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20. 접근 (12)
* * *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헤헷.”
“진짜 어쩜 이렇게 잘 컸어? 회사 그만 둔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이 됐는데 한시름 놨다.”
“히힛!”
기분이 좋았다.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사무직원으로 쓰려고 했다니. 인재 낭비도 이런 인재 낭비가 없었네.”
“근데 정말 두 곡 다 사주시는 거에요?”
“응응. 너 센스 좋더라.”
“누가 부르기로 했어요?”
“얘기하면 놀라 자빠질 걸?”
“궁금해요!”
“레드 위치.”
“!!!”
아현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레드 위치.
허니 엔터의 간판 여자 아이돌 그룹.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는 3년간 그룹 활동 없이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기는 하다.
워낙 개개인마다 팬덤이 엄청나서 개인 스케줄만으로도 꽉꽉 스케줄이 차버리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굳이 레드 위치를 그룹으로 컴백시킬 이유가 없었다.
개인 스케줄만으로도 돈을 어마어마하게 뽑아주니까 말이다.
“선배님들 컴백하세요?!”
“아직 대외 비밀이야. 그러니까 입조심하는 거 알지? 아현이 널 믿어서 알려준 거야.”
“그럼요!! 물론이죠!”
“에어플레인 애들이 이번에 해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서 정작 국내 담당 직원들한테 공백이 생기지 뭐야? 소속 연예인들 중에 컴백하고 싶은 사람 없나 싶어서 찔러봤더니 레드 위치 애들이 걸리더라고.”
“우와!! 근데 레드 위치 선배님들이면 해외 활동도 같이 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레드 위치의 신곡이 나왔는데 해외에서도 당연히 반응이 있을 터다.
“레드 위치 애들이 해외 활동은 하기 싫다네. 늙어서 비행기 오래 타기 싫대. 그래서 이번 활동은 크게 하지 않고 국내에서만 짧게 하고 끝낸대.”
짧고 굵게 국내 활동 위주로,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도 몇 개 안 할 예정이라고.
“그런 거면 이해가 되네요.”
“응응. 암튼 그래서 곡 찾고 있었던 건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곡 건졌다 싶었더니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네. 잘 되려고 이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제 곡을 레드 위치 선배님들께서 부르신다니!! 너무 영광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두 곡 중 하나는 해솔이의 곡이고, 하나는 아현이가 만든 곡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순수하게 현재의 상황을 기뻐할 수 있었다.
해솔이의 곡은 발만 잠깐 담군 것뿐이지만, 나머지 한 곡은 그녀가 만든 곡이 맞았으니 말이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 너무 수다를 많이 떨었다. 계약서 쓸까?”
“네.”
직원이 계약서를 가져다주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해 안 가는 거 있니?”
“아뇨, 다 이해했어요.”
“혹시 회사 전속 작곡가 할 생각은 없어?”
“네?”
“우리 회사 연습생이어서 그런지 네가 만든 곡이 우리 회사 분위기랑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 전속 작곡가로 계약을 하면 지금 받아 본 계약서 곡비보다 더 많이 줄 수도 있고. 사실 지금 그것도 내 권한을 최대한 써서 제일 좋은 조건으로 받아낸 거야. 근데 좀 아쉽지? 아무래도 네가 경력이 없다보니 그게 한계더라.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 네가 만든 곡이 정말 좋았거든.”
“네에.”
두 개의 곡에 대한 비용 700만원.
예상한 것보다 훨씬 곡비가 비쌌다. 때문에 아현은 곡비를 갖고 오래 끌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현이가 곡비에 만족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직원이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전속 작곡가로 계약하면 500만원에 해줄 수도 있어. 물론 한 곡당 말하는 거야.”
히익?
아현이의 눈이 동그레진다.
한곡당 500이면 두 곡의 값으로 무려 천만 원이다.
아현이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런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네 경력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솔직히 당장 전속 작곡가 계약서에 싸인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하지만 아현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해요.”
“얘 좀 봐라? 너 절대 안 부족해. 네가 부족하면 네 노래에 뿅 가서 연락한 내가 뭐가 되니?”
“아뇨아뇨. 정말 제 실력은 아직 부족해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기초도 제대로 쌓지 않고 활동하면 분명 나중에 버거워서 크게 무너질 거에요. 아직은 좀 더 배워야 할 단계라고 생각해요.”
“기준이 엄청 높구나, 너. 이런 노래를 만들어 놓고도 부족하다고 하다니.”
직원에겐 말하지 못하지만, 이 노래들은 그녀 혼자서 만든 게 아니었다.
둘 중 한 곡은 자신이 만든 곡이 맞지만, 솔직히 해솔이가 만든 노래를 통해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었다.
만약 해솔이가 만든 곡이 없었다면?
지금의 곡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혼자서 만족스럽게 곡을 만들어냈을 때, 프로로 활동을 할 생각이었다.
“허니 엔터 전속 작곡가는 지금 저한텐 너무 과분한 자리에요. 다음에, 제가 진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제안해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게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어쩔 수가 없겠네.”
직원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아현이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800으로 계약하자.”
“네? 갑자기 왜 금액이 올라요…?”
“우리 회사 잘 봐달라는 뜻이야. 내가 보기에 넌 진짜 좋은 작곡가가 될 것 같거든.”
아직 본인의 실력에 만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퀄리티의 곡을 만들어냈다.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아현이는 더 성장하고 싶어서 의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직원 입장에서 아현은 아직 터지지 않은 재능 있는 천재 작곡가처럼 보였다.
‘천재 작곡가한테 100만원 더 써서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실제로 아현은 자신을 신경 써준 허니 엔터의 직원에게 크게 감동한 상태였다.
“다음에 좋은 곡 나오면 꼭 우리 회사에 보내주는 거다?”
“물론이죠!! 정말 감사해요.”
“좋은 노래 보내줘서 우리가 감사하지. 후훗!”
아현은 계약서 작성을 끝내고 신나서 해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곡 팔렸어!! 무려 400만원이나 받았어.”
축하해.
“축하해.”
“꺅!”
뒤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그리웠던 얼굴 있었다.
“해솔아!!”
“어이구!”
“어, 어떻게 여기 있어? 어떻게?”
“네가 회사에 온다는데 안 와볼 수가 있어야지. 수고 많았어. 진짜 대견해. 다 컸네, 다 컸어.”
“으히힝~!”
아현은 해솔이의 칭찬에 빙구 같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칭찬이 너무 행복하고 기뻤기 때문이다.
? ? ?
곡을 팔았던 게 엄청 기뻤던 모양이다.
아현이는 어느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내게 달라붙어왔다.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자재하더니 나오자마자 격렬하게 키스부터 갈기는 아현이다.
쪽, 쪼옥, 쪽!
“하으, 너무 좋아.”
“행복해보여.”
“응, 나 행복해. 히히히. 나한테 전속 작곡가가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
“와~ 그거 인정 받은 거 맞지?”
“그러엄!! 당연하지. 아무한테나 전속 작곡가 제안을 할 리가 없잖아.”
“그럼 하겠다고 했어?”
“아니~!”
“왜?”
허니 엔터 전속 작곡가면 경력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절 할 이유가 없는 제안인 것 같았는데 거절했다는 아현이가 이해 되지 않았다.
“이번에 팔린 곡은 내 진짜 실력이 아니잖아.”
“뭔 소리야? 당연히 네 실력이지.”
영감을 받아 적었던 곡이 아현이의 손이 닿으면서 더 멋진 음악으로 탄생했음을 안다.
곡을 쓴 내가 50%의 지분이 있다면 그 곡을 한층 더 진화시킨 아현이에게도 50%의 지분이 있는 것이다.
“이번 곡은 네 곡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네 덕분에 만들어낸 행운인 거야. 만약 또 이번에 만든 곡처럼 만들어보라고 하면 못할 걸?”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행운으로 얻은 곡이 진짜 실력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아쉽기는 하겠다.”
“내 진짜 실력이 그런 곡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다시 제안해달라고 했어. 알겠다고 확답도 받았구.”
“곡비 받은 걸로 장비 사는 게 어때?”
“장비를?”
“우리 둘만의 스튜디오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물론 그러려면 800만원은 좀 부족하려나?”
음악 기계들이 어디 한두 푼인가? 800만원은 부족한 감이 있는 돈이긴 했다.
“부족한 돈은 내가 투자할게. 나 저번에 정산 받은 돈이 꽤 되거든. 앞으로 작곡활동을 계속 하게 될 텐데, 언제까지 녹음실을 빌려서 쓸 순 없잖아.”
첫 곡비를 400만원이나 받았다.
이렇게 곡비를 많이 받은 건 아현이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플러스 되어 들어간 값일 것이다.
만약 아현이가 작곡가가 아니었다면?
허니 엔터는 400만원은커녕 100만~ 200만 사이의 곡비를 내밀었을 확률이 높았다.
나 또한 아현이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니 엔터조차 그녀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서 재능을 보아 온 내가 투자를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러지마. 지금도 부족한 거 없어.”
“다른 사람들이랑 공유해서 쓰는 거 불편하잖아.”
매번 예약을 해야 하는데다, 하루에 빌릴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보안에 취약한 장소였다.
만약 실수로 USB를 꽂아 놓고 오거나 잃어버린다?
그 안에 든 귀중한 음악들이 순식간에 털릴 수 있는 거다.
“보안 문제도 있고.”
“으으음….”
작곡가들 사이에서 보안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럿 들어 본 아현은 차마 내 말에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스튜디오 만드는데 돈 엄청 많이 들어.”
“당장 모든 걸 다 갖추자는 건 아니야. 돈이 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들여놓는 거지.”
필수적인 기계가 있을 것이고, 옵션이 될 수 있는 기계들이 있을 거다.
일단 필수품만 얻어놓고 돈이 모이면 옵션들을 추가해서 채워가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은 부담스러운데….”
곡을 하나 팔았다고 해서 곧장 프로 작곡가가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아현이는 스튜디오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보였다.
“2년간 내가 지원해줄게. 2년이면 프로 작곡가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지 않겠어?”
“미안해서 어떻게 그래.”
“난 네 재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착각일 거라고 말하지 마. 허니 엔터에서도 너한테 전속 작곡가 제안을 할 만큼 네 재능을 대단하게 봐주고 있잖아. 내가 좀 도우면 네 재능이 더 빨리 개화 될 수 있을 텐데 굳이 오래 시간을 끌어야 할까? 네가 내 도움이 정 그렇게 부담이 되면, 프로가 돼서 갚으면 되잖아.”
“…….”
“아현아. 우리가 남이야?”
“아…!”
남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은지 아현이가 입을 꾹 다문다.
“남 아니잖아. 가족이면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넌 나 곤란할 때 안 도와줄 거야?”
“당연히 도와줄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널 돕고 싶어.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게 뿌듯하고 행복해. 내가 열심히 활동한 보람을 느낀다구.”
“해솔아아….”
감동을 제대로 받은 아현이의 눈동자에 물기가 서린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우리 서로 돕고 살자. 가족이니까.”
“으응!”
내 도움을 받겠다는 동의를 받아낸 나는 아현이에게 복순 누나에게 조언을 얻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학원 차린다고 여러 곳 다녀보고 있거든. 둘 다 방음 되는 곳으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잖아. 얘기 나눠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으응, 그렇구나. 나는 몰랐어.”
“아무래도 회사에 알리지 않고 몰래 알아보고 다니다보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학원을 차린다는 걸 회사에서 알게 되면 좋을 게 없다.
복순 누나는 오랫동안 허니 엔터에서 연습생들을 가르치며, 허니 엔터만의 가수 스타일을 만들어내던 사람이다.
그녀의 빈자리가 굉장히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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