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20. 접근 (6)
* * *
투자자와의 만남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굉장히 필사적으로 섹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번쩍 들어 올린 몸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섹스하면서 힘과 체력을 넉넉하게 올려둔 덕을 지금 보고 있었다.
퍽! 퍽! 퍽!
꺄흣! 하악…! 히잇!
서운해요.
흑! 자, 잘모태써! 하앙…!!
이거 제가 당한 거 맞죠? 먹버 당하는 거잖아요.
아, 아니야앗!
나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조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도 일에 치여 살아서 나와 만나는 시간이 매우 적었던 그녀가 결국 마렌치노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경악스런 말을 해왔다.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주다가 물고기가 가출해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차 싶었다.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취소해요.
흐읏! 흐윽!
이러는 게 어딨어요. 갑자기! 너무하잖아요!
푹! 푹! 푹! 푹!
응, 으응!! 너무 세에~! 자기야…! 아흑!
그녀가 돌아가겠다는 말을 처음 하고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서 한 5분정도 아무런 말도 못했던 것 같다.
근데 머릿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그녀의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니 왜 내게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서 더 분했던 것 같다.
‘진작 신경 써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내 여자들 중 메이 린과 조안나의 위치가 가장 애매한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조안나에게 일과 사랑을 고르라고 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고를 거라고 자신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다.
그만큼 그녀는 자기 일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럴 능력도, 자격도 있었고 말이다.
‘마냥 붙잡는 게 좋은 일은 아닐 거야. 그건 내 욕심이지.’
더 대단해질 수 있는 여자를 내 곁에 두면서 한계 짓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발목 잡는 놈팡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내가 과연 그녀를 놓아줄 수 있겠냐는 거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을 때를 가정해보자.
그 꼴을 내가 봐줄 수 있을까?
욱!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조안나라는 여자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까지 그녀를 옆에 두는 게 옳은 일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매력적인 여자인 것도 맞고, 놓치지 아까운 여자인 것도 맞아. 하지만 주아 누나처럼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일단 그녀들과의 추억이 깊지가 않다는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솔직히 메이 린은 언제든 놔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자마자 태도가 꽤 냉정해졌었으니까.’
그녀와는 이미 예전부터 연인보다는 친구 사이가 맞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다.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준으로 관계 정리가 거의 끝난 상태인 것이다.
다만 조안나는 마렌치노에서의 인연이 이곳까지 이어진 경우라서 끈을 놓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억지로 잡을 수 없는 여자니까 적당히 놓아주면서도 끈 하나 정도는 만들어서 묶어두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가지 말라고 계속 붙잡는다 해도 조안나가 흔들리진 않을 것 같다.
그런 여자다.
서운한 마음에 가지 말라고 섹스하면서 괴롭히고 있지만, 나 또한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허무하게 그녀를 놓치기 싫어서 섹스로 시간을 끌고 있는 중이었다.
섹스를 하면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미래를 위해 그녀와 어떤 관계로 남는 게 좋을지 생각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조안나를 정신 못 차리게 하기 위해 쾌감 증폭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는데, 그 덕분인지 그녀는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듯이 헐떡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조안나한테 쾌감증폭을 쓰는 게 처음인 것 같네.’
나쁜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그녀가 이번 섹스를 평생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하는 중이기도 하다.
이 정도 쾌감이면 다른 남자로는 만족하지 못할 거다.
날 떠난다 해도 평생 나와의 섹스를 떠올리며 자위하겠지.
쯔극쯔극쯔극!
오, 마이…갓! 어헉!…아하악!! 자, 자깐…힉! 이게 무…슨! 아아앙!
그녀를 번쩍 들어 푹푹 박는 것도 좋은 자세지만, 뒤로 박는 것도 참 좋다.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챱챱 쫀득쫀득하게 내 사타구니와 맞닿으며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흥이 나서 더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게 되곤 하는 것이다.
‘아, 진짜 아까운데. 이걸 놓친다고?’
그녀의 서구적인, 매력 있는 몸매와 더불어 쫙쫙 달라붙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궁합이 잘 맞는 섹스에 보내줘야 한다는 결심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별 기능 타투 각인 (강제 성욕 봉인)]
중증 의부증에 걸린 ‘대마도사 펠리팔리아’가 배우자에게 쓰기 위해 개발해낸 고도의 마도구. 투명화 기능이 있어서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
겉으로는 타투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아이템.
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타투를 착용한 대상의 성욕을 완전히 봉인시킨다. 대상의 성욕은 오로지 사용자에게만 향한다. 한 번 착용하면 해체가 불가능하며, 부작용이 크므로 주의하여 사용하길 권한다.]
<부작용 :="" 타두="" 착용="" 대상자의="" 성욕이="" 강제로="" ‘거세’="" 당하면="" 당할수록="" 사용자를="" 향한="" 집착증이="" 생겨난다.=""/>
진작 예전부터 준비해둔 아이템이다.
하지만 당장 쓸 상황이 되니 선뜻 쓰기가 꺼려진다.
이 아이템을 사용한 순간 조안나는 평생 혼자 살거나 나에게 다시 돌아와야 할 거다.
그녀의 인생에 남자라는 존재는 나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이것보다 좀 덜한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나같이 미친 내용들이라서….’
사람을 아예 노예처럼 만들어버린다거나, 세뇌와 최면을 걸어서 나를 강제로 사랑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등의 강제적인 요소로 사람을 붙잡는 아이템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나마 내가 선택한 이 타투 각인이 정신을 건드리지 않고 그녀를 놔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억지로 사랑하게 만드는 것만큼 꼴불견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타투각인 아이템밖에 없었다.
‘능력이 강하지 않은 것도 있긴 하지만.’
효능이 강하지 않은 것들은 정말 효과가 너무 미묘하고 미미하다.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초]
향기를 맡을 때마다 각인 시킨 대상자를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향초. 그리운 연인을 꿈속에서 만나고 싶다면 사용하길 추천한다.
극단적이라고 해도 좋을 효과다.
내 상황에 딱 맞는 아이템이 있기는 할 텐데, 그걸 못 찾고 있는 탓에 답답했다.
이래서 AI 상태창 값이 그렇게 비쌌던 거다.
‘제발 검색기능 좀….’
푹푹푹푹!
흐응! 하악! 학! 아하아악…!!! 히익!!
그녀는 한 마리의 뱀이 되어 팔 다리를 내 몸에 휘감았다.
쾌락에 젖은 그녀의 몸은 과부하에 걸린 듯 부들부들 떨렸다.
나에게는 어느덧 익숙해진 떨림이었기에 침착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머리와 등을 쓸어주었다.
물론 하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으므로, 내 위로는 영 쓸모없는 게 됐지만 말이다.
아아으응…! 미칠…것 같애!
정력 능력치를 올리면서 나는 여자를 보내는 게 너무 간단하게 가능해졌다.
때로는 너무 뛰어난 능력에 섹스가 시시해질……리가 있나.
할 때마다 늘 새로워!
행복해!
쾌감 증폭 만세!
‘젊을 때 미리미리 뽕을 빼둬야지,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
문득 나를 받아주는 여자들도 건강이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
아직 20대인 여자들도 있지만, 30대인 복순 누나와 40대인 정화씨까지 생각하면 내가 챙겨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코인으로 그녀들의 노화를 이미 보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악, 하악!
내 힘을 이겨내지 못한 조안나가 혀를 빼물고 학학 숨을 몰아쉬었다.
축 늘어져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듯 해 보이는 조안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녀의 질 안에 정액을 싸냈다.
하으읏!
부들부들!
큭! 후우, 조안나 괜찮아요?
보유 코인이 올랐다는 익숙한 알림을 쳐내버리고, 축 늘어진 조안나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한 번 불붙으면 갈증을 느낄 때까지 해버리곤 하기에 섹스가 한 번 끝나면 물을 마셔주는 건 필수였다.
물?
으응.
입가에 물을 가져다 대주자 조안나가 꿀물 마시는 듯이 꿀떡꿀떡 잘도 마신다.
대견해서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물을 마신 조안나는 힘이 없는지 다시 침대에 축 늘어졌다.
손가락 까딱 할 힘도 없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건 깜빡이는 눈동자 뿐.
잠시 고민하다가 나도 덩달아 그녀의 옆에 누웠다.
조안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해주며 나른한 섹스의 여운을 즐겼다.
섹스로 미뤄뒀던 대화를 다시 나눌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미안해.
한참 숨을 고르던 조안나가 숨소리만 들리던 정적을 끊고 입을 열었다.
고민 많이 한 거죠?
응. 네 옆에 있는 게 행복할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도 결국 일 때문에 네 옆에 제대로 있어주질 못하더라. 너도 너대로 바빴고. 이런 식이면 내가 여기에 남는 이유가 없잖아.
조안나는 정말 바빴다.
유능한 사람이기 때문임도 있지만, 그녀 자체가 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어서다.
그럼 나라도 시간을 유동적으로 잡았어야 하는데 당연하지만 그게 안 됐다.
그녀가 바쁜 만큼 나도 만만치 않게 바빴다.
익숙하지 않은 연기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저도 잘 한 게 없어서 가지 말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혹시 제가 잡아주길 바래요?
아니!
조안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둘 다 서툴렀고, 섣불렀던 것 같아.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 잘못이 더 큰 게 사실이고. 내가 먼저 널 보러 여기까지 왔고, 네 곁에 있고 싶어서 이곳에 남은 거잖아.
조안나는 매우 우울해보였다.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대로 움직여 얽은 인연.
너무 빠르게 시작 된 인연이 부작용을 일으킨 거다.
만나는 시기가 잘못이었던 것 같아. 그날 바에서 널 만나고 환상적인 하룻밤을 행복한 추억으로 끝냈어야 했어. 너도 나이를 먹고, 나도 제대로 자리를 잡은 다음에 만났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야. 그렇지?
나는 신인 아이돌이다.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연예계에 자리를 잡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났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나는 여유가 생겼을 것이고, 그녀 또한 자기 일을 쳐내는데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재회를 했다면?
‘아까우면 붙잡는 게 맞는데….’
저렇게 미안해 하는 조안나한테 몹쓸 짓을 한다?
내 양심이 쿡쿡 쑤시고 있었다!
‘그냥 좋게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저렇게 날 믿고 있는데 뒤통수를 갈기는 건 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안 해도 후회할 것이고, 해도 후회할 것 같다면 해보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과감하게 안 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죠.
?
5년 후에 다시 만나는 거에요. 그때 우리 관계를 다시 정리해 봐요. 이대로 결말을 맺기엔 너무 아쉽지 않아요? 우리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서로 바빠서.
…맞아. 우리 아무것도 못했어. 그래서 더 억울했던 것 같아.
저도 5년간 최선을 다해서 일에 집중 할게요. 그리고 5년 후에 친구로 남든, 연인이 되던 결정을 하는 거에요. 솔직히 지금 당장 당신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당신도 미련이 남은 거 맞죠?
응! 여전히 널 좋아해. 그런데 상황이 맞춰지지 않아서 마렌치노로 돌아가겠다고 한 거야.
생각보다 조안나가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해온다.
그녀도 나처럼 지금의 상황이 아쉽고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역시 아이템을 쓰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이렇게 마무리 짓자.’
5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지금과 같은 마음이 든다면 조안나를 붙잡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내 상황도 많이 달라져 있지 않겠는가?
조안나도 5년이면 충분히 여유가 생길 것 같았는지 마음이 편해보였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떡하냐고?
‘…공항 갈 때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초‘ 하나 사다가 선물해줘야지, 뭐 어떡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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