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20. 접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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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면싱어 나가는 일 때문이에요?”
후반부 촬영이 남은 웹 드라마 촬영은 일을 만들려고 해도 만들기 힘들 만큼 별 거 없는 스케줄만 남은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 내가 맡은 일 중에 가장 임팩트가 큰 가면싱어 때문에 이 사람들이 여기 모인 것인가 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회사에 불만 같은 거 없니?”
“불만이요? 갑자기?”
회사에 불만이 아예 없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그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 회사 전담팀, 일 잘 한다.
우리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뻥 뜰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전담팀이 노력을 해줬기 때문이다.
결코 우리만 잘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 우리가 널 소홀하게 대하는 것 같다거나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안 해준다던가 그런 거 말이야.”
“불만 없어요.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일하는데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죠. 남의 돈 벌기가 쉽나요? 저는 오히려 우리 전담팀 직원분들한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의 표정에 흐뭇함이 멤돈다.
“우리 해솔이는 어쩜 이렇게 착하지?”
“원래 잘 생긴 애들이 더 착하대.”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니깐.”
“아이, 왜들 이러세요. 갑자기 불러서 얼굴에 금칠하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잖아요.”
빨리 용건 좀 꺼내주시죠!
한동안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직원들이 슬슬 제정신을 차렸는지 본론을 꺼냈다.
“우리라고 이런 소리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야. 유슬하 실장님이 저렇게 도끼눈을 뜨고 오셔서는 일 좀 똑바로 하라고 하셨다구.”
“엥? 누나가요?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매니저 누나가 이유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뜬금없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매니저 누나에게 설명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바라봤다.
섣불리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불만이 생겼으면 그럴만한 일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매니저 누나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다소 엉뚱했다.
내 재능이 대단하니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이를 알렸으면 해서 전담팀이 좀 더 적극적으로 푸쉬해주길 바랐단다.
‘이게 뭔 멍멍이 소리야? 절대 싫은데??’
그 말은 즉, 내 스케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는 뜻이 아닌가?
“해솔이 네 재능이 썩히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어. 우리가 이 정도도 보조 못해줄 만큼 무능한 것도 아닌데, 몰라서 못해주고 있는 거잖아.”
격렬하게 고개를 젓고 싶은 발언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말했다.
“일 잘하고 있던 전담팀 누나들한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겠어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계세요. 전 불만 없는 걸요? 그리고 이런 일을 하기 전에 저랑 먼저 상의를 하는 게 맞는 일이었어요, 누나.”
지금도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짜증나는데 여기서 일을 더 하라고?
매니저 누나는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있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혼란이 왔다.
더욱이 내가 지금 상황을 거부하려는 듯하자 매니저 누나는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꼭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말이다!
“정말 불만이 없다고? 나는 네가 티를 내진 않아도 제일 불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전혀요. 진짜 제 모든 걸 걸고 맹세하건데, 그런 쪽으로 불만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번에 피처링으로 네 노래 실력이 화제가 됐잖아. 그 덕분에 가면싱어에 나가게 됐고. 계속 이런 식으로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길 바라지 않아?”
“….”
확실히 이번에 피처링을 기회로 가면싱어에 나가게 된 건 좋은 기회를 얻은 게 맞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매니저 누나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고 있었고 말이다.
“누나가 뭘 바라는 건지 이제 알 것 같네요. 누나는 나한테 지금처럼 많은 기회가 오기를 바랐던 거네요. 기회만 오면 제가 잘 할 거라는 걸 아니까.”
“맞아! 내 말이 그 말인 거야!”
이 누나가 성급하게 급발진한 줄 알았는데, 나름 큰 뜻이 있어서 한 모양이다.
속으로 이 누나가 정 떨어지게 뭐하는 짓인가 했는데 잠시 그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누나 뜻은 알겠지만 저는 충분히 기회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불만이 없었고요.”
“네 능력이 썩히는 걸 계속 보고 있으려니 너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아. 회사에서 몰라서 안 해주고 있는 거지, 능력이 없어서 못 해주는 게 아니란 말이야.”
허니 엔터는 대형이다.
내게 프로그램을 밀어주기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도 없다.
끼워팔기라는 게 있는데, 이 바닥에서 끼워팔기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에어플레인이 워낙 잘 되다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했을 뿐.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전담팀도 생각이 많아졌는지 표정들이 다들 묘하다.
“둘이 하는 얘기 듣고 있자니 정말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지는데….”
“해솔이 너 도대체 유실장님한테 무슨 모습을 보여준 거야? 숨기고 있는 거 있으면 털어놔봐. 궁금해 죽겠으니까.”
“에이, 숨기는 거라뇨.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잡다하게 할 줄 아는 게 많은 것뿐이에요.”
“잡다하게? 잘한다라….”
내 말을 듣던 직원들이 쑥덕이기 시작한다.
뭔가 일을 벌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상황인데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나 보다.
“뭔데요. 뭘 시키려고요? 저 아무런 불만 없다니까요? 지금도 엄청 잘 해주고 계시는 거에요. 뭔가 더 하실 필요 없어요.”
“쓰읍! 해솔이 너는 가만히 좀 있어!”
내가 하기 싫어하는 티를 내니 매니저 누나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우리 그룹 매니저인데 내가 귀찮은 걸 싫어하고 나서는 걸 싫어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솔직히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어요. 해솔이는 시키면 다 잘하던데, 얘가 어디까지 잘 할 수 있나 싶었거든요.”
“맞아요. 노래도 금방 배웠고, 춤도 엄청 빠르게 배웠죠. 이번에 연기 적응하는 거 보고 기함했잖아요.”
“문제는 해솔이 마음이에요. 쟤가 연기를 마음먹고 제대로 배웠을 때랑 안 그랬을 때랑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다들 알죠?”
“연기는 못하는구나 싶어서 세상이 공평하긴 하네 했다가 다들 뒤집어졌죠.”
“당사자 여기 아직 있습니다만.”
내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 된 진지한 회의.
나는 가만히 있다간 날벼락을 맞을 것 같아 황급히 말했다.
“왜들 이래요? 우리 다음 활동 해외에서 한다면서요! 슬슬 언어 익히는데 집중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 다른 거 할 시간 없습니다. 외국어 익혀야 돼요.”
후반만 남은 촬영.
가면싱어 외에는 다른 스케줄이 없는데, 그게 나 쉬라고 편하게 만들어준 스케줄이 아니었다.
해외 활동을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게 매우 중요해서 멤버들에게 언어를 익히는데 신경을 쓰라고 준 시간들이다.
나는 회사의 악랄한 스케줄 관리를 몸소 겪으며 과거에 아이돌을 너무 쉽게 봤던 것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중이었다.
‘어쩜 이렇게 쉴 틈을 안 주냐고.’
대외적으로 휴식일지 몰라도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숙제를 왕창 줘놓고 쉬라고 하면 그게 진정한 휴식이냔 말이다.
물론 나는 치트키를 왕창 써서 언어를 다 익혀놓은 상태이긴 하다.
‘외국어 공부 핑계로 더 꿀빨 수 있었는데!’
언어 배우라고 준 시간을 알차게 써먹고 있는 중인 나에게 현재 상황은 날벼락이었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매니저 누나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나 작곡도 한다고 하면 뒤집어지겠네.’
절대 말 안해야지.
내 나이 스물 하나.
아직은 떼를 써도 되는 젊은 나이다.
비록 그 나이가 필요할 땐 서른으로 들쭉날쭉해진다 할지라도!
“유티비 어때요?”
“유티비?”
“유티비 소속사 거 있잖아요.”
“부속 채널 하나 더 만들면 되죠! 그건 문제 안 되는 일이에요.”
“확실히 재능이 다양한 해솔이 매력을 팬들한테 보여주기 딱 좋은 것 같긴 하네요. 더군다나 멤버들한테도 좋은 계획이 될 거고요.”
“그쵸, 그쵸? 애들 매력을 골고루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거에요.”
유티비.
요즘 연예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유티비에 진출해서 채널을 만들어 인기를 끄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유티비 채널에는 신곡 발표를 할 때 우리 뮤비가 올라와 달달하게 조회수를 얻기도 한다.
다만 그 영상을 뽑기 위해 희생 될 내 시간을 생각하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화기애애한 전담팀 회의에 태클을 걸고 싶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걸로 저한테 뭘 시키시려고요?”
“네가 뭘 할 수 있을지 일단 봐야지.”
“시작은 노래 커버로 갈까요?”
“오, 그거 좋은데?”
“근데 커버는 좀 식상해요. 해솔이 너 요리 잘 하니?”
“…….”
“대답 없는 거 보니까 잘 하나본데요?”
“잘합니다. 예전에 해솔이가 해준 밥 먹어본 적 있는데, 손맛이 기가 막혔어요.”
“그래요? 그럼 요리하는 걸 찍으면 되겠네요. 요리하는 남자 너무 좋죠.”
“혹시 악기 다룰 줄 아는 건 있어?”
“…….”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기어코 매니저 누나가 끼어들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와 기타를 할 줄 알면 여자들에게 어필이 잘 될 것 같아서 능력을 올려뒀고, 연습하는 걸 매니저 누나와 멤버들이 본 적이 많았다.
“잘합니다. 피아노랑 기타요. 특히 피아노를 프로처럼 잘 치죠.”
“악기도 칠 줄 안다고요? 와~ 완벽하네. 우리가 잘못하긴 했다. 해솔이가 잘하는 게 이렇게 많을 줄이야.”
“피아노 치는 남자라니, 미쳤다.”
“그것만으로 끝이죠. 끝! 여자들 다 넘어 올 걸요?”
정장 입고 피아노 치는 진해솔.
전담팀 직원들의 얼굴이 헤벌죽해진다.
다들 원숭이가 따로 없다.
“해솔이 스포츠 중에는 뭘 잘해요?”
“스포츠 쪽으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들어오자마자 거의 바로 데뷔조에 들어와서 스포츠를 뭐 잘 하는지는 데이터가 안 쌓여 있어요. 데뷔하고 나서는 스케줄 하느라 스포츠를 해본 적 없고요.”
“에이, 뭐가 문제에요. 모르면 하나씩 다 시켜보면 되는 걸.”
“영상 만들 거 많아서 좋긴 하네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왕창 커지고 있었다.
“애들 유티비 채널을 왜 진작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채널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것도 그건데, 애들 스케줄이 될까요?”
“못할 건 또 뭐에요? 어떻게든 끼워 넣으면 돼요. 애들 해외 스케줄에 카메라 몇 개 추가시키면 해결이잖아요. 애들 무대 하는 거 찍어서 올리기만 해도 좋다고 할 걸요?”
해보기 전에 안 된다는 말은 해선 안 되는 법이라며 쓸데없는 의욕을 보이는 전담팀 직원들.
“오히려 유티비가 답일 수 있어요. 해외 스케줄에 집중하면 항상 국내 팬들이 문제였잖아요. 유티비를 시작하면 국내 팬들이 서운해 하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거에요. 애들 얼굴을 아예 못 보는 건 아닐 테니까요.”
좋은 의견이 나왔기에 다들 일거리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티 내지 않고 열심히 의견을 내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건 너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애들한테도 좋은 일이야.”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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