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51화 (151/849)

〈 151화 〉 #21. 곰돌이 인형 (6)

* * *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걷는 커플을 봤어

너와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떠올라

함께 걷기만 해도 우린 행복 했어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지, 그것만큼 기분 좋았던 게 없었어

단맛에 취해, 사랑에 취해.

너와 있으면 나 자신이 더 좋아져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믿을 수 없었어

1년이 지났어

삶의 새 의미를 찾아야 할 때야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걷는 커플을 봤어

너와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떠올라

네 생각을 떨칠 수만 있다면

먹고 싶은 걸 먹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키스해.

너를 잊기 위한 일이지 (yeah, yeah, yeah, yeah)

1년이 지났어

삶의 새 의미를 찾아야 할 때야

먹고 싶은 걸 먹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키스해.

너를 잊기 위한 일이지 (yeah, yeah, yeah, yeah)

“누구지?”

“전혀 모르겠죠?”

“상대편은 알 것 같아. 승천하는 화룡은 100% 노희경씨야. 자기 정체 숨기려고 목소리를 좀 바꾼 것 같은데 티가 안 날 수가 없지.”

“노희경씨 목소리가 워낙 유니크하긴 하죠.”

“상대편은 전혀 모르겠어. 도대체 누구지?”

“음색도 좋고, 노래도 엄청 잘 부르네요.”

“분명 가수일 텐데 왜 모르겠지?”

“잘 안 알려진 가수 아닐까요?”

패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인다.

방송 때문에 아는 걸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정말 알지 못하는 인지도 낮은 사람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은 후자의 경우인가 보다.

노희경은 목소리를 애써 바꿔보려 노력한 게 티가 났지만, 오래 가지 않아 패널들이 금세 알아봤다.

솔직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상태였다.

‘노희경, 버리는 패로 딱이긴 하네. 쟤 덕분에 흑마 탄 백발 왕자가 더 주목받게 될 거야. 근데 정말 누구지? 진짜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그나저나 진짜 노래 너무 잘 부른다.”

“어쩜 감정 표현이 저렇게 짙지?”

“내가 저 여자였으면 좋겠어. 나였으면 다시 사귀자고 매달릴 텐데.”

“분명 얼굴도 잘 생겼을 거야. 미남들만 갖고 있는 아우라가 있어.”

연신 감탄이 이어진다.

다만 옥의 티가 존재해서 패널들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목소리에 넋을 놓고 음악을 듣다가도 노희경의 과하게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 자꾸 집중력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노희경의 목소리가 없었으면 더 좋은 노래가 됐을 게 분명했기에 패널들은 방송인 것도 잊고 속마음을 드러내버렸다.

“아휴, 너무 과하다. 승천하는 화룡이 노래를 망치고 있잖아.”

“언니! 마이크마이크.”

“핫! 흠흠. 이 부분은 편집 해주세요.”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며 무대가 끝나고.

방청객들에게 잠시 투표 시간이 주어졌다.

“제작진 쪽에서 승천하는 화룡에 좀 찍어달라는데?”

“왜?”

“표가 너무 차이 심하게 날까봐. 승천하는 화룡 아무도 안 찍을 것 같다더라.”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해. 노래를 저렇게 망쳐놨는데 표 받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노래 실력이 좋은 사람이 노래를 망쳐놨다.

명백히 고의적인 실수인 것이다.

좋은 마음이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 명은 눌러줘야지. 이러다간 0대 100 나오겠어.”

“몰라. 난 소신껏 투표할 거야.”

투표가 종료되었다.

MC가 대본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싹 갈아엎는다고 하더니 난리가 나 있다.

“어우~ 키 엄청 크시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 이쪽으로 나와 보세요. 가면으로 가려져 있는데 훈내가 풀풀 풍겨요.”

오오오오~~!

“패널 분들! 어떠십니까? 흑마 탄 백발 왕자님, 정체를 알 것 같으신가요?”

“전혀 모르겠어요!”

“이런 실력자가 도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건지 모르겠어요.”

“진짜 누구지?”

“짐작 가는 분도 없나요?”

MC가 재차 아무나라도 말해보라며 패널들을 재촉했다.

그제야 패널들은 영 아닐 것 같은 사람이라도 혹시? 하면서 이름을 언급했다.

“강영만씨?”

“에이! 나이가 너무 많잖아요. 목소리가 엄청 젊었다구요.”

그렇게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분량을 따낸 MC가 이번에는 ‘승천하는 화룡’에 대해 패널들에게 물었다.

“승천하는 화룡님은 짐작가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너무 티가 많이 났어요.”

“그분 목소리는 워낙 유명해서 못 알아 볼 수가 없더라고요.”

“이분도 그걸 알았는지 자기 목소리를 좀 꼬았어요. 근데 알아볼 수밖에 없죠.”

“노희경씨!! 여기 왜 나오셨어요?”

도리도리­

승천하는 화룡이 패널들의 익살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라는 뜻.

MC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아니라는 군요. 어어…방금 집계가 완료 되었다고 합니다! 자 결과 보겠습니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 대 승천하는 화룡, 승천하는 화룡 대 흑마 탄 백발 왕자님! 과연 화룡이 이겼을지, 백발 왕자님이 이겼을지이~!! 결과를!!!!!!!!!!! 보여주세요!!!!”

전광판에 0 VS 0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한쪽의 숫자가 너무 빠르게 멈춰버렸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온 최종 결과.

[4 VS 96]

“어…흐,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이겼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크흠, 예예. 백발 왕자님은 내려가 주시고요. 승천하는 화룡님, 나와 주십시오.”

역대 스코어 중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스코어 차이로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승리했다.

“패널에서는 승천하는 화룡님이 가수 노희경씨일 거라고 예측을 해주셨습니다. 아쉽게 패배했지만…….”

MC가 수습을 하기 위해 부던이도 노력했으나 4표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노희경의 정신을 수습하는 건 불가능했다.

MC가 분위기를 띄워보려 질문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아버린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던 MC가 나머지 인터뷰를 다 넘겨버리고 빠르게 진행했다.

“자, 이제 승천하는 화룡님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혀주세요!! 3, 2...!”

정체를 밝히기 전, 쫄깃한 연출을 위해 살짝 뜸을 들여주는 게 보통의 매너였지만, 노희경은 성의없게 가면을 벗고는 바닥에 대충 던져버렸다.

“어...스, 승천하는 화룡님의 정체는 노희경씨였습니다!!”

노희경의 태도 불량에 MC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속으로는 노희경을 향한 썅욕을 해대면서 말이다.

다행이라면 제작진에서도 승천하는 화룡을 대충 내려보내라고 지시를 보냈기에 MC는 후련해 하며 그녀를 내려 보냈다.

노희경도 더 이상 창피하게 무대 위에 있고 싶지 않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버렸다.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을 크게 후회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시발시발시발. 내가 4표라고? 내가 4표? 피디 그 년이 분명 수작질을 부렸겠지. 가만 안 둬. 절대!!'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굴욕을 갚아주겠노라 분노하고 있는 그녀.

하지만 지금 무대는 노희경의 삶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오를 수 있었던 무대였다.

노희경은 창피함과 분노 때문에 마지막 순간을 너무도 쉽게 내려와버렸다.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노희경이라는 가수의 삶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노희경, 저 여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털어서 터트려요.”

숨죽이고 기회를 노리던 멜리사 케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가면싱어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 받은 그녀는 진해솔을 건드린 노희경을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내 남자를 건드려 감히?’

거대한 권력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끈 떨어진지 오래인 노희경이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노희경, 술집에서 추태 부려…성희롱 고소!]

[개과천선했다던 노희경은 어디로? 마약상 뒤쫓던 경찰들에게 접촉하는 장면 목격 돼!]

[왕년의 스타, 별똥별이 되어 지상으로 추락하나?]

[노희경 마약 검사 양성 판정 받아….]

[가면싱어 제작진 노희경 분량 삭제 전전긍긍.]

[노희경 음주운전 혐의 적발!! 혈중 알코올 농고 0.208% 만취 상태.]

[실형 사나? 가수 노희경 마약에, 음주운전, 성희롱까지! 악재 겹쳐.]

[오메가 엔터, 결국 노희경 퇴출하기로 결정!]

“우리 동생, 엄청 빠르게 움직였네.”

멜리사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비앙카.

그녀가 놀라워 할 만큼 멜리사는 노희경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었다.

“멜리사가 움직였어. 그 사람이랑 동맹을 맺었으니까 연락해서 알려줘야겠지?”

[당연하지.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흐흥! 내가 알려주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멜리사가 움직여서 생긴 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을 거야.”

[멜리사는 비앙카 동생이니까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을 거야. 그 남자는 혼자서 당해내지 못할 걸? 네 도움이 필요해.]

“그래,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진척도 : ●●●●●●●◐○○ (76%)]

곰돌이 인형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인다.

곰돌이가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든 그녀의 손가락 가까이로 움직였다.

책상 위를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앙카.

곰돌이 인형은 기어코 비앙카 가까이에 도달했다.

토닥토닥­!

[힘내, 할 수 있어, 비앙카!]

“어쩜 이렇게 한 곳도 빠짐없이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 걸까? 응원해줘서 고마워.”

비앙카는 곰돌이 인형의 깜찍한 행동에 크게 감동했다.

그리고 용기내서 전화를 걸었다.

에어플레인의 곡이 컬러링으로 설정 되어 있었다.

연결음이 사라지고, 전화가 연결 됐다.

­여보세요?

후우~.

심호흡을 한 비앙카가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멜리사가 움직였어요.”

­비앙카씨?

“시간 돼요? 만나서 얘기할 게 생겼는데.”

솔직히 전화 통화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어…오늘 당장은 안 될 겁니다.

“나도 스케줄이 있는 사람이라서요. 내일 5시 가능하겠어요?”

­5시면 저녁 식사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때 만나죠.”

뚝!

전화 통화를 끊은 비앙카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제대로 끊긴 거 맞지?’

핸드폰 화면을 재차 확인해 전화가 끊겼다는 걸 확인한 비앙카는 그제야 마음껏 후욱후욱 숨을 쉬었다.

“내가 왜 이러지?”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설렐 수밖에 없는 거야.]

곰돌이 인형이 당황하는 비앙카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나 제대로 전화하긴 한 거지? 기억이 잘 안 나.”

[잘 했어. 허둥대지도 않고, 똑부러지게 약속 잡고 끊었으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금 더 부드럽게 대화를 나눠보는 게 어떨까?]

“곰돌이 인형 주제에, 건방져! 내가 알아서 할 거거든? 연애 한 번 못해 본 쑥맥인 줄 알아?”

[내일 약속 장소는 어디로 할 거야? 내가 좋은 곳 추천해줄게!]

“인형 주제에 아는 장소가 있어?”

[그러엄! 당연하지. 송당역에 있는 스키야키집!]

“아~ 거기 맛있지. 네가 거길 어떻게 알아? 신기하네.”

대박 맛집으로 유명하고, 그녀가 자주 가서 먹고는 하는 단골집이었다.

“거기에 진해솔씨를 데려가자고? 대화를 나누기엔 좀 별로인 장소 아닌가?”

거기다가 연예인을 그런 곳에 데려가도 될까?

적당하게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려고 했던 비앙카다.

[호텔에 있는 식당 가려고 했지? 비싸기만 하고 솔직히 맛도 없잖아. 너무 네 이미지를 재벌에 맞출 필요는 없어. 오히려 소탈한 매력을 보여주면 널 좋게 생각할 거야.]

“소탈한 매력…? 나한테 그런 매력이 있었어?”

소탈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너무 먼 삶을 살아 온 비앙카.

하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를 꼬시기 위해서라면 소탈이라는 게 뭔지 배울 의향이 있었다.

[서민들이 가는 곳도 너는 자주 다니잖아. 그게 소탈이 아니면 뭐겠어?]

“…그건 그렇지.”

비싼 가게라고 해서 맛의 퀄리티가 비싼 값을 하는 곳은 별로 없다.

너무 형편없어서 돈을 내기 싫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걸 음식이라고 내오는 곳에 갈 바에야 서민들이랑 부대껴서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훨씬 나았다.

미식을 즐기는 걸 좋아하는 그녀의 성향 탓이었다.

그렇게 약속 장소까지 수월하게 결정이 되고.

다음날이 되어 약속 시간에 가까워졌다.

그녀는 이동하는 내내 주머니에 넣어둔 곰돌이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운전해서 왔다면 곰돌이 인형에게 조언을 구해봤겠지만,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미친 년 취급은 안 돼.’

그녀의 이상 행동은 회사의 주가에 큰 치명타를 줄 수 있었기에 주의가 필요했다.

그녀라고 말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곰돌이 인형을 왜 알리고 싶지 않겠는가?

곰돌이 인형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소문이 와전이라도 된다면 큰일나기에 신중하게 행동 할 필요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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