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52화 (152/849)

〈 152화 〉 #21. 곰돌이 인형 (7)

* * *

더욱이 곰돌이 인형의 특별함은 자신만 알고 싶기도 했다.

남들에게 공유 된다면, 곰돌이 인형을 탐내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는 없어.’

그러니 곰돌이 인형의 특별함은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면?

‘빼앗아가려고 난리를 치겠지.’

그렇기에 꼭 만나봐야 하는 것이다.

곰돌이 인형을 선물한 진해솔을.

그라면 분명 특별한 곰돌이 인형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비앙카는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비앙카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약속 시간이 되기 10분 전.

진해솔이 나타났다.

똑똑­

“아!”

“안녕하세요?”

앉으면서 안경을 벗는 진해솔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왔지?’

“어서 와요.”

“이런 곳에서 부를 줄은 몰랐네요.”

두근두근­

다시 만난 진해솔은 여전히 엄청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진해솔은 주변 시선을 의식했는지 다시 안경을 착용했다.

“여기 마음에 안 들어요? 음식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에요. 여기 엄청 맛집이거든요.”

“그런가요? 기대 되네요.”

곰돌이 인형의 조언이 제대로 먹혔다!

진해솔은 그녀가 이런 평범한(?) 가게를 선택한 것이 무척 의외로 다가온 듯했다.

음식 2인분을 시키고 기다리는 와중에 얘기가 시작됐다.

‘침착하게 대화 나누는 거야. 비앙카, 넌 할 수 있어!’

그녀는 표정 관리에 애쓰며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운을 띄웠다.

“흠흠, 가면싱어에 나갔다가 노희경이라는 여자랑 트러블이 있었다면서요.”

“가면싱어는 출연자 보안을 되게 신경 쓰는 프로그램인데, 그 소식을 엄청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계시네요.”

“그런 정보쯤이야 못 구할 게 없죠. 멜리사도 마찬가지에요. 그날 노희경이랑 해솔씨 사이에서 좋지 않은 트러블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아이가 손을 썼어요.”

“요새 노희경씨가 뉴스에 오르던데, 혹시 그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지금 노희경에 대한 기사들 전부 멜리사가 손을 써서 만들어낸 거에요.”

마약에 음주운전에 성희롱까지.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알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최악의 끝을 달리고 있는 그녀의 평판.

그 모든 것이 멜리사의 손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없던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아니다.

이미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여자였고, 그 구린내를 손써서 세상에 알리는데 힘을 썼을 뿐이다.

비앙카에겐 그뿐인 간단한 일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엄청나 보일 수 있는 권력자의 힘이기도 했다.

“갑자기 왜 그런 기사들이 나나 했는데. 제가 관여 된 일인 줄은 몰랐네요.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하나요?”

“걔는 몰래 도와주고 나중에 생색내는 걸 좋아해요. 아마 노희경에 대한 게 잠잠해질 때쯤 진해솔씨한테 생색을 내겠죠. 노희경 짓밟은 거 자기가 한 거라고요.”

노희경이 무너진 게 자기와 연관 된 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사자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단순히 고맙다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은근히 자길 두려워하길 바랄 거에요. 자기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권력을 갖게 됐을 때 얻게 되는 혜택들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리길 바라는 거죠.”

사람의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행동이다.

특히 도도한 남자를 꼬시는데 도가 텄다.

때문에 비앙카는 진해솔도 멜리사에게 홀딱 넘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멜리사를 얕보다간 큰 코 다칠 거라는 걸 경고해줄 필요가 있었다.

“걔가 가지고 논 남자들만 해도 한 트럭이에요. 절대 얕보지 말아요. 이번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해요. 해외 활동 시작한다고 했죠? 그 과정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게 될 거에요. 걔가 그쪽으로 인맥이 좀 많거든요.”

비앙카는 그동안 멜리사가 해왔던 패턴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대단하네요. 그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게.”

“후후, 너무 겁먹지 말아요. 제가 지켜주겠다고 했잖아요. 해솔씨한테 피해가 오는 일은 없을 거에요.”

겁을 먹은 듯한 진해솔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녀는 그만 헤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꿈틀­! 꿈틀­!

[나 숨 막혀. 꺼내줘!]

‘아차!’

진해솔과 대화를 나누는데 정신이 팔려서 주머니에 넣어뒀던 곰돌이 인형을 깜빡하고 말았다.

비앙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걔가 해주는 것들은 전부 받아도 괜찮아요. 그 혜택을 다 받아놓고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보복을 할 아이는 아니거든요. 자기가 억지로 베푼 일이라는 건 알고 있는 아이에요. 실제로 멜리사가 찍은 남자가 격렬하게 거부했을 땐 순순히 물러난 적도 있어요.”

그 남자는 몰랐던 거다.

멜리사의 관심이 거두어진 자체가 보복의 일환이 됨을.

그녀가 주는 혜택들을 받아먹을 땐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그 혜택들이 거두어진 순간 남자는 버티지 못하고 그녀에게 매달렸다.

다시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멜리사는 기꺼이 남자의 사랑을 받아주었다.

혜택을 다시 되돌렸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 혜택들을 끊었다.

남자도 멜리사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거두어진 혜택을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다른 재벌집 딸과 바람을 폈다.

바람 피는 게 걸리는 순간 멜리사의 연애는 완전히 끝난다.

“아예 몰랐으면 몰라도, 갑자기 모든 혜택들이 거둬진다면 미칠 만도 하겠네요.”

“너무 격렬하게 거부하는 것도 멜리사는 싫어해요. 남자가 자기 장단에 맞춰주는 걸 가장 좋아하죠. 그러니까 해솔씨는 멜리사의 손아귀 안에 올라가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해요.”

멜리사의 비위를 맞춰주면서도 그녀에게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비앙카는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고, 그 끝은 비극밖에 남지 않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진해솔이 멜리사에게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아직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 질투심 때문이었다.

끼잉­ 끼잉­!

“헉! 아, 안 돼!”

멜리사를 주의해야 한다며 연신 잔소리를 늘어놓던 비앙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언제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곰돌이 인형이 낑낑대며 테이블 위에 올라가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 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얌전하게 ‘인형’ 노릇을 잘 해왔기에 이런 짓을 저지를 거라곤 상상 못했다.

비앙카가 황급히 곰돌이 인형을 잡아채려는데, 그보다 한발 앞서 곰돌이 인형을 잡아 챈 사람이 있었다.

“해, 해솔씨!”

“제가 선물한 곰돌이 인형이네요. 세상에, 얘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드레스도 입었네.”

곰돌이 인형이 해솔씨의 손바닥 위에 앉아 태연하게 수줍음을 탔다.

[저 예뻐요?]

“정말 많이 사랑해주셨나 봐요. 그래서 진척도가 빨리 오른 건가? 100%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99%에서 영 올라가질 않던데.”

“에?”

비앙카는 너무 태연하게 곰돌이 인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진해솔의 모습에 멍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압도적인 비주얼을 가진 진해솔과 앙증맞은 분홍색 곰돌이 인형의 조합은 주변 배경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한참 한 사람과 인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비앙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역시 당신 알고 있었네요. 무슨 생각으로 곰돌이를 저한테 선물한 건가요? 스스로 움직일 줄 아는 인형을 어떻게 구한 거죠? 당신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건가요?”

그동안 비앙카는 곰돌이 인형에 대한 궁금증을 꾹꾹 눌러왔다.

하지만 진해솔에게 아는 게 있어 보이는 지금.

굳이 그 궁금증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말 안 들려요? 진해솔씨!”

“이렇게 하면 끝나는 거야?”

꾸닥꾸닥!

그녀의 질문이 들리지 않는 걸까?

진해솔은 무례하게도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곰돌이 인형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이봐요, 진해솔씨!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그 인형, 어떻게 된 거냐니까요?”

“올랐다!”

삐이­­­­

어?

그 순간.

비앙카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의 시야가 빙글­ 돌아간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마치 깊은 바다 속으로 잠겨드는 것처럼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 ? ?

“완료 했어요, 주인님!”

비앙카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엽게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분홍색 곰돌이 인형이 내 손바닥 위에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고 웃음기 한 자락 안 보여주던 비앙카는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깨발랄하게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비앙카라니!

내 눈앞에 결과물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쉽게 믿어지질 않았다.

“진짜 곰돌이 너야?”

“네, 주인님! 저 곰돌이에요. 이젠 아니지만요.”

“신기하네.”

곰돌이 인형이 비앙카의 몸을 차지했다.

그리고 비앙카는 곰돌이 인형에 갇혔다.

“사용효과에 있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건 줄은 몰랐어.”

“추가 커스텀 결제를 해주신 덕분이에요. 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을 사용할 때, 주의 사항을 꼼꼼하게 읽어서 사용을 해야 할 듯하다.

세상에, 곰돌이 인형이 사람이 되다니?

강력한 세뇌의 저주를 가한다기에 비앙카가 내 명령을 잘 듣는 사람이 될 줄로만 알았지, 곰돌이 인형이 되어 버릴 줄은 몰랐다.

“추가 결제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인형이 되었을 거에요. 주인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을 따르는 인형 그 자체가 되었을 거에요. 추가 결제를 하신 걸 후회하지 않도록 제가 재밌게 잘 해드릴게요.”

“그럼 앞으로 네가 비앙카씨 행세를 하는 거야?”

“네. 알맹이가 바뀌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성격이 다르잖아. 지금도 비앙카씨랑 너무 다른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수집한 사용자의 인격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거든요. 가령…이렇게 말이죠. 어떤가요? 지금도 이상해 보입니까?”

말하면서 순식간에 비앙카의 표정과 몸짓이 바뀐다.

곰돌이가 보여주었던 깨발랄한 모습은 사라지고, 기존의 비앙카와 다를 바 없는 도도한 여인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어우, 깜짝이야. 지금 비앙카씨 따라 하고 있는 거야?”

“맞아요. 제가 왜 그동안 비앙카 옆에 딱 붙어서 지켜봤겠어요? 다 이걸 위해서 곁에 있었던 거에요. 대상의 주변 관계, 성격, 생활 패턴, 기억까지! 전부 다 흡수해왔죠. 그러니 주인님께서는 들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이에요.”

진척도가 뭘 말하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한국인으로서 찔끔찔끔 오르는 진척도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필요 없는 일은 아니었던 거다.

‘좀 소름 돋네.’

이 아이템의 이름은 ‘내가 갖지 못하면 아무도 못 가져’ 이다.

아이템을 만들었으니 분명 사용했을 터.

집착의 끝판왕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고 자길 사랑하도록 명령해서 껍데기만은 확실하게 가진 듯 했다.

“비앙카씨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곰돌이 인형이 파손 되지 않으면 영영 인형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해요.”

“의식은?”

곰돌이 인형이 됐는데 의식까지 깨어있다면 너무 잔인한 짓이다.

나쁜 일이 될 것임을 알고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슬쩍 죄책감이 밀려왔다.

“주인님께서 바라신다면 얼마든지 의식을 깨울 수 있어요. 이 몸은 주인님 것이에요. 못하는 건 없어요. 제작자께서 추천하는 몇 가지 플레이가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프, 플레이?”

비앙카 아니, 곰돌이가 연기하던 것을 멈추고 다시 깨발랄해져서는 말했다.

“곰돌이 인형에 가둬두고 있던 의식을 깨운 뒤에 이 몸과 섹스 하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다정한 연인이 된 것처럼요!! 저는 비앙카를 연기할 거에요. 그걸 본 비앙카의 심정이 상상이 되세요?”

꺄르륵~!

“…….”

곰돌이가 세상 해맑게 웃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