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22. 가면싱어 5관왕? (5)
* * *
우는 누나를 안아서 겨우 겨우 달래서 재우고 난 후.
나는 속상해하고 있을 정화씨를 달래기 위해 움직였다.
두 사람 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기에 생긴 다툼이었다.
똑똑똑
“정화씨? 좀 들어갈게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화씨가 화장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걸 보니 정화씨도 울었던 모양이다.
주아 누나를 달래느라 바로 달려와 위로해주지 못했던 게 미안했던 나는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배에 살포시 얹고 등을 토닥였다.
“주아는?”
“울다가 잠들었어요.”
“많이 서운해 해?”
“그보다는 정화씨한테 미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미안해서 울었다는 거보니까 고집을 안 꺾을 모양이네.”
정화씨에겐 애석한 일이지만, 주아 누나는 울면서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도 이제 엄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주아를 너무 어리게만 봤나봐.”
“부모한테 자식은 나이가 얼마가 들었든 똑같이 아이일 뿐이죠.”
“네가 주아 곁에 있어줘서 정말 든든해. 고마워, 해솔아.”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화씨의 모습이 왜 이렇게 예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얼굴을 가져다 대버렸다.
“흣! 쪼옥, 쪽! 우움…!”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 그녀의 입천장을 혀로 쓸다가 뱀처럼 서로의 혓바닥을 비비적대며 부드럽고 질척한 숨결을 즐긴다.
“하우움…!”
춥, 추웁!
정화씨의 슬펐던 얼굴에 홍조가 돈다.
그녀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엉덩이를 번쩍 들었다.
“핫!? 아, 안 돼. 침대에 축복이 있어!”
“아.”
자연스럽게 침대로 가려고 했으나 정신을 차린 정화씨가 내 어깨를 다급하게 두들기며 축복이의 존재를 일깨워줬다.
축복이를 위하느라 집안이 뒤집혔는데 정작 아빠라는 자식은 잠시 축복이의 존재를 잊은 것이다.
‘크흠, 미안하다, 축복아. 너도 남자니까 크면 날 이해할 거야.’
축복이를 냉큼 아기방에 놓고 정화씨와 이어서 일을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정화씨의 홍조 돌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해져 있었다.
“설마 끝이에요?”
“그럼 여기서 뭘 더 하려구. 주책이야!”
정화씨가 소리 나지 않게 내 등을 퍽! 때렸다.
아직 고개도 못 가누는 축복이에게 동생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쩝.”
가장 잘 하는 위로 방법이 실패했기에 나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요리 해드릴까요?”
“…요리?”
“제가 요리를 잘 안 해서 그렇지, 솜씨가 제법 좋거든요.”
이번에 능력치를 올릴 때 예체능 위주로 능력을 올려뒀는데 그 중에는 요리도 있었다.
물론 요리 능력만 올린다고 요리 솜씨가 엄청나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런 쪽의 능력은 ‘필독서’라는 게 존재하는데 코인을 주고 책을 구매해서 지식을 얻어둬야 제대로 요리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럴 때 써먹기 위해 ‘필독서’로 지정 된 도서를 모두 구매해서 사용한 상태였다.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릴게요.”
휴가 마지막 날이니, 서로 웃으면서 보내고 싶었기에 나는 필살기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 된 요리.
잠들었던 주아 누나를 깨워서 식탁에 앉은 우리들은 매우 행복하게 요리를 먹었고, 덕분에 언제 우울했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일주일 휴가가 다행이 웃으며 끝이 났고, 며칠 뒤 축복이의 이름은 진태양으로 결정 되었다.
진주아의 아들 진태양.
누나의 확고한 결심과 더불어 나중에 내 아들로 호적을 바꿀 때 성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정화씨에게 제대로 먹혀든 덕분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와 한동안 회사와 멤버들 사이에 끼어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 탈주(?)를 벌였으니 자업자득이긴 해서 찍소리 못하고 잔소리를 듣는 내내 저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탈주했던 건 잘한 선택인 듯했다.
더불어 이번 일로 크게 신세를 진 매니저 누나에게 선물을 사다줬다.
“누나 고마워요.”
“이게 뭐야? 어머! 이거 나 주는 거야?”
“넵. 너무 감사해서요.”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이런 걸 사왔어?”
“그때 제가 너무 경향이 없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누나 덕분에 큰 사고 칠 뻔한 거 막은 건데 이 정도는 부족하죠. 담에 진짜 맛있는 식사 한 번 살게요.”
“후후후! 그래. 짜식! 뭔 일 있으면 재깍재깍 누나한테 말해. 다 커버 쳐주잖아.”
“넵넵! 충성입니다.”
사고 쳤던 것에 꽁해있던 매니저 누나의 마음은 뇌물로 완벽하게 풀었고, 남은 건 멤버들인데…….
“맛있냐?”
끄덕끄덕!
우물우물
“야, 그거 내 꺼야!”
“안 먹어서 싫어하는 줄 알았지.”
“디질래?”
얘네들은 그냥 맛있는 거 사주면 만사 오케이다.
사실 별로 꽁해 있던 것도 없는 듯하고 말이다.
물론 한 번 쏘는 걸로 끝내지는 않았다.
맛있는 거 한 번으로는 안 풀린다면서 내게 세 번이나 식사를 뜯어낸 것이다.
세 번 뜯어먹고 뒤끝 없이 깔끔하게 내 탈주(?)를 용서해준 녀석들은 이제 그날의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아예 없는 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 가면싱어가 방송 되었다.
“미친.”
“허얼.”
“진짜 형 맞지?”
“와! 기립박수 나왔어! 대박! 소름!”
내가 3관왕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던 멤버들도 내가 거기서 노래를 얼마나 잘 불렀는지에 대한 건 모르고 있었기에 턱이 빠지도록 경악했다.
“다 씹어 먹고 왔네?”
“저거 찍은 날이 형 탈주했던 그날 아니에요?”
“어, 맞아.”
“정신없었을 텐데 저게 가능해요?”
동생들의 따가운 시선에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실 기억이 잘 안나. 그냥 저거 부를 때, 방청객들이 투표하는데 시간 오래 걸리지 않게 최고로 잘 불러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우와아.”
“그런 생각으로 불렀는데 저렇게 엄청난 무대를 한 거라고?”
“재능충.”
“박탈감 오지네.”
애들은 부들부들 떨며 우우우! 아유를 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제작진은 이거다 싶었는지 내 노래를 듣고 감동 받은 방청객들의 반응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패널들이 감탄하는 장면과 방청객들이 기립 박수하는 모습, 그리고 앵콜을 울부짖는 소리까지!
그리고 이후에 빠르게 투표가 마감 되고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3관왕 선언이 빠르게 편집 되어 지나갔다.
“해바라기 요정왕 정체가 황재경 선배님이셨구나.”
“어쩐지!! 목소리가 너무 낯익다 했는데.”
“저분 컴백만 했다 하면 음원 1위 밥 먹듯이 하시는 분인데 졌어.”
“그러게. 그것도 진해솔한테 졌다니!!”
“이번 주는 진짜 역대급 꿀잼이었다.”
“정체를 아니까 더 재밌는 것 같아.”
“형, 인터넷에 기사 엄청 떴어!”
“흑마 탄 백발 왕자, 도대체 누구? 난리 났네.”
“아직도 정체를 모르는 거야?”
“우리 팬들이 해솔이 형 아닌가 긴가민가 하는데, 어디가서 말은 못하는 것 같애.”
남자 아이돌이 낄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
만약 진해솔인 것 같다고 말을 하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언급을 한 팬도 까이고 에어플레인 그룹도 함께 까일 일이었다.
“진짜 정체 밝혀졌을 때 반응 어떨지 너무 기대 된다.”
“형 5관왕 가자!! 꼭 가자!!”
“노래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헉! 맞아! 연습하자. 다음에 부를 노래는 결정 했어?”
“일주일이나 병원에서 간호하느라 바빴는데 그런 생각 했을 리가 없잖아.”
“위기다!! 위기!!”
5관왕까지 남은 건 2번.
가면싱어 제작자는 출연자의 5관왕을 바란다고 해서 도전자의 수준을 낮춰 편의를 봐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악착같이 실력자를 구해와 4관왕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데 힘을 쏟는 사람들이다.
그런 방해를 뚫고 5관왕을 차지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5관왕의 명예가 유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가면싱어의 화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4관왕에 도전하는 나를 돕기 시작했다.
“3관왕은 의외로 해낸 사람들이 은근 있어. 근데 4관왕은 굉장히 드물어.”
“그때부터 제작진들이 엄청 악랄해지잖아요.”
“그렇지, 꼭꼭 주머니에 숨겨뒀던 실력자들을 대거 도전자로 밀어 넣거든.”
매니저 누나는 가면싱어의 패턴을 조사해서 내게 알려주거나, 관객 반응이 좋은 노래 목록을 구해서 가져오는 등의 도움을 줬다.
또한 실력 있는 편곡자를 고용해서 가면싱어에 맞게 편곡까지 해줬다.
그러는 과정에서 보안이 조금 풀린 탓에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에어플레인의 진해솔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에어플레인 팬 또 왔냐?
으딜 ㅋㅋ 아이돌 빠순이들이 와서 물을 흐리노?
늬들 그러는 게 그 아이돌 그룹 얼굴에 계란 던지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야 돼.
가수도 아닌 것들이 어디서 가수 행세야 ㅋㅋㅋㅋ
우리 애들 실력 좋아요. 다른 그룹이랑 비교하지 마세요. 소속사가 허니 엔터입니다.
└빠순이 검거☆ 삐용삐용!!
대형기획사 구린 짓 하는 거 하루이틀 일인가? 허니 엔터라고 청정구역일 리가 없지 ㅋ
빤스인지 바지인지 모르겠는 거 입고 나와서 빵댕이 흔드는 것들 얘기 그만합시다. 역겨움.
└시발, 너 새끼는 야동 안 보는 석녀냐? 어따 대고 깨끗한 척이야?
└네 다음 에어플레인 빠순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해라, 애들 울것다.
└욕먹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아이돌 묻히지 않았어야지. 급이 다르잖아. 급이.
└싸우지 맙시다. 님들 ㅠㅠㅠㅠ
팬들이라고 해서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아니기에 가면싱어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팬이 된 일반인들의 거친 거부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는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실력이 너무 좋았던 탓이 컸다.
이러한 상황에 제작진들은 다음 촬영 때 진해솔이 보여줄 개인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나 또한 죽어도 아이돌은 아닐 거라는 사람들의 악플로 보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한 댓글들을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아이돌은 실력 있으면 안 되냐?’
팔은 항상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나는 내가 아이돌이라는 사실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축복이 아니, 태양이를 위해 진지하게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죽어도 아이돌 아님.’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우리 태양이가 나중에 커서 아빠가 아이돌 출신인 걸 부끄러워 하면 어떡하냐고.’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남자 아이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만 했다.
‘아주 무대를 뒤집어주지.’
가면싱어를 보러 온 방청객들의 머릿속에 가장 마지막에 보았던 내 무대만 남겨지도록 할 생각이었다.
매우 폭력적이고 강렬하게!
“락팝송을 하겠습니다.”
“락팝송??? 네가 락을 한다고?”
“네. 거기서 콘서트를 해버릴 거에요.”
방청객들을 콘서트 관객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너 락팝 잘 불러?”
“당연하죠. 아마 들려드린 적이 없어서 모르실 거에요. 들려 드릴 게요.”
회사 사람들이나 멤버들은 내가 락을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으니 당황스럽기는 할 거다.
실제로 나는 락을 불러 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면싱어 무대를 뒤집기 위해 코인을 사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대를 찢어라! (도서) 1,200코인]
[Rock and Roll! (도서) 1,500코인]
이미 내 머릿속엔 ‘Rock’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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