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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40화 (140/849)

〈 140화 〉 #20. 접근 (7)

* * *

조안나는 내가 화를 내지 않고 5년 후에 만나자는 낭만적인 제안을 해준 것이 고마웠는지 눈물을 흘렸다.

­정말 고마워, 해솔! 널 놓치는 건 내 평생 가장 큰 실수가 될 거야.

‘알면 바람피우지 말고 나한테 얌전히 돌아옵시다.’

내로남불 오지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나는 그녀를 다른 놈팡이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했다.

­놓친 거 아니에요. 그냥 5년 동안 푹 묵혀두는 거죠. 사랑을.

오래 묵혀둘수록 좋은 게 있는 법이다.

특히 우리나라 음식이 그렇지.

조안나와의 특별한 감정 또한 그렇게 푹 익혀두기로 하자.

내 말을 들은 조안나가 갑자기 나를 덮쳤다.

“추웁, 춥! 쪼옥!”

“으음…쪽…쪼옥.”

입술이 부을 정도로 그녀와 키스를 나눈다.

곧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 1분 1초가 소중해진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침대를 굴러다니며 숨결을 나누었다.

­흐응…힝…!

키스를 나누던 조안나의 눈에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완전히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5년 후에 네가 얼마나 더 대단해져 있을지 떠올라서 불안해.

­조안나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저야말로 조안나랑 5년이나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아찔한 걸요. 다른 남자한테 시선도 주지 말아요. 저 질투 심해요.

­흐흥! 애교 부리는 거야? 자꾸 그러면 나 못가.

그날은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초반에 너무 격렬하고 화끈하게 섹스를 했기에 더 이상 성욕이 오르지 않았다.

곧 헤어질 사람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 사이는 화기애애했다.

‘진작 이렇게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우리가 서로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진작 이런 시간을 조안나와 보냈다면 그녀가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는 본인의 실수라고 했지만, 나 또한 가해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 ? ?

[X 탐지기]

­100번이나 남에게 자기 여자를 빼앗기고 한이 맺힌 ‘못난이 백작 쥬피올’이 거액의 돈을 투자해 발명한 마도구. 나의 연인에게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이가 나타났을 시, 사용자에게 강렬한 신호를 보낸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에겐 저주를, 내 연인에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이거지! 내가 필요한 게 딱 이거거든.’

완벽하게 나에게 필요한 상품을 드디어 발견했다.

카테고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 카테고리 안에서도 효과가 워낙 천차만별들이라서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목마른 사람인 내가 열심히 찾아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눈알 빠져라 찾아다닌 덕분에 드디어 조안나에게 줄 좋은 물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용 방법도 매우 깔끔했다.

조안나의 머리카락만 있으면 됐으니 말이다.

“이거 여자들한테 쫙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내 여자들은 믿지만, 그 여자들 주변에 있을 남정네들은 믿을 수가 없다.

워낙 예쁜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들이 대쉬하지 않는 세상이라 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임신을 한 상태라서 안심하고 있지만, 주아 누나는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배우로 활동할 예정이기도 하거니와 엄청 예쁘니까.’

배우라고 하니까 민영 누나가 떠오른다.

매일매일 촬영장을 나가야 했을 때엔 하루에 한 번씩 그녀에게 빨렸던 정액.

계속 정액을 마셔 중독 상태에 다다른 그녀가 결국 선을 넘었다.

내 앞에 보온병을 들이대며 이곳에 싸주면 안 되겠냐고 한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기꺼이 정액을 내주었는데, 순간 뒤통수가 싸해지고 소름이 쫙 돋더라고.

약쟁이 민영 누나에게 앞으로 정액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못 박아뒀다.

죽으려고 하더라.

약 끊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보온병에다가 싸달라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 정액이 음료수도 아니고!!

펑펑 우는 민영 누나를 끝까지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삐쳐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문자를 보내는 걸 보면 귀여운 여자임은 틀림이 없다.

‘오래 참았으니까 이쯤에서 한 번 먹여줄까?’

갑자기 약을 끊으라고 한들 쉽게 끊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적당히 기간을 둬서 정액을 섭취하는 기간을 늘려 볼 심산이다.

어차피 내 정액을 많이 먹어봤자 중독 증세만 더 깊어질 뿐이 아닌가?

민영 누나와 약속을 잡으려고 핸드폰을 조작하려는데, 매니저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그래. 쉬고 있는데 미안하다.

“무슨일이세요?”

­제키가 전화를 안 받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했어. 숙소에 애들 누구누구 있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왜요? 다 모여야 해요?”

­다 올 필요는 없어. 너희들이 대신 전달해주면 되니까. 근데 회사에 오긴 해야 할 것 같다.

“안 좋은 일이에요?”

­아니! 엄청 좋은 일이야. 일이 어쩜 이렇게 잘 풀리는지 모르겠다. 궁금한 애들 있으면 같이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미리 알면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알겠어요. 근데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죠? 저 친구랑 약속 잡으려고 했거든요.”

­빨리 오기나 해, 인마. 입 근질근질해서 죽겠구만!

도대체 뭔 일인데 이렇게 흥분한데?

나는 숙소 거실로 나가서 집에 있는 애들을 불러 회사에 함께 갈 인원을 구했다.

근데 다들 영 시큰둥하다.

사실 나도 귀찮아서 가기 싫기는 하다.

경태 형과 강준은 외국어 수업 받느라 숙소에 없었고 우연이와 남은규는 게임 중이었으며.

“제키 형은 새벽까지 곡 만들다가 1시간 전에 겨우 잠들어서 안 갈 걸?”

“그래? 그럼 걔는 패스. 은규 넌 나랑 회사 가자.”

“악! 왜 나야?”

“오예. 형 잘 가여!”

“남은규 너는 게임 좀 그만하고 바람 좀 쐴 필요가 있어. 어제도 하루 종일 게임했잖아.”

기우연도 게임을 좋아해서 자주 하는 편이지만, 남은규 만큼은 아니었다.

녀석과 모자를 하나씩 나눠 쓰고 휘적휘적 길거리를 걸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형이랑 같이 걸으면 사람들이 잘 안 쳐다봐.”

“엉?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나 혼자 실험 같은 거 해봤거든. 기우연이랑 여길 걸을 때랑 형이랑 여길 걸을 때, 사람들이 쳐다보는 빈도수가 완전 달라.”

“그런 걸 혼자 했어?”

안경의 효과가 그 주변에까지 미쳐서 그렇다.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덕분에 형이 큰일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형은 납치 당해본 적도 없었다며.”

“…없지.”

“진짜 부러워, 그 능력. 나도 배울 수만 있으면 배웠을 텐데.”

“혹시 그거 다른 애들도 알고 있어?”

“대놓고 말한 적은 없는데 다들 눈치 까지 않았을까? 하루 이틀 같이 다닌 게 아니니까.”

“어쩐지! 그래서 기우연이 자꾸 나한테 들러붙어서 같이 다니자고 그랬구나.”

사람 많은 곳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상황이 오면 멤버들은 하나같이 나를 끼워서 가려고 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른다.

원인을 알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애들한테 안경을 싹 다 돌릴 순 없지 않은가?

안경에 특수한 기능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형이 있으면 엄청 편해.”

“이 짜식들.”

나 몰래 그런 식으로 날 귀찮게 만들어서 꿀을 빨았다 이거지?

다신 같이 가주나 봐라.

남은규와 얘기를 나누니 금세 회사에 도착했다.

“누나아~!”

“저희 왔어요.”

“오, 은규랑 같이 왔구나! 이리와.”

“뭔 일이에요?”

“너희들 다음 활동 얘기야.”

“어…그게 벌써 나와요? 해외 활동 할 거라고 시간 좀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미 선배님들이 뚫어놓은 해외 인프라가 있기는 하지만, 국내 활동을 할 때보단 준비할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매우 신중하게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투자자님이 진짜 화끈하게 쏴주시더라고. 덕분에 컴백이 활동이 빨라질 것 같아.”

“투자자요? 여기서 그분이 갑자기 왜 나와요?”

투자자, 멜리사 케이.

그녀는 돈을 투자한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여러 방면으로 우리를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도 나름 해외 인프라를 잘 갖춰놨다고 생각했는데, 현지 회사랑 비교해보니까 차원이 다르더라고. 덕분에 메이저 회사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실감했어. 더군다나 그분이 음반 회사 쪽에 연결을 해주신 덕분에 외국 아티스트라고 차별 당하면서 활동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계약하기 일보 직전인 거에요?”

“응. 우리 입장에선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수밖에 없어. 인맥이 생기는 것 자체가 대단한 기회니까. 더군다나 그쪽이랑 같이 일하면서 노하우도 배울 수 있을 거 아냐?”

한동안 복잡한 내용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들의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의 해외 활동에 꽃길이 깔아졌다는 것!

“해외 유명 작곡가도 연결해주셨어. 빌보드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한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지웰 오워드! 알지? 무려 그 지웰이야 지웰!! 그분의 노래를 너희들이 부르게 될 거라고!”

“우와아!!! 지웰이요?! 미쳤다. 와!!!”

여태까지 사태파악 못하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던 남은규의 눈알이 개구리처럼 뚱글해졌다.

나는 속으로 걔가 뉜데 하고 있었던지라 은규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엄청 대단한 사람인가보네.

순간 은규가 물고기인 줄 알았다.

“형형형! 지웰 프로듀서님이 제키 형 롤모델이야.”

“아, 그래?”

“우리 이러다가 빌보드 1위 찍는 거 아니야? 대박! 그때 뵀을 때 좀 더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지금 이럴 게 아니라 애들한테 알려줘야 돼.”

“거봐라. 나도 입이 근질근질거렸다니까. 원래 다 모이면 알려주려고 했는데 못 참고 너희들 불러서 먼저 말해준 거야. 진짜 너희들 월드스타 되는 거 시간문제인 거야.”

좋아서 방방 뛰는 남은규와 매니저 누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였다.

나는 숙소 서랍에 뒀던 종이쪽지의 존재 때문에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단순히 투자 목적만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그날 내가 쪽지를 받지 않았다면 은규처럼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날 종이쪽지를 받았고, 그건 분명히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표현이었다.

“투자자님께 저희가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찝찝한 일이다.

괜히 좋지 않은 느낌으로 접근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머리를 굴려 감사 인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다 같이 하자.”

“그래야지, 당연히.”

“그때 투자자 만나는 거 되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말 안 꺼낸 건데.”

“그날 보니까 되게 괜찮은 분이시더라고요.”

“그렇지?? 대표님이 아무한테나 투자를 받지 않으시거든! 투자를 받겠다고 하신 거 자체가 괜찮은 분이라는 뜻인 거야.”

매니저 누나는 대표님에게 우리의 뜻을 전해보겠다며 후다닥 사라졌다.

“제키 형 좋아하겠네. 흐흣!”

“너도 알고 있었어?”

“제키 형이 그 투자자 분한테 꽂힌 거?”

“응.”

“아마 애들 다 알지 않았을까?”

하긴, 그날 티가 많이 나긴 했다.

대표님도 눈치 챘으면 좀 큰일인데.

“나 제키 형이 남녀를 떠나서 ‘사람’이랑 대화를 할 때 그렇게 신나하는 거 처음 봤어.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제키 형이 엄청 미련 넘치는 얼굴로 투자자 분을 쳐다보더라고. 그 표정을 봤으면 눈치 못 챌 수가 없더라. 대표님 눈치 엄청 보면서 결국 못 물어보는 거 보고 속으로 엄청 안타까웠거든.이번에 다시 뵙게 되면 제키 형이 번호 꼭 땄으면 좋겠어.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그 여자 분, 되게 부자인 것 같긴 한데 우리 제키 형이면 감당하고도 남는다고 봐!”

나에게 호감을 보인 여자에게 같은 그룹의 멤버가 호감을 보이고 있는, 자칫해서 삐끗하면 막장 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등줄기에 주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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