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22. 가면싱어 5관왕? (1)
* * *
“사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나야.”
“응? 형이?”
“엉? 아닌데? 내가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인데?”
“니가? 푸하핰!!”
내 말을 장난으로 알아들은 멤버들이 낄낄 웃으면서 장난친다.
나는 얘네들을 말로 설득하기보단 직접 알려주기로 하고 가면싱어에서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줬다.
“흡!”
“헉?”
“뭐야, 이거 나 가면싱어에서 들은 건데?”
그제야 진짜인 걸 안 멤버들이 경악해서 입을 쩍 벌린다.
“뭐야, 진짜야?”
“미친.”
“우왁!”
“형이 흑마 탄 백발 왕자였다고? 그러고 보니까 목소리가 비슷하잖아!”
“와 이걸 왜 몰랐지?”
“도대체 언제 촬영 한 거야? 아는 사람 있어? 왜 아무도 몰랐지?”
“저 형이 밖에 나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모를 수밖에 없지.”
여자 만나러 다니다 보니 어디 간다고 말하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가면싱어 출연하러 가느라 자리를 비워도 궁금해 하는 멤버가 없었다.
“난 솔직히 너희들 중에 한 명이라도 내 목소리를 알아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한 명도 못 알아보더라.”
“아니에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기우연이 번쩍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기는 알고 있었다는 신빙성 떨어지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뻥치지 마. 기우연!”
“네가 알았으면 진작 우리한테 말 했겠지!”
“맞아, 맞아. 저 가벼운 주둥이가 여태까지 아는 걸 숨겼을 리 없어.”
멤버들 중 가장 입이 가벼운 멤버가 바로 기우연이다.
알았다면 진작 멤버들에게 퍼트렸을 거라고 확신한 멤버들이 기우연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묵살했다.
“아니거든여? 전 알았어요! 근데 형이 숨기는 것 같아서 암말 안 한 거져. 제 입은 자물쇠처럼 무겁습니다!”
“근데 해솔이 형 노래 실력 왜 이렇게 늘었어?”
기우연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남은규가 내 실력에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강준은 그런 남은규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해솔이 형 원래 저렇게 잘 불렀는데?”
“뭐래! 멍청이가. 메인 보컬 자리에서 비켜! 해솔이 형 주게.”
투닥투닥!
강준과 남은규가 정신없이 싸우는 사이.
기우연은 내게 달라붙어서 너무 멋지다고 아부를 떨어댔고, 강경태와 제키는 다시 흑마 왕자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근데 진짜 네가 흑마 왕자님이면 대박인 거 아니냐?”
“헐, 진짜 그렇네? 요새 흑마 탄 백발 왕자님 정체 찾는다고 난리던데.”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지?”
“아무래도 남자 아이돌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더라.”
이 세계 남자 아이돌은 실력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다른 남자 아이돌이 저지른 일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실력도 되지 않은, 얼굴 좀 반반한 애들을 모아서 데뷔시키는 게 남자 아이돌이다.
그래도 여자들은 좋다고 따라다니고 팬이 생기기도 한다.
때문에 그 업보가 우리에게까지 미쳐서 소년 그룹은 대부분 그 존재만으로도 무시를 당한다.
‘괜히 노희경 그 여자가 날 보자마자 성희롱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 게 아니지.’
활동하면서 노희경처럼 노골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은밀하게 혹은 몰래 다가와서 성희롱을 하는 이는 분명 존재했다.
“역시 우리 그룹 먹여 살리는 건 해솔이 형인가?”
“형 진짜 대단하다.”
연기하느라 한동안 고생했는데, 언제 또 가면싱어에 나가서 그룹을 알리고 있었으니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
“흑마 인형은 어딨어? 그거 나도 어깨에 얹어볼래!”
“너 그럼 5관왕 하는 거야?”
경태 형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5관왕을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내 생각에는 다음 출연 때면 탈락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야. 내가 보기에 더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이번에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화제가 됐잖아. 제작진 입장에선 그 화제를 좀 더 이어가고 싶을 것 같은데?”
“그럼 3관왕 정도?”
“에이 3관왕도 아쉽지! 네 실력이면 무조건 5관왕이라니까?”
“3관왕이면 충분하지 않아? 우리 해외 활동 준비도 해야 되잖아.”
“기왕 할 거 5관왕 해서 졸업을 해야지! 명예가 있잖아. 다들 숨은 고수가 나타났다고 난리인데 알고 보니 그게 남자 아이돌인 게 밝혀지면 얼마나 놀라겠어.”
가면싱어에서 5관왕을 해서 졸업을 한 사람은 정말 몇 없다.
제작진 능력이 워낙 좋아서 재야에 묻혀 있는 실력자들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빡빡하게 운영을 하기에 가면싱어의 5관왕 명예가 지켜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여태까지 5관왕해서 졸업한 분들은 전부 유명한 실력자들이셨잖아. 그 중에 아이돌은 한 명도 없었고.”
남자 아이돌에 비해 실력파가 많은 여자 아이돌조차도 가면싱어의 5관왕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5관왕에 성공한다면 대단한 상징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네 실력에 태클을 못 걸게 될 거라는 거지.”
남자 아이돌에 박힌 안 좋은 이미지도 쇄신이 가능 할 거라는 말에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노래 몇 곡 불러서 사람들에게 실력을 알리는 용으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인데, 과분할 정도로 주목을 받아버려 난감하다.
“그러니까 빨리 가면싱어 연습해. 너 지금 여기서 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동안 우리한테 숨기느라 연습도 제대로 안 했지? 뻔해! 형, 빨리 연습실로 가!!”
가면싱어에 출연하고 싶다며 징징대던 멤버들이 돌변해서 나를 닦달해댔다.
반드시 5관왕에 성공해야 한다면서!
가면싱어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밝히면 멤버들이 놀랄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식으로 닦달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다음에 출연할 때 노래 뭐 부를 생각이었어?”
“아직 생각 안 해뒀는데.”
“미리미리 생각했어야지! 촬영은 언제야?”
“어…아직 일주일 남았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고!?”
“빨리 노래부터 정하자!”
“야야야! 진정 좀 해.”
“빨리빨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니까?”
“회사 가요! 회사!”
도와주겠다며 달려드는 멤버들의 호들갑에 휘둘려 결국 하루 만에 뚝딱 가면싱어에서 부를 노래가 정해졌다.
나 또한 대충 2관왕에서 끝내려 했던 마음을 바꿨다.
‘멤버들이 저렇게 바라는데 5관왕 못할 게 뭐야?’
수많은 코인을 넣어 얻은 노래 실력이다.
치트키를 가진 내가 5관왕을 못하면 도대체 누가 하겠는가?
다만 5관왕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때문에 나는 기본 실력으로 가면싱어에서 부르려고 했던 노래를 부지런히 연습했다.
‘나랑 잘 어울리는 장르의 노래!’
이 실력으로 무슨 노래이든 안 어울리겠느냐만은, 그래도 내가 부르기 편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부를 때 더 실력이 나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습을 본 강준이도 날 따라다니면서 노래 연습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메인보컬인데 형이 노래를 더 잘 부르면 안 되지.” 라는 게 강준이의 주장.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는 강준이를 막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럼 우리가 너무 게을러 보이잖아.”
“난 춤 연습 좀 더 해야겠다.”
“한동안 손 놓고 있었는데, 랩 가사 좀 써야겠네.”
그걸 보는 다른 애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외국어에 집중하던 시간을 쪼개 춤, 노래, 랩 등을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들이 뜬금없이 화르륵 타오르자 전담팀만 고개를 갸웃했다.
“얘네들 갑자기 왜 이래요?”
사정을 아는 매니저 누나가 전담팀에게 사정을 알려줬다.
“해솔이 가면싱어에 나온 거 듣더니 5관왕 만들 거라면서 호들갑 떨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애들 전체가 연습에 빠져버렸어요.”
“???”
“강준이가 메인보컬인데 해솔이가 보컬로 난리가 났잖아요. 위기감이 들어서 연습하기 시작했고, 애들은 두 사람이 연습실에 처박히는 거 보고 가만히 못 있겠다면서 시간 쪼개서 연습 중인 겁니다.”
“진짜 신기한 애들이네요. 보통 지금쯤엔 스타병 와서 어떻게든 놀려고 들던데.”
“쟤네는 진짜 크게 될 것 같아요.”
엔터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경력을 쌓은 직원들조차도 스타병에 걸리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높이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애들은 처음이었다.
“레드 위치조차도 이 시기엔 스타병에 걸려서 흔들렸잖아요.”
“어휴, 그것들 친 사고 수습하러 다녔던 거 생각하면…. 그땐 제가 신입이었거든요. 진짜 개고생 많이했어요.”
“그때 걔네들은 짐승이었어요. 짐승.”
“으하학! 맞네요, 짐승. 지금은 쑥, 마늘 먹고 인간 됐고요.”
세상이 좋게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젊은 애들이 모인 곳에서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다.
레드 위치의 경우에는 멤버들끼리 싸우기도 잘 싸웠고, 술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
그걸 다 소속사에서 케어해줬고, 스타병에서 벗어날 때쯤 그들은 날개를 달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에어플레인은 그런 문제없이 너무나도 얌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히려 저렇게 사고를 안 치니까 더 불안한 거 있죠? 얘네들 언젠가는 사고 칠 게 분명한데 언제 터지려나 싶어서요.”
“동감이에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는 거랑 똑같은 심정이죠.”
“얌전한 애들이라 사고 칠 때 장난 아닌 스케일로 칠 것 같아서 불안하기도 하고요.”
데뷔 시작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화제를 모았다.
처음에는 허니 엔터의 힘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에어플레인의 비주얼이 열심히 일을 했기에 가능했던 인기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변에서 설레발을 떨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분명 안 흔들리는 건 아닐 거다.
그저 애들이 바르고 착해서 문제없이 넘기고 있을 뿐.
“한 번은 꼭 터질 텐데….”
직원들이 불안불안한 시선으로 에어플레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열심히 본인들의 실력을 가꿀 뿐이었다.
? ? ?
가면싱어 3회차.
“흑마 탄 백발 왕자님, 개인기 있으신가요?”
제작진이 내게 개인기를 요구해왔다.
“글쎄요.”
분량을 만들기 위해 가왕과 토크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나한테 개인기를 시킬 생각인 모양이다.
“지금 사람들이 흑마 탄 백발 왕자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잖아요. 그래서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힌트를 주려고 하거든요.”
“아예 끝까지 숨기는 게 더 낫지 않나요?”
“어차피 정체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수밖에 없는 거라서요. 너무 안 밝혀지면 기자들 쪽에서 어떻게든 밝히려고 귀찮게 굴 거에요. 그러기 전에 저희 쪽에서 정체에 대한 힌트를 뿌리는 거죠. 대충 윤곽이 잡히면 기자들도 굳이 귀찮은 짓을 안 하니까요.”
“아~”
“아이돌이시니까 개인기는 많으시죠?”
그럴 리가.
개인기 같은 거 키우지 않는다.
그래도 없다고 할 순 없었다.
“음, 어떤 걸 하면 흥미롭고 재밌을 수 있을까요? 작가님께서 아이디어 좀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제가 말해도 백발 왕자님이 못하면 결국 노잼 되는 거라서….”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회사에서 재능꾼으로 불립니다. 이것도 되냐? 하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하죠.”
내 너스레에 작가가 꺄르륵 웃었다.
“정말요? 그럼 몇 가지 알려드려볼까요?”
“말씀만 해주세요.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작가가 제시한 개인기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댄스 메들리였다.
내가 아이돌이라는 힌트를 줄 수 있는 개인기라는 점에서 작가 또한 괜찮을 것 같다고 호응해줬다.
두 번째 개인기로는 성대모사.
웬만한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개인기 하나쯤 갖고 있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성대모사였다.
세 번째로는 운동이나 신체 능력.
남들은 잘 못하는, 신기한 운동이나 신체 능력을 뽐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세 가지 개인기를 모두 해낼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