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68화 (168/849)

〈 168화 〉 #23. 스케줄스케줄스케줄 (2)

* * *

“흑! 흑흑!”

울음이 터져 나온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팀이 나왔고, 본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 연습생이 기어코 눈물을 터트렸다.

‘실수를 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얘네들이 만든 구성이 제일 좋은 것 같은데.’

실수를 한 이유도 구성을 알차게 만들어 넣은 것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 된 모습을 보았을 때 아마 스타원 연습생들 중 가장 멋진 무대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저렇게 분해서 울 정도로 열정을 갖고 있으면 답은 나온 거지.’

울고 있는 애가 기우연과 동갑인 또래라서 어쩐지 자꾸 마음에 쓰인다.

반면 중간평가 때 1등을 한 조는 모든 게 무난했다.

댄스 구성도 무난한 덕분에,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그로인해 1등을 하게 된 것이다.

“스타원 연습생들의 중간평가 무대를 모두 보셨는데 어떠셨나요?”

중간 평가가 끝난 무대에서 스타원 연습생들이 감정을 미처 채 추스르지 못한 채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가운데, MC가 내게 물었다.

1등한 조만 내게 조언을 받을 기회를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소감을 묻는 것은 모두에게 조언을 받을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무대가 좋았다고 겉치레 하면 되나? 근데 쟤들 무대가 진짜 좋았던 건 아니잖아.’

하나 같이 어리숙하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무대들이었다.

아무리 중간 평가라지만 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저는 애들도 있지 않았는가?

“음, 일단 실력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붙어야만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건 알지만 이 정도로 실력 차가 많이 나면 본인도 알 수밖에 없거든요.”

“”

“!!”

모두들 내가 틀에 박힌 좋은 소리나 하고 가겠지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쟤는 왜 저렇게 잘 하지? 나는 왜 저렇게 못하는 거야? 이게 자꾸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본질을 잊게 됩니다. 남이랑 스스로를 계속 비교만 하는 거죠. 뭐가 진짜 중요한 건지 까먹어버리고요. 그럼 의욕이 떨어집니다. 열심히 해봤자 탈락할 텐데 포기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거든요.”

“아….”

“실제로 저는 몇몇 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할 테지만, 본인 스스로는 알고 있을 거에요. 솔직해진다는 게 생각보다 많이 힘겨운 일이거든요.”

지금이야 치트키가 있어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금방 실력을 늘릴 수 있게 됐지만, 과거의 나는 저쪽에 모든 걸 포기하고 의욕을 잃은 연습생들과 매우 비슷했다.

단순히 내가 연습생 생활이 적었다는 이유로 공통점을 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된 편견이었나 보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다 한들 뭐 그리 달랐겠나?

이 아이들이 벌써부터 현실에 꺾여 희망을 잃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실 좋은 소리하고 가려고 했습니다. 입에 바른 말을 하는 게 저나 여러분들 기분상 더 좋잖아요? 제작진 분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요. 근데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서 무대를 보고 나니까 그냥 모르는 척 눈 감고 가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쓴소리 좀 하겠습니다.”

“아!”

MC가 나를 말릴까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는데 내 말을 듣고 생각을 굳혔는지 완전히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서 떼어냈다.

내가 진심으로 이들을 위해 말을 하려는 것임을 눈치 챈 것이다.

“오늘 1등한 조, 조언을 받게 될 텐데 미안하지만 여기서 말하겠습니다. 지금 1등하니까 진짜 무대에서도 이대로만 하면 1등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연습하면 질 겁니다. 1등 절대 못 할 거에요. 오늘 꼴찌한 조가 11팀이었나요? 11팀이 왜 실수를 많이 했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

정적이 흐른다.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총 12팀으로 알고 있는데, 12팀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성을 만든 게 11팀이에요. 그래서 실수가 많았고, 오늘 중간 평가에서 꼴찌를 한 겁니다. 근데 제가 보기에 저 팀은 본선까지 무대를 완벽하게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꼴찌했잖아요. 실수 많이 해서 독기가 잔뜩 올랐더라고요. 무조건 완성해서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눈에 가득 담겨 있어요.”

“!!”

“!!”

연습생들의 시선이 11팀으로 향한다.

“만약 오늘 11팀이 실수없이 무대를 끝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질문 아닌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뱉어냈다.

“아마 11팀이 1등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구성이 좋았어요. 모험을 하지 않은 무난한 1등의 무대보다 저는 본선에서 보여줄 11팀의 무대가 더 기대가 되더군요. 자, 그럼 1등 팀을 포함해 다른 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성을 바꿔야 한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늘 11팀이 보여준 모습은 1등 팀보다 더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엉망진창이었고, 실수도 많았고, 포기한 채 연습을 게을리 했던 팀보다 못한 꼴찌가 됐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가능성입니다. 꼴찌가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 1등이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 비록 지금은 포기했지만 그 끝은 포기자가 아닌 찬란한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아, 제가 이렇게 예를 들었다고 1등 팀이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등 팀이 계속 1등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지금 갖고 있던 안일한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지금의 1등 팀은 절대 끝까지 1등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좋은 소리 해드리고 싶었는데 쓴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스타원 연습생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MC가 재빨리 말을 받아주며 촬영을 끝냈다.

연습생들은 내 말 때문에 어안이 벙벙한지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쉽사리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하지만 기우연을 연상시키던 연습생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싸인을 요청하자 다른 연습생들도 용기를 얻고 다가왔다.

“정말 멋있으세요.”

“실물이 더 잘 생기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실 수 있으신 거에요? 노하우가 있나요?”

“춤도 되게 잘 추시던데 어디 학원에서 연습하셨어요? 추천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휴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내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는 스타원 연습생들을 받아주다가 다시 촬영이 재게 되고나서야 촬영장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기우연을 닮은 연습생에게 작은 팁을 몰래 전해주고 떠날 수 있었다.

‘얘는 어떤 방법으로든 무조건 데뷔를 할 것 같네.’

연예계에서 제법 짬밥이 생기다 보니 이젠 딱 느낌이 오는 애가 있다.

아, 얘는 데뷔해서 뜨겠구나 하는 식의.

그런 느낌을 주는 애가 바로 기우연을 닮았던 아이였다.

‘나중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

오늘 내가 베푼 작은 친절로 연예계에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다면, 이 정도 수고는 충분히 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다.

???

정신없이 촬영을 해내갔다.

6명의 멤버들 중 3명씩 찢어져서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6명이 전부 뭉쳐서 무대를 하기도 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흑마 탄 백발 왕자님의 인기도 시간이 흐르니 점차 수그러들고 있었다.

하루에 5건이나 되던 인터뷰도 이젠 뽑아 먹을 걸 다 뽑아 먹었는지 더 이상 요청이 오지 않았다.

“3일 정도 푹 쉬고 와라.”

“3일 후에 바로 해외로 나가는 거에요?”

“응. 해외 스케줄도 빡빡하게 잡혀 있어. 미루고 미뤘던 일이니까 해외 나가서도 열심히 해야 된다?”

“으아아아~!”

“맙소사아아아~!!!!”

“안 돼에~!! 너무 스케줄이 살인적이잖아요오~!”

“저희 죽어요!!”

진짜 죽기 직전인 우리들.

그러나 매니저 누나는 너무 단호했다.

“안 돼.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이미 계약까지 다 해놨는데 그거 펑크 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해외의 계약은 굉장히 철저해서 펑크가 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데, 그 돈이 어마무시하다.

그러니 우리가 앓는 소리를 낸다 해도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한 번 미루면서 저쪽에서 양해를 해준 상황이야. 더 이상 큰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그건 그런데 3일은 너무 적어요.”

“적어도 일주일은 주시면 안 되나요?”

“침대에 누워서 눈 감고 뜨면 3일은 지나간다구요. 흑흑흑!”

해외 활동을 뒤로 미룬 보람은 있었지만, 우리들의 육체와 정신 건강은 크게 상한 상태였다.

3일을 쉰다 해도 피로가 전부 풀릴 리 만무했다.

‘근데 후회가 되지는 않아. 그만큼 효과를 봤으니까.’

TV를 틀기만 해도 우리 얼굴이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많은 곳에 출연했다.

요리 프로그램, 음악 프로그램, 라디오, 서바이벌, 토크쇼, 예능, 스포츠 예능 등등.

이번 활동의 전과 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일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역시 계기를 얻어 빵 뜨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건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나에게 크게 의존하긴 했지만 계기를 얻어 많은 예능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제 남은 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해외 팬들을 위한 해외 활동이었다.

‘틈틈이 유티비 활동을 했다지만, 직접 가서 활동하는 것만은 못 하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해외로 가야 하는 거다.

해외 팬들이 국내 팬들처럼 뭉칠 수 있도록!

“해외에서 미니 콘서트 한다고 했죠?”

더욱이 내가 해외 활동에 기대를 많이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니 콘서트!

가면싱어를 하며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소원이 이루어질 줄 몰랐다.

크게 하는 콘서트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팬들과 우리만의 콘서트를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소소하게 100명 모아서 하는 콘서트지만, 반응이 좋으면 더 크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솔직히 해외 팬이 100명이 넘을지 걱정이 되긴 하는데, 매니저 누나 말에 따르면 내 얼굴만으로도 100명은 거뜬히 모을 수 있다고 하니 미니 콘서트에 자리가 빌 걱정은 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꿈을 더 크게 가져서 미니 콘서트에서 ‘미니’를 뗄 수 있을 날을 기다리는 중이기도 했다.

“맞아. 해외 활동 하면서 콘서트 준비도 해야 돼.”

“와…미쳤다. 차라리 절 죽이라고 하고 싶은데, 콘서트 할 생각 하니까 너무 설레서 그런 말이 쏙 들어가요.”

“콘서트 얘기하면 힘이 나버리는데….”

콘서트를 기다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멤버들 모두 가열차게 달려왔음에도 쉴 수 없는 현실에 아우성을 치다가 콘서트라는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린 것이다.

모든 아이돌의 꿈이 콘서트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팬싸인회, 미니 콘서트, 방송출연까지 다 하면…어휴~ 한 두 달은 훌쩍 가겠네.”

“해외 활동은 언제 끝나요?”

태양이 봐야 하는데, 이번에 해외 나가면 얼마나 자라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영상통화로 볼 때 부쩍 성장해 있어서 서운함이 가시질 않는데….

우울함이 차오른다.

아무래도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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