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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59화 (159/849)

〈 159화 〉 #22. 가면싱어 5관왕? (4)

* * *

며칠 뒤 축복이와 주아 누나는 무사히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우쭈쭈”

“ㅎ.”

아직 제대로 말도 못하는 축복이는 아빠를 알아보는 건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방싯방싯 웃어준다.

너무 귀여워서 지구를 뿌셔 버리고 싶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 납치당하는 건 아니겠죠?”

“우리 손으로 직접 키워야지! 남의 손에는 절대 못 맡겨.”

믿고 맡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 꼴이 될 거다.

“예뻐도 너무 예뻐서….”

남자 아이라는 점도 큰 걱정인데, 얼굴까지 나와 주아 누나를 닮아 어마어마한 포텐을 가진 채로 태어났기에 축복이는 벌써부터 주변으로부터의 위험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 세상은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위험에 노출 되곤 하니 말이다.

“경호원을 고용해야 할까?”

“경호원도 못 믿어, 엄마.”

“그럼 어쩌니? 애 클 때까지 바깥구경도 못 시키고 키워?”

“그럴 순 없지만….”

사실 그녀들은 모르지만, 내 아들은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아이였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씨를 퍼트리는 것.

성별이 여성 쪽으로 치우쳐진 현 상황에서 내가 낳은 아이들은 세상을 정상으로 되돌려줄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게 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아이의 안전이 중요한 거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부탁해볼게요.”

“부탁?”

“아이를 키우기 적당한 곳으로 이사가요. 보안 좋은 곳으로요.”

이럴 때 쓰기 딱 좋은 여자가 내게 있지 않은가?

재벌인데 아이 키우기 좋은 보안 강한 집도 못 구해줄 리가 없었다.

“이사를?”

“애초에 축복이 태어나기 전에 준비를 해뒀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런 집이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정말 네가 구할 수 있다고?”

“네. 구할 수 있어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기야 한데, 부담 되는 건 아니니?”

내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곳을 구하는 일인데 당연히 내가 나서야 할 일이었다.

그럴 능력이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앙카를 내 인형으로 만든 게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는데.’

역시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은 것 같다.

“괜찮으면 경호원도 구해볼게요.”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경호원과 재벌이 구할 수 있는 경호원은 다를 것이다.

“누나는 몸 좀 어때?”

“거뜬해. 엄마가 무조건 따듯하게 몸을 보호하라고 해서 이불 덮고 이러고 있기는 한데 죽을 맛이야. 지루하고 심심해.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몰라.”

침대에 누워서 산해진미를 먹고, 관리를 받고 있지만 누나는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하긴, 아기 때문에 하지 못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제 아이도 낳았겠다, 최대한 빨리 본래의 몸매로 돌아오고 싶은 듯했다.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물론 그 시도는 정화씨의 단호한 잔소리에 시도로 그쳐야 했다.

아이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여자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줄줄줄 본인의 경험담을 담아 설득을 하니 주아 누나도 감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나는 지루해 하는 누나의 옆에 붙어서 열심히 그녀를 달래주었다.

정화씨는 주아 누나의 산후조리에 신경 쓰고, 축복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나에게 주아 누나를 맡겨버렸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내일이면 끝이 난다.

“내일 돌아가야 하는 거지?”

“응. 가기 싫다.”

“사진 많이 찍었잖아.”

“사진으로는 성에 안 차.”

축복이의 사진으로 앨범이 도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족을 몰랐다.

이 사진들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걸 알면서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사진이었다.

“자주 동영상 보내줄게.”

“하아~”

“자꾸 한숨 쉬면 복 달아나. 그러지 말고 축복이 이름이나 결정하자. 출생신고 해야지.”

내일부턴 축복이와 주아 누나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울하다가도 축복이에 관련 된 일을 하게 될 때면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

“성은 남씨로 하는 거지?”

“아니, 내 아들로 넣을 거야.”

“누나!”

여태까지 정화씨 호적 아래에 넣을 거라고 알고 있었고, 우리 모두 얘기가 끝난 일이었다.

그런데 주아 누나가 생각이 바뀐 듯했다.

“내 아들한테 누나라고 불릴 순 없잖아.”

“당연히 엄마라고 불려야지. 호적은 종이에 불과해. 호적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서 누나가 축복이 엄마가 아닌 건 아니잖아.”

“호적에 불과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싫어. 축복이한테 당당하게 엄마라고 불리고 싶어. 그리고 요새 미혼모도 그리 흠이 아니래. 정책도 미혼모한테 혜택을 많이 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도 하고.”

“배우가 꿈이잖아. 아무리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너무 이른 나이에 낳은 아이야.”

“축복이를 숨기면서까지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

“…….”

“미안해. 이미 다 결정해놓은 일을 번복해서. 근데 축복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내 품에 안기니까 꿈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어.”

누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니까.

나는 축복이를 내 호적 아래에 둘 수 없다.

누나와 떳떳하게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주아 누나가 방금 한 말은 내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아예 배우를 포기한 건 아니야. 그냥 축복이가 있어도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다짐인 거야.”

“…나는 누나 결정에 반대 못해. 나야말로 축복이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입장이니까.”

누나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에게 나도 자식이 생겼음을 확 까발려버릴까 하는 충동도 들었다.

치트키가 있는데 무슨 일이든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누나가 잘 했다고 박수 쳐주진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속으로 삼켜냈다.

“헉! 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

“나야 말로 호적에 넣을 수도 없고, 곁에서 자라는 모습을 볼 수도 없는데, 이런 아빠가 무슨 아빠냐고. 자격이 없는 거지.”

“너는 남자잖아! 남자니까 괜찮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위로를 하는 거람.

갑자기 자괴감이 확 밀려온다.

예쁜 축복이를 두고 일하러 가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안 들어죽겠는데, 누나가 저렇게 나오니까 내 자신이 한심해지는 거다.

내가 갑자기 우울 모드에 들어가니 누나가 당황하는 눈치였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야?”

정화씨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들어왔다.

축복이가 정화씨의 품에 안겨 색색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침대에 눕히려고 왔던 모양이다.

“내가 말실수를 했어. 해솔아, 내가 미안해. 경솔한 말이었어.”

“경솔한 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지.”

이게 바로 팩트폭행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정신이 몽롱할 정도다.

정화씨가 허둥지둥하는 누나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쯧쯧 혀를 찼다.

“얘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네. 그래서 축복이 엄마 할 수 있겠어? 너 생각만 하면 안 되지. 해솔이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니?!”

“진짜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야. 사과 안 해도 돼. 정말 괜찮아.”

잠깐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을 뿐, 그 감정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아이돌을 그만 둘 수 없다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두면 축복이는 누가 먹여 살리겠냐고.’

주아 누나를 케어하기 위해 정화씨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지금 이 집에서 돈 나올 구석이라고는 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장 돈이 떨어져서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 미래를 염두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아이에게 떳떳하고자 아이돌을 그만두는 건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물론 실비아 찬스가 있기는 하지만….’

비앙카의 돈을 함부로 쓰는 건 아직까진 좀 껄끄럽다.

더군다나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비앙카에게 의지하는 건 싫었다.

“아이돌 그만 두면 안 돼. 절대 안 돼! 난 네가 활동하는 거 계속 보고 싶단 말이야!”

누나는 내가 혹여나 충동적으로 아이돌을 그만두겠다고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내가 왜 아이돌을 그만 둬? 내가 일 그만두면 축복이 분유는 누가 살 건데? 내 식구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냐.”

“그, 그렇지! 그럼 안 그만 두는 거지?”

“어! 어차피 불가능한 일에 찌질하게 매달리지 않을 거야. 대신 악착같이 일해서 축복이한테 재산 왕창 남겨줄 거야. 아빠 노릇 못한 거에 대한 보상으로 말이야.”

주아 누나가 그제야 안도한다.

“그리고 축복이 누나 호적 아래로 넣는 거 찬성할게. 나도 못 해주는 건데 누나가 용기내서 하겠다고 한 일을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주아 너 축복이 네 호적에 넣으려고?”

내 말을 들은 정화씨가 깜짝 놀라더니 묻는다.

아무래도 주아 누나의 결심을 가장 먼저 들은 게 나였던 모양이다.

“응, 그러고 싶어.”

축복이도 중요하지만 정화씨 입장에선 딸인 주아 누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어? 얘기 다 끝난 일이야. 난 허락 못해.”

“내 자식이잖아.”

“그럼 너 배우하고 싶다고 했던 건? 네 꿈은 어떻게 하려고?”

“축복이 엄마도 하고 배우도 하면 되지.”

“네 꿈이 두 가지 일을 다 하면서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니?”

“…어렵겠지만, 어려운 길이어도 갈 준비 되어 있어.”

“지금은 그렇겠지. 근데 나중에까지 네가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정화씨가 저렇게 정색하면서 말하는 건 처음봤다.

“나중에 축복이 원망 안 할 수 있어? 네 꿈에 도달하는데 분명 축복이가 걸림돌이 될 거야. 그때에도 축복이를 사랑할 수 있겠냐고.”

“내가 엄마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엄마라고 다 자식이 좋고 사랑스러운 줄 아니? 엄마도 사람이야. 성인군자가 아니라고! 내 인생을 방해하면 자식이라고 해도 미울 수 있어!”

“…….”

정화씨의 말은 주아 누나에게 굉장히 큰 충격으로 와 닿는 듯 했다.

“지금은 할 수 있다고 하겠지. 어쩌면 넌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내 딸이니까. 그런데 엄마는 허락해줄 수 없어. 이건 아니야. 축복이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아닌 일이라구.”

“축복이가 커서 서운해 하면 어떡해? 왜 바깥에선 엄마를 누나라고 불러야 하냐고 하면? 언제까지 숨겨야 하는지도 확실하지가 않잖아. 축복이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남들은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을 왜 축복이만 못해야 하는 건데?”

축복이가 왜 벌써부터 자신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주아 누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던 거다.

“어쩌면 엄마 말대로 축복이가 원망스러울 지도 몰라. 미래의 일까지 확신할 순 없지. 근데 축복이를 미워할 바에야 배우 안 하고 말아. 그 꿈이 축복이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

“……”

“해솔아.”

“응.”

“말해봐. 너 만약에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거면, 축복이 아빠 할 거야 아님 아이돌 할 거야?”

“당연히 축복이 아빠 해야지.”

“!!”

실비아에게 돈 왕창 가져오라고 해서 축복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거다.

“우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생각까지 경솔할 거라고 짐작하지 말아줘.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나 축복이 엄마고, 얘는 축복이 아빠야.”

정화씨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차라리 배우의 꿈을 포기하겠다는 말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주아 누나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는 게 느껴진다.

“흐애앵.”

우리들의 목소리에 축복이가 잠투정을 부렸다.

자고 있는 축복이 생각을 못했다.

“아이구, 미안해라. 축복이 깨겠다. 생각을 좀 더 해보고 나중에 얘기하는 게 좋겠다.”

정화씨가 투정을 부리는 축복이를 다시 안아들고 방을 나갔다.

나는 표정이 좋지 못한 주아 누나의 어깨를 감싸고 말했다.

“누나가 축복이 엄마이듯이, 장모님은 누나의 엄마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

“입장이 다르니까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거잖아.”

“…응.”

결국 누나가 눈물을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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