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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169화 (169/849)

〈 169화 〉 #23. 스케줄스케줄스케줄 (3)

* * *

사실 나에게는 이미 태양이를 하루에 한 번씩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했을 때 주아 누나와 정화씨에게 할 말이 없어서 쓰질 못했다.

때문에 태양이가 보고 싶어서 못 참을 정도에만 간간히 사용하며 보러 다녔었다.

아무리 스케줄이 바빠도 사람은 잠을 자야 했고, 새벽이 되면 나에게도 자유가 주어진 덕분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해외에 나가 있을 때 뭐라고 하고 보러 오냐?’

거리가 너무 멀다.

변명이 먹힐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거다.

비행기를 타고 태양이를 보러 왔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황당한 변명은 당연히 먹히지 않을 텐데.

‘도대체 뭐라고 하지? 그냥 스케줄이 있어서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의 변명은 한두 번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해외에서 스케줄을 하고 있다는 기사라도 뜨면?

내 말의 알리바이가 맞지 않으니 변명하기 힘들어질 거다.

“아이템이 있어도 쓸 수가 없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휴가가 나온 3일을 즐기자!

띠링­ 띠링­ 띠링­

태양이를 보러 가기 위해 주섬주섬 숙소 방에서 짐을 챙기고 있던 와중이었다.

문자 메시지가 연달아서 왔고, 확인하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울 애기 아혀니♡ : 휴가 끝나면 바로 해외로 가는 거구나. 있지이~ 시간 하루만 내줄 수 있어?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어! 네 생각 하면서 쓴 거야. (수줍은 고양이 이모티콘)]

[햇님이 마망 : 태양이가 아빠 보고 싶대용! 올 때 멜론 좀 사와 줘~ 멜론 먹고 싶당.]

[쑨이 누나 : 휴가 3일이지? 바다 보러 갈래?]

[미르용 : …자니?]

차례대로 아현이, 주아 누나, 복순 누나, 그리고 민영 누나한테서 온 연락이었다.

“그 와중에 민영 누나가 제일 소심하네.”

민영 누나는 아름다워진 얼굴로 인기를 잔뜩 얻고 있는 중이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연기력은 알아주는 사람이었기에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다.

내 취향을 듬뿍 담아 만든 얼굴이 다른 남자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 누나가 걱정되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엄청 우울해 했는데 괜찮은가 모르겠네.’

얼굴이 예뻐진 것은 여전히 행복하고 좋지만, 외모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들의 이중성을 보며 상처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에 대한 집착과 의존도가 올라가서 그걸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민영 누나랑은 한 번 만나야겠네. 이 누나 나 없으면 못 버틸 텐데.”

해외로 나가려니까 왜 이렇게 걸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민영 누나에게 오늘 만날 수 있는지 물으니 빠르게 답장이 왔다.

[미르용 : 만나자구? 오늘? 정말? 시간 되는 거야?]

[나 : 네. 오늘 시간이 났어요.]

[미르용 : 응응응응! 만날래! 당장 만나자! 나 시간 돼!]

[나 : 제가 누나 집 쪽으로 갈게요.]

[미르용 : 얼마나 걸려?]

[나 : 한 1시간 정도요.]

[미르용 : 알았어!! 준비하고 있을게!! 천천히 와두 돼!!]

씻고 준비하는데 여자들은 1시간이 뚝딱일 것이다.

[나 : ㅋㅋ알았어요. 천천히 준비해요.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시간 좀 죽이고 있어야 할 듯했다.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움직였다.

30분 정도 달리니 민영 누나의 집이 보였다.

나는 굳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지 않고 카페로 들어가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저기, 죄송한데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깜짝 놀랐다.

순간 나한테 한 말인 줄 알고 말이다.

하지만 카페에 앉은 다른 자리에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번호를 물어보고 있는 거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안경을 만져서 잘 적용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싫어요. 가세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혼자서 심심해 보이던데, 제가 심심하지 않게 해드릴 수 있거든요.”

“그쪽이 개그맨이라도 돼요? 그리고 약속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필요 없으니 가주세요. 귀찮습니다.”

모자를 쓰고 있던 남자가 굉장히 차가운 목소리로 여자를 쳐냈다.

하지만 저 정도 거절로는 여자를 물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바퀴벌레처럼 죽여도죽여도 나오는 게 여자니까.’

아니나 다를까 대놓고 귀찮다는 말을 들은 여자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잘 해드릴 수 있습니다! 5분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제 평생의 이상형이라서 그렇습니다!!”

군대에 온 것 마냥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외치는 여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만큼 저 남자에게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여자의 태도에 남자의 꽁꽁 얼어 있는 마음이 조금은 녹았던 모양이다.

“…5분 드릴게요.”

“헉!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덜컹!

남자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여자가 잽싸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여성은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남자와 얘기를 시작했다.

주로 본인에 대한 어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고, 경제력은 얼마나 되는지, 가족 관계는 이러이러하며, 애인을 사귄 적은 없고 등등.

‘뭐 저런 것까지 말을 하지 싶을 정도의 것들을 다 말하네.’

대단한 열정이었다.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부담스러워서 싫었을 것 같은데, 남자는 의외로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기야!! 야! 너 뭐야!”

한 여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더니 자기 애인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운동을 하는 여자였는지 몸매가 굉장했다.

근육이 잘 생기지 않는 여자의 몸에 근육이 생길 정도이니 말 다했다.

자기 어필을 하던 여자는 애인이 나타나자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흠흠, 죄송하지만 제가 이분께 첫눈에 반해서요.”

“뭐래, 시발.”

“지영아! 욕하지 말라고 했잖아.”

“넌 좀 가만히 있어봐! 뭘 잘 했다고 시발! 이 상황에서 어떻게 욕을 안 해? 딴 여자 앉혀놓고 지금 그 뻔뻔한 태도는 뭔데? 나로는 부족하냐?”

“나는 싫다고 했어. 근데 저 여자가 제발 5분만 달라고 빌었단 말이야. 내가 마음이 여리잖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

“시발년아, 어디서 임자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수작질이야? 디지고 싶냐?”

“그래!! 첫 눈에 보고 반해서 좀 들이댔다!! 어쩔래!! 시발!!”

“뭐? 어쩔 거냐고? 이게 미쳤나, 지금 막 나가자는 거야?!”

“남자한테 여자가 좀 들이댈 수도 있는 거지!! 자기 남자 지킬 자신이 그렇게 없냐?! 찌질한 새꺄!”

드르륵­

여기 계속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이기에 미련 없이 커피를 들고 일어났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직원이 후다닥 달려와 소란을 일으키는 고객들을 만류하기 시작한다.

그런다고 눈 뒤집힌 여자들이 진정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저들은 아마 남자가 짜증을 내서 나가버리거나 경찰이 올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게 안경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저 남자가 경험하고 있는 일은 약과인 것처럼 수시로 당했을 것이다.

요즘 멤버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편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지를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문제고, 알아보지 않아도 문제가 생긴다고.

‘애들이 관리를 받기 시작하고 나서 이젠 멀리서 봐도 연예인인 게 티가 나긴 해.’

팬들은 그걸 숨길 수 없는 훈내라고 한다던가?

내가 안경을 애지중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을 ‘안경’이 모두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코인 아이템은 비싼 값이 아깝지가 않다.

일단 지불만 하면 그 값을 톡톡히 해내는 녀석들이니 말이다.

“솔아~!”

기다린지 1시간이 좀 넘었을 때.

민영 누나가 집 앞에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별로 안 기다렸어요.”

“히힝~!”

연노랑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기분이 좋았는지 한껏 밝은 미소로 내 팔짱을 끼었다.

드라마에 들어간 그녀는 밝고 꿋꿋하게 어려움을 이겨내는 천재 캐릭터다.

연기를 하는데 실제 성격이 따라가는지 점점 누나의 성격이 밝아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은 저렇게 밝아도 언제 또 울면서 전화 올지 알 수가 없으니 원.’

더군다나 오늘 그녀에게 당분간 해외로 나가 있어야 해서 만나기 어려워질 거라는 걸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얘기를 한 순간 오늘 데이트는 완전히 나가리가 될 것이기에 헤어질 때즘 말을 할 생각이다.

“근데 말야.”

“네?”

“네 앞에서 이런 말하는 거 되게 부끄러운데, 요즘 사람들이 날 알아보기 시작했거든?”

“아~!”

누나가 수줍게 하고 있는 말은, 이대로 손잡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럼 어떡하죠?”

“그…집에…아무도 없는데에….”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집에서 데이트 하자는 거죠?”

“으응. 네, 네가 싫으면 밖에 데이트해도 돼! 모자랑 마스크 쓰면 아무도 못 알아 볼 거야!!”

어휴, 이 야한 누나를 어떡하면 좋지?

그녀가 한 핑계 자체는 거짓말이 아닐 거다.

하지만 나를 집에 초대하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서 내 얼굴이 다 화끈할 지경이었다.

나는 할 말 다 하고서 부끄러워하는 민영 누나의 손을 꽉 잡았다.

“오늘 너무 예쁘게 꾸미고 와서 이대로 집에 들어가는 게 좀 아쉽긴 하거든요? 마스크랑 모자 쓰고 우리 영화 한 편만 딱 보고 집으로 가요. 어때요?”

“영화?”

“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하고 이미 예매를 해놨거든요.”

“읏! 그럼 영화 보러 가자! 나는 그냥 사람들이 자꾸 알아봐서 조심하자는 차원이었어. 들키면 큰일이잖아. 여자는 스캔들 나도 상관없지만, 남자한테는 치명적이라구.”

허겁지겁 변명을 하는 게 귀여워 보이는 것은 그녀의 외형이 내 이상형 그 자체이기 때문일까?

사실 그녀가 귀여웠던 건 못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보러 가는 거 싫지는 않은 거죠?”

“안 싫어. 완전 좋아! 완전!!”

“하하하. 그럼 어서 보러 가요. 모자랑 마스크 제 걸로 줄게요.”

딱 봐도 집에 바로 들어가려고 했는지 모자와 마스크가 없었다.

아주 작정하고 끼를 부려서 나와 함께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던 거다.

연노랑색 원피스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마스크와 검은색 모자에 살짝 아쉬워졌지만, 안경의 효능을 그녀에게 말할 순 없었으므로 참기로 했다.

“근데 참 신기한 것 같아. 네가 안경만 끼고 다녀도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나도 안경만 쓰고 나가봤거든? 근데 금세 알아보더라고. 너랑 있으면 이렇게 다들 신경도 안 쓰는데 말이야.”

멤버들도 눈치 챈 일이다.

나랑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멤버들이 사람 많은 곳에 갈 일이 생기면 항상 나를 데려가려고 안달복달을 낸다.

당연하지만 무료 봉사 따위는 해준 적 없다.

“그냥 제 체질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먼저 나서서 티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가 있는 줄 모르더라고요. 이런 체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자라면서 되게 귀찮은 일이 많았을 거에요.”

“그런 체질이 있어?”

“과학적으로 증명 된 건 아니에요.”

“아! 미안해. 내가 또 예민한 부분을….”

민영 누나는 내 정액에 관련 된 내용을 떠올렸는지 주변 사람들이 혹여나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줄였다.

여러 번 다시 생각해봐도 개소리가 맞았던 내 거짓말을 그녀는 여전히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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