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31화 (131/849)

〈 131화 〉 #19. 피처링 녹음 (2)

* * *

“네가 도와준다고 해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제안 받아줘서 고마워.”

“저야 말로 영광입니다. 피처링 제안을 받아 본 게 처음이라서 굉장히 놀랐어요. 솔직히 저희 그룹이 실력으로 주목을 받지 못해서 피처링 제안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허니 엔터 출신인데 설마 실력이 부족하려고? 그리고 너 은근히 소문났어. 실력 장난 아니라고.”

저번 활동 때 실력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노력한 만큼 주목을 받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목소리 들으니까 빨리 노래 부르는 거 듣고 싶어지네. 목 상태는 어때?”

“미리 관리하고 와서 좋아요. 당장 시작해도 될 정도에요.”

“이번 앨범이 나한테 정말정말 중요하거든? 부탁 좀 할게!”

상큼하게 윙크를 하며 말하는 나나는 굉장히 매력있는 여자였다.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돌 TOP10에 드는 사람이니 오죽할까?

털털하고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나나는 첫 만남부터 좋은 인상을 줬었다.

‘열심히 인사하고 다닐 때, 제대로 인사를 받아 준 선배 아이돌 중 하나니까.’

나도 활동을 하다 보니 왜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지 이유를 알게 되더라.

워낙 많은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다 보니 그걸 일일이 받아주기엔 너무 벅찬 것이다.

더군다나 인사를 받아주는 걸 보고 ‘얘 호구구나!’ 하는 생각으로 보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기 많은 아이돌과 친분을 쌓기 위함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한 번 따먹어 볼까 싶어서 접근하는 애들도 많았지.’

노골적으로, 거의 희롱에 가까운 추파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얘 이래도 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모든 것을 6년이나 아이돌로 활동한 그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 고마운 사람이지.’

참 웃긴 게 정말 대단한 자리에 오른 사람은 꼴불견한 짓을 안 하는데, 어중간한 위치에서 버티는 사람이 오히려 더 떵떵거리고 다닌다는 거다.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이 바닥이 착한 걸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나 선배님 같은 사람이 오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저한테 제안해주신 거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아하핫! 당찬 모습 보기 좋아!”

나나의 신곡의 도입 부분은 묵직한 비트로 진행 된다.

묵직한 비트에 시원한 그녀의 목소리가 얹어지면 절로 어깨가 으쓱여진다.

내가 해줄 피처링은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

시원하게 고음을 내질러줄 필요가 있었다.

“한 번에 완벽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한 번 가볼까?”

“네.”

나는 미리 싸온 보온병을 꺼내 따듯한 보리차를 마셔서 오는 길에 굳었을지 모를 목을 풀었다.

“부르르­ 부르르­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오우, 쫙쫙 올라가네.”

“오…?”

기계를 조종하던 엔지니어분도 깜짝 놀래서 눈이 동그래져 나를 봤다.

내 늘어난 실력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보니 놀랄 만도 했다.

“너 이 정도였어?”

황당하게도 나나 선배가 내가 목 푸는 걸 보고 환호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띄워주시는 거에요?”

“심상치가 않으니까 그렇지이~!!”

방방 뛰면서 좋아하는 나나 선배님.

그녀의 높은 텐션의 반응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시원하게 질러줘. 짜릿해질 정도로!”

“그래도 되겠어요?”

“응응! 할 수 있는 것만큼 막 질러. 괜찮으니까!”

“네. 해볼게요.”

마냥 고음을 내지른다고 해서 노래가 대단해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마음껏 지르라고 한 이유는 내가 부를 부분이 하이라이트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녹음실을 이용해보았기에 낯선 녹음실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어색하진 않았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서자 나나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느낌만 볼게. 네가 연습해온 대로 해줘.

“네.”

둥둥둥둥 둥 둥둥둥둥둥

심장을 두드리는 격렬한 비트가 들려온다.

이젠 제법 익숙해지고 친숙해진 노래다.

피처링을 부탁 받고 미리 음원을 받아서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나나 선배가 랩으로 답답한 현실을 꼬집는 랩을 뱉고, 나는 그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라고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르며 충동질 하는 것이다.

가사를 곱씹으며 노래를 듣고 나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지는 노래였다.

‘나쁘지 않은 노래야. 잘만 하면 차트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나 선배님의 팬을 생각해보면 차트에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내가 참여하는 곡이니 타이틀곡 못지않은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하도록.

타이틀곡보다 더 사랑 받는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목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24시간

넌 감옥에 갇힌 죄수

감옥의 이름은 24시간.

프리덤을 외쳐

Boomba Boomba Booomba !

배에 힘을 빡빡 주고 힘차게 불렀다.

50%가 넘어간 노래 능력치는 내가 생각해도 이게 되네? 싶을 정도의 고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뛰어! 박살 내

생각하지 말고 저질러

너는 그럴 수 있어

무엇을 상상하든 모든지

옥상에서 달려 절벽을 향해 달려

뛰어! 날아오르는 거야

프리덤을 외쳐

Boomba Boomba Boomba!

­아웅, 시원해서 너무 좋다.

끊지 않고 한 번에 쭉 이어진 녹음.

헤드폰에서 나나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셨어요?”

­너 음역대가 어떻게 돼? 고음이 장난 아닌데? 어쩜 그렇게 높이 부르는데 얼굴 하나 안 찡그릴 수가 있지?

나나 선배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하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녹음이 끝나지는 않았다.

“여기 붐바붐바에선 조금 더 높여줄 수 있어? 스트레스가 확 벗겨질 정도로!”

“음, Boomba Boomba Boomba 이 정도요?”

“응! 바로 그거야! 와~ 미쳤다. 어머, 너 그 실력을 왜 숨기고 다녀? 널리 알려도 부족할 판에!”

“열심히 활동하면서 알리고 있는 중이었어요.”

“너 같은 애한테 솔로 활동을 안 시키는 게 말이 돼? 허니 엔터 감 떨어졌나보다.”

너무 과할 정도의 칭찬이 쏟아졌다.

얼굴에 너무 과할 정도로 금칠을 당해 머쓱할 지경이었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내 실력이 이 정도 칭찬을 들어도 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나도 내가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를 줄 몰랐기 때문이다.

녹음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공기가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 곧장 고쳐서 불러주다 보니 순식간에 녹음이 끝나버린 것이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덕분에 앨범 정말 잘 나올 것 같아.”

“저야 말로 좋은 경험이었어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앨범 나오는 거 기대하고 있을 게요, 선배님.”

“응응! 앨범 나오면 소속사로 보내줄게.”

“네.”

“내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무조건 연락하구. 나 도움 받고 입 싹 닦는 사람 아니야. 알지?”

“아무렴요. 저한테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음에 만났을 때는 누나라고 불러도 좋아! 나도 잘 생긴 동생 생기는 거라 무지 좋거든.”

나나 선배님의 과할 정도의 접근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내 노래 실력에 호감을 느낀 상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화기애애하게 녹음을 진행하고 끝냈다 보니 어느덧 나나 선배님과는 전화번호를 교환할 정도가 되었다.

연예계에 인맥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나랑 싸우지만 말아. 잘 지내라는 소린 안 할 테니까.’

‘왜요?’

‘나나가 그 바닥에서 엄청난 마당발이야. 특히 친한 연예인들이 엄청 많거든. 사이 나빠지면 골치 아파진다. 애가 나쁜 건 아닌데 호불호가 엄청 갈려.’

매니저 누나가 여기 방문하기 전에 나한테 해준 말이 있어서 더 그랬다.

연예계 마당발이라는 나나 선배에게 의도치는 않았지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나나 선배님은 나를 배웅해주면서도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바빠서 저녁도 못 사주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괜찮아요. 다음에 사주세요.”

“응응! 오늘 수고 많았어! 앨범 꼭 보내줄게!”

“네.”

가방 안에서 안경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데려다줬던 매니저 누나는 다른 일을 하러 갔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우리 소속사까지 가야 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서 안경을 필수.

많은 코인을 주고 구매한 안경은 그 값을 톡톡히 했다.

? ? ?

진해솔이 돌아간 녹음실.

나나와 엔지니어가 오늘 한 녹음의 결과물을 확인했다.

아직 남아 있는 과정이 많았지만, 프로인 그들은 결과물로 나왔을 때 어떤 퀄리티가 나올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믹싱 끝난 거 들으면 이걸로 타이틀곡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안 거야? 저 친구 노래 잘 부른다는 거.”

“아하항! 얻어 걸린 거져. 생각한 것보다 더 노래를 잘 불러서 나도 당황 중이에요. 홍보에 이용하려고 부른 건데, 이런 식으로 대박 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긴, 쟤가 요즘 엄청 핫하긴 하지. 근데 너랑 급이 좀 안 맞지 않아?”

“그러니까 부를 수 있었던 거죠. 적당히 홍보로 써먹고 화제는 내가 다 빨아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상황이 완전 달라졌네요. 쟤가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를 줄이야. 역시 허니 엔터인가?”

허니 엔터 소속 연예인들이 각종 이슈로 인기를 잃었다.

슬슬 이빨 빠진 호랑이인가 했는데, 호랑이 새끼는 역시 호랑이였던 거다.

“보컬 덕분에 노래가 한층 업그레이드 됐어.”

“갑자기 막 아까워지네요. 이 곡 말고 다른 곡을 부탁했어야 했나 싶고요.”

“아니지, 지금 이 곡으로 한 게 다행인 거야. 만약 저 친구가 타이틀곡 피처링 했어봐라. 너 묻힌다? 이 한 곡으로도 충분히 그럴 만하고.”

“와~ 넘하시당. 내 자존심 어떡해?”

“춤 빡세게 춰야지, 뭐 어째.”

나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 노래가 나오면 진해솔의 재발견이라며 화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화제를 이용할 것이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앨범이야. 무슨 수를 써서든 대박쳐야 돼. 후배 동생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지금은 자존심도 없냐는 소릴 듣겠지만, 앨범이 성공하게 되면 그 말이 쏙 들어갈 거다.

원래 이 바닥은 무슨 수를 쓰든 성공만 하면 다 용서 되는 곳이었으니까.

“허니 엔터, 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왜 저 실력을 감춰두고 있는 거야? 다른 애들도 저 정도 수준이면 괴물인데.”

“비주얼도 실력만큼 대단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숨겨둔 비장의 수 같은 거죠.”

“우리 회사 친구였으면 대표님이 당장 솔로 데뷔 시켰을 것 같은데. 저런 존재감에 왜 다른 애들을 붙이냐고.”

확실히 진해솔은 솔로 활동에 가장 적합한 인재가 맞다.

“아까 들어올 때 얼굴 뒤에서 후광이 보이더라. 쟤는 그룹 활동이 오히려 손해야.”

“그쪽도 다 생각이 있는 거겠죠.”

이들은 진해솔이 데뷔하기 몇 개월 전에 들어 온 연습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이라고 알았겠는가?

진해솔이 사람 같지 않은 성장을 보여줄 것이라는 걸.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해솔은 멤버들 중 실력이 가장 떨어졌고, 애초에 비주얼 멤버로 데뷔조에 들어 온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솔로 데뷔는 말이 안 되는 짓인 것이다.

다만 이런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나나와 엔지니어는 허니 엔터도 한 물 간 것 아니냐며 뒷담화를 했다.

더불어 진해솔의 숨겨져 있던 빛나는 재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홍보를 좀 도와 달라고 해볼까? 허니 엔터에 뭘 줘야 하지?’

그쪽 소속사와 나쁘지 않은 관계라지만, 본격적으로 앨범 홍보 활동에 진해솔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줄 의무는 없었다.

그것이 아쉬웠던 나나는 진해솔과 직접 음악방송에 출연해서 라이브 무대를 갖는 건 어떨지 각을 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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