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21. 곰돌이 인형 (8)
* * *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아? 꼭 해야 하는 거야?”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계속 방치하면서 생기게 될 일을 생각하면 하시는 걸 추천해요.”
“방치하면? 그럼 어떻게 되는데?”
“비앙카의 정신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제가 이 몸을 다루는 게 편해져요. 반대로 정신력이 높아지면 이 몸을 다루는 게 힘들어지죠. 곰돌이 인형 안에서 계속 재우기만 하면 정신력은 계속 회복 돼요. 그럼 결국 몸의 주도권이 빼앗기게 되는 거죠.”
만약 비앙카가 저주에서 풀려난다면?
꽤 끔찍한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니까 곰돌이 인형 안에 갇힌 비앙카를 꾸준히 괴롭혀주셔야 해요.”
“설명서에 네 근처에 곰돌이 인형을 꾸준히 곁에 두라는 게 괴롭혀주라는 의미의 말인 거야?”
“네, 맞아요!”
상상 그 이상으로 잔인한 아이템이다.
“제 섹스 기술을 경험해보시면 깜짝 놀랄지도 몰라요. 기본 제공 서비스인데, 많은 고객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시고, 또 만족하고 계신 서비스에요. 비앙카를 괴롭히는 것도 제게 맡겨주시면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양한 레퍼토리가 준비 되어 있어요.”
비앙카가 곰돌이를 꽤 잘 대해줬던 것 같은데, 곰돌이는 그녀를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보인다.
하긴,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이면 이런 아이템도 구매하지 않았을 거다.
악의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아이템.
곰돌이에게 악의가 가득하다고 해서 녀석의 잘못으로 보이진 않았다.
‘곰돌이를 사용하는 내가 나쁜 거지.’
곰돌이를 도구 취급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 찌른 칼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 터다.
칼을 사용해서 사람을 해친 사람이 잘못이지.
“얼굴이랑 성격이 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적당히 조정 좀 해줄래?”
“그럴까요?”
“응, 네가 너무 깨발랄해서 아까부터 흠칫흠칫 놀래.”
깨발랄한 주제에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여 무섭기까지 하다.
‘나만 처키 생각 나?’
내가 너무 틀딱인 걸까?
그때, 가게 직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잠시 대화가 끊기고, 음식이 차려질 때까지 우리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보글보글
잘 익어가는 고기와 채소들.
손님이 굉장히 많은 게 확실히 맛집이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영원한 건 없어요. 세심한 관리를 해주셔야 해요. 그렇게 해주셔야 저도 이 몸으로 오래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저주가 깨지면 저는 죽는 거랍니다.”
“비앙…아니지, 곰돌이 너 이름이 뭐야? 언제까지 곰돌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이름이요?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진짜 비앙카는 아니지만, 그 몸을 차지했으니 비앙카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곰돌이가 과하지 않게 비앙카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널 지칭하는 진짜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헷갈릴 수도 있잖아.”
“…전 이름이 없어요. 팔려나가는 주문 제작 아이템에 이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없다고?”
제작자가 지어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줘야 하나?
“내가 이름 지어줄까?”
“주인님께서요? 정말요?”
“뭐 어려운 거라고.”
“그럼 지어주세요!!”
얘도 마음속으로는 비앙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싫었던 모양이다.
저주 인형으로 태어난 곰돌이 인형.
제작자도 그저 녀석을 ‘인형’이라고 부를 뿐.
어차피 팔려갈 녀석이니 애정을 주는 것도 제작자 입장에선 성가신 일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이름까지 없는 건 가혹해 보인다.
“여성스러운 이름이 좋아?”
비앙카가 제작해준 것으로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니, 이름을 정하는데 중요한 성별은 여성으로 염두 해두는 게 좋을 듯했다.
“네! 인형한테 성별은 없지만 차지한 몸의 성별이 여자니까요.”
막상 이름을 지어준다고 하니 부담이 된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라고 하면.
“프랑, 소피아, 앨리스, 미오, 실비아.”
이 중에 하나는 마음에 드는 게 있겠지 싶어서 떠오르는 이름들을 쫙 나열했다.
그러자 비앙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프랑 소피아 앨리스 미오 실비아!”
“어?”
그거 아니야!!
? ? ?
“으응! 하읏! 아앙! 좋아요, 주인님! 학!!”
쯔걱, 쯔걱, 쯔걱!
“더! 더해주세요! 하악! 크고 굵은 주인님, 자지로 비앙카 보지 쑤셔주세요! 엉망으로 만들어주세요!”
뭐야?
비앙카는 눈을 뜨고 싶었다.
“아앙~! 주인님, 너무 세요! 학학! 암캐 보지 좋아 죽어요!!”
어떤 정신나간 년이 저런 저질스러운 말을 하는가!
화가 났다.
당장 저 저질스러운 변태를 잡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왜 이러지?'
말도 나오질 않는다.
본인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겁나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트여있는 감각은 청각밖에 없었다.
덕분에 저질스러운 변태 년의 신음을 강제로 듣고 있어야만 했다.
문제는 변태의 신음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흐응, 하응, 응! 거기 너무 좋아요옷!! 히아아앙!!! 꽤에엑! 꽤에에에엑!!”
추잡하다.
‘끔찍해! 이젠 하다하다 돼지 멱따는 소릴 낸다고?’
사람이 어쩜 저렇게 저급할 수 있단 말인가?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느낌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뭐하고 있지?’
비앙카는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봤다.
기억나는 얼굴이 있었다.
‘진해솔!’
그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슨 짓을 하려고!!’
불쑥 원망의 마음이 치솟았다.
그 자가 아니라면 나를 이렇게 만들 사람이 없다.
그러니 범인은 분명 진해솔일 것이다.
‘좋게 봤었는데…….’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으니 그 대가로 몇 배나 더 가혹한 보복을 가해주고야 말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지금 이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무슨 약을 썼기에 몸이 하나도 안 움직여지는 거야? 일단 약효가 사라질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감히 케이 가문의 장녀 비앙카에게 이런 굴욕을 선사하다니….
몸을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비앙카는 곧장 분노를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은 그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비앙카가 분노하고 있는 사이에도 추잡하고 저질스런 신음은 계속 되고 있었던 것이다.
“꾸아앙! 암캐 죽어욧!! 꺄아아아악! 정액 주세여!! 임신 시켜주세여!! 꽤에에엑!”
꾸직꾸직꾸직
쯔억쯔억쯔억!
좀 닥쳐!!!
비앙카는 너무 괴로웠다.
숨이 거칠어진다.
귀를 막고 싶었다.
“꽤에에엑! 암캐 죽어요~! 꽤에엑! 악! 억! 욱! 커헉! 헤엑…자지…정액 마시써여…꽤에엑!”
저 변태의 신음 소리를 계속 들을 바에야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냠냠 꿀꺽! 헤에, 정액 더 주세요. 주인님 정액 밥 위에 뿌려주세요. 암캐는 주인님 정액 없으면 밥 못 먹어여. 냠냠. 마시따.”
우웩!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비앙카의 정신을 막다른 곳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그 순간.
뚝! 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앙카는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기절하는 모습을 생글생글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꽤에엑 꽤에엑 마시…어? 벌써 기절했네.”
비앙카 아니, 주인님께 이름을 받아 실비아가 된 그녀가 축 늘어진 분홍색 곰돌이 인형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생각보다 정신이 나약하네~ 고작 이런 걸로 기절이야? 그동안 잘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다 거짓말이었나봐.”
실비아는 비앙카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분노했는지, 끔찍해 했는지까지 생생하게 느낀 실비아는 아직 멀었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주인님과 섹스하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어. 흥흥~♪ 지루하지 않게 오래오래 괴롭혀줄게~ 비앙카? 내 사랑! 이쁜이~!”
실비아는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 만지던 크림에 더렵혀진 손을 화장실로 가서 깨끗하게 씻어냈다.
안타깝지만 주인님은 그녀와 섹스하는 걸 거부하셨다.
사실 지금처럼 연출과 연기로 비앙카의 정신에 타격을 줄 수 있었기에 아쉽기는 해도 주인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귀로만 듣는 것보단 두 눈으로 보는 것이 더한 충격을 줄 수 있는지라 실비아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섹스.’
사실 주인님과 첫 만남이니까 섹스로 끝내고 싶었던 게 그녀의 본심이긴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묵혀뒀다가 빵! 하고 터트려버려야지.”
사랑하는 비앙카가 저질스럽다고 욕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과연 얼마나 절망하고 어떻게 괴로워할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크다.
어떤 절망을 보여줄지 상상만 해도 쌀 것 같아 실비아는 가랑이를 비비적댔다.
“아흥! 주인님 허락 없이 자위하면 안 되는데. 야한 연기 했더니 꼴리네.”
이 몸을 자신이 차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진짜 주인은 그녀가 아니라 주인님 ‘진해솔’이다.
이 몸의 처녀막조차도 주인의 것이기에 인형은 함부로 행동해선 안 된다.
“주인님이랑 섹스하고 싶다.”
인형의 머릿속에는 각종 섹스 기술이 주입되어 있었다.
애초에 아이템 자체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대상을 사로잡기 위해 만든 아이템이기에 섹스 기술을 기본으로 깔아준 것이다.
머릿속에 든 게 섹스 기술이 대부분이다 보니 실비아는 자꾸만 섹스섹스를 입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섹스. 섹스. 섹스하고 싶다. 섹스.”
아마 비앙카나 그녀를 알고 있는 직원들이 들었다면 기함해서 기절할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비아의 섹무새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자지 먹꼬시퍼요. 쥔님.”
실비아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다는 마냥 익숙하게 핸드폰의 잠금을 풀어낸 실비아.
한자 한자 온 마음을 담아 문자 메시지를 전달한다.
[분홍곰돌이 : 꼬추 주세여, 쥔님.]
문자 잘못 보내셨습니다.
“으응? 번호 맞는뎅.”
[분홍곰돌이 : 쥔님, 쥔님. 저 실비아에요!]
…?
[분홍곰돌이 : 비앙카 귀만 트이게 해서 신음소리 잔뜩 들려줬어요♥ 애가 좀 견디나 싶더니 얼마 못 가서 기절하더라고요. 신음소리 연기하느라 완전 꼴려버렸는데 완전 시시해졌죠. 그래서 주인님 자지밖에 안 떠올라요. 욕구불만 해결해주떼여!]
본 적도 없으면서 그걸 왜 떠올리고 있어? 하지 마.
[분홍곰돌이 : 못 봐서 더 상상 된다는 건 모르시나보다. 쥔님, 쥔님, 그럼 저 자위해도 될까여? 쥔님 자지 상상하면서 달래고 있었는데, 그걸 못하게 막으시면 저한테는 자위밖엔 답이 없어요.]
네 마음대로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분홍곰돌이 : 그야 제 몸과 마음 전부 다 쥔님 꺼니까요?]
…그런 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굳이 물어 볼 필요 없어.
[분홍곰돌이 : 와~! 짱 좋아용! 그럼 처녀막 터질 정도로 자위해도 되나여?]
취소. 앞으로 나한테 허락 받고 해.
실비아의 주인님은 이랬다저랬다 명령을 자주 바꾸는 못된 주인님이었다.
“못된 주인님도 멋있엉! 꺄악!”
하지 말라고 했다. 벌써 시작한 건 아니지? 처녀막 터트리지 마!!
“으힝힝!”
실비아는 행복했다.
드디어 주인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몸도 수월하게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주인님이 계신 차원에는 저주나 이능이 발달하지 않은 세상이라서 수월할 수 있었다.
저주 거는 동안 사제 같은 종교쟁이들에게 걸리진 않을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가!
이제 여한이 없다.
아니지?
“섹스섹스섹스섹스.”
처녀막.
주인님 꼬셔서 일주일 안에 떼는 것에 성공한다면 여한이 없을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