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58화 (158/849)

〈 158화 〉 #22. 가면싱어 5관왕? (3)

* * *

노래가 끝난 무대.

방청객들 사이에서 침묵이 돌았다.

약 1~2분 후.

정신을 차린 방청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 우와아아아~!!!!

“미, 미쳤다.”

“하아~ 또 듣고 싶어!”

“앵콜! 앵콜! 앵콜!”

짝짝짝짝짝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 쏟아져 내린다.

방송 촬영에서 난데없이 앵콜이라니?

무대 시작 전, 진해솔의 매니저로부터 기분 상하는 부탁을 들은 탓에 표정이 좋지 못했던 피디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런 무대를 해준다면야 얼마든지 편의를 봐줄 수 있었다.

‘기립박수까지 나오고 있어!’

이건 뭐 굳이 투표까지 갈 필요도 없다.

시청률은 대박이 날 것이고, 진해솔의 주가는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오늘 사정을 봐준 만큼 피디는 진해솔에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였다.

‘지금 이 페이스면 5관왕도 가능할 거야. 새로운 5관왕이 나올 때가 되긴 했지.’

5관왕이 너무 쉽게 나오지 않게 조절해야 하는 것도 일이지만, 적절한 때 5관왕을 하는 참가자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눈에 띄는 참가자가 나와야 시청률이 높아지니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진해솔은 시기를 아주 잘 탔다.

마침 5관왕이 슬슬 나와 줄 필요가 있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투표가 잘 안 들어옵니다. 피디님. MC한테 투표 재촉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어. 그래야지. 다들 박수 치느라 안 누르나보다.”

제작진에게 수신호를 받은 MC가 아직도 감동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청객들에게 투표를 부탁했다.

띠리리릭­ 띠리리리릭­!

잘 올라가지 않던 투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올라간다.

역대급 속도였다.

노희경이 나와서 엄청난 스코어 차이를 보여주었는데, 오늘 그게 갱신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16 VS 84]

“발표하자.”

“네.”

빠르게 결과가 MC에게 전달 되었고, 결과는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발표가 되었다.

결과는 모두가 납득했고, 그건 도전자 입장인 해바라기 요정왕도 마찬가지였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진해솔이 무대를 황급히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인이 엄청 크게 다쳤나보네.”

피디는 진해솔의 사정을 대충 들었기에 저렇게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가면 막 벗어서 누구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매니저가 잘 챙겨주겠지?

피디는 3관왕에 성공한 진해솔의 이번 무대를 두고 어떻게 편집할지 설레어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방청객들한테 다시 한 번 더 보안에 신경 써달라고 말해야 된다. 그런다고 말이 안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네, 피디님. 개인기도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아니야. 오히려 그런 걸 했으면 산만해졌을 거야. 감동도 깨졌을 거고. 진하게 여운 남긴 채로 끝내는 게 나아. 퇴장하는 방청객들 얼굴 봐봐. 다들 여운이 남아 있잖아.”

해바라기 요정왕의 정체가 유명한 싱어 황재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방청객들은 시큰둥했다.

이미 역치 끝까지 치솟았던 방청객들은 그보다 낮은 자극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한 거였다.

애타게 앵콜을 외쳤으나 가왕은 이미 병원으로 사라진지 오래.

결국 방청객들은 3관왕에 오른 가왕의 소감도 듣지 못한 채 퇴장하고 있었다.

???

무슨 정신으로 병원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주아 누나와 정화씨를 만나고서야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내가 무대를 잘 끝내고 왔던가?

3관왕이 됐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 와중에도 매니저 누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에게 가면과 의상을 허겁지겁 맡기고 옷을 갈아입은 뒤 택시를 타고 도망치듯 병원으로 향했던 게 떠올랐다.

“많이 아팠지?”

“응. 엄청 아팠어.”

축복이는 날 기다리기라도 한 것 마냥 내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나오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분만 대기실에 있던 누나는 자궁경부가 다 열리기 전 분만실로 이동 됐고, 나와 정화씨는 옷을 갈아입고 가족 분만실에 대기했다.

정화씨는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지를 못했다.

“아휴, 나도 다 했던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하고 가슴이 떨리는지 모르겠네.”

“누나는 괜찮을 거에요.”

“당연히 그래야지. 건강 했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아휴, 우리 딸 아파서 어째.”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도 불안해서 벌벌 몸이 떨리고 있었다.

정화씨보다 더 나은 상태가 아니었던 거다.

그래도 우리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누나가 축복이를 낳을 때까지 버텼다.

“아아아아악!!”

“아버님, 들어가서 산모님 손 잡아주시겠어요? 거의 다 나왔거든요.”

“네, 네.”

간호사 분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불러주니 안절부절 못하던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됐다.

침이 자꾸 말랐다.

시간이 어찌나 안 가는지.

축복이는 또 왜 이렇게 나오질 않는 건지!!

아파하고 있는 누나의 손을 꽉 잡아주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무력함을 느꼈다.

아직 어린 주아 누나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고통이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으애앵­ 우으아앵­

“!!!”

축복이가 태어났다.

진짜 아빠가 된 것이다.

“아기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전부 정상이세요.”

건강에 아무런 문제없이 태어나 준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이 될 줄 몰랐다.

간호사가 능숙하게 아기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누나의 가슴에 축복이를 안겨주었다.

나는 누나와 축복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진짜 내 가족이구나.’

난데없이 낯선 세계에,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살아가느라 소속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 세계가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이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었다.

‘진짜 제대로 살아야겠다.’

현실성이 없는 능력이 생겨서 그런지, 다소 쉽게 만남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도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축복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지.’

암암!!

“가족 분들은 나가서 대기해주세요.”

너무 아쉬웠지만, 이제 그만 축복이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아기를 낳는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모님.”

“으응, 그래. 나가야지.”

정화씨는 주아 누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내 뒤를 따라 분만실에서 나왔다.

“고생하셨어요, 정화씨.”

“고생은. 아휴, 주아 얼굴이 반쪽이 돼서 큰일이야. 잘 먹어야 하는데….”

“제가 산모한테 좋은 것 좀 알아볼게요.”

“나도 알아보긴 했는데 예정일보다 일찍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준비해둔 게 없어.”

주아 누나 걱정 때문에 얼굴을 피지 못하는 걸 보며 나는 정화씨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읏! 다, 다른 사람이 봐.”

“보라죠, 뭐. 회사에 말해서 일주일 정도 휴가 낼게요.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 혼자 무리하지 마세요. 알겠죠?”

“일주일이나?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니?”

“당연하죠.”

지인이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간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회사에서도 일주일 정도는 빼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촬영은 어떻게 됐을까?

축복이가 태어나고 주아 누나도 무사하다는 걸 두 눈으로 봐서인지 그제야 이성이 돌아오고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 누나와 멤버들에게서 엄청나게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긴급 수술 들어갔다고 해야겠지?’

정화씨를 아직 비어있는 입원실에 데려다주고 핸드폰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회사?”

“네.”

“그러렴.”

촬영 도중 뛰쳐 나올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정화씨는 걱정을 드러내며 나를 보내주었다.

매니저 누나에게 전화를 거니 1초도 되지 않아 곧장 전화가 연결 됐다.

분만 시간이 꽤 걸려서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야!! 진해솔!!!

“걱정 많이 했죠? 미안해요, 누나.”

­적어도 전화는 받았어야지!! 병원이야?

“네. 병원이에요.”

­어떻게 된 건데? 설명 좀 해줘. 답답해 죽겠다. 지금 너 걱정해서 멤버들도 잠 안 자고 기다리고 있어.

“지인이 크게 다쳐서 수술을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요. 이 친구가 가족이 없거든요.”

­아…! 수술을? 큰 수술이었어?

“네. 살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제가 못해도 일주일 정도는 병원에 있어주고 싶어서 그런데 가능할까요? 진짜 친한 친구거든요. 죽다 살아났는데 곁에 있어주고 싶어요.”

매니저 누나는 내 말에 굉장히 곤란해 했지만, 회사에 허락을 받아보겠다고 말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누나.”

­멤버들한테 전화해서 괜찮다고 직접 말해. 그래야 애들도 마음 놓고 잘 것 같으니까.

“네, 그럴게요. 근데 촬영은 어떻게 됐어요? 저 기억이 잘 안 나서….”

­기억이 안 나?

“저 탈락했어요?”

그냥 막 엄청 최선을 다해 불렀던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결과물이 마냥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탈락하기는!! 너 3관왕 먹었어. 그뿐인 줄 알아? 방청객들이 네 노래 듣고 감격해서 기립박수까지 했다고. 피디님이 싱글벙글하시면서 네 칭찬을 어찌나 많이 하시던지! 이 기세면 5관왕도 가능할 것 같다면서 기대 중이셔.

“엥? 진짜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얼마나 정신을 빼놓고 불렀으면 기립 박수가 터진 줄도 모른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얘기여서 어리둥절하다.

“그럼 저 거기 또 나가야 되는 거네요.”

­얼마나 다행이냐? 네가 졌으면 정체 공개하는 거 찍는다고 시간 엄청 잡아먹었을 거야.

“아…확실히 그랬겠네요.”

3관왕해서 다행이다.

­어디 병원인지 알려줘. 내가 숙소에서 필요할 만한 거 챙겨갈 테니까.

“괜찮아요. 오늘 충분히 민폐 끼쳤는데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것보단 회사에 말 좀 잘 해주세요. 기왕이면 넉넉하게 휴가 받아 주시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누나.”

매니저는 그룹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사고 친 멤버 뒤치다꺼리 하라고 있는 직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녀가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은 친구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나?

그냥 마음 편하게 내가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게 훨씬 낫다.

­너희 해외 진출 때문에 바빠서 일주일 이상은 안 돼, 인마!!

“아이~ 부탁 좀 드릴게요. 싸랑합니다!”

안 된다는 매니저 누나에게 억지로 일을 떠넘기고 전화를 끊은 뒤 멤버들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당분간 병원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친구가 크게 다쳐서 수술을 했다는데 가면싱어는 어떻게 됐냐고 묻는 개념없는 아이들은 아니었고, 내 일주일 휴가는 큰 문제 없이 받아들여졌다.

일처리를 끝내고 병실로 들어가니 정화씨와 주아 누나가 축복이를 보고 있었다.

“헉! 축복아!”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한다니까 너도 빨리 와서 봐.”

“어쩜 이렇게 잘 생겼는지 모르겠어. 호호호!”

정화씨와 주아 누나의 얼굴에 행복이 한 가득이다.

나 또한 그 행복함이 금세 전염되었다.

기진맥진한 상태인 누나에게 착 달라붙어 손부터 잡고 축복이를 유심하게 관찰했다.

“어때? 누구랑 더 닮은 것 같니?”

“해솔이랑 완전 붕어빵이라니깐, 엄마?”

누나는 축복이를 보고 힘을 얻었는지 눈이 초롱초롱해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체력이 정말 샘솟는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내 눈에는 누나랑 붕어빵인 것 같은데?”

“나? 정말 닮았어?”

“응. 완전 붕어빵이야. 그렇죠, 장모님?”

“그럼! 우리 딸이랑 판박인 걸?”

“아이! 이럼 안 되는데. 해솔이가 나보다 더 예쁘단 말이야. 해솔이 닮아야 해.”

“어쩜 이렇게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간호사들도 우리 축복이 보고 깜짝 놀라더라. 갓 태어난 애가 왜 이렇게 잘 생겼냐면서 말이야.”

방금 태어나 쭈글쭈글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이는 엄마와 아빠를 고루고루 닮아 대단한 미모를 자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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