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63화 (163/849)

〈 163화 〉 #22. 가면싱어 5관왕? (8)

* * *

“대신 그쪽에서도 너 5관왕 오르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아하~! 뭔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다.

그러나 매니저 누나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멤버들은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뭘 어떻게 도와주는데요?”

“출연자를 적당히 조절해주겠다는 거지.”

매니저 누나의 말에 멤버들이 날뛰었다.

“얼마든지 섭외해서 내보내라고 해요! 형이면 누구를 데려와도 1등 할 수 있거든요?”

“맞아요!”

날뛰는 애들 때문에 매니저 누나의 얼굴에 실수했구나! 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나야 대충 상황파악을 하고 있어서 불만이 생기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망아지들은 매니저 누나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내가 괜찮다는데 왜 쟤들이 난리인지.’

어쩌다 보니 가면싱어 5관왕이 우리 그룹 전체의 자존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형! 형도 그렇죠?”

형이라면 당연히 불의를 참지 않을 거라 믿는 저 눈빛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매니저 누나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저도 편의를 받으면서까지 억지로 5관왕을 따고 싶지 않아요.”

“아니, 얘들아 이게 그런 게 아니거든?”

알기야 알죠.

그런 얘기 아닌 거.

하지만 평균 20살도 안 되는 애들이 모인 그룹에서 그런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인 일이다.

결국 매니저 누나가 상황을 풀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해솔이 실력이야 누나가 제일 잘 알지! 당연히 그런 편의를 안 봐줘도 5관왕 할 거야. 근데 이건 그쪽에서 널 무시해서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 게 아니야. 네가 5관왕 할 게 분명한데 괜히 실력 있는 사람 출연시켜서 소재 소모하기 싫으니까 생색이라도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한 말인 거거든. 어차피 출연자 조절할 건데 그냥 해주긴 손해 보는 것 같으니까 우리한테 말해서 찡찡대는 거라고.”

역시 방송국!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허얼, 진짜요?”

“아니 그냥 해준다고 하면 될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핑계를 댄다구요?”

멤버들 입장에선 정말 쓸데없는 허례허식들일 것이다.

“아직 너희들이 이런 문제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어. 그냥 이런 일은 누나한테 맡기고 너희들은 5관왕 하는데 집중만 하면 돼. 그냥 이런 상황이 있었다는 것만 체크해두라고. 알겠지?”

“뭐가 이렇게 복잡해요?”

“이해가 안 됨.”

“어른 되려면 멀었나.”

멤버들은 입술을 뚱하니 내밀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니저 누나가 한숨을 쉬는 걸 보고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다른 곳에서도 섭외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아직 간보고 있는데, 소문이 확실하다 싶으면 섭외 왕창 들어올 거야.”

“저희 되게 바쁘잖아요. 그거 받을 거에요?”

“지금 좀 딜레마야. 해외 활동 준비 때문에 바쁜데, 네가 가면싱어에서 너무 일을 잘 해줘서 이 화제를 그냥 넘기기엔 아깝거든.”

“그냥 해외 활동을 좀 늦추는 걸로 하면 되지 않아요?”

기우연이 또 뭣도 모르는 소릴 하며 끼어든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니. 허허허.”

매니저 누나는 부처같은 웃음을 지으며 섭외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다이어리를 닫았다.

“아무튼 한동안 해솔이 너는 부지런히 예능에 출연해야 하니까 각오해둬. 너희들은 해외 활동이 좀 늦춰질 수 있다는 거 알아두고.”

“옛썰!”

“넵, 알겠슴다.”

가면싱어 5관왕이 불러 온 바람은 내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5관왕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를 성공적으로, 그리고 후회 없이 끝내기 위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내가 5관왕에 신경을 쓰는 동안 실비아는 부탁 받았던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고생한 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내게 전달해주었다.

태양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이 마련 된 것이다.

“모든 계약이 다 끝났으니 이사만 하시면 돼요.”

“수고했어, 근데 이 얘기를 굳이 만나서 했어야 했을까?”

전화로도 충분했을 거라 생각한다.

“쥔님, 너무해여! 비아 완전 열심히 일했눈데!”

“제발 그 얼굴로 애교 좀 그만 부려.”

실비아랑은 최대한 적게 만나고 싶다.

차갑기 그지없는 비앙카의 얼굴에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매달리는 그녀를 볼 때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증 S가 분명한 실비아는 내가 괴로워하는 걸 볼 때마다 매우 즐거워하곤 했다.

“헤헷, 실비아 애교가 좀 치명적이긴 하죠.”

“그래, 인마. 치명적이라서 피 흘릴 것 같으니까 고만하자.”

“넵!”

그래도 명령은 착실하게 들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그녀의 말솜씨에 진이 다 빠진다.

“곰돌이 인형은 잘 갖고 다녀?”

“넹! 절 믿고 맡겨주신 건데 당연히 잘 관리하고 있죠!”

“거기 인형으로 뭐 해야 한다면서. 그건 어때? 위험한 수준이야?”

“으응~? 아니요. 비앙카 정신력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나약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랑 섹스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문제 없음이에요!”

“정신력이 생각한 것보다 나약하니까 섹스를 하자고??”

말이 좀 이상하다.

비앙카 정신력이 생각한 것보다 나약해서 뭔가를 더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인 것 같은데, 뒤에 왜 나랑 섹스를 하자는 말을 한단 말인가?

‘저 섹무새라면 교묘하게 날 속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법한데.’

나는 단호하게 정색하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질문하는 말에 거짓말은 절대 섞으면 안 돼. 무조건 솔직하게 대답해. 이건 명령이야.”

“쳇.”

체에엣?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모습을 보니 불안해졌다.

나도 모르게 얘한테 당한 게 있지는 않나 걱정이 든다.

“지금까지 거짓말 한 거 있으면 싹 다 말해.”

“너무해욧!”

“어허.”

“끄응, 거짓말한 적 없어요. 그냥 쥔님이랑 섹스하고 싶어서 조른 것뿐이란 말이에요!”

굉장히 억울해하는 걸 보니 정말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저는 주인님께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몸이에요. 이 예쁜 몸을 주인님 허락 하에 빌려 쓰고 있는 입장에서 감히 그런 짓을 어떻게 하겠어요! 언제든 주인님께 버림받으면 인형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인형이 괜히 인형이겠나?

주인이 인형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인형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 방금 그건 뭐였는데?”

“앞에 말은 쥔님이 질문하신 거 답한 거구요, 뒤는 제 바램이용. 헤헷!”

“...역시 일부러 그런 거 맞잖아!”

“윽!”

녀석의 이마에 딱콩을 날려줬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대놓고 말해. 들어보고 해줄 수 있는 건 해줄 테니까.”

“그럼 섹스요!”

“들어본다고 했지, 해준다고 한 적은 없다.”

“히이잉~!”

“어쨌든 수고 많았어. 덕분에 한시름 놓을 것 같아.”

“경호원은 좀 더 시간 들여서 구할 생각이에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경호원 고용 조건은 굉장히 까다로울 예정이다.

1. 가정을 갖고 있을 것.

2. 아이가 있을 것.

3. 입이 무거울 것.

4. 형편이 어렵지 않을 것.

5. 가족 관계, 교우 관계 중 돈이 급한 경우가 없을 것.

6. 간절하게 원하는 바가 있을 것.

그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다고 한다.

“근데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는 뭐야?”

“약점이요.”

“??”

“사람을 다룰 때 약점을 갖고 있는 것만큼 좋은 조건이 없거든요. 저 조건에서 아이가 아픈 경우면 더할 나위가 없죠. 아이 병원비와 치료를 지원해준다고 하면 사람은 아주 필사적이게 되거든요.”

“…….”

실비아의 말은 섬뜩했으나 아이를 가진 아빠가 된 나에겐 눈 딱 감고 넘길 만한 일이었다.

“뭐가 됐든 안전하게 지킬 수만 있으면 됐어.”

저 조건에 만족하는 경호원이 나타난다면 그 경호원 입장에서도 나쁜 일은 아닐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대놓고 약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 거다.

“그나저나 한 번 보고 싶어요.”

“뭐를?”

“태양이요!”

“…왜?”

“저도 언젠가는 태양이 같은 아이를 가질 테니까요?”

“누가 해준대?”

어림도 없지.

불쑥불쑥 자기 어필을 해대는 실비아를 겨우 떼어내고, 주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양이의 얼굴이 아른아른거리므로 영상통화였다.

연결이 되자 달덩이 같은 태양이 얼굴이 가장 먼저 보인다.

“아이구~ 우리 태양이 잘 자고 일어났어요?”

­우웅?

어쩜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크는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큰 태양이를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태양이 아빠 봤다고 눈 똥그래진 것 봐. 아유, 귀여워.

“태양이, 아빠 목소리 알아들어?”

­당연히 알지! 그치?

­아아!

“이제 말도 잘 하네?”

­아아아!

“맞장구도 치고! 다 컸네, 내 새끼!”

한참을 태양이와 어화둥둥 대화를 나누고서야 그리움이 조금 달래져 누나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사 준비하면 될 것 같아.”

­집 구해진 거야?

“응. 주소 보내줄 테니까 미리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거야.”

­고마워, 해솔아.

“내가 애썼나. 그냥 아는 분한테 부탁 좀 드린 것뿐인데.”

실비아에게 명령을 했을 뿐, 모든 건 그녀가 다 챙겨서 일을 했기에 내 수고가 들진 않았다.

해서 주아 누나에게 감사 인사 받는 것만큼 쑥스러운 일도 없는 것이다.

“나도 얘기만 들었지 아직 가보진 못했거든. 방이 비워져 있으니까 언제든 이사 준비만 끝나면 바로 가면 된다고 해.”

재벌이 마련해준 집이니 크기가 제법 될 것이다.

인터넷에 주소를 쳐서 로드뷰를 봤는데 내가 딱 바랐던 대로 안전에 있어서는 완벽하다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사방이 막혀 있고, 유일한 출구 앞에는 경비실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곳엔 CCTV가 항상 돌아가고 있으며, 방문자는 미리 얘기를 해두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택배 같은 경우도 경비실에 맡겨야지 직접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물론 너무 거추장스러운 일 아니냐 하는데, 경비실에서 직접 택배를 옮겨다주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어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산책로가 있어서 엄청 좋은 것 같아.”

­산책로가 있어?

“단지가 ㄷ자로 되어 있는데, 거기 가운데가 산책로야. 거기서 산책하면 좋을 것 같더라.”

­거기서 이웃이랑 만나서 친하게 지내고 그럼 되겠다! 태양이 또래 아기가 있을까?”

“당연히 있지.”

아직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았음에도 예사 미모가 아닌 태양이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을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야.”

여기까지의 조건이 되는 곳은 은근히 많았다.

하지만 이 조건은 실비아가 구해 온 아파트만 가능했다.

“거기 애들이 다니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대.”

­학교 보내려고?

“어. 비싼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니까 자기 아이 안전이 제일 걱정일 거 아냐, 그걸 염두해두고 만든 학교라고 하더라고. 거긴 애들 안전에 철저하게 신경을 쓴대. 여태까지 그 학교 다니는 애들 중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더라.”

사고가 없다는 건 그만큼 철저하게 안전에 대한 방비를 한다는 뜻이다.

태양이가 학교를 갈 때쯤이 납치의 위험이 가장 많은 순간이었고, 요즘과 같이 흉흉한 세상에선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학교를 다녀 본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학창시절을 빼앗는 건 가혹한 일이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수는 없잖아.’

코인 아이템이라면 아이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의 힘이라면 코인 이외의 방법으로도 아이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고 말이다.

­난 학교 안 보냈으면 좋겠는데.

“위험하다고 애를 집에서만 키우는 건 안 좋아.

­친구들 만들어주면 되잖아.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남학교에 보내는 것도 방법이야.”

방법은 찾으면 얼마든지 나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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