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34화 (134/849)

〈 134화 〉 #20. 접근 (1)

* * *

후끈했던 열기가 사라진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에어콘이 더위를 빠르게 식혀주고 있었다.

나는 아까 전에 누나와 했던 얘기를 꺼내서 좀 더 해보기로 했다.

“학원은 어디에다 구할 생각이에요?”

“이 근처는 오히려 수요가 없어. 회사에 소속 된 연습생들만 지나다니니까.”

“그럼 좀 떨어진 곳이겠네요.”

“응.”

“학원을 차리는 건 응원해 줄 일이지만, 회사에서 보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엄청 서운해지는데요?”

“후훗, 이제 짜릿한 섹스는 더 이상 불가능인 거야.”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 상황 자체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곤 했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무슨 정신으로 그런 대범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들켰으면 그 상황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코인에 기억 지우는 게 있었던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한 개쯤은 구비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메모장에 적어두도록 하자.

“근데 너 지금 뭐해?”

“노래 만들어요.”

“…갑자기?”

한 번 영감을 얻은 후로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방에 오선지를 구비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을 지금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적당히 식은 몸을 일으켜서 가방에 있는 오선지를 꺼내 귓가에 들렸던 노래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이 오선지를 아현이에게 보내면 근사한 곡이 되어 나올 것이다.

“주변에서 저보고 천재라고 하는 말 듣긴 했는데, 솔직히 그냥 그런가보다 별 생각 없었거든요? 근데 요즘엔 아무래도 제가 천재가 맞긴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이렇게 갑자기 노래가 떠오르더라고요.”

“너 원래 작곡했었니?”

“아현이가 작곡 배우잖아요. 같이 대화하려면 저도 작곡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좀 봐도 돼?”

“당연하죠. 아현이랑 공동작곡가 하기로 했어요. 제가 미디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몰라서 이렇게 생각나는 노래 오선지에 만들어서 주면 아현이가 곡으로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서 필요한 부분 있으면 편곡도 하고요.”

“공동작곡가까지? 회사에서 너 작곡한다는 소리 들어 본 적 없는데.”

“회사에 굳이 알릴 필요는 없죠. 전 아티스트 계약을 한 거지, 작곡가로 계약한 게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

내가 만든 곡을 굳이 회사에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내 머리에서 나온 곡에 대한 소유권이 아예 없다.

만약 나중에 소속사에서 문제를 삼고 회사 트레이너한테 작곡을 배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미 활동을 하며 번 돈으로 수업료를 지불한 상황이라고 말해 줄 생각이다.

“흐흥~♪ 흥~♪ 흐흥~ 흥~♬♩”

복순 누나가 오선지에 적힌 음에 따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노래가 제법 흥겹다.

‘그러고 보니 이거 준이한테 줄까? 걔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침 만들어진 곡이 걔가 좋아한다고 했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비슷한 장르의 음악이었다.

“뭐야, 너?”

“왜요? 별로에요?”

“이게 어떻게 별로야! 얘가 미쳤나봐. 이 노래를 방금 생각해낸 거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누나 안에 쌀 때 떠오른 곡이죠.”

“…넌 진짜 미친놈이야.”

“흐흐.”

근데 그 미친 놈이 하필 천재다.

“이래서 인성이랑 실력은 반비례 한다는 말이 있는 거지. 딱 너다. 너.”

“저 성격 나빠요?!”

나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중인데.

“그럼 네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완전 정상적이죠.”

사람이 괜히 권력을 갖게 되면 추해지게 되는 게 아니다.

힘을 가지면 쓰고 싶고 휘두르고 싶어지는 법.

하지만 자신은 특별한 능력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힘을 갖고 누군가를 업신 여기거나 누르는데 쓴 적이 없다.

‘나 정도면 착한 사람 소리 들을 만 한 거지.’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세계에 온갖 나쁜 짓을 할 자신이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특벽한 힘까지 주는 능력이지 않은가?

코인으로 못 사는 물건도 없다.

내가 만약 사람을 죽여도 코인을 통해 완전 범죄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을 그런 쪽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실천하진 않았잖아. 그거면 착한 거지.’

초반에는 나쁜 짓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가령 그런 거 말이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여탕을 몰래 훔쳐보거나 그런 것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기에 유혹이 컸다.

얼굴을 바꾸고 온갖 나쁜 짓을 하고 원래의 얼굴로 산다면 누가 나에게 죄를 묻겠는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 텐데.

그런 충동들을 실천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현재의 내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기도 하거니와 포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살면 그 녀석이 지금처럼 날 가만히 뒀겠어? 득의양양해져서 온갖 참견질을 다 해댔겠지.’

녀석은 내가 죄를 짓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죄를 지으면 그걸로 협박하면 딱 좋지 않은가?

협박의 조건은 당연하지만 여자를 임신시키는 것이 되었을 거다.

그게 녀석에겐 가장 큰 실적이었을 테니 말이다.

‘걔가 사람 목숨에 큰 감흥이 있는 건 아니니까 몇 사람 죽는 걸로 여러 여자들 임신 시키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을 거야.’

트롤짓을 벌주겠다는 명분이 생겼으니 나 또한 포니의 압박을 무시할 순 없었을 터다.

“사실 이번이 처음인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뜬금없이 노래 만든 게 처음이 아니라고?”

“네, 아현이랑 섹스할 때도 오늘처럼 이랬어요. 그래서 아현이랑 바로 공동작곡가 하자고 했던 거고요.”

“…….”

한숨을 푹 쉰 복순 누나가 오선지를 내게 툭 던졌다.

“네가 미친놈인 것도 맞지만, 사람들한테 알려진 네 능력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드네. 어디까지 가려고 이렇게 꽁꽁 숨겨두는 거야?”

“알릴 기회가 없을 뿐이지, 숨기고 있는 건 아니에요.”

보여줄 게 많다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미술을 시작해도 프로처럼 뛰어나질 수 있으며, 각종 스포츠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은 못해도 며칠 시간만 주면 그게 가능해진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삶.

특별하다.

이 특별함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

이 세상에 내 씨를 퍼트리는 것.

“뭘 더 할 수 있는데?”

복순 누나는 오늘 내 재능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알아내야겠다면서 나를 쪼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해줄 말은 하나였다.

“all or noting.”

모두,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

이것이야 말로 내 상태를 표현 할 최고의 한 마디가 아닐까 싶다.

? ? ?

[여길 응시하세요(10/10)] ­ 89,000 코인

­강력한 세뇌 권능이 깃들어 있다. 사용 시 큰 주의가 필요하다. 반드시 전용 선글라스를 착용할 것. 대상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으며, 기억을 삭제시킬 수도 있다. 총 10회 사용할 수 있으며, 한 번 사용시 횟수가 차감 된다.

‘어우씨, 엄청 비싸네.’

위기일 때 필요할 것 같아서 하나 사두는 게 나중을 위해 좋겠다고 생각해 구매를 했는데,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걸 쓰진 않을 것 같다.

비싸도 너무 비싸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복면싱어.

내가 쓰게 될 특별한 가면을 제작하기 위해 방송국에 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으로 들어가자 작가님들로 보이는 방송국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졌다.

방송국은 ‘여초 직장’이다.

남자 직원은 겨우 20명 아래.

방송국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 모두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딱히 남녀 차별을 해서 여초 현상이 일어난 게 아니다.

‘이 바닥이 너무 험해서 남자가 버티질 못한 거지.’

남자들은 굳이 방송국에서 아등바등해가며 일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많다.

방송국에 남아 있는 스무명의 남자들은 이쪽 일이 적성에 맞고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들어 온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직장인 것이다.

“진해솔씨?”

“예.”

“어서 와요.”

“실물이 미쳤다더니 진짜 미쳤네.”

“오늘 눈 호강 제대로 하겠다.”

“들어오세요!”

“이쪽으로 앉아요.”

안으로 들어가니 모두가 나를 환영해준다.

하지만 저들은 방송국 직원.

웃으면서 대놓고 코 베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섭외 받아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해솔이 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 실력이 굉장히 좋습니다.”

내 말을 매니저 누나가 얼씨구나 받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작가들의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해솔씨만 봐도 다른 멤버들 실력 좋은 건 알 것 같더라고요. 다음에 기회 되면 다른 멤버들도 출연해주세요.”

“하하하!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해솔씨, 혹시 닉네임으로 하고 싶은 거 생각하셨어요?”

“어…글쎄요.”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요. 없으면 여기 후보 중에 하나 골라주시면 되거든요.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여기서 골라주는 게 더 좋긴 해요. 여기에 적힌 컨셉 가면은 이미 있거든요.”

[흑마 탄 백발 왕자님]

[민트 피자]

[약 장사꾼 허풍]

[도토리 줍는 다람쥐 왕자]

[호랑이가 내려준 금동아줄]

다양한 닉네임이 주르륵 나와 있는 종이.

그 중에는 빨간색 팬으로 그어진 닉네임도 있었다.

“이건 사용 된 거라는 뜻이죠?”

“네.”

“근데 어째 왕자님이 많네요.”

“해솔씨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

“특히 이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는 작가가 가리키는 부분을 확인했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

역시나 왕자님이 들어가 있는 닉네임이다.

“웹 드라마가 빵 터졌잖아요. 왕자님이라는 단어에서 해솔씨를 연관시키는 네티즌들이 분명 나올 거에요. 이런 식의 힌트를 줘야 사람들이 알아보고 맞추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해솔씨가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된 순간을 보고 싶기도 해요. 이건 팬심이 좀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해요.”

흑마 탄 백발 왕자님.

내가 이 가면을 선택하면 나는 백발이 되어야 한다.

지금 이것과 비슷한 닉네임을 달고 출연했던 가수한테 닉네임 컨셉을 지키라고 허리춤에 장난감 말을 달랑달랑 달아둔 걸 본 적이 있다.

“왕자님도 좋고, 백발도 괜찮은데 흑마가 좀 많이 걸리네요. 검은색 장난감 말인형 허리에 묶어주시는 건가요?”

“그게 싫으시면 말 모양 자전거도 있어요. 타고 나갈 수 있게 해드릴게요.”

진짜 말을 데려올 순 없으니 작가가 냉큼 차선택을 내민다.

“애기들 타는 거 말씀하시는 거죠?”

“헤헤. 원하시는 말로 타고 나갈 수 있게 ”

방송국 놈들이 다 그렇지.

매니저 누나의 표정이 딱 그렇게 바뀐다.

“대신 가발은 좋은 걸로 준비해드릴게요. 왕자님 가면이니까 멋진 걸로 해드릴 거고요.”

“디자인을 저희 쪽에서 고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수정도 해드릴 수 있어요. 원하시는 가면 디자인이 있으면 그려주셔도 되고요.”

원하는 가면을 그려도 된다고?

나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

“종이 좀 주실래요? 팬하고요.”

“…정말 그리시려고요?”

“일단 보여주시는 샘플을 보고나서 추가하고 싶거나 변경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요.”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는 걸로 손해를 보진 않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가면을 고르기 위해 샘플을 보는데 아쉬운 부분들이 제법 많이 눈에 보였다.

[미술] 47.53%

현재 내 미술 능력은 47%.

다만 이 능력이 완전히 내 몸에 익혀지지는 않았다.

능력치를 올리기만 해놓고 그림을 그려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치에 맞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한데, 그림은 그러질 못해서 40%가 넘는 능력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성한 그림은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슥­ 슥슥슥­

“어머, 해솔씨 그림 엄청 잘 그리시네요!!”

“너 그림도 잘 그렸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능력에 매니저 누나도 깜짝 놀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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