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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67화 (167/849)

〈 167화 〉 #23. 스케줄스케줄스케줄 (1)

* * *

예상한 바대로 일이 착착 진행 되고 있었다.

무수한 섭외 요청에 매니저 누나가 요령껏 멤버들을 쑥쑥 끼워 넣으며 스케줄을 채우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평소 나가고 싶어 하던 프로그램들을 골라서 나갈 수 있게 된 상황에 어리둥절해 했다.

“다들 네가 들어가기만 하면 다 OK야. 프리패스권 뽑았다 생각하면 돼.”

“진짜 우리나라 한 번 끓어오르면 끝을 모르고 팔팔 끓는 거 하난 알아준다니까.

나는 매니저 누나가 알아보기 좋게 정리해 준 스케줄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많아도 너무 많다.

“아침 건강프로에서 저를 왜 찾아요?”

“목 건강에 관련 된 방송을 할 거라고 하더라.”

“…안 나갈래요. 여긴.”

나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수두룩한데 굳이 그런 프로그램에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쏟아진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골랐다.

프로그램 옆에는 같이 나갈 멤버들이 적혀 있었는데, 웬만하면 멤버 전체가 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1순위로, 2순위는 나가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3순위는 멤버들이 꼭 나가고 싶다고 말한 프로그램 순으로 결정을 했다.

“꽉 채워졌네요.”

“이제 네가 다 해치워야 할 것들이지.”

“으아아~!”

나가는 프로그램의 종류는 다양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회사에서 심하게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고선 거르지 않고 내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회사에서 꼭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프로그램 몇 개는 존재했다.

“이건 꼭 나가야 돼.”

“…저 혼자만 나가는 거네요. 이런 건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은데요. 기왕 섭외 해줄 거면 멤버들 전부 다 섭외해주지 왜 저만 했대요?”

KBB에서 진행하는 예술 음악회.

TV에서 방영을 하며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ARS 모금을 하고, 티켓을 판매해서 얻은 순수익 또한 기부 예정인 프로그램이다.

“하하, 그러게나 말이다. 에휴.”

매니저 누나가 머쓱한 웃음을 짓더니 작게 한숨을 쉰다.

그 모습을 보며 누나라고 순순히 저 요청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남자 아이돌이 와서 공연할 곳이 아니라고 했나보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음악회.

아무래도 대규모 공연이다 보니 윗사람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 남자 아이돌을 부르겠다는 소릴 감히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초대 된 것도 가면싱어로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아이돌로 초대한 게 아니라 가면싱어 가왕으로 초대 된 거네.’

그냥 나가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고 했으나 하지 않았다.

‘누나라고 그걸 몰라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 거야. 이런 곳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나한테 너무 큰 이득이지.’

이 스케줄을 하게 되면 나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력 있는 가수’로 사람들에게 어필이 가능해진다.

아마 나중에 솔로 활동을 하게 되면 도움이 많이 될 거다.

가면싱어의 가왕으로 충분히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활동 또한 ‘가면’을 쓰고 한 것이기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는 지금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지가 정말 중요했다.

“나갈 거지?”

“그래야죠. 이런 프로그램에 나가면 도움이 많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 역시 너는 말이 잘 통한다니까.”

매니저 누나의 얼굴이 한결 풀린다.

“그리고 무조건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어.”

“또요? 뭔데요.”

“아이돌 서바이벌 스타원.”

“…설마 연습생들 데려다가 촬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정답.”

“제가 거기서 뭘 해요?”

“멘토 역할이야. 이건 카메오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카메오라….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걸 해요? 거기 갔다가 오히려 비웃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요? 전 연습생 기간이 거의 없다시피 하잖아요.”

멘토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멘토라면 연습생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 정도는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거기 가서 나도 다 해봤다 말하며 열심히 참고 견디니 성공하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멘토를 하기에는 그들이 경험하고 있을 고통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치트키로 씹어 먹고 아이돌 하고 있는데 거기 가서 좀 더 노력하라고 정색하는 말을 하는 건 그들의 노력을 기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니저 누나의 생각은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연습생 기간이 짧았어도 실력은 뛰어나잖아. 연습생 기간이 긴데도 너보다 노래나 춤을 못 부르는 건 그 연습생 잘못 아니야?”

“…….”

저는 치트키가 해준 겁니다만.

“물론 그렇다고 너한테 거기 가서 걔네들한테 이 바닥은 재능이 다니까 포기하고 집에나 돌아가라고 말하라는 건 아니야. 그냥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노하우 같은 거 좀 풀어주고, 힘내라고 다독여주기만 하면 돼. 응원해주고 파이팅해주고 말이야.”

“분위기 환기시키는 역할인 거군요.”

“그렇지. 그냥 너 출연시켜서 화제성을 높이겠다는 거야. 너희들도 슬슬 신인티 벗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 곳에 딱 나와서 고급진 선배미를 보여주면 네 할 일 끝! 이젠 안 부담스럽지?”

짧게 촬영을 할 거라고.

멘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방문한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닌 것이다.

얼굴마담으로 나가는 거라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살짝 아쉬움도 생긴다.

‘걔네들이 하는 거 보고 해줄 말이 있으면 따로 해주면 되겠지.’

매니저 누나는 전혀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며 재차 말했다.

“이번에 네 실력이 주목 받았잖아. 그래서 요즘 연습생들 사이에서 네가 거의 영웅급이거든. 아마 네가 등장하면 애들 좋아서 환장할 거다. 가서 질문 좀 받아주고 싸인해주고 돌아오는 거야.”

“알겠어요. 제가 꼭 출연해야 하는 프로그램은 이게 다 인 거죠?”

“응. 이제 없어. 앞으로 더 들어올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럼 이렇게 스케줄 하는 걸로 알고 있을 게요.”

“그래, 고생했다.”

매니저 누나와 스케줄 얘기가 끝나고 며칠 후.

본격적으로 다시 스케줄이 시작 됐다.

해외 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진행 된 스케줄이었기에 소속사에서는 최대한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우리를 마구 굴렸다.

덕분에 나는 태양이를 무려 10일간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스케줄을 하러 다녀야 했다.

‘힘들다.’

체력주머니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스케줄을 다녔지만, 체력이 부족하다기 보단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기분이 축축 쳐졌다.

행사 무대를 나가도 꼭 나 혼자 부르는 개인 무대를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공연 순서를 바꿔야 하는 일도 생겼다.

멤버들은 몸이 힘들고, 나는 멤버들이 쉴 때도 스케줄을 다녀야 했기에 몸과 정신 모두 힘들어져 한껏 날카로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어젠 태양이가 나한테 마마라고 했어.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태양이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틈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벌써 말을 한다고? 우리 태양이 천재인 거 아냐?!”

­사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가 아니래. 원래 애 키우면 우리 애 천재 아닌가 한다더라. 울 엄마도 나 키울 때 천재인 줄 알았대. 근데 아니었던 거지.

“우리 태양이는 특별하잖아. 정말 천재일 수도 있지!”

나는 태양이가 천재가 아닐 거라는 누나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벌써 엄마라고 부른다는데 어떻게 천재가 아닐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재능 많은 이 몸뚱어리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태양이도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와~ 나도 나지만, 너도 만만치 않은 팔불출이구나.

“진짜 나중에 딱 봐라. 태양이는 천재가 맞아.”

태양이와 주아 누나를 보며 힐링을 하는 것도 잠시.

“나 촬영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태양이도 이제 낮잠 잘 시간이야.

“응응. 누나랑 태양이 때문에 버티는 것 같아. 에휴, 이따가 또 전화할게.”

­고생 많아, 우리 남편. 힘내!

전화를 끊고 촬영장으로 움직였다.

오늘은 서바이벌 아이돌 스타원을 촬영하기 위해 온 상태였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힘 좀 내려고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시간을 낸 것이다.

‘방송엔 5분도 안 나갈 텐데, 이번엔 몇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되려나.’

활동을 하러 다니다 보면 참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10분도 안 되는 무대를 하러 3시간을 달려서 가야 할 때도 있고, 하루를 다 써서 촬영을 해도 방송에선 분량이 아예 삭제 된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여태까지 노력하고 쏟아냈던 시간의 값어치는 다 어디로 갔나 싶어 억울함이 밀려온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들였던 시간은 2시간이 넘지만, 그렇게 촬영을 해서 방송에 방영 되는 시간은 고작 5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우와아~!!”

“멘토로 에어플레인 진해솔씨가 와주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와아아악!!!

짝짝짝! 짝짝짝!

연습생들이 내 등장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누가 봐도 방송용 환호이고, 방송용 박수였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법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 보인다.

‘호승심도 있고, 질투를 하는 애들도 있고. 저쪽은 너무 질이 나빠 보이는데.’

어디서 양아치들을 데리고 와서 촬영을 하는 건지.

저런 애들이 바로 밑에 깔아주는 애들로 쓰이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방송 촬영 중인데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딱 프로도 되지 못할 아마추어의 한계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에어플레인 진해솔입니다.”

“요즘 흑마 탄 백발 왕자님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계신데, 바쁜 와중에도 스타원 연습생들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여기 들어오니 후끈한 열기가 가장 먼저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기운을 드리려고 왔는데 오히려 열정 가득한 후배님들한테 좋은 에너지를 얻어갈 것 같아요.”

“특별한 혜택을 공개하겠습니다. 오늘 있는 중간 평가에서 1등을 한 팀은 멘토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찬스가 주어집니다!”

오오오!

와~!

가면싱어에서 엄청난 싱어의 재능을 뽐냈던 진해솔의 조언을 받는다는 건 큰 혜택이 맞았다.

더욱이 그는 현직 아이돌이 아닌가?

업계 관계자들이나 남자 아이돌을 무시하지, 연습생들에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직 아이돌은 감히 우러러 보기도 힘든 존재였다.

“현직 아이돌이라고 다 선배 취급 해줘야 하는 건가? 그닥 조언 받고 싶지 않은데.”

…물론 가끔 꼬인 성격을 가진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쟤는 저런 말이 고대로 방송에 나가도 괜찮은 건가?’

좋은 말이 더 많은데 이상하게 날 욕하는 말이 귓가에 화살처럼 꽂혀 들려왔다.

하긴, 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남자애들 걱정인데 뭐하러 걱정해주냐.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받기 싫다는 놈들 중에 과연 1등하는 놈이 나올까?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놈들이 과연 몇 등을 할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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