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22. 가면싱어 5관왕? (6)
* * *
[결국 내년 1월부터 23세 이상 30세 이하의 남성은 9개월에 한 번씩 정자 기증을 의무화 하는 법안이 제정되었습니다. 남성의 인구수가 10%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서 UN 국제 연합에서 줄어드는 인구수를 늘리기 위한 자구책으로 남성의 정자 기증 의무화를 계획했습니다. UN 연합에 가입 되어 있는 모든 나라는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하는 의무가…….]
“저게 진짜 됐네.”
남자가 부족하니 인구수가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나라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럼 나도 정자 기증을 무조건 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러고 보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세계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이가 살아갈 세상이잖아? 멸망하게 둘 순 없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 여자들에게 씨를 뿌리고 다닐 생각은 아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 안에서 여자들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저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 떡하니 나온 것은 내게 이득인 일이었다.
‘정자 기증도 방법 중에 하나이긴 하잖아? 저걸 왜 여태 생각 못 했나 몰라.’
물론 찜찜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저거 좀 그렇지 않아요?”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내 아이를 임신해서 키운다는 거잖아. 웩 소름끼쳐.”
멤버들 아니, 남자들은 당연히 저 법안을 격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남성의 인권을 땅에 떨어트리는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가 내 자식이라고 찾아오면 어떻게 함?”
“헐, 그렇게까지?”
“응. 그래서 책임지라고 하면.”
“개 소름 돋아. 완전 싫어!”
“정자를 기증한 사람 신변을 철저하게 지켜준다던데?”
강준이의 순진한 말에 남은규가 혀를 찼다.
“너는 그걸 믿냐? 분명 뒷돈 받고 기증한 정자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본 다음에 선택해서 임신 할 걸?”
“히익! 끔찍해.”
특히 남자 아이돌에겐 타격이 컸다.
남자 아이돌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의 집착적인 행동을 계산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 법을 시행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각종 폐해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는 걸 과연 국회의원들이라고 몰랐을까?
“UN에서 명령한 거라서 우리나라로서는 어쩔 수가 없나봐.”
“확실히 인구수가 엄청 줄기는 했네.”
뉴스에서는 연신 요 10년간 인구수가 얼마나 줄었는지 그래프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코인도 아니고 뭐가 저렇게 뚝 떨어지냐.”
“심각하긴 심각하구나.”
“저 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사람 없어서 망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문제가 심각해서 내가 여기 있는 거란다, 얘야.
뉴스에서는 아예 전문가를 불러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 현상에 계속 되었을 때 생길 일들에 대해 필터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괜히 UN에서 나선 게 아닙니다. 인류에 큰 위험이 닥친 비상상황입니다. 내 얘기가 아닐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영화에서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를 많이 다뤄왔죠. 대부분 자연재해로 인한 멸망, 바이러스로 인한 멸망, 핵으로 인한 멸망이 주된 원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출산율 급감과 성별비대칭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실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하다 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말씀이셨습니다.]
[참 어이가 없지요? 겨우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세상이 망한다고? 웃기지마! 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웃기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불과 100년도 남지 않았죠. 당신은 아닐지라도 당신의 자식은 세상의 멸망을 보게 될 겁니다.]
섬뜩한 전문가의 말이었다.
평소라면 수위 조절을 부탁했을 앵커는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전문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정부에서 언론을 움직이고 있나보네.’
[이 일은 결코 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 거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법이 제정 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생존을 위해 우리는 조금씩 희생을 해야만 합니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정책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상황.
전문가는 침까지 튀겨가며 이번 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열변을 토해냈다.
“헉! 제때 정자 기증하지 않으면 각종 혜택 다 못 받게 된대.”
“아, 저건 좀 너무 심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법안 제정 반대 시위 한다는데? 다른 나라는 한참 시위하고 있는 곳도 있나봐.”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체감이 되지 않는 불편함에 사람들은 자유를 울부짖는다.
아니, 어쩌면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겪는다 해도 남자 입장에선 반대할 수밖에 없는 법안이었다.
“지금 뉴스가 중요한 게 아님. 4관왕 해야지!!”
“4관왕이 저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멤버들.
“우리가 저런 일을 열심히 살펴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시위에 참가를 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우리 같은 공인이 저런 시위에 참가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4관왕인 거지!”
“그렇지!!”
“4관왕! 4관왕!”
“오늘 들려주겠다고 했잖아. 빨리빨리!!”
“회사로 고고씽!”
내가 락을 부르겠다는 선언을 멤버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가면싱어에 나가 부를 노래를 회사 직원 분들과 멤버들 앞에서 선보이는 날이었다.
인기의 주류에서 밀려난 락 팝송.
격렬한 기타음,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둥둥둥 사람의 기분을 들썩이게 만드는 베이스까지!
누구나 한 번쯤 락에 두근거렸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시원스레 내지르는 고음은 로망 그 자체였다.
‘진작 불러볼 걸.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이젠 알 것 같아.’
시원스레 내지르는 고음.
코인으로 구매한 목캔디 한 알이면 목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 없이 내지를 수 있다.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락 밴드의 곡을 편곡한 덕분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기도 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미리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웅성웅성
문제는 내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요? 전담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다들 현장에서 가왕 노래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
“이 정도면 미니 콘서트 아니에요?”
“하핫! 다들 네 팬이라서 이러는 거니까 네가 이해해줘.”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팬.
내 정체가 밝혀지면 자연스레 내 팬으로 합류하게 되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들이 내 팬인 것은 아니다.
‘아이돌 아니라고 아득바득 싸우고 다니는 중인데 나중에 내 정체 알면 어쩌려나 모르겠네.’
이번 촬영 때는 개인기로 댄스 메들리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춤 솜씨를 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이 아이돌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연 아이돌인 걸 납득할지,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댈지 궁금해진단 말이지.’
그들이 아이돌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나중에 정체가 밝혀졌을 때 내 가치는 더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4번째 무대에서 락을 부르겠다고 한 것이다.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정체가 너무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아이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락을 부르는 아이돌은 찾기 힘들어.’
장르가 다른 곡을 부르는 건 아무리 기성 가수라도 힘든 일이다.
아이템 빨로 장르를 넘나드는 내가 특이한 것일 뿐.
그렇기에 직원들도 일하는 걸 팽개치고, 내 노래 듣겠다고 왕창 몰려 온 것이다.
‘호기롭게 락을 부르겠다고 말하는 내가 신기했겠지.’
직원들의 얼굴에 아직까지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펼치고 마이크 앞에 섰다.
편곡 된 음원이 틀어진다.
전설의 곡이다.
모두들 한 번 이상 들어 본 적 있는 리듬에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리듬에 올라탄다.
세련 되게 다시 녹음 된 악기와 시간을 초월한 리듬이 합쳐지고.
마침내 그 위에 내 목소리가 덧붙여진다.
? ? ?
앵콜이 쏟아진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와아아아!!!!!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짝짝짝짝짝!
방청객들의 환호 소리를 들으며, 나는 4관왕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도전자인 ‘떡쟁이 호랑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허탈한 심정을 담아 박수를 짝짝 쳐주고 있었다.
자신의 패배를 완전히 인정해버린 것이다.
절레절레
“이걸 어떻게 이겨요? 어휴~ 완전 압살 당해버렸네요.”
떡쟁이 호랑이님의 너스레에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겸손을 표했다.
하지만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에는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가면을 끼고 있었기에 마음껏 미소를 지어도 문제 삼을 사람이 없었다.
사실 기쁨을 굳이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짜릿하다.’
이게 무대의 매력이구나.
노래를 들은 방청객들도 잔뜩 흥분해 있었지만, 그 노래를 부른 나 또한 고양감에 가득 차 있었다.
갈증이 인다.
단순히 물에 대한 갈증이 아니다.
‘콘서트. 콘서트를 해보고 싶어.’
고작 한 곡으로 끝나야 하는 이 무대가 너무 아쉬웠다.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노래하고, 춤을 추며 함께 호흡해보고 싶다.
약 5분 정도가 더 지나고나서야 환호와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방청객들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두고 기다려준 MC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댄 후에도 한동안 말을 잇지 않다가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정말 멋진 무대였습니다.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방청객 분들이 계신데요. 이게 바로 가왕의 무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왕님, 이쪽으로 나와 주세요. 지금 방청객들이 애타게 가왕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하.”
어느새 내 목소리는 헬륨가스를 마신 듯 귀여워졌다.
“과연 가왕!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주셨는데, 4관왕 할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결과를 짐작하고 있는 상황인데, 뻔한 일에 굳이 겸손을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오오! 가왕께서 4관왕을 자신하신다고 합니다!!”
와아아아~!!!!!
“지금 방청객들이 난리가 났어요. 저번 촬영에서도 방청객들 사이에서 앵콜 요청이 쏟아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 패널분들? 어떠셨습니까?”
MC의 질문에 개그맨이 말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팬이 되어버렸어요. 흑마 탄 백발 왕자님!! 당신이야 말로 가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분입니다!! 백발 왕자님을 황제로!!!”
와아아!!!
“자자, 진정 하시구요. 다음 분?”
“저는 가왕이 락을 부른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장르를 초월하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전혀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런데 까암짝 놀라버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왕께서 비장의 무기를 이번에 보여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원래 가왕은 락을 부르는 사람이고, 지금까지는 살짝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보시는 거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사실 가왕의 진짜 모습은 락스타였던 거죠!!”
작곡가이자 엔터테이먼트를 운영 중인 게스트가 불쑥 끼어들어서 말했다.
“밴드 음악을 하시는 분이 확실합니다. 그쪽에서 아주 유명하실 거에요.”
“오오? 누군가 짐작 가시는 분이 있으신 건가요?”
“사실 몇 분 정도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중에 100% 있다 싶거든요.”
“오오오!!!!”
“이런 분이 재야에 묻혀서 산다는 게 참 아쉬운 일이죠. 이정도 수준에 오른 대가라면 아마 그쪽 사이에선 알음알음 명성을 알리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분은 실력에 맞지 않게 나이가 굉장히 젊으실 거에요.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가면싱어 제작진 분들이 섭외를 한 것 같습니다.”
“에이~! 가왕이 신인이라고? 말도 안 돼!”
“그건 너무 갔어요.”
“맞아맞아.”
패널들의 반발에 작곡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잠깐!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내가 예상하기에 아무리 많이 쳐줘도 스물 중반 안 넘을 겁니다. 목소리 자체에도 나이가 젊어요. 실력이 워낙 괴물 같이 좋아서 다들 믿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저 실력의 가수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잖습니까?”
“으음…확실히 맞는 말씀이시네요.”
벌써 4관왕에 도전하고 있는 가왕.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네티즌 수사대의 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았고, 때문에 아직 명성을 쌓지 못한 신인 가수라고밖에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외의 의견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가왕의 나이가 스물 중반 이하일 것이다! 100% 확신한다! 라는 의견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가면싱어가 묻혀 있던 대단한 가수 한 명을 발굴해낸 건 확실합니다.”
“콘서트 하시면 꼭 갈 거에요!”
MC는 여전히 진해솔의 정체에 대해 짐작하지 못하는 패널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왕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해 가왕께서 개인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개인기를?!”
“오오오! 개인기에서 정체 들통 나는 경우가 많죠!”
“어떤 개인기인가요!!”
예능식 리액션이 튀어나오고, MC가 본격적으로 가왕의 개인기를 알렸다.
“그건 바로 댄스 메들리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