 거 아니야! 나도 어젯밤에 우연히 본 거야. 누가 여기다가 이상한 걸 묻고 있었다고. 어젯밤에 너무 무서워서 못 파보다가 해 뜨고 파기 시작한 거야.”

“하여튼 쫄보기는. 현장을 잡았으면 현장 검거를 할 생각을 해야지. 어제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아쉽네.”

“그러고 보니 네가 여기 왜 있어?”

“나 운동하고 있었는데? 동네 한 바퀴 도는 중이었음.”

“너 이 근처에 살아?”

“엉.”

학교에서 왕자님 후보로 TOP3에 해당하는 황상호가 결코 잘 사는 동네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걸 알게 된 김지혜의 기분이 오묘해진다.

“역시 아니었구나.”

“뭐가 아니야?”

“됐어. 이거나 확인해보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굳이 봐야겠어? 딱 봐도 쓰레기잖아.”

황상호가 나뭇가지를 주워와선 검은 봉지를 푹 찔렀다.

“으악!!”

그리고 느껴지는 오묘한 감각에 비명을 질렀다.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지고, 기묘한 붉은 액체가 나뭇가지 끝에 묻은 것이 두 사람의 육안으로 확인이 됐다.

“저, 저거 설마 피야? 시, 시체?!”

“말도 안 돼!!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어.”

“뭐야?! 너 아는 사람이 한 거야?”

“으응.”

“미친, 당장 경찰에 신고하자.”

황상호는 당장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지혜가 황급히 만류했다.

“야야야야! 잠깐만!! 이게 뭔지 확실하게 확인 하고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

“피가 묻어 있잖아! 살인이라니까? 시체 유기인 거잖아!”

“시체를 남의 집 담벼락 아래에 묻는다고? 말이 안 되잖아. 너무 눈에 띄기 쉬워. 더군다나 내가 어제 본 사람이 학생회장이었단 말이야!”

“학생회장이 여기서 왜 나와?”

황상호는 예상하지 못한 범인의 정체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상황에서 튀어나오기엔 너무 말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확인해보고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거면 경찰에 신고하자. 경찰 부르면 학생회장을 봤다고 진술해야 하는데, 난 내 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씨! 미치겠네. 그냥 묻으면 묻나보다 하고 말지. 이걸 왜 파볼 생각을 한 거야?”

이젠 왜 그딴 걸 봐서 이런 사단을 만들어내냐며 황상호가 김지혜를 나무란다.

이런 일에 한 번 엮이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씨이, 우리 집 담벼락에 뭘 묻었는데 너 같으면 확인 안 해볼 수 있겠냐? 그리고 사람 시체가 아닐 수도 있잖아. 봉지 크기가 작단 말이야.”

사람의 시체라기엔 검은 봉지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럼 넌 저게 뭔 거 같은데?”

“나도 몰라! 일단 확인 해보자고. 어떻게든 되겠지.”

쫄보 두 사람은 한참동안 누가 저 비닐을 열어 볼지를 서로에게 미루다가 결국 김지혜가 용기내서 나뭇가지로 검은 봉지를 좀 더 찢어서 안에 든 것을 확인했다.

“헉! 털 달렸는데? 어떡해! 시체 맞는 것 같애!”

“죽었어? 죽은 거 맞아?”

“어어!!”

“으악!”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두 사람은 한참 호들갑을 떨며 벌벌 떨고서야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걸 알아냈다.

“일단 사람이 아니라 동물인 건 다행인데….”

“뭐가 됐든 죽은 거잖아! 뭐가 다행이야. 소름 돋아 미칠 것 같은데.”

그녀의 집 주변에는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은 편이었다.

“학생회장이 어디서 죽은 고양이를 주은 거 아닐까? 여기 떠돌이 고양이들 많이 돌아다니잖아. 그거 주워서 여기다가 묻어준 거지.”

황상호의 추측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솔깃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무서웠던 분위기를 본 김지혜는 그게 맞을 거란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하는 거 별로라는 건 아는데, 이거 학생회장이 죽인 게 맞는 것 같아.”

“야아~!! 왜 그러는데! 네가 죽이는 거 본 것도 아니잖아! 혹시 학생회장도 착각한 거 아니야?”

“아니야. 제대로 봤어! 완전 두 눈 뜨고 또렷하게! 그리고 그 얼굴이 착각하고 싶다고 해서 착각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미치겠네.”

“미안해. 근데 진짜 그때 너무 무서웠어. 고양이 죽은 걸 주워서 묻어주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고.”

황상호는 본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깊게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인간이 이런 짓을 왜 하는데? 뭐가 부족해서?”

“부족한 게 없으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 아닐까?”

김지혜의 머릿속에서 망상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타고 난 사람.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그는 주변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인다.

자신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인 것처럼!

그리고 뒤에서는 몰래 살인을 즐기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처음은 동물들로.

그러다가 점차 대범해져서 기어코 살인까지 저지르는!

“학생회장이 사이코 패스?”

“그럴지도 몰라. 원래 그런 사람들은 동물들부터 시작해서 점점 대범해진다잖아.”

“그럼 학생들 전부를 다 속이고 있다는 거네. 다른 사람들 전부 그 인간 엄청 다정하고 착한 줄 아는데.”

유은탁은 학교에 팬클럽도 있다.

잘 생긴 얼굴에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똑똑함,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따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김지혜도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젯밤 자신이 본 게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

말도 안 되는 외모를 가진 유은탁.

그런 외모를 다른 사람과 착각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마찬가지였다.

고양이 시체를 두고 두 사람이 고뇌에 빠졌다.

정말 학생회장은 사이코패스인 걸까?

황상호와 김지혜 사이에서 복잡한 침묵이 돌았다.

???

“진짜 사이코패스에요?”

바뀐 대본으로 하는 연기는 제법 흥미로웠다.

여름을 겨냥해서 스릴러를 추가하니 이야기의 매력이 한층 더 살아났으니 말이다.

다만 연기를 하기 앞서, 바뀐 내 캐릭터의 정보를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뭐일 것 같아요?”

최희민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촬영 도중에 캐릭터가 바뀌어서 연기하는데 힘이 들 텐데, 자신과 캐릭터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면 괜찮지 않겠냐는 거다.

회식 때 유독 나에게 달라붙어 살갑게 굴었던 작가였기에 집으로 초대를 받는 것 자체는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글쎄요, 캐릭터가 어떻게 변했는지 대본을 보고는 상상이 안 가서요.”

“대답을 하긴 할 건데, 다른 배우들한테는 숨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도 자기 배역과 마찬가지로 의심을 해줬으면 좋겠거든요.”

“뭔가 재밌는 대답이 나올 것 같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최희민 작가가 드디어 말했다.

“일단 제 대답은 아니오에요.”

“오해로 생긴 의심인가요?”

그런 거라면 살짝 아쉬운데.

“아뇨, 그 고양이를 죽인 건 유은탁이 맞아요.”

“??”

사이코 패스 아니라며?

어리둥절해 하는 내 표정에 신나하며 최희민 작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유은탁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유은탁한테는 유은진이라는 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진짜 사이코패스는 유은진이에요. 유은탁은 자기 동생이 자꾸 폭력적인 행동을 해서 그걸 수습하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죽이게 된 케이스죠.”

“아!”

유은탁은 동물을 죽이는 행동이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진짜 ‘사이코패스’로 만들지 않기위해 자신이 대신 그 죄를 저질러버리는 것이다.

“너무 착하고 다정해서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는 남자인 거죠.”

나는 여기서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늘어난 연기력 스탯과 연기 이론 서적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작가님, 유은탁은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식의 행동은 동생을 완전히 바꾸지 못한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요?”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는 거죠?”

“네.”

최희민 작가는 내 지적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도리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은탁과 유은진은 사이가 굉장히 좋아요. 은탁이가 은진이를 엄마처럼, 아빠처럼 키웠거든요.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호불호는 있어요. 그걸 아니까 유은탁은 자기가 희생함으로써 동생의 행동을 교정 하려는 거에요. 애초에 김지혜 같은 평범한 학생한테 뒤가 밟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똑똑한 사람이니까요. 은탁이가 하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시체를 완벽하게 유기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큰 충격을 줘서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게 막으려고 했다는 거군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려고요.”

“맞아요. 유은탁은 단순히 교육을 통한 행동교정은 이미 살인의 쾌락을 알게 된 은진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은진이에게 가장 큰 충격은 뭘까 고민하다가 은탁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나쁘지 않은 설정이다.

아니, 굉장히 흥미롭다.

“은진이는 은탁이가 자기 대신 죄값을 받는 걸 보고 행동 교정에 성공할까요?”

“글쎄요. 적어도 완전한 비밀은 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느 정도 교정은 되지 않을까요? 감정에 휩쓸려서 마구 잡이로 살인을 하진 않게 될 거에요.”

유은탁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희생한 값어치를 다 치렀다고 생각할 거다.

“배우들한테는 끝까지 숨겨주세요. 유은탁이 사이코패스인 것처럼요. 진실이 밝혀지는 건 웹드라마가 끝날 때쯤이 될 거에요. 재밌겠죠?”

“재미없다는 소리는 못하겠네요.”

재밌을 거다.

웹 드라마를 봐준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에서 배역을 받아 연기한 배우들도.

유은탁이 모두를 속이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앞으로 나올 대본은 더 재밌어질 테니 기대해줘요.”

최희민 작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그가 자신한 만큼 재밌는 대본이 나온다면 나는 열심히 연기해줘야 하는 법.

“더 열심히 연기해야겠네요.”

“당연히 그래야죠. 내가 캐릭터 기깔 나게 뽑아줬는데 형편없이 연기하면 다시 싹 다 갈아버릴 거에요.”

최희민 작가의 깜찍(?)한 경고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똑­

“자기야~ 먹으면서 일해.”

“어, 고마워. 여보.”

그때, 예의 바른 노크 소리와 함께 금발의 키 큰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과일과 과자들이 한껏 들려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로부터 다과를 받아 테이블에 내렸다.

“호홍, 고마워요. 매너 좋으시네요.”

“가만히 있는 나 은근히 욕한 거야?”

“아닌데? 자긴 알아들어도 안 그럴 거잖아.”

“그건 그렇지.”

“더군다나 자기가 저렇게 매너 좋아지면 계집애들이 붙어서 싫어. 그냥 계속 그렇게 싸가지 없는 성격 유지해줘.”

“응. 그럴게. 아! 해솔씨, 이쪽은 우리 드라마 투자해준 내 마누라에요. 인사해요.”

최희민 작가의 아내 양아름.

혼혈아인지 서양인의 이목구비와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해솔입니다.”

“우리 자기가 집으로 초대해서 부담 되셨죠? 미안해요. 이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특히 글 쓸 땐.”

“아닙니다. 집이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눈이 즐겁네요.”

“어머! 미술 볼 줄 알아요?”

으리으리한 저택에 각종 미술품들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여러 잡다한 지식들을 구매해서 집어넣은 덕분에 미술품 보는 눈도 길러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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