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20. 접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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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한테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나 편하자고 애들 미래에 좋을 일을 막을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원망을 담아 매니저 누나를 바라봤다.
“어쩌다 보니 애들 전체한테 의미 있는 일이 된 것 같은데, 서운한 건 아니지?”
어휴, 제가요? 절대 아닙니다.
부디 나 대신에 많은 시간을 애들이 채워주길 바랄 뿐이다.
“아니에요. 근데 좀 날벼락 같긴 하네요. 좋은 일인 건 맞죠?”
“당연하지! 미안하다. 내가 마음이 급해서 네가 혼란스러워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상의 좀 해주세요. 정말 놀랐어요.”
“그래.”
미리 알았다면 절대 싫다고 정색을 했을 텐데….
‘이미 늦었는데 미련을 가져봐야 뭐하겠냐. 포기하자.’
생각해보니 내가 매니저 누나에게 제법 보여준 능력들이 많구나 싶다.
굳이 능력을 숨길 필요를 못 느꼈기에 할 수 있으면 다 했던 것 같다.
내가 큰 노력 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그게 대단하지 않은 게 아닌데 말이다.
지금 상황은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감내하기로 했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고 몸을 사렸어야 했는데.’
애써 긍정적인 사고관을 돌려봤다.
‘그래도 지금 깨닫게 돼서 다행이지. 나중에 더 말이 안 되는 걸 보여줬으면 어쩔 뻔했어?’
과거의 나는 능력이 없어서 본인의 능력을 과장하고, 한껏 어깨와 가슴을 부풀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가진 능력을 적당하게 숨길 필요가 있을 만큼 뛰어난 부분이 많은 것이다.
그 능력들이 모이다 보면 점점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는가?
‘쓸데없는 구설수는 지양해야지.’
능력이 너무 많다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된다고?’
‘에이, 거짓말 아니야? 사람이 다 잘한다는 게 말이 돼?’
‘증명해봐!’
정말 쓸데없는 의심이고, 내 활동에 필요하지 않을 구설수일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알아차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진짜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3할을 숨기고 다녀야겠네.’
스물하나로 줄였던 나이를 다시 뻥튀기한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서른이 넘는 나이에 중2병 컨셉을 잡아야 하니 속이 무척 오글거렸다.
유티비 채널을 운영한다는 게 하루 이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기에 회의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담팀에서 채널을 담당해서 운영해줄 직원들을 뽑아야 했다.
매니저 누나는 결국 직원들에게 일 폭탄을 안겨주게 된 셈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환영해주시니 기쁘네요.”
허니 엔터 대표가 이례적으로 누군가를 회사 앞에까지 나와 마중을 했다.
대표가 맞이한 자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의 한걸음, 한걸음엔 기품이 넘쳐났다.
악수를 한 그들이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의 뒤로 직원 한 명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직원은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사진들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허니 엔터를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와 소속 연예인 분들이십니다. 하나같이 대단한 인기를 가진 스타들이죠. 엔터계에서 재계약률이 가장 높은 회사가 바로 우리 허니 엔터인 거 아실지 모르겠네요. 소속 연예인들에게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직원의 소개가 이어질수록, 허니 엔터 대표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피어올랐다.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만든 회사이다.
그런 회사에 거액의 투자를 하겠다고 온 손님인 만큼 대표의 마음이 흐뭇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투자자는 직원의 소개를 경청하고 있었다.
직원의 현란한 말솜씨는 대표인 자신이 들어도 솔깃할 정도였다.
“이제 허니 엔터를 소개하는데 이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시간으로는 몇 달 전이지만, 재작년에 데뷔시킨 보이 그룹 에어플레인입니다. 이 친구들은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친구들이에요. 보다시피 최고 비주얼을 자랑하는데다 아직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미 스타로 떠오른 소속 연예인들 소개를 끝내고, 현재 회사가 메인으로 밀어주고 있는 보이 그룹 에어플레인에 대한 소개가 나왔을 때.
처음으로 투자자가 반응을 보였다.
“…에어플레인.”
“혹시 에어플레인을 아시나요?”
“그럼요. 제가 투자를 하려는 것도 에어플레인을 보고 하는 거니까요.”
“!!”
허니 엔터 대표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에어플레인이 목적이다?’
오랫동안 엔터테이먼트를 운영해오며 여러 좋지 않은 제의를 많이 받아 본 그녀이다.
지금 이 자리에 떳떳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덕분이었다.
“혹시 투자를 결심하게 된 이유에 에어플레인이 있으신 겁니까?”
솔직히 이번 투자를 거절해야 한다는 사실에 선뜻 질문을 던질 수 없었던 대표는 아쉬움을 가득 담아 물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직원도 잔뜩 긴장한 채로 투자자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집중 된 시선을 받은 투자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 소개가 끝나고, 대표는 투자자와 함께 대표실로 움직였다.
직원들 모두 오늘 투자자가 오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몸가짐에 주의를 하고 있었다.
“거액을 투자하시니 쉬운 결정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허니 엔터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여러 엔터들 중 가장 미래가 전망한 회사라는 계산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그런 계산을 내린 건 에어플레인이라는 차기 보이 그룹을 데뷔시켰기 때문이고요.”
“에어플레인에 대한 기대가 크신 듯 하군요.”
“대표님이시니 저보다야 그 친구들을 많이 아시겠죠.”
이번에 데뷔시킨 남자 아이돌은 어쩌다 보니 그녀가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한 그룹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직원들을 믿고 있었다.
직원들이 그 아이들을 훌륭히 잘 키워낼 거라고.
실제로 에어플레인은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직접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일까?
‘투자자가 들어 올 정도로 포텐이 큰 그룹이라는 건가….’
에어플레인 멤버들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투자자는 에어플레인의 앞날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는 그 친구들이 허니 엔터를 더 큰 회사로 만들어줄 거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을 잘 키우고 있지만, 제 돈이 더 투자 된다면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대단한 친구들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투자금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관심이 많으실 듯하군요.”
“네, 제가 한 투자의 70% 이상을 반드시 에어플레인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싶어요. 투자한 만큼 가치를 창출해줄 친구들은 그들일 테니까요.”
투자금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 투자금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것도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
투자자가 투자금 사용에 관여를 한다는 것은 썩 좋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막 데뷔한 친구들을 투자해주시겠다는 뜻은 저희로서 환영할 수밖에 없는 기쁜 일입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군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에어플레인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서게 될 거라는 건 저도 의심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허니 엔터에는 많은 스타들이 있습니다. 아직 덜 여문 과실을 베어 무는 건 익지 않은 과일에게도, 그걸 먹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비극이 될 겁니다.”
말은 번지르르했지만, 결국 투자금은 우리가 알아서 쓰겠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투자자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대표의 말을 이해하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에어플레인을 위해 쓰고 싶은 돈입니다. 그 외의 것에 30%나 양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에어플레인이 아니면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시군요.”
“세월이 흘러 허니 엔터도 어느덧 역사가 깊은 회사가 됐습니다. 대표님한테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좋은 투자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저는 제 돈이 가장 좋은 효율을 보일 수 있는 곳에 쓰이길 바랍니다.”
“…….”
투자자의 지적은 뼈아팠다.
소속 연예인들 모두 스타인 것은 맞으나 이미 전성기를 경험하고 떨어지는 별들이다.
그들에게 돈을 투자해봤자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전성기에 접어들려는 이들보다는 덜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계약을 할 때 정산 비율만 봐도 그렇다.
이미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연예인들은 재계약을 할 때 8:2 혹은 9:1까지도 접고 들어가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니 엔터가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반면에 에어플레인의 정산 비율은 6:4. 회사가 압도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이지.’
어중이떠중이라면 자신의 투자금이 이미 유명한 스타들에게 쓰이길 바라겠으나 노련한 투자자인 그녀는 이미 허니 엔터에 대해 뼛속까지 조사를 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허니 엔터는 30억이라는 거액의 투자자와 무사히 계약서에 싸인을 마쳤다.
“앞으로 제 돈을 불려 줄 친구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제가 저녁 식사를 사주고 싶어서요.”
“물론이죠. 애들 스케줄이 괜찮은지 물어보겠습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가볍게 물어봐주세요. 멤버들 모두를 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죠.”
에어플레인이라는 그룹을 보고 투자를 했으니 멤버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대표가 직원에게 연락을 넣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 연락은 빠르게 담당 매니저로부터 전달되어 에어플레인 멤버들의 귀에 들어갔다.
? ? ?
“투자자와 식사요?”
“전부 다 갈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 이런 자리는 멤버들 전부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 회사 투자도 받아요?”
회사가 어떻게 운영 되는지 1도 모르는 순진한 질문이 멤버들 사이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얘들아….’
정말 순수하고 순진한 질문이 따로 없다.
“투자자가 너희들을 보고 투자를 한 거라고 하셨대.”
“헉! 저희를 보고요?”
“너희들이 앞으로 허니 엔터를 대단한 회사로 만들어줄 것 같았다고 하셨대.”
“우와~! 완전 감사한 말이네요.”
“고로 그분이 해주신 투자금은 아마 너희들을 위해 쓰이게 될 거야.”
“헉!”
“거액 투자를 하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대표님이 너희들한테 웬만하면 다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신 거야.”
“그렇게까지 저희를 대단하게 봐주셨다면야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나갈게요! 형들도 다 갈 거죠?”
기우연이 제일 먼저 식사자리에 나가겠다며 나서니 다른 멤버들도 뺄 수가 없었다.
“밥 어디서 먹어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거야. 그러니까 단정하게 꾸미고 나와.”
“레스토랑!!”
“고기 써는 거에요?”
어째 다들 투자자와의 식사에 중점을 둔 게 아니라 고기에 한 눈을 판 것 같긴 하지만….
투자자와의 첫 식사.
에어플레인 멤버들은 후다닥 각자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막 이상한 거 시키고 그러진 않겠죠?”
“대표님도 계시는 자리에서 그런 일이 있겠냐?
“저순간 우리 회사도 그렇고 그런 거 주선하는 건가 싶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매니저 누나도 그거 걱정해서 멤버들 전부 부른 거 아닐까? 몇 명만 나와도 된다고 했다던데.”
“우리 서로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 있어요. 화장실도 가지말아요! 형은 특히 조심해야 된다구요.”
이 바닥에서 연예인 생활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각종 더러운 소문들이 창궐하는 곳.
미리미리 몸을 사리고 대비를 해둬서 나쁠 게 없었다.
“너야 말로.그런 제안 받으면 형한테 달려와. 지켜줄 테니까.”
적어도 미성년자애기들이 할 대응보단 내가 하는 대응이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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