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42화 (142/849)

〈 142화 〉 #20. 접근 (9)

* * *

며칠 후.

비앙카는 진해솔에 대한 심층 조사 결과를 받아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다야?”

“예.”

“흐음.”

만족스럽지 않은 조사 결과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고아원 동기를 찾아가서 진해솔에 대해 물으니 그런 애가 있었던가 기억도 못하더라. 분명 같이 지냈고, 이름은 알지만 친하지는 않았다라.”

“진해솔이 그 진해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니 그쪽에서 더 놀라더군요.”

“사진 있다며.”

“예, 다음 장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팔랑~

서류를 한 장 넘기니 사진들이 주르륵 나온다.

“여기서 누가 진해솔이야?”

첫장은 고아원 단체 사진이었고, 제대로 보관 되어 있지 않아 얼굴을 확인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흐린 사진이었다.

“왼쪽 끝 구석에 얼굴을 다 가리고 있는 작은 아이가 진해솔입니다.”

“얘가? 애기 땐 엄청 작았네. 그리고 지금이랑 이미지가 너무 많이 다르잖아.”

어릴 적 사진에 있는 진해솔은 얼굴을 다 가리는 더벅머리에 왜소한 체격, 그리고 또래보다 훨씬 작은 키를 가진 초라한 아이였다.

“성격도 굉장히 소심하고 말수도 적었다고 합니다. 존재감이 거의 없었고요. 친하게 지내는 아이도 없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음 장 넘겨보시면 고아원 졸업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 있는데, 덩치는 지금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크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어릴 적엔 그렇게 숫기가 없었는데 사람이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서 연예인이 되었다라…. 재밌네. 연기를 정말 잘 하나봐. 아마 자기 얼굴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거야. 그래서 자길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고아원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한 거지.”

“제가 봐도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음침하게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들에게 자기 얼굴의 특별함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걸 계산해서 해낸 아이니까 내 동생쯤은 찜쪄먹을 수 있을 것 같네.”

진해솔은 얼굴값을 하는 남자다.

비앙카는 진해솔이 단순히 순진한 남자가 아님을 알게 되자 더 마음에 들었다.

재벌가의 남자는 아예 순진하던지, 아예 영악하던지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

순진해서 여자의 치마폭에 쌓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던가, 영악하게 머리를 굴려 자기 것을 알아서 챙겨 먹던가 해야 하는 야생과도 같은 곳인 것이다.

“약속 잡아 볼까? 아니, 아니지. 대놓고 나라는 걸 알리면 멜리사가 분명 알아차릴 거야. 몰래 만나야 하는데.”

“말씀만 하시면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답답하게 일을 질질 끄는 걸 가장 싫어하는 그녀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비서가 그녀의 스케줄을 뒤적이면서도 바로 그녀의 앞에 대령하겠다는 듯 의욕을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비앙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신중하게 접근하자. 얘 여자랑 만나는 건 확실한 거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간도 크네. 이제 데뷔 2년차인 신인 아이돌이 말이야.”

사실 저 얼굴에 만나는 여자가 없는 게 이상한 거다.

그와 만난 여자들이 진해솔을 가만히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나마 약점으로 잡을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만나기 전에 확실한 약점 하나 잡아놓고 시작하면 편할 거 아냐?”

“그럴 겁니다.”

“사진하나 기가 막히게 찍어와 봐.”

“예, 알겠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서는 진해솔의 약점을 확보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부리는 프로 해결사는 비싼 만큼 그 값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비서의 예상은 틀렸다.

“아직도 확보를 못했다고?”

팬들 사이에서도 진해솔에게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상황인데다가 며칠간 뒤를 밟아 본 결과 수상한 외출을 나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고 한다.

“그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면목이 없습니다.”

“후우, 그래. 여태까지 실망 한 번 안 시킨 게 이상한 거지. 시간 더 주겠다고 하고 찍을 때까지 잠복하라고 해.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은 실수지만, 세 번째부터는 의도적인 거야. 만만치 않은 애인 것 같으니 무시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사하라고 해. 쪽팔리게 들키지 말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었던 유능한 프로들이다.

한 번 실수한 것으로 팽하기엔 아까운 자들이었다.

그러니 기회를 더 주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녀의 믿음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해솔의 약점을 잡기 위해 직원들이 약 2주간 뒤를 따랐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사진을 여전히 찍지 못한 것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대표님.”

“정말 황당하네. 그 친구가 대단한 거야, 그쪽 애들한테 문제가 생긴 거야? 네가 보기에 둘 중에 뭔 거 같아.”

“죄송합니다. 이번에야 말로 꼭 해내겠다고 해서 믿고 맡겼는데 이런 대답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됐어. 너한테 화내봤자 뭐하겠니. 넌 일을 시킨 것뿐인데. 약점 하나 얻겠다고 시간을 벌써 얼마나 끈 거람.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진해솔.

지난 2주 동안 그가 방송과 무대에서 활약했던 것을 모두 시청했다.

현재 입덕 부정기를 앓고 있는 비앙카는 본인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약점을 잡지 못했다고 해서 수단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진해솔에겐 협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 ?

이상함을 느꼈던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안경을 낀 채로 바깥에 나갔을 때, 자주 보이던 얼굴의 여자가 자꾸 보이기에 또 스토커가 붙었군 했다.

쟤들은 날 못 보지만, 나는 쟤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기에 이상함을 발견하는 건 쉬웠다.

다만 그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건 좀 늦게 알았다.

단순히 스토커가 붙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뭐하는 새끼들이지?’

아마추어들이 아니다.

갖고 있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 고가의 제품들.

거기다가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버티다가 일정 시간마다 다른 사람과 교대하는 빈틈없는 시스템까지.

내가 워낙 말도 안 되는 사기템을 갖고 있어서 운 좋게 눈치 챈 것이지, 일반인은 절대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3명 안 되는 인원이 감시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엄청나게 인원이 많아지고 차와 사람도 3일에 한 번씩 싹 갈더라.

‘3일마다 차를 바꾸고, 사람들을 바꿔대는데 어떻게 알겠어.’

나를 감시하는 기간이 늘어나서 사람이 부족했는지 익숙해진 얼굴은 변장을 해서 다시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수상한 여자들의 뒤를 역으로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나를 일주일 넘게 미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경 아니었으면 조질 뻔했네.’

다만 그 기간동안 건진 건 없는 듯했다.

스케줄 가는 게 아니면 항상 안경을 끼고 밖으로 나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니 미행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마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생각을 많이 했을 거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들이 나를 미행하는 이유.

그건 바로 내 약점이었다.

‘내가 뭔 짓을 했는데 약점을 찾아대?’

저 정도 프로를 쓰려면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재력자와 인연으로 얽힌 적이…있네?

‘설마 멜리사 케이, 그 사람 짓?’

단순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보복을 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재벌 가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계에서 재벌가문은 지구의 재벌가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은 남자가 부족한 세상.

남자에 관련 된 범죄가 너무 많았고, 그것이 재벌이라는 이유로 묵인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래서 재벌 쪽이랑은 얽히기 싫었는데. 더럽게 쪼잔하네.’

재벌 출신인 멜리사 케이가 범인으로 의심 되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수상한 여자들이 나를 지켜보는 것을 방치했다.

대신 나 또한 수상한 여자들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또 놓쳤어?”

“…네.”

“돌아버리겠군.”

미행 스폐셜리스트라도 불렀던 건지 모르겠으나 수시로 내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를 데려오든 내 뒤를 마음대로 밟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각종 다양한 아이템을 갖고 있는 나의 뒤를 캐낸다?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나를 미행하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의뢰인에 대한 정보를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자 해결이 됐다.

내가 그들로부터 건진 게 없는 만큼, 저쪽도 건진 게 없다 보니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비앙카라고 해요.”

‘이 여자가 의뢰인이구나.’

당당한 걸음걸이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외모, 그녀가 걸친 옷과 장신구들의 가치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비앙카 케이씨일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날 알아요?”

내가 자신을 알아보는 듯하자 당황한다.

“멜리사 케이씨랑 닮으셔서요.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단 번에 알아차릴 정도는 아닌 걸로 아는데. 눈썰미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대화 내용은 화기애애해 보일지 몰라도 내 얼굴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이 여자와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부드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끌려와서 앉아 있는 중이라 칭찬을 받아도 달갑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이해해요. 약속을 어떤 식으로 잡는 게 좋을지 생각을 오래 했지만 마땅히 방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멜리사한테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당신과 만나고 싶어서 무리수를 좀 뒀어요.”

검은색 정장 입은 여자들이 우르르 나타나 잠시 함께 가줘야 한다면서 붙잡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

물론 내가 더 힘이 세다지만, 전문 장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예를 들어 전기충격기나 가스총 같은) 사람들과 대거리를 할 수는 없어서 얌전히 가자는 대로 끌려왔다.

이상한 곳에 데려가면 아이템을 이용해서 빠져나올 생각이었기에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바짝 쫄아 있었겠지. 엄청 괘씸한데.’

나는 오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오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정신병을 가진 스토커가 날 납치하려고 사람을 썼나 싶기도 하고, 그냥 처음 봤을 때 소리라도 질러볼까 후회도 되고 말이죠.”

“불편하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요. 좀 더 부드럽게 만남을 주선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까 무리수를 뒀어요.”

내 입장에선 저렇게 고고하게 사과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만나주지 않으면 자살할 거다, 숙소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쳐들어가서 칼로 널 찔러 죽일 거다 등등. 협박은 이미 수도 없이 당해봤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서 말이죠.”

“세상에, 정말요? 그런 사람들은 협박죄로 경찰서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당신이 한 짓이 더 심한데 뭘 놀라고 앉았어?

“보통 죽인다 혹은 자살할 거다 같은 식의 협박은 대응하지 않습니다. 협박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요.”

이 여자는 사람을 붙여서 나를 미행했고, 지금은 사람을 써서 나를 강제로 이곳까지 끌고 왔다.

즉, 실행에 옮긴 것이다.

살해 협박을 하는 사람도 문제가 크지만, 그걸 실행에 옮긴 여자는 더 큰 죄를 지은 것이었다.

“제 뒤에 사람을 붙였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래서 저한테 바라시는 게 뭡니까?”

내 약점을 파고 다니던 여자이니 내게 좋은 감정이 있진 않을 것 같았다.

“…와아,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네. 미행한 걸 알고 있었어요?”

엿이나 먹어라! 라는 마음으로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설마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한 말로 날 미행했던 사람들은 다 엿을 먹게 될 거다.

일반인에게 미행을 들킨 프로?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 여자가 시켜서 한 일이라지만, 그동안 미행을 당하면서 쌓인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하는 게 맞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는 거죠? 근데 제가 미행을 붙였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저만 감시당할 수 있나요? 저도 그 친구들 감시 좀 했습니다.”

“…….”

비앙카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날 미행했던 이들의 앞날에 친절히 먹구름을 만들어준 것에 만족한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열심히 찾으시던 제 약점은 구하셨습니까?”

“하아~ 이렇게 창피했던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진심이었는지 비앙카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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